'교회'에 해당되는 글 38건

  1. 2016.11.15 [후원요청] 한국교회 신뢰 회복을 위한 기초 조사, 회원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2. 2016.04.27 [기윤실포럼] 양극화와 한국사회의 갈등현상 : 주거 교육 세대 노동 - 발제문
  3. 2015.10.19 [표절과 한국교회 포럼] 진리는 사되 팔지는 말며(남형두 교수) 발제 요약
  4. 2015.05.21 기윤실 열매소식지 2015년 5-6월호가 발행되었습니다.
  5. 2015.03.26 부교역자의 사역 및 생활환경 개선합시다
  6. 2014.09.30 [비전메시지] 교회의 사회참여(임성빈 공동대표)
  7. 2014.07.30 [교회재정건강성운동] 교회재정공개좌담회 "재정공개 실현과 과제" 34개 교회 결산서 결과분석 (3)
  8. 2014.06.12 [기윤실 자발적불편운동 6월 캠페인] "대중교통으로 교회가요" 타요타요이벤트 (~6/29)
  9. 2013.12.13 "사랑의교회 건축을 통해 본 한국교회 건축문제" 긴급좌담회 녹취록
  10. 2013.12.13 교회, 핵에너지를 넘어 대안을 생각하다 - 2013 교회의 사회적책임 심포지엄 후기 및 자료집
  11. 2013.08.05 교회청년 윤실이, '동네청년'이 되기로 하다!
  12. 2012.11.29 교회, 협동조합과 만나다! (2012 교회의 사회적책임 심포지엄 "협동조합과 교회" 후기)
  13. 2012.06.25 기윤실 청년TNA 6월모임 후기 >TNA, 손봉호 선생님과 만나다.
  14. 2012.06.21 기독교계 금권선거를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1)
  15. 2012.05.29 ‘목회자 소득세 신고 어렵지 않아요’ 안내책자 발간
  16. 2012.05.29 기윤실 청년TNA 5월모임후기 _ 기독청년과 자본주의(5/24@청어람3실)
  17. 2012.04.19 장애인에게 편한 것이 모두에게 편한 것입니다.(서울영동교회 사례)
  18. 2011.12.16 [동영상] 한국교회 갱신을 위한 기도회(11.12.06.) (3)
  19. 2011.12.07 '한국교회 갱신을 위한 기도회'가 열렸습니다.
  20. 2011.11.25 [전월세대란실천캠페인] 이웃을 위한 작은 실천으로서의 전월세값 동결 (이동원 목사 설교)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를 위한 모금]

한국교회 신뢰 회복을 위한 기초 조사, 회원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자신의 주어진 삶의 현장 가운데 복음에 합당한 정직한 그리스도인, 신뢰받는 교회,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시는 회원님들과 회원 교회에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특별히 국가적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비선실세인 최순실에 의해 국정이 마비가 되는 위중한 상황이라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깨어 국가가 올바른 가치에 의해 세워지도록 기도하고 행동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은 기윤실이 3년에 한 번씩 실시하고 있는 “한국 교회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와 관련해 회원님과 회원교회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입니다. 회원님께서 잘 아시다시피 한국 교회가 성장을 멈추고 퇴조의 길을 들어선 지도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가 문을 닫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청년과 청소년 층의 기독교인들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한국교회의 급속한 퇴조에는 한국 교회가 사회적인 신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데 모두가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가 다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냥 탄식만으로 되지 않고, 한국 사회가 한국 교회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어떤 연유로 신뢰를 잃어버렸고, 또 이러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에 대한 과학적인 조사와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기윤실에서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간 연속해서 “한국 교회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를 실시해 발표했고, 이후에는 3년 간격으로 실시하기로 해 2013년에 실시했고, 2016년 올해 실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5차례 “한국 교회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는 한국 교회의 대 사회적 신뢰도 관련 기초 지표 역할을 충실히 해왔습니다. 교계는 물론이고 일반 언론들도 이 결과를 비중 있게 보도했고, 주요 교단과 기독교계 중요 단체들이 이 지표를 근거해 한국교회 신뢰 회복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 신뢰도 조사”는 과학적 근거 마련을 위해 전문 여론 기관에 의뢰해 실시 및 분석을 하고 있어 1,600만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됩니다. 이를 위해 분당우리교회(담임목사 이찬수)와 울산교회(담임목사 정근두)가 각각 500만원씩 부담해주시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600만원 마련에 회원님들과 회원교회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자세한 후원방법과 예산내역은 아래를 참고해주십시오. 회원님의 참여가 한국교회의 신뢰 회복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

 

 

(사)기독교윤리실천운동 사무처 드림

 

 

후원금

예상 참여

회원/교회

총액

비고

500만원

2명

1,000만원

분당우리교회,

울산교회 약정완료

100만원

1명

100만원

 

50만원

2명

100만원

 

10만원

10명

100만원

 

5만원

20명

100만원

 

2만원

50명

100만원

 

1만원

100명

100만원

 

총 합계

 

1,600만원

 

 

 

지출 내역

금액

여론조사비 (지앤컴리서치)

1,300만원

분석연구비 (연구원 2명)

100만원

여론조사 발표세미나 진행비

100만원

여론조사 자료집 인쇄비

100만원

총 합계

1,600만원

 

 

《 후원 모금 기간 》 2016년 11월 14일(월) ~ 12월 2일(금)

《 후원 모금 계좌 》 하나은행 109-228746-01205 예금주 (사)기독교윤리실천운동

《 문의 》 02-794-6200, cemk@hanmail.net 김현아간사

 

 

 

 

2014/02/05 - 2013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 발표 세미나 후기 및 자료집(언론기사+영상포함)

2016/04/27 - 2016년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를 실시합니다.

2016/10/17 - 기윤실 열매소식지 9-10월호가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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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윤실


[2016 기윤실포럼]

 

양극화와 한국사회의 갈등현상 : 주거 교육 세대 노동 


 

이 글은 지난 4월 25일(월) 오후3시,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에서 진행되었던 "양극화와 한국사회의 갈등현상 : 주거 교육 세대 노동" 포럼 자료집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주석 및 발제문 전문은 기윤실 홈페이지 자료실(cemk.org)에 첨부된 PDF 파일을 내려받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기윤실 자료실 바로가기 클릭)


 



"자식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은 천지개벽했다'

 

 

오 찬 호 박사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진격의 대학교 』


 

 

   지금세대가 과거와 얼마나 다른 환경에 처한 지를 수치적으로 확인하는 건 구글 검색 몇 분이면 가능하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공인중계소 앞에서 한번이라도 머뭇거려 보았다면 ‘달라짐’을 느껴야함은 당연하다. 일례로 1991년에 5500만원 했던 분당의 아파트가 지금은 5억 5천만 원이다. 이 팩트 하나만으로도 여러 논의를 뽑아낼 수 있다. 첫째, 집을 마련한다는 개념자체가 완전히 달라진 시대의 등장이다. 10년 바짝 모으면 가능했던 시대와 20년을 바짝 모아도 불가능한 시대는 결코 같은 시대가 아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많이 잡는 시대는 끝났다. 지금은 몸만 피곤할 뿐이다. 둘째, 아파트가 의미 있는 재테크가 불가능해진 시대다. 아파트 가격이 과거처럼 오를리 없다. 그러니 열심히 산다고 자산증가폭이 동일할리 없다. 티끌모아 태산이 아니라 ‘티끌은 모아봤자 티끌’이 되는 시대다. 그리고 이 문제는 같은 청년세대‘안’에서의 균열이 과거에 비해 커질 수밖에 없음을 이해한다. 그렇게 가난했다던 시대에도 ‘내 집 마련을 포기’한다는 말이 드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N포세대란 말이 자연스러워졌다. 그중 가장 대표적 ‘삼포’ 중 하나가 바로 내 집 마련이다. 무슨 수영장 딸린 3층 저택을 구입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24평짜리 아파트도 가격에 입이 떡 벌어진다. 그런데 누구는 부모 잘 만난 덕에 ‘주거권’을 쉽게 확보한다. 누구는 당연한 권리를 얻기 위해 몇 십 년간 아등바등 거리는데 누구는 ‘몇 십 년’을 시간 절약 한다. 그러니 이들의 격차는 결코 좁혀지지 않는다. 잘 사는 집안의 자녀가 크루즈 세계여행을 가는데 누구는 못 간다면 이는 불평등이긴 하지만 사회문제까지는 아니다. ‘세계여행’이 보편적 인간의 권리는 아니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개인이 수긍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집’은 그렇지 않다. 사회가 정상이면 ‘열심히 공부한 다음 어떤 일이든 성실하게 주 40시간을 일하면’ 자기 소유의 집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가?

 

 


그때는 그걸 묻지 않았다


시간대가 다른, 그리고 경제적 수준이 달랐던 가정에서 살았던 A, B 이야기를 할까 한다. 이야기는 과거와 다른 상황에 처한 지금의 청년세대의 실상, 그리고 지금의 청년들 안에서의 어떤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그 내용을 미리 말하자면 A보다 부유한 가정에 살았던 B가 다른 이유도 아닌 ‘자신이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것을’ 탓하면서 부모를 ‘끊임없이’ 원망하게 된 사연에 관한 거다. 먼저 과거에 살았던 A다. A는 지방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아버지는 A가 어릴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앞 2평 남짓한 공간에서 떡볶이를 평생 파셨다. 고로 A는 힘겹게 살았다. 과외는커녕 학원조차 맘 편히 다닐 형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A는 개의치 않았다.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을 본인이 악착같이 한다면 대학은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A는 ‘성문종합영어’와 ‘수학의 정석’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했고 나름 사학명문이라 불리는 지방의 한 대학으로 진학했다. 지금은 ‘지잡대’라면서 조롱의 대상이 된 대학이지만 그때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니 ‘대학서열’의 상층부 학교, 이른바 ‘인서울’의 이름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지 못한 것은 A에게 약간 아쉬울 뿐이지, 인생의 ‘발목’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좀 더 좋은 조건에서 공부시켜주지 못한 부모에 대한 원망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지배적’이지 않았다.

 


대학에 진학한 후 가정형편상 등록금과 생활비를 부모로부터 받을 수 없었던 A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교 앞 호프집에서 저녁 6시부터 밤 12시까지 서빙을 하는 일이었다. 이는 곧 학점관리의 문제로 이어졌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했고 A는 평균 3.0 학점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B학점에 턱걸이를 한 수준이니 학업성적이 탁월했다고 볼 수는 없으나 취업과정에서 이것이 문제되지는 않았다. “왜 학점이 이 정도죠?”라고 묻는 사람이 없으니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던 힘든 상황과 이것이 야기된 이유에 대한 원망도 없었다. A의 취업이력서는 단촐 했다. 엄연히 말해 평균 B학점으로 졸업한 대학의 학위증은 당시로서 결코 초라한 대우를 받지 않았다. 그 시절, 영어성적과 자격증은 보유한 사람만 적는 것이지 의무가 아니었다. “너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토익을 공부하는 거야?”라는 눈총을 받았던 친구 몇몇만 남들하고 다른 어학능력을 이력서에 기재했는데 이들은 실제 그런 능력을 필요로 하는 희소한 자리로 진출했다. 그러지 않은 곳에서 일할 사람에게 영어능력은 있으면 좋겠지만 없다고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변수는 아니었다. 그래서 A는 이력서의 자격증 칸에 군대에서 취득한 ‘태권도 1단’과 ‘운전면허’를 적었고 무난하게 정규직으로 취업했다. A의 부모는 자식이 영어를 배움에 있어서 ‘아낌없는 지원’을 전혀 할 수 없었지만 이 때문에 자녀와의 관계가 소원해지지 않았다. A는 대학에 입학한 후 취업할 때까지 부모님께 딱 한번 손을 벌렸다. 면접 때 입고 갈 정장을 사야 하는데 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중에 갚아드리겠다’면서 받은 5만원이 전부다. 이 ‘나중’도 취업의 공백기가 없었기에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학입학과 졸업, 그리고 취업에 이르기까지 부모의 도움이라곤 받아 본 적이 A는 지금에도 부모님을 늘 공경한다. ‘낳아주고 하루 세끼 밥 굶기지 않으면서 길러주신’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할지 전전긍긍한다. A는 부모로부터 ‘하루 세끼’ 밥 얻어먹는 것조차 대학을 입학한 다음은 그마저도 스스로 해결했다. 하지만 부모로부터 적극적인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해서 나타나는 ‘자녀의 역량’을 과거에는 그렇게 묻지 않았다. 쉽게 말해, 비행기 표 살 돈도 없는 가정이라도 ‘어학연수’를 취업의 기본으로 묻는 시대가 아니라면 이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개인이 처한 ‘가난’은 마음먹기에 따라 극복될 가능성이 어느 정도는 있었다. 설사 가난이 개인의 삶을 제약하더라도 감당할만한 수준의 사회였다. 나는 이 시기를 ‘좋았다’라고 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지금이 이때보다 ‘더’ 나빠진 건 분명하다.

 

 

 


끊임없이 부모를 원망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하다


B 이야기를 해 보자. B의 아버지는 중학교 교사이며 어머니는 9급 공무원이다. B 가족은 서울 끝자락에 있는 23평 아파트에 ‘자가로’ 살고 있다. 말이 끝자락이지 시세가 5억이다. 두말할 것 없이 B가족은 ‘중산층’이다. B는 흔히 하는 말로 ‘풍족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 않게’ 유년시절을 보냈다. A와 비교한다면 단연코 풍족했다. A는 목욕탕에서 독학했다는 수영을 B는 아파트 앞 유소년스포츠센터에서 무려 3년간 배웠다. A는 사교육이란 것을 고3때 시험을 앞두고 수학학원 3개월 다닌 게 전부였지만 B에게 사교육은 성장과정의 일부였다. B의 부모는 변호사, 의사 집안의 자녀처럼은 아니더라도 또래 평균치 정도는 투자했다. A는 유치원 때부터 집을 들락날락거리는 학습지교사를 만났고 과학캠프, 영어캠프도 꼬박꼬박 참가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터는 동네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그래서 ‘더 비싸다는’ 학원도 다녔다. 대학을 입학해서도 B는 A와는 차원이 다른 호화를 누렸다. 등록금은 부모님이 책임졌고 졸업할 때 까지 매달 50만원의 용돈도 받았다. 이처럼 부모로부터 아낌없는 투자를 받으면 자란 B, 그는 A보다 ‘더’ 부모에게 감사를 하고 있을까? 아니다. B는 오래전부터 ‘부모의 지원 부족’이 늘 불만이다. 그리고 해가 갈수록 이는 반복 그리고 누적되어 이제 B는 자식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던 부모를 ‘능력 없다’면서 원망하기에 이르렀다.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B가 부모를 원망하게 된 시기는 특목고 진학에 실패하고 나서부터였다. 중학교 때 나름 괜찮은 성적을 유지했던 B는 3학년이 되어서 외고 진학을 희망했다. 하지만 내신 성적이 ‘퍼펙트 하지 않으면’ 외고입학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B는 좌절감에 빠지게 된다. 외고진학을 희망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B가 다닌 학원의 ‘일반부’보다 수강료가 두 배 이상 비싼 ‘특목고 진학 특별반’을 다니고 있었고 별도의 과외를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초등학교 5, 6학년 때부터 ‘해외유학 대비반’을 다녔다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각종 경시대회 수상, 입이 떡 벌어지는 영어 공인점수 성적 등은 기본이었다. 이런 업적(?)들은 입시에서 공식적으로 요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지만, 어떻게든 자기소개서에 기록되어 개인의 경쟁력을 올려준다. 뉴질랜드나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다녀 온 이들도 수두룩했다. 방학 때 다녀 온 사람, 방학‘마다’ 다녀 온 사람, 아예 그쪽에서 학교를 한 학기, 두 학기를 다녔다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B는 생애 처음으로 ‘가정형편’을 탓했다. “왜 나는 어릴 때 외국에 안 보내줬어!”라면서 불만을 토로했지만 부모는 가슴이 먹먹하다. 설마, 중학교 때 외국에 안 보냈다고 ‘부모 노릇’ 못한다는 소리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B는 좌절하기 않고 일반고에서 열심히 공부하고자 했다. 그런데 지금의 입시는 학교에서의 엉덩이싸움만으로 성적이 보장되진 않는다. 몇 백 가지가 넘는 입시 전형방식, 학교별로 달라지는 가중치를 꿰뚫고 있지 않으면 눈 뜬 장님이 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무엇보다도 일반고 ‘안’에서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려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일반고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 외고, 과학고를 ‘가는’ 시대의 일반고가 아니다. 지금은 ‘능력이 부족해서’ 특목고를 ‘가지 못한 자들이’ 모인 결핍의 공간이 바로 ‘일반고’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러니 학생들은 일찍 감치 열패감에 사로잡혀 공부에 대한 열의를 놓아버리고 선생들은 가르칠 의지를 상실한다. 이는 일반고 학업평균치를 낮춰버리게 되는데 문제는 ‘그래서’ 논술시험이라든가 수시전형의 다채로움에 부합하는 교육과정이 ‘수요가 원체 부족하니’ 굳이 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요하면 ‘알아서’ 학원을 가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학원이 어디 ‘평등’한가. 무상일리도 없지만 돈을 얼마만큼 내는지와 성과물은 비례한다.


B는 논술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대치동 학원가를 찾았다가 5일과정의 100만 원 정도의 수강료가 ‘저렴하다’고 하는 상담을 받고 충격을 받았다. B는 당연히 이 학원을 다닐 수 없었고 원했던 대학에 가지 못했다. 하지만 50만원을 내고 3일 코스라도 수강할 수 있어서 ‘그나마’ 서울소재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만족보단 아쉬움이 크다. 자신보다 성적이 낮은 친구가 전담 과외선생 밑에서 포트폴리오 작성에 열중하더니 ‘더’ 유명한 대학에 수시전형으로 진학을 한 것을 알게 된 이상 배가 아픈 걸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B는 다시 부모를 원망한다. 왜 자신의 부모는 허구한 날 “우리는 입시설명회 쫓아다닐 시간도 없고 입시상담 받을 현금도 없단다. 이해해주렴”이란 말을 달고 살았을까. 부끄럽지도 않은가!


대학을 진학한 B는 그래도 열심히 살고자 했다. 하지만 대학은 ‘부모에 대한 원망’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쌓아가는 곳이었다. 취업, 아니 ‘대기업에 원서를 넣기 위한’ 기본 자격으로 필요하다는 9종 세트(학벌, 학점, 영어점수, 어학연수, 자격증, 공모전, 봉사활동, 인턴 그리고 마지막은 충격적이게도 성형수술)는 모두 ‘부모의 소득’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었다. B는 그나마 부모의 도움으로 1년간 매달 22만원의 학원 수강료를 지불할 수 있었기에 토익점수 800점을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답이 없었다. 어학연수는 여태 제주도에도 한 번 안 가본 B에게는 언감생심이다. 자격증으로 태권도단증, 운전면허증은커녕 워드프로세서, 컴퓨터 활용능력 같은 걸 묻는 시대도 오래 전에 끝났다. 향후 진로가 회계사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전문성 어필 차원에서 공인회계사(CPA)를 기본으로 취득하고 금융권에 원서를 넣기 위해서는 증권투자상담사, 자산관리사, 변액보험판매사 자격증 정도는 기본으로 보유해야 한다. 재무설계 전문 자격증인 AFPK(Associate Financial Planner Korea)도 가급적 취득해야 한다. 이런 자격증을 보유한다고 합격보장이 되지도 아니다. 다 갖추고도 백수인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이 와중에 공모전을 챙겨야하고 봉사활동을 ‘업적화’해야 한다. 평가하지 말아야 할 것을 평가하니 봉사활동도 혹시나 꼬투리 잡힐 ‘야학교사’보단 ‘캄보디아 가서 집짓기 봉사’가 훨씬 경쟁력이 있다. 그러니 ‘돈’이 많을수록 유리해진다. 학점 좀 관리하고 영어점수 높다고 해서 50만원 내고 ‘기업에 따른 적합한 자기소개서 작성법’을 첨삭 받은 자보다 ‘뛰어난’ 글을 쓰긴 어렵다. 운 좋게 서류전형에 합격해도 취업전문학원에 100만원을 지불하고 ‘압박면접’ 예행연습을 한 경쟁자를 이기긴 어렵다. 이 모든 것은 돈과 시간의 문제요, 고로 아무리 효심이 지극하다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부모‘탓’을 할 가능성은 높아졌다. 이런 것들을 요구하지 않았으면 ‘원망하지 않았을’ 부모님이지만 시대는 완전히 변했다. 면접 때 영향을 주는 ‘첫인상’에도 부모의 존재가 개입된다. 인상이 좋은 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게 취업의 ‘기본’이 되어버려 누군가에게 ‘불이익’을 주는 일이 실제 발생하니 취업준비생들은 이마저도 경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외모’는 노력으로 쉽사리 변하지 않는 것, 그러니 과학(?)에 의지할 가능성은 당연히 높아졌고 이와 비례하여 부모의 돈은 자꾸만 호출된다.


지난 2004년 ‘스펙’이란 단어가 국립어학원 신조어가 될 때 등장한 취업세트는 고작(?) 3종이었다(학벌, 학점, 영어점수). 이 시절에는 부모에 대한 원망이 그나마 ‘고등학교 때 좀 더 투자하지 않은 것’, ‘대학 때 자신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지 않은 것’ 정도의 차원에서 이루어졌겠지만 지난 십년간 취업세트는 3배로 진화했다. 그만큼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 난지가 더 중요해졌다. 고난을 극복한다는 건 인간으로서 감당해야할 삶의 무게일 수 있겠으나 그 임계치를 넘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헬조선’이란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B는 현재 졸업한지가 2년이 지났지만 취업하지 못했다. 작은 가게라도 하나 해볼까 하지만 집안형편이 그 정도가 아니라서 또 부모를 원망스러워 하고 있다. B는 부모의 도움으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평점 4.1로 졸업을 했지만 세상은 다른 것들도 요구했다.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행정기준으로는 명백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청년이 부모의 ‘중산층 정도에 불과한’ 재산 때문에 겪게 되는 삶의 좌절은 결코 ‘일부’의 이야기가 아니다. 평범한 삶을 누리지 못한다는 건 극도로 가난한 자들만의 경로였지만 이제는 가난하지 않게 자란 자들도 가난해지게 된 세상이다. 부모의 힘은 자녀의 삶을 탄탄하게 만드는데 있어 언제나 중요한 변수였겠지만 지금은 ‘정말로’ 막강해졌다. 앞서 등장한 B의 부모는 자녀의 대학재학 기간 4년간 등록금 4천만 원, 생활비 2천만 원을(그래봤자 한 달에 50만원도 되지 않는다. 휴대폰 요금, 학원비 등을 제외하면 밥값, 교통비 수준에 불과함) 지원했지만 그 정도로는 ‘아무것도 해 준 것 없는’ 부모일 뿐이다. 5억짜리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가난이 죄다”라고 말해야 한다면 그보다 경제적 형편이 좋지 못한 수많은 가정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열심히 산다고 ‘엄청난 부자의 삶’이 보장되지는 않지만 최소한 ‘빈곤하지 않음’을 목표로 삼을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 앞서 등장한 A가 그랬다. 그런데 이 참을만한 불평등이 참을만한 수준을 넘겨 버렸다. 보다 나은 삶을 향한 개인의 여정이 다시금 ‘태어날 때의 조건’ 앞에 막혀버린다.


통계수치는 이런 변화를 그대로 드러낸다. 통계청의 <2015년 사회조사 결과>을 보면 “평생 노력을 하면 본인 세대에게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21.8%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문제는 10년, 100년이 아니라 불과 6년 사이에 그 낙하 폭이 상당하다는 것이다(2009년 35.7% → 2015년 21.8%). 이는 개인이 삶의 불안에 대한 공포를 보다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음을 뜻한다. “생각해보니, 예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정도의 상황과 “작년엔 재작년보다 엉망이었어. 그런데 올해는 더 나빠졌어”라고 말하는 경우는 전혀 같은 상황이 아니다. 후자의 개인들에게는 ‘그래도 나아지겠지’라는 긍정성이 없다. 이는 고스란히 ‘내 자녀 역시 괜찮아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예측으로 나타난다. 2009년에는 48.4%가 그래도 자녀들은 노력이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했지만 2015년에는 그 수치가 31%로 줄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현재의 객관적 상황이 반영된 결과다. 한국사회에서 빈곤층이 중산층 이상이 되는 경우는 22.5%에 불과하다(보건사회연구소, 2014년 기준). 빈곤한 사람 4명 중 1명도 계층상승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조사가 시작된 2006년에는 32.4%였는데 급락했다. 20~40대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2012년 기준), 이들 중 한국사회를 ‘한번 실패하면 다시는 일어서기 어렵다’ 응답한 경우가 64.4%였고 ‘노력한 만큼 보상과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경우는 75.5%, ‘부모의 지위에 의해 자녀의 계층 상승 기회가 닫혀 있는 폐쇄적 사회이다’는 78.8%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초중고 학생들의 부모님들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학부모 1500명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니 성공이나 출세의 요인으로 ‘학벌과 연줄’을 꼽은 비율이 2006년 33.8%에서 2008년 39.5%, 2010년 48.1%로 매년 급증하고 있는 것은 ‘날이 갈수록’ 한국사회가 절망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런 상황은 한국사회에서 중산층이 되는 것도 힘들어지는 현실로 고스란히 나타났다. 1990년만 하더라도 전체의 75% 중산층이었다. 그리고 진입장벽이 도전불가의 수준도 아니었다. 당시의 중산층 가구의 가장은 ‘고졸, 기혼, 평균가구원 4, 홑벌이’가 평균치였다. 그리고 평균연령이 38.2세였다. 하지만 2013년도에는 중산층 비중이 전체의 67.1%로 과거에 비해 줄었다. 이것도 소득범위를 너무 넓게 잡아서 그런 것이지 실제 자신을 중산층에 속한다고 느끼는 '체감 중산층'의 비율은 46.4%에 불과하다. 자격도 달라졌다. 대학졸업은 기본이며 중산층 평균 가구원 수도 3.4명으로 줄었다. 자녀를 두 명이상 양육하면 평범하게 살기조차 힘들어져다는 말이다. ‘맞벌이’가 기본이고 평균연령은 48세였다. 이는 40대가 넘어서도 중산층에 되지 못한 가구가 과거보다 늘었음을 의미한다. 중산층의 자격이 ‘상향조정’되었으니 한 사회의 빈곤탈출이 그만큼 힘들어졌음은 당연하다.


숫자들이 말하는 바는 명백하다. 이 사회는 일을 해도(working) 가난하다(poor). 그렇게 ‘지금’은 ‘과거’보다 더 지옥이 되었다. 지그문트 바우만, 리처드 세넷 등 여러 사회학자들이 이런 사회를 ‘생애에 대한 기획이 불가능’한 시대라 한다. 고등학교‘만’ 나와도 먹고 사는 것이 가능했던 시대가 대학‘까지’ 나와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변했다. 일자리를 구해도 일한만큼 벌지도 못하고 ‘정년’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정년을 다 채워도, ‘오래 살게 된 덕택에’ 노후불안에 대한 공포는 심해졌다. ‘시키는 대로만 열심히 했는데’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이런 전 세계의 특징이 한국에서는 ‘더’ 심하게 드러난다. 괜히 ‘신자유주의가 한국에 가장 잘 착륙했다’고 하겠는가. 흔히들 자본주의 사회를 ‘정글’로 비유한다. 그러나 탈출구라도 존재하는 곳과 이조차도 찾기 힘든 곳은 ‘같은’ 정글이 아니다.


다시 주택문제로 가 보자. 주택문제는 B와 같은 ‘중산층 가정’에서도 손 쓸 도리가 없다. 2014년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 3억 3천 849만원은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을 6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치 모아야 하는 수치다. (물론 그렇게 6년을 모아도 절대 살 수 없다. 그 사이 집값은 임금노동자의 소득인상분보다 훨씬 가파르게 오르지 않겠는가.) 자본주의 사회 어디를 가더라도 집값이 만만치는 않다. 하지만 무슨 저택에 살겠다는 것도 아니고 24평형 아파트 전세 얻는데 저만한 금액이 드는 것은 상식이 아니다. (그리고 저 금액도 서울의 평균일 뿐이다. 서울 강남구, 서초구 쪽에는 24평형 아파트 전세가격이 8억이 넘는다.) 그리고 다른 모든 ‘나쁜’ 수치가 ‘나빠지는 것’처럼 이 가격도 악화일로다. 2004년에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이 1억 5,432만원이어서 그래도 4년만(?) 죽었다 생각하고 저축하면 될 일이었는데 말이다. 소득을 모두 저축한다는 비현실적인 계산에서도 이 정도인데, 실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전세가 아니라 ‘주택매입’을 기준으로 주판을 두드려보면 이건 거의 절망이다. 소득분위를 5분위로 나누었을 때, 가운데인 3분위에 해당하는 사람은 기본적인 지출을 제외하고 1년에 평균 797만 4천 원 정도를 저축한다. 그렇게 27년을 성실히 살면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2억 1,677만원), 43년을 살면 수도권에서(3억 4,700만원), 그리고 59년을 살면 서울에서(4억 7,000만원) ‘평균’에 해당하는 주택을 마련할 수 있다. 어디 이것뿐인가. 검색 몇 번만 하면 불명예스러운 통계지표에서 독보적으로 ‘OECD 1위’를 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민낯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이 많다. 노력할 근거가 없고 도둑질이나 사기 치지 않는 이상 희망이 없는 사회에서 충분히 있음직한 일 아니겠는가.


“왜 4년 만에 졸업을 하지?”라고 묻는 시대의 등장


지금의 청년세대가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특이한 현상 하나를 이해해보자. 졸업을 안 한다는 뜻의 ‘NG족’(No Graduation)은 이미 보편적인 시사용어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영화촬영장에서 외쳐대는 “NG!”(No Good)와 발음이 같은데 원래사용시의 뜻과 너무나도 어울릴 정도로 NG족은 부정적인 세태를 대변한다. 지금까지 대학생활의 기간이 연장되는 지점이 사회적 관심이 된 것은 군대문제와 상관없이 휴학을 하는 경우가 늘어난다든지, 반수를(대학을 다니면서 수능재수) 선택하면서 야기되는 자퇴생의 증가 정도였다. 졸업논문을 쓰지 않거나, 영어시험 점수를 제출하지 않거나, 교수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멀쩡한 학점 하나를 F처리해서 졸업조건을 고의적으로 누락시키는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졸업유예는 일상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NG족이 2006년도 ‘올해의 신조어’로 여러 언론매체에 등장했을 만큼 졸업유예는 2000년대 중반이후의 ‘암울해진’ 대학생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된다.2013년 12월 12일자 <한국대학신문>이 국회 교육과학문화관광위원회 박성호 새누리당 의원이 공개한 ‘대학별 졸업생 등록학기 수 현황’ 자료를 바탕으로 보도한 “서울대도 피해갈 수 없는 ‘취업한파’ - 인문대 졸업자 절반이 10학기 이상 등록한 ‘5학년생’” 기사를 보자.


1. 올해 서울대 졸업자 3495명 가운데 10학기 이상 등록한 학생의 비율은 34.1%(1192명)에 달했다. 이는 2009년 25.2%(979명)보다 5년만에 8.9%p나 증가한 수치다. 단과대별로 인문계열 ‘5학년생’ 비율이 자연계열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아 취업난을 실감케 했다. 인문대가 2009년 34.3%에서 2013년 49.8%로, 사회대가 30.6%에서 41.3%로, 경영대가 32.8%에서 46.7%로 급증했다. 반면 공대(29.2→28.0%)와 자연대(26.2→26.8%)는 ‘5학년생’의 비율 변화가 거의 없었다. 9학기 등록자 현황을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인문계열 단과대학의 경우 거의 80%에 육박했다. 2013년 졸업자 가운데 9학기 등록자 비율은 법대(79%)가 가장 높았고 이어 인문대(77.9%), 경영대(77.4%) 순이었다. 공대(54.1%)와 자연대(48.7%)는 절반가량이 4년 반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2. 29학기로 좁혀보면 전체평균이 59.7%이며 인문대, 경영대 등은 “남들 다 하니까” 유예한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자연대, 공대에서나 “아직 절반은 유예 안 해”라고 자조가 허락된다. 물론 이는 대학 전반적 풍토다. 이화여대는 53%, 연세대는 46%가 9학기 이상을 등록하고 졸업한다. 서강대의 경우 졸업자 중 유예자 비율이(2011년→2013년) 인문학부(42→57%), 사회과학부(42→50%), 경제학부(32→53%), 경영학부(31→43%), 커뮤니케이션학부(40→63%) 등으로 확인되었는데 이런 수치들을 종합하면 전체 대학까지는 아니지만 ‘서울권 일부대학은 이미 유예비율이 절반을 넘었다’고 할 수 있다. 인문계열이 더 높은 이유는 당연히 취업문제가 타의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이는 스펙관리를 더 철저히 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는데 복수전공으로 경영학 계열까지 선택해서 공부해야 하는 상황은 절대적인 시간 개념에서 8학기가 부족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졸업을 위해 필요한 120~130학점 중 100학점 정도를 전공과목으로 취득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학교 다니면서’ 할 수 있는 건 학점관리와 토익시험 응시 정도다. 재학기간 중 2~3학기 정도 가능한 휴학을 어학연수, (취업용) 봉사활동 등에 활용하 공모전 응시 및 자격증 취득을 하기 위해서라도 ‘졸업유예’는 당연해진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5년 만에 졸업하면 '집안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걱정했지만, 요즘은 4년 만에 졸업하면 '왜 4년 만에 졸업하지?'”라고 묻는 시대다. 고용정보원의 <2015년 4월 고용동향 브리핑>을 보면 전체 대학생 중 휴학 없이 졸업한 사람은 30.9%에 불과했다. 나머지 69.1%는 휴학과 유예 등을 통해 어떻게든 졸업을 연기한다. 평균 졸업기간이 남자의 군복부 기간을 제외하고도 5.2년이다. 누구든지 평균 1.2년을 ‘더’ 대학을 다닌다. 사실상 ‘모든’ 대학생이 휴학을 하고 ‘상당수’가 졸업유예를 하는 시대다.


지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졸업유예가 대수겠는가


별 다른 고민을 하지 않아도 이유를 추론하는 건 어렵진 않다. 일을 해도(working) 가난한(poor) 시대에는 ‘어떤 곳’에서 ‘무슨 일’을 하는 것이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중요하다.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를 따져야하고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를 고려해야 한다. 이와 비례하여 전체의 학력상승이 나타나지만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바늘구멍을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들만 적체된다. 투자한 비용을 고려하면 쉽사리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릴 수도 없다. 이건 눈이 높아서가 아니라 ‘다른 쪽’이 워낙 엉망이기 때문이다. 이제 청년의 문제를 ‘예전에도 그랬다’는 식으로 생애사적 위기의 차원에서 쉽사리 규정할 수 없다. “기성세대가 어떤 삶을 살아왔든지 그와 별반 관계없이 그들의 자식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은 천지개벽했다.” 지금은 엄청나게 사교육 받아 이름 있는 대학을 가서 학기를 초과하면서까지 취업을 준비한다. 너무나도 비정상적이다.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문제를 바탕으로 ‘비정상화의 일상화’가 가능한 이유를 살펴보자.


1980년대에는 중소기업 노동자들도 대기업 노동자 임금대비 97%의 수준의 소득을 보장받았다. 이것이 1994년에는 77%로 떨어졌고 2014년에는 60%까지 급락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나라이니 대기업과 동일한 대우를 기대할 순 없지만 ‘차이’가 있다면 이는 감당할만한 수준이어야 한다. 대졸 신입사원 월급이 300만원이 경우와 180만원인 경우는 그렇지 않다. 중소기업을 가는 것이 곧 삶의 질이 추락됨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 존엄성의 문제다. 그런데 현재 전체 노동자의 81%가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일자리를 구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10명 중 ‘2명’에 포함되어야 하는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다. 단지 임금만 차별 받는 게 아니다. 대기업의 경우 국민연금 가입률이 95%가 넘지만 중소기업은 64.1%에 불과하다. 한국사회에서 중소기업에서 일한다는 건 현재는 물로 노후까지 불안함을 예약하는 꼴이다. 유급휴가 역시 대기업은 93.4%가 혜택을 보았지만 중소기업은 44.4%만이 당연한 권리를 행사한다. 휴가를 쓰는 만큼 월급이 깎으니 제대로 쉴 수도 없다. 2%에 불과한 중소기업 노동조합 조직률을 볼 때 문제가 있다고 어디에 하소연도 못한다. 쉽게 말해, 지금의 대학생들이 대기업을 고집하는 것은 ‘욕심’이 아니라 일종의 ‘생존본능’이다.

여기에 비정규직 문제까지 고려하면 ‘대학생들의 졸업유예 전략’은 쉽게 이해된다. ‘임금이 낮은’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이 될 바에는 다른 기회를 엿보기 위해 ‘강의도 듣지 않으면서 대학에 돈을 납부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사회마다 여러 이유가 중첩되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구분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임금의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비정규직’은 쉽사리 인정할 만한 수치가 아니다. 이들의 월평균 임금 149만 7천원은 정규직 대비 55.8%에 불과하다. 이 수치도 정부통계이고 노동자 통계에 따르면 2014년부터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대비하여 절반도 되지 않는 49.9%의 급여를 받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과 비교하면 40%밖에 되지 않는다. 대기업 대졸신입사원 월급이 300만원이라면 120만원 받는 셈이다. ‘밥만 먹고 살라’는 뜻이다. 그 차이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2002년도에는 정규직이 100만원을 받을 때 비정규직은 67만 1천원을 받았다.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는 상황이라 다들 그랬는데, ‘더’ 나빠졌다. 그래서 노동자 중위계층 급여의 3분의 2 이하로 급여를 받는 ‘저임금자 비율’도 비정규직 정규직 노동자에서 압도적으로 높다. 2015년 기준으로 정규직 1062만 명 중 저임금 종사자는 70만 명인데, 비정규직 노동자 868만 중 402만 명이 저임금 노동자다. 미래마저 어둡다. 한국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매우 낮다. OECD 16개 국가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비정규직으로 채용된 3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율이 22.4%에 불과해, 평균 53.8%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정규직으로 전환은 커녕 해고되기 일쑤다. 한국에서는 비정규직으로 채용 3년 내 해고될 확률이 26.7%인데 이는 평균 16.9%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비록 비정규직이라도 ‘나중에’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크고, 해고될 가능성은 낮다면 대학생들은 졸업유예보다 ‘어디든 취업부터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아니다. 정규직에 비해 6분의 1 수준인 비정규직의 노동조합 가입현실을 고려하면 중소기업의 경우와 마찬가로 문제가 풀릴 여지도 없다. 그러니 8학기가 끝나갈 때, 구직성과가 좋지 않으면 ‘취업준비생’ 신분을 더 늘려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봄직 하다.

불안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국가가 ‘공기업’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보면 쉽게 이해된다. 2010년 이후 4년간, 한국의 30대 공기업에서 정규직은 1.2%, 비정규직은 12.4% 증가했다. 이는 국가가 앞장서서 고용의 풍토를 ‘비정규직화’ 하겠다는 의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러니 일반기업이 “더 이상 해고할 정규직이 없는 상황”인건 놀라운 일도 아니다. 말 그대로 ‘헬조선’이다. ‘지옥에서 살아남고자 하는데’ 졸업유예가 뭐가 대수겠는가.


의심하라! 그것은 신(神)이 선사한 사람의 권리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제도적인 도움을 바탕으로 언급된 ‘나쁜 지표’들이 좋아져야 한다. 제도적 도움을 넓은 의미에서 정책이라고 본다면 이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물론 정치인들이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이겠지만 그 정치인이 ‘대변하는’ 민심은 결국 개인이 평소 어떤 여론을 생산하기 위 노력 했는가와 무관치 않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들은 자신의 삶을 늘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일상에 대한 문제제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비판적’으로 살아간다는 게 한국사회가 만만치 않다. 특히! 종교는 이를 무슨 죄악처럼 여긴다.


‘비판적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은 (바로 신이 직접 만드셨다는) 인간의 ‘자격’이다. 인간은 침팬지와(심지어 ‘쥐’하고도) 유전자의 99%가 흡사하다. ‘다른’ 1%는 바로 이성의 유무다. 이성은 언어를 만들고 추론능력을 만들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배양한다. 그래서 인간만이 ‘공동체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본능을 억제한다. 그렇기에 인류는 “시행착오를 줄이며 생물학적 진화와는 비교되지 않는 엄청난 속도로 사회적 진화를” 할 수 있었다. 사회학자 김찬호는 『사회를 보는 논리』에서 다음과 같이 인간의 특징을 설명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점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는 지적인 호기심이 매우 강렬하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의 생존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끊임없이 뭔가를 새롭게 알고 싶어 한다. (…) 인간은 주어진 것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시도 속에서 문화를 발전시켜온 것이다. 질문할 수 있는 능력! 바로 이것이 인간 진화의 비결이다. (…)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삶과 사물의 이치를 되묻는 작업만이 아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서 제기되고 내게 던져진 질문 그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단계로도 나아가야 한다. 오답도 문제지만 오문(誤問), 즉 잘못 던져진 질문도 그에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타인이 내게 던진 질문에 대해 과연 그것이 정당하고 필요한 질문일까하고 물음표를 달아보는 태도가 요구된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실 타인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주어진 질문도 우리를 구속하지만, 스스로 던진 질문 가운데도 잘못 던져진 것이 얼마나 많은가. (….) 질문 자체에 질문할 수 있는 힘, 그 지적인 에너지로 우리는 생각과 삶의 자유를 확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불’이란 걸 이해해 보자.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모든 동물들은 ‘불’을 무서워하고 피한다. 본능에 충실한 반응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를 영리하게 사용했다. 직접적 위협을 가하는 경우를 제외하니 ‘불’은 무궁무진한 효용이 있었다. 음식에 ‘가열’하면서 더 건강해졌고, 그래서 수명이 연장되니 ‘미래를 위해서 현실을 희생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인간은 ‘불’을 적의 위협을 막아내는 도구이자 공부를 위해 어두운 밤을 밝히는 빛으로 응용했다. 때론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서로간의 갈등을 씻기도 하고 ‘촛불시위’때는 강력한 사회적 저항의 무기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 ‘불’을 아주 거대한 사회적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해보자. 인간은 그 고정관념을 합리적으로 의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깨부수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인간을 “신이 정해준 운명에 도전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온 유일한 동물”이라 한다. 따라서 인간의 삶 안에는 언제나 ‘갈등과 긴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성장통’을 바탕으로 인류는 전진한다.


‘확신하지 않는 자세’를 인간의 ‘능력’으로, ‘자격’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언제나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명심하길 바란다. ‘집단사고’(group thinking)는 미국의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rving Janis)의 개념이다. 재니스는 미국의 케네디 정부가 쿠바의 피그만을 무력 침공했다가 혼쭐난 사건을 통해 ‘아무리 지성들이 고민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집단의 결정은 ‘멍청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미국은 자기 바로 앞에서 사회주의 깃발을 보란 듯이 꽂고 있던 쿠바가 눈에 가시거리였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쿠바를 어떻게든 해결(?)할 방안을 준비하고 있었다. CIA는 무력으로 침공하여 내부갈등을 통한 체제개혁이 가능하다는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물론 쉽사리 실행에 옮길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젊음’을 무기로 한 ‘케네디 정부’는 자신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자 이 카드를 사용하기로 한다. 백악관 회의실에 미국에서 제일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모여서 논의를 했고 사실상의 만장일치로 ‘피그만 침공’을 실행에 옮긴다. 이들은 ‘우리처럼 잘 나가는 집단에서’ 오류를 범할 리 없다는 ‘극단적 낙관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완벽하게 실패한다(1961년). 작전에 참가한 1400명 중 1200명이 ‘생포’되었고, 미국정부는 이들을 돌려받기 위해 쿠바에 5,300만 달러 수준의 물자를 제공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작전실패는 예정된 것이었다. 미국정부는 만약 문제가 될 때,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빌미를 만들기 위해, 1400명의 요원들을 ‘쿠바망명자’로 구성했다. 여기서 일차 문제가 발생했다. 과테말라에서 훈련을 한 이들은 시작부터 불안해했다. ‘왜 미국인들은 여기에 없는 거지?’라는 지극히 당연한 의문이 등장했고 이는 ‘잘못되면 우리 모른 척 하는 것 아닐까?’라는 합리적 의심으로 이어졌다. 작전이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자 대다수가 즉시 ‘항복’을 선택한데에는 이런 불신이 존재하고 있었다. 또 다른 실수는 미국정부가 ‘쿠바’라는 국가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쿠바’는 엄연한 ‘국가’의 틀을 탄탄히 갖춘 나라다. 이런 ‘쿠바’를 사실상 비(非)정예요원을 투입시켜 ‘전복’시킬 수 있다는 것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었다. 쿠바가 무슨 ‘부족단체’란 말인가? 그리고 ‘무려’ 1400명을 투입시키면서도 내부분열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순진한 발상과 그리고 ‘고작’ 1400명을 가지고 무력침공이 성공할 것이라는 이상한 확신이 ‘한 명의 독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답게 케네디정부는 열심히 토론을 했다. 그러나 ‘결속력이 너무나 강한 것’이 문제였다. 정당한 비판이 ‘우리가 과연 실수할 것 같아?’라는 반론에 막히고 합리적 의심을 ‘너 겁쟁이구나?’라는 조롱하는 곳에서 ‘옳은 결정’이 등장할 가능성은 낮다. ‘집단사고’는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과 비교되는데, 후자는 다수의 의견이 ‘모여’ 보다 지혜로운 결과물이 창출됨을 뜻한다. 하지만 집단이 모였다고 ‘지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어도 그 집단이 추구하는 목적과 이를 달성위한 과정의 철학이 어떤가에 따라 그 결과는 최악일 수 있다.


당신이 한국인이라면 이 문제를 더 무게감 있게 이해해야 함이 마땅하다. 왜냐하면, ‘결속력이 높을수록 집단사고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볼 때, 한국사회는 이 ‘결속력’이라는 것의 이미지가 매우 신성하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가 그렇다!) 조직의 치부를 드러내는 ‘내부고발자’를 ‘고자질쟁이’ 정도로 취급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 것은 한국사회가 ‘결속력’에 대한 과잉된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는 증거다. 전체를 위해 개인의 당연한 권리를 희생하는 것이 한국처럼 ‘미덕’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면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당연한 요구’가 ‘이기주의’로 오해되기 쉽다. 결국 ‘논리’와 ‘상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집단의 가치’가 늘 추종될 가능성이 높고 이런 사회는 ‘집단사고’는 구조적으로 자주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비판적 사고’를 일단 ‘내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한 다음’으로 고려하는 부차적인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비판’을 추후개념으로 미루게 될 때, ‘현실성’이라는 덩어리는 집요하게 개인의 일상을 지배한다. 그 결과는 ‘영원히’ 먹고사는 문제에만 개인을 집중시키는데, 좀처럼 이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그리고 설사 추후에 ‘여유가 있는 삶’이 있다 하더라고, 이미 그때가 되면 ‘비판’은 매우 어색한 개념이 되어 있다. 비판적 사고, 그건 ‘이성’에 충실한 지극히 인간의 자격이자, 나아가 자신이 동물과 다른 인간임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오늘의 지혜가 내일의 어리석음이 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니까 언제나 당신의 믿음을 의심하길 바란다(Suspend Your Belief!). “인류가 성인이라 칭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기성체제에 순응하지 않은 혁명성”이었음을 기억하자. 신이 인간을 그렇게 ‘동물과 구별되게’ 만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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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과 한국교회 포럼] 남형두 교수 기조발제 요약 


 진리는 사되 팔지는 말며


정리 _ 박제민 팀장

 

* 이 글은 지난 8월 27일(목), 백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에서 열린 <표절과 한국교회 포럼> 기조발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표절과 한국교회 포럼> 자료집은 기윤실 홈페이지 (www.cemk.org)에서 내려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잇단 설교 및 신학서적 표절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표절 문제에 대한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교회개혁실천연대,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청어람ARMC는 지난 8월 27일(목) 오후 7시, 백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에서 <표절과 한국교회> 포럼을 개최했습니다. 이날 포럼에서는 남형두 교수(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가 ‘신학의 학문적 보편성과 종교저작물로서의 특수성’을 주제로 기조발제를 진행했습니다.


남형두 교수는 지적재산권을 전공한 표절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남 교수가 쓴 <표절론>이란 책은 이번 표절 논란 중에서도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측이나 이를 해명하는 측에서 모두 참고 및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남 교수는 최근의 논란에 대해서 일부러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자칫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데요. 남 교수는 발제를 시작하기 전에 "일단 손에 든 돌을 내려놓자"면서 지난친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한국 교회의 표절을 지켜보자고 당부했습니다.


우선 남 교수는 저작권법과 표절을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남 교수는 저작권법의 목적과 정의에서 볼 수 있듯이 저작권법은 단순히 저작권자들의 보호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 발전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며“공표된 저작물은 보도와 비평, 교육과 연구 등을 위해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얼마든지 이를 인용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인용하는 경우 합리적이라고 인정되는 방법으로 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경우를 표절로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작권법 제1조(목적) 이 법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남 교수는 저작권법에 저촉되는 경우 민형사 책임을 지지만, 표절로 증명되는 경우 대다수 민형사 책임보다는 윤리적 책임을 지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면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피표절자의 동의가 표절하는 이들의 면책 사유는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박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모 목사의 경우, 표절 시비가 불거지자 자신의 스승인 교수가 연구논문의 내용을 참고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주장했지만 표절 당한 사람의 용서나 허락이 표절을 한 사람의 표절을 면책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 남 교수는 1990년대 초반 있었던 미국 연방법원의 '포크너 박사 판결' 일화를 얘기했습니다. 지도 교수가 제자에게 "내 논문을 가져다 학위 논문 작성에 쓰라"고 허락해서 제자가 이를 그대로 가져다 썼지만 결국 그 논문은 심의 과정에서 표절로 판명됐고, 제자는 박사학위를 받지 못했는데요. 이에 불복한 제자가 소송을 걸었지만, 미국 연방법원은 표절당한 사람의 용서가 표절 책임을 면제해 준다면, 겨울철 하얀 눈밭에 아버지 발자국만 따라가는 아들은 그 주제에 대해 연구하려는 노력도 없이 아버지의 연구물을 복제할 것이라면서 표절 책임은 저자 동의로도 면책할 수 없다고 명확히 판결했다는 것입니다.


또 저자가 서문에 '누구의 도움을 받았다', '누구에게 힘입은 바 크다' 등의 문장으로 출처 표기를 대신한 경우도 있는데요. 남 교수는 이러한 포괄적인 출처 표시는 제대로 된 출처 표시가 아니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남 교수는 이를 '학은형(學恩型) 표절‘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아무리 원작자가 표절을 허락했다 하더라도 정직하게 글을 쓰는 학계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표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는 ‘일반 지식’인 경우 출처 표기를 달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논문에 ‘1+1=2’라는 내용이 있는데 그것을 그대로 인용할 경우 구태여 출처 표기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표절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조건 표절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남 교수는 표절을 ‘전형적 표절’과 ‘비전형적 표절’로 나눴는데요. 전형적 표절의 경우 해당 분야의 일반지식이 아닌 타인의 저작물 또는 아이디어를 적절한 출처 표시 없이 자기 것인 양 부당하게 사용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비전형적 표절은 ‘전형적 표절’이 아닌 경우로 출처표시를 제대로 했더라도 정당한 범위를 벗어나 인용한 경우와 자기표절, 중복게재, 부당한 저자 표시 등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 교수는 교회법과 세상법이 충돌하는 경우 교회는 더욱 저작권 및 표절 여부를 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에 목적이 있더라도 저작권 및 표절과 충돌해서는 안 되며 이를 벗어나는 경우 기독교의 본질은 훼손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진리는 사되, 팔지는 말아야 한다’는 잠언(23:23)의 말씀처럼 학자들이 저작권 및 표절과 관련해서 권리와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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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실 열매소식지 2015년 5-6월호가 발행되었습니다. 



기윤실소식지(15_05 06)_웹용.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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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교역자의 사역 및 생활환경 개선합시다

기윤실은 교회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적책임을 다하자고 취지의 교회의 사회적책임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작년부터는 우리 스스로 먼저 돌아보자는 취지에서, 교회의 대표적인 ‘을’의 위치에 있는 부교역자들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작년 12월에 부교역자들을 대상으로 <한국교회 부교역자의 사역현황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짧은 기간에도 1,100여 명의 부교역자들이 설문에 응답해주었습니다. 그만큼 부교역자들이 느끼는 어려움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교역자 경제적으로 힘들다 66%
한 가지만 결과만 공개하자면, 부교역자들에게 “현재 체감하시는 경제적 사정이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전체 응답자의 19%인 213명이 매우어렵다, 47%에 해당하는 519명이 어렵다고 대답했습니다. 보통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29%, 만족 또는 매우 만족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5%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부교역자를 비롯해 목회자들이 경제활동을 목적으로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응답자 중에 66%가 자신의 경제적 상황을 매우 어렵다고 대답했다는 것은 한국교회 전체로 볼 때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닐 것입니다. 분명히 한국교회의 부교역자들은 열악한 환경, 과중한 사역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2015년 심포지엄 개최하고 지속적인 운동 전개
부교역자들은 교회에서 담임목사와 함께 동역사역을 감당하는 분들입니다. 따라서 교회와 성도들은 부교역자들이 목회에 전념할 수 있도록 생활을 보장해야 할 것입니다. 부교역자들이 사역하거나 생활하는데 있어 힘들어 한다면 교회도, 담임목사도, 성도들도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기윤실은 2015년 4월 경에 심포지엄을 개최할 예정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앞서 진행한 <한국교회 부교역자의 사역현황에 대한 설문조사>에 대한 구체적인 결과 발표가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목회자 ․ 신학자 ․ 법률가의 관점에서 대안을 제시할 것입니다. 심포지엄 이후에는 부교역자의 사역 및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여 앞으로 지속적으로 부교역자의 처우개선을 위한 활동을 벌일 계획입니다. 기윤실 회원들과 한국교회 성도들께서 계속 관심가져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글_ 박제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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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사회 참여

 

임성빈 공동대표(장신대 기독교와문화 교수)

 

임성빈 공동대표(장신대 기독교와문화 교수)

예수님은 소위 종교적인 사안만을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돈과 권력, 이웃과 같은 주제로도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교회는 개인의 구원 뿐 아니라 사람들이 밭 붙이며 사는 세상의 질서에도 관심을 가집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기도하며, 이 땅에서 인간됨을 파괴하는 폭력과 질서에 대항해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질서를 퍼뜨립니다. 또한, 개인과 집단의 이기심을 폭로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생명과 문화를 보호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사회 참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세상의 질서를 지탱하는 권력을 상대하며, 하나님 나라의 질서라는 새로운 통치방식으로 세상의 힘을 재고합니다. 권력이 정당하게 형성되었는지, 권력은 잘 배분되고 있는지, 권력은 정의롭게 행사되고 있는지,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냅니다. 그래서 교회는 불의하게 힘을 남용하거나 사람들을 고통에 몰아넣는 권력을 결코 간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교회의 사회참여를 정권을 감시하는 것으로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사회참여는 거리로 나가 당파성을 띤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오히려 사회 참여의 주된 방식은 하나님 나라의 시각에서 세상의 힘을 재편하는 신앙인을 길러내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입장을 떠나 신앙인들에게 사회 참여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가치 판단의 궁극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신앙인들로 하여금 권력을 형성하고 배분하는 과정에 참여하게 하는 것입니다. 권력을 행사하는 신앙인에게는 세상의 불의와 모순을 보게 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사회참여의 토대는, 만유의 구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임함에 대한 기대에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인들의 주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정사와 권세를 포함해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인간의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기독교 신앙을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것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활동과 힘을 재편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개인적인 신앙과 분리하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는 개혁교회가 하나님의 계약사상을 강조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계약의 영역과 범위가 온 우주에 미친다는 하나님의 주권사상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학은 우리에게도 책임을 부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이 땅에 실현할 행위자인 청지기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창조 때부터 부여된 ‘생육하여 다스리고 번성하라’는 문화명령(창1:28)의 수행자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우리의 책임영역이 우주 전체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인에게 신앙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우주 관리에 대한 무한 책임의식을 확실히 지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세상을 신격화하거나 아니면 악마화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오히려 신앙인으로 하여금 신앙의 눈으로 인간의 죄로 인해 발생한 사회 전반의 총체적이고 구조적인 모순을 드러내게 하고, 하나님 나라의 자유와 정의를 구현하게 합니다. 신앙인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커질수록, 보다 적극적으로 권력을 형성하고 행사하는 과정에 참여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 참여를 통해 하나님의 만유의 주되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됩니다. 한국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앙을 가지고 사회 참여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해야 합니다.

 

* 본 글은 기윤실 열매소식지 9~10월호 비전메시지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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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재정공개좌담회 "재정공개 실현과 과제"
34개 교회 결산서
결과분석

교회재정건강성운동(www.cfan.or.kr)에서주최한 교회재정공개 좌담회 "재정공개 실현과 과제"가 6월18일(수) 오후2시, 열매나눔빌딩에서 열렸습니다. 한국교회의 재정 공개에 대한 현황과 교회재정공개가 갖는 의미를 짚고, 이에 대한 중요성을 논하는 자리로써 건강한 교회재정운영을 함께 토론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총 2차례에 걸쳐 진행된 교회결산서 자료공개 조사결과 내용은 한국교회의 재정공개의 현실을 진단하는데 유의미한 결과를 공유하며 앞으로의 교회재정건강성 운동을 모색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좌담회 자료집 중 "34개 교회 결산서 자료제공"에 대한 부분 발췌로서, 자세한내용은 아래의 PDF 파일을 내려받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자료집_140618_교회재정공개 좌담회.pdf



‘34개 교회 결산서 자료제공 협조 요청’에 관한 답변 결과분석

1차 공문 발송: 2013년 11월 8일(금) - 답변기한: 2013년 11월 29일(금)까지
2차 공문 발송: 2013년 12월 31일(화) - 답변기한: 2014년 1월 24일(금)까지

I. 전체 결과



교단 별 통계

- 합 동 10개 (사랑의, 수영로, 충현, 분당우리, 오륜, 제자, 삼일, 호산나, 새로남, 열린)
- 통 합 6개 (명성, 소망, 온누리, 영락, 주안장로, 거룩한빛광성)
- 감 리 5개 (광림, 금란, 숭의, 선한목자, 만나)
- 기 성 3개 (신촌성결, 중앙성결, 충무)
- 기 장 3개 (경동, 한신, 동광)
- 기하성 2개 (순복음인천, 여의도순복음)
- 독 립 2개 (백주년기념, 할렐루야)
- 예하성 1개 (은혜와진리)
- 기 침 1개 (지구촌)
- 고 신 1개 (울산)


II. 소득세 납부 및 결산서 제공 교회


III. 각 교회별 답변 (※ 응답한 교회만 집계, 무순)

1) 귀 교회는 재정 결산서를 어떤 방식으로 공시하십니까?

(1) 스크린 화면
(파워포인트 등)

9개 - 열린, 동광, 호산나, 삼일, 충현, 명성, 여의도순복음, 순복음인천, 온누리

(2) 교회 홈페이지

2개 - 거룩한빛광성, 백주년

(3) 인쇄물

7개 - 경동, 울산, 삼일, 거룩한빛광성, 백주년, 순복음인천, 영락


2) 귀 교회는 재정 결산서 제공하는 주 대상은 누구입니까?

교인

12개 - 명성, 순복음인천, 온누리, 여의도(제직성도), 영락, 충현, 삼일, 호산나, 울산, 경동, 동광, 열린

외부인

2개 - 백주년, 거룩한빛광성

 

3) 귀 교회는 결산서를 몇 개월 단위로 작성하여 공개합니까?

매월

6개 교회 - 온누리(당회만), 여의도(제직회만), 영락, 백주년, 울산(당회만), 동광(2개월)

분기별

7개 교회 - 순복음인천, 백주년, 거룩한빛광성, 호산나, 울산(제직회만), 경동, 열린

연간

8개 교회 - 명성, 온누리, 여의도, 영락, 충현, 백주년, 삼일, 울산(공동의회)

(* 영락교회와 백주년교회는 매월과, 연간 결산서를 공개합니다.) 


4) 귀 교회에 시무하는 목회자들에게 지급하는 사례비에 대하여 소득세를 원천징수하여 세무서에 납부하고 있습니까?

납부하고 있다

9개 교회 - 명성, 순복음인천, 온누리, 영락, 충현, 백주년, 경동, 열린, 여의도순복음

납부하지않고 있다

5개 교회 - 삼일, 호산나, 울산, 동광, 거룩한빛광성


5) 신고하고 있다면, 시행 시기를 기술해주세요.

명성교회

약 20년 전부터

온누리교회

2000년도부터

여의도순복음교회

1986년도부터

영락교회

1960년도부터

충현교회

1998년도부터

백주년기념교회

2005년 7월 교회 설립 이후

 

6) 신고 대상은 어디까지 입니까?

전임사역자

순복음인천, 영락, 백주년

파트사역자

경동

기타

충현(목사, 전도사, 직원)

 

이 자료를 통해 각 교회가 재정과 관련된 질의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과 약 50%의 응답 거부로 한국교회의 재정투명성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의 현실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응답한 교회들을 대상으로 살펴볼 때, 막연한 예상과는 달리, 목회자 납세에 대해서 상당수의 교회가 이미 시행하고 있고 대외적인 재정공개는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 할 만합니다. 또한 특별한 감사 사안에 결부되지 않은 한 총회나 노회에서도 재정결산서를 제공할 의무가 없으며, 이로 말미암아 교회재정건강성운동 등의 외부단체에 결산서를 제공하는 것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도 확인하였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교단차원의 재정공개 가이드라인을 통해 어느 교단이 재정투명성을 위해 노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교회재정건강성”운동을 지속의 필요성을 공유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 본 글은 교회재정건강성 운동 활동스케치 및 “재정공개 실현과 과제”자료집에서 발췌하였으며,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PDF 파일을 내려받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자료집_140618_교회재정공개 좌담회.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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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NA PARK

[기윤실 자발적불편운동 6월캠페인] "대중교통으로 교회가요" 타요타요 이벤트 (~6/29) 


지금부터, 작은것부터, 나부터 실천하는 자발적불편운동 캠페인입니다.


대중교통을 타고 교회가는 모습을 인증샷을 찍어 기윤실 페이스북
(www,facebook.com/giyunsil)
에 올려주시거나, #기윤실(태그걸기)와 함께 올려주세요.


교회 걸어다니신다구요?! 걷는모습도 OK, 자전거도 OK 
"이렇게 실천해요"에 해당되는 내용이면 무엇이든 OK ~ 

 

[이렇게 실천해요]
● 대중교통 이용하기
 
- 버스, 전철 등 대중교통을 타고 교회가요! 가까운 거리라면 걸어서!(6월1일부터~29일까지, 총5회)


● 이웃끼리 카풀하기

- 몸이 불편하거나 아이들이 있는 가정들은 동네사는 이웃끼리 사이좋게 카풀해요 


● 내가먼저 주차하기

- 부득이 자가용을 사용할 경우, 적법한 주차 공간에 주차하고 주차하기 어려운 곳부터 내가 먼저 주차해요



이벤트 참여해주신 분들 중 추첨을 통해 총 3분께
<기윤실리미티드에디션 티머니카드>를 드립니다 !! 

① 대중교통으로 교회가는 인증샷을 찍는다 (걸어가도 OK, 자전거도 OK)
     - "이렇게실천해요"내용에 해당되는 실천이면 무엇이든 좋습니다.   


② 기윤실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린다.("기윤실"태그걸기가능)


③ 지구의 날(6/30, 화)에 당첨자 발표를 기다린다.


•이벤트 기간 : 6월 15일(일) ~ 6월 29일(일)

•당첨자 발표 : 결전의 날!! 6월 30일 


*페이스북계정이 없으신 분들은 기윤실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cem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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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NA PARK
긴급좌담회 녹취록
"사랑의교회 건축을 통해 본 한국교회 건축문제"



⦁ 일시 : 2013년 12월 4일(수) 오후 3시-5시
⦁ 장소 :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4층 3연수실
⦁ 사회 : 신동식 목사(빛과소금교회 담임, 기윤실 정직윤리운동본부장)
⦁ 패널 : 권혁률 대기자(CBS), 정시춘 대표(정주건축연구소), 정재영 교수(실천신대원 종교사회학)
⦁ 주최 : 기독교윤리실천운동
⦁ 녹취 : 기윤실(02-794-6200, cemk@hanmail.net)

본 녹취록은 지난 2013년 12월 4일(수),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3연수실에서 기윤실이 주최한 “사랑의교회 건축을 통해 본 한국교회 건축문제” 긴급좌담회의 내용을 녹취 정리한 것입니다. 내용의 전개상 필요 없는 부분과 중복되는 부분은 제외를 했습니다. 개별 패널들의 입장을 인용할 경우 필요시 미리 패널들과 사전 협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 신동식(사회자)
<사랑의교회 건축을 통해 본 한국교회 건축문제 긴급좌담회>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한다. 오늘 좌담회는 지난주 입당예배를 한 사랑의교회 건축을 보면서 큰 틀에서 한국교회의 건축문제를 되짚어 보고자 마련한 자리이다. 사랑의교회 건축과정에서 불거진 여러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자리가 아닌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좌담회의 시작은 오늘 모신 패널분들의 모두발언으로 시작하겠다.

○ 정재영
제가 종교사회학 전공이고, 건축전문가는 아니다. 그러나 건축을 하려면 재정이 필요하고, 교회의 재정은 교회의 공동체성, 정신, 철학과 관련된 문제다. 그런 측면에서 건축문제를 공동체성과 관련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건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신앙인이자 기독시민으로서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하겠다.

다 알 듯이 한국교회는 목하 건축 중이다. 교회는 건축을 하기 위해서나 또는 건축을 한 이후 빚을 갚기 위해 긴축재정을 한다.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이 “교회에 다니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불필요한 오해를 사기도 한다. 또한 건축을 할 때 어떻게 공동체적으로 준비하느냐도 중요하다. 제가 이번 좌담회에 패널로 나온다고 하니 어떤 분이 메일로 외부사람들이 왜 왈가왈부 하느냐고 했다. 기본적으로 그 말씀에 동의한다. 외부에서는 내부의 사정을 알기가 쉽지 않다.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내부에서 의사결정을 민주적으로 했다고 하더라도, 전체 한국교회 또는 전체 한국사회가 어떻게 보는가도 중요한 문제다. 사회학에서 “개인의 합리성이 뛰어나도 집단의 합리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개교회주의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교회 전체에 바람직하지 않고 피해가 있는 경우가 있다. 오늘 그런 측면에서 고민해보면 좋겠다.

○ 정시춘
주로 교회건축 설계 일을 했다. 이 일을 하면서 한국교회가 건축과 관련해 문제가 참 많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기윤실에서 제안이 와서 나왔다. 좀 원론적 이야기를 드리겠다. 아시다시피 건축이란 인간의 활동을 돕는 도구이며 그 환경이다. 좋은 건축은 인간의 활동을 촉진시켜준다. 마찬가지로 좋은 교회건축은 교회의 예배, 교육, 교제, 선교, 봉사 등 교회의 사역을 촉진시켜준다. 따라서 교회건축은 교회에 아주 중요한 일이다. 교회건축은 기본적으로 기능성, 아름다움, 안전성, 경제성, 공공성, 그리고 교회의 본질을 드러내는 상징성을 가져야 한다. 기능성, 아름다움, 안전성은 교회 내적 문제다. 교회가 실제 사용할 공간을 가장 기능적으로 만들었을 것이고, 건축가가 최선을 다해 아름답게 만들었을 것이고, 당연히 안전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경제성, 공공성, 상징성에 있다. 경제성 측면에서, 교회 건축은 막대한 재정이 소요된다. 교회건축을 위해 한정된 재정을 사용하다보니 다른 교회사역이 위축된다. 교회건물을 지어놓고 경매에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근래에 많이 나온다. 빚 갚는데 헌금을 거의 다 쓰다 보니 실제 교회가 해야 할 일에는 돈이 없어 못한다면 그게 교회라고 할 수 있는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공공성 측면에서, 한 자리에 새로운 교회당이 들어가면 그 지역환경의 일부가 된다. 따라서 교회건축은 교회 자체의 건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교회 건물이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라는 공공성 문제가 대두된다. 한국의 7-80년대까지 지어진 건물들은 그 건축 재료와 시공이 부실했고 따라서 건물의 수명도 짧았다. 그러나 현대 건물들의 수명은 100년 이상이다. 오랜 기간 동안 한 장소에 있으면 싫든 좋든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 느끼며, 지역사람들이 자신들의 환경의 일부로 영향을 받게되므로 공공성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상징성 측면에서, 하나의 교회당 건물은 교인들을 넘어 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까지 어떤 목적으로 지어져서 어떤 목적을 위해 쓰이는지, 즉 그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교회 건물을 통해 드러낼 필요가 있다. 이렇게 교회건축 문제는 경제성, 공공성, 상징성 문제로 봐야 한다.

참고로 한 말씀만 더 드리겠다. 흔히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한다. 최초의 고딕성당을 지었던 프랑스 생드니 수도원 원장 슈제는 하나님의 성전이므로 황금과 보석 등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으로 성전을 건축하고 장식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동시대에 시토회 수도원 창시자로서 기독교 개혁운동에 앞장섰던 성 베르나르는 슈제가 가난하고 굶주린 자를 돌보지 않고 허식을 위해 낭비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이는 오늘날 한국교회, 특히 대형 교회건축에서 흔히 나타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 권혁률
20여년 넘는 기자생활 중에 교회건축이 요즘처럼 논란이 된 적이 없다. 사랑의교회 문제가 있고, 교회들의 무리한 대출과 경매 문제가 있다. 은행대출액이 2008년 말에 3조 2996억에서 2013년 6월 말에 4조 5107억이 되었다. 불과 5년 안에 36.7%가 급증한 것이다. 제2금융권 대출은 2012년 말에 4조 9천억이었는데 지금은 5조 가까이 됐을 거다. 둘을 합치면 거의 10조다. 제3금융권 사채까지 합치면 10조가 넘을 거다. 교회대출 10조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런 부작용으로 경매로 넘어가는 교회가 2008년에 181건이던 것이 2012년 312건, 가장 최근 통계가 10월 말에 나온 것인데 298건으로 거의 작년 1년 치에 육박했다. 작년 동기간보다는 50건 증가한 수치다. 어떤 교회들이 경매에 나오는지 여러 군데서 볼 수 있다.

교회 건축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고, 많이 기도하고 어떤 것이 바람직한 교회건축인가 하나님의 응답을 구해야 한다. 이런 논란 속에서 3가지 정도 발상의 전환, 인식의 전환을 위해 3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1)돌파형 교회건축에서 벗어나야 한다. 불가능하지만 믿음으로 가능하게 하겠다, 재정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일단 시작하면 하나님이 채워주신다, 그린벨트 사놓고 기도하면 규제가 풀릴 것이다, 위법한 것도 기도하면 해결될 것이다 식의 자세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하겠다. (2)교회 매몰형 교회건축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역사회와 이웃을 함께 생각하지 않고 우리 교회의 수요, 성도들의 요구에만 사고가 매몰된 건축을 추진하는 시대는 지났다. (3)사회친화형 교회건축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교회만이 아니라 사회에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고려가 필요하다. 지역사회가 환영할만한 교회건축을 해야 한다. 교회건축과 관련해서 패러다임 시프트가 필요하다.

○ 신동식(사회자)
사랑의교회 건축문제는 오랜 기간 한국교회의 화두였고, 건축문제를 공론화하는데 큰 계기가 됐다. 사랑의교회 건축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이고 왜 이렇게 공론화되었다고 보는가? 단순히 개교회의 문제를 너무 확대하는 것은 아닌가?

○ 정재영
사랑의교회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교회다. 과도한 주목이 부담일 수 있지만 그만큼 대표성이 있고 그에 따른 책임감과 기대감이 있었다. 80년대 이후 사랑의교회 제자훈련 이야기를 안 한 사람이 없고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이슈가 되면서 제자훈련에 대한 평가도 다시 나온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적법이나 위법을 넘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사도바울도 덕이 되지 않으면 음식을 절제하라고 했다. 적법하고 합법적인 수준에서 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주변에서 문제제기가 있을 때 일부분은 좀 양보하면서 기독교인으로서 솔선수범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사랑의교회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적법하면 문제없다는 식은 태도는 재평가 되어야 한다.

○ 정시춘
사랑의교회는 좋은 의미에서 한국의 대표교회로 인식되었다. 그런 교회에서 문제가 생기니까 더 부각되는 것 같다. 또 하나는 지금 개신교에 대한 사회인식이 굉장히 악화되어 있다. 문제가 생기면 더욱 확대되는 것 같다. 거기에 사랑의교회 새로운 예배당이 위치한 자리가 강남의 대표적인 자리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랑의교회 새 예배당의 모습에서 일반인들은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고 본다.

○ 권혁률
“브루투스여, 너 마저도”라는 말처럼 “사랑의교회 너 마저도”하는 것이다. 사랑의교회는 물량적, 외형적인 경쟁을 추구해온 대다수 다른 초대형교회와 달리, 모범적인 초대형교회였다. 사랑의교회 분들이 과도하게 비판받는다고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사랑의교회가 가진 상징성이 크고 사랑의교회에 대한 애정이 커서 크게 논란이 되는 현실을 이해하시면 좋겠다.

○ 신동식(사회자)
남의 교회 문제에 왜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냐고 하는데, 남의 교회가 있는걸까? 보편적 교회, 우리 모두의 교회라는 관점에서 현재 대부분의 교회들이 화려해지고 대형화 되는 것은 어떤 문제가 있을까? 대형교회 건축이 지역의 중소형교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지역사회에는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나?

○ 정재영
건축학자가 아니라서 화려함에 대해 평가하기는 어렵다. 다만 사회학에서는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과소비하는 경향이 있고, 그것을 통해 정체성을 나타내려 한다고 본다. 교회에도 그런 경향이 있는 듯하다. 한동안 교회가 건축에 열을 올리고, 여러 면에서 남다른 교회건물을 지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은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할 때는 가능했다. 요즘은 성장할 만큼 성장했고 오히려 건축하는 교회는 기피하려는 경향도 있다. 이럴 때 교회가 화려함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할까? 오히려 거룩함을 추구해야 한다. 이분법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종교개혁은 모든 면에서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도록 교회 건축도 그런 지향성을 가져야 한다. 또 지역에 있는 다른 교회들, 특히 작은 교회가 위축되고 위화감을 느낀다. 교회 양극화 현상이다. 대형교회 건축이 교회 양극화를 유발할 수 있기에 교계 생태계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 권혁률
사랑의교회가 2호선 서초역에 건축되는 걸 보고 요즘 “2호선 주변 교회는 다 죽었다”는 농담이 있더라. 물론 그런 일은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이제는 한국교회도 좀 성숙해야 할 것 같다. 건축을 통해 다른 교회 성도들을 끌어들여서 양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좀 더 나은 환경의 신앙생활, 지역사회 공헌 측면에서 건축을 해야 한다.

○ 신동식(사회자)
권혁률 기자의 지적처럼 교회 경매가 엄청나게 많아졌다. 이렇게 된 궁극적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당연히 무리한 대출일텐데, 교회대출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봐야 하는 것인가?

○ 권혁률

현장에서 볼 때 경매가 급증했다. 지금은 연간 350~400건 되지 않을까. 간단하다. 믿음으로 돌파하면 된다, 헌신하면 된다는 생각이 있는데 이제 교인들의 삶이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것을 체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예전에 한국사회가 성장하면서 교인들의 수입도 늘고,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거액을 헌금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요즘은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교인들이 얼마나 팍팍하게 사는가. 마음은 원해도 점점 기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절감해야 하는데 상황인식이 떨어지는 것 같다. 믿음으로 시작하면 되겠거니 하지만 막상 시작하면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목회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작년까지 특별헌금은 줄어도 십일조가 줄었다는 이야기는 없었는데, 올해는 십일조도 줄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만큼 교인들의 삶이 어려워진 거다. 앞으로 더 어려워질텐데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 과거와 같은 생각으로 교회건축을 추진하면 틀림없이 교회가 경매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아마 연간 1000건이 될 수도 있다.

○ 정재영
교회 구성의 3요소가 있다고 한다면, 과연 건물이 핵심요소가 될까? 물론 건물은 있어야 한다. 교회가 성도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모임공간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초대교회는 건물이 없었다. 가정교회 형태였고 공동체성을 강조했다. 교회가 제도화되고 교권이 강화되면서 건물이 등장했다. 그런 점에서 교회 건물이 반드시 핵심요소는 아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최근에는 건물을 갖지 않고 사역하는 교회도 많다. 최근 ‘가나안 성도’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는데 인터뷰 할 때 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의사결정이 공동체적이지 않다거나, 재정이 비도덕적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정말 공동체인가에서 생각을 해야 한다. 대출문제도 공동체적으로 잘 논의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대출을 꼭 하지 않을 수 없더라도, 비이성적으로 확장을 하는 것은 신앙공동체 모습에 맞지 않다.



○ 신동식(사회자)

이번에는 청중분들께 질문을 좀 받겠다.

○ 청중1
오늘 행사가 사랑의교회 건축문제를 다루는 좌담회인지 알고 왔는데,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스럽다. 그럼 좌담회 제목을 ‘교회는 무엇인가’로 하고 교회론에 대해 다뤘어야 한다. 건축문제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처럼 애매모호하고 추상적인 것이다.

○ 권혁률
사랑의교회가 건축하면서 불거진 문제들에 대해서는 다 알거라고 본다. 지금은 ‘사랑의교회 건축을 통해 본 한국교회 건축문제’를 다루는 좌담회다. 패널들이 좌담회 전에 대화하며 공유한 것이 한국교회 전반 건축문제를 중심으로 다루자고 의견을 모았다. 사랑의교회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별도의 자리가 필요하고, 오늘 모임의 취지는 이것이 맞다고 본다.

○ 신동식(사회자)
건축적인 측면에서 교회의 본질에 대해서는 잠시 뒤에 정시춘 대표께 질문을 할 예정이다. 그리고 내부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은 조금 자제하기로 했다. 그 점 양해바란다. 정시춘 대표께 질문하겠다. 사랑의교회도 그렇지만 대형교회 건축 문제는 너무 화려하다는 것에 있다. 화려함은 실용성과 대치된다고 볼 수도 있는데, 한국 대형교회의 화려함을 교회 건축이란 측면에서는 어떻게 볼 수 있는가?

○ 정시춘
화려함이 아름다움은 결코 아니다. 신학적으로도 화려함이 결코 바람직한 교회건축 신학은 아닐 거라고 확신한다. 교회건축에 대한 두 가지 이론이 있다. 성전이냐 회당이냐 하는 것이다. 템플(Temple)이냐 미팅-하우스(Meeting-House)냐 하는 것이다. 초기 가정교회 시대를 지난 후에 처음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바실리카 교회양식으로 세울 때 그렇게 화려하지 않았다. 교회가 교세를 확장하고 기독교가 자기 과시 욕구가 생기면서 점점 화려하게 장식을 하게 된 것이다. 바실리카는 회당의 의미이지, 신전이 아니다. 교회가 힘을 가지기 시작하고 세속화 욕망이 드러나면서 규모도 커지고 화려해졌다. 그러다가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종교개혁자들이 추구했던 교회 건축은 미팅하우스다. 굉장히 검소하고 단순하고 소박하고 작은 건물과 장식들이었다. 그러다가 19세기 중반에 영국국교회를 중심으로 중세부활운동이 일어나면서 미팅하우스는 다시 성전의 개념으로 돌아갔고, 이는 당시 미국교회에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미국교회로부터 선교 받은 한국교회 역시 교회건물에 대한 기본 개념은 성전이었고 그 영향이 오늘에 이른 것이라 볼 수 있다.

건축학적으로 화려하고 복잡한 장식이 결코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 더 아름답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 건축의 아름다움은 그 질서와 조화 그리고 균형으로부터 이루어진다. 오늘날 대다수의 한국의 교회건축들의 모습은 건축 원론에서는 물론 신학에서도 멀리 벗어나 있다고 본다.

○ 신동식(사회자)
교회 대형화는 교권, 세속화의 상징이다. 그런 측면에서 교회 대형화는 가슴 아픈 우리의 현실이다. 사랑의교회가 교회 건축물로서 비판도 많은데 왜 그럴까? 또 하나는 한국교회 건축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건축하면 교회가 쪼개지거나, 목사가 쫓겨나는 부작용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 정시춘
정리해보면 이렇게 생각이 된다. 교회가 건축하는 과정을 수십 년 동안 지켜봤다. 오늘 한국교회의 상당수 목회자들이 세속적 성공주의에 물들어 있다. 저는 평신도 입장에서 교회 목회자의 자리를 부와 권력과 명예의 자리로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교회 성장을 목회 성공으로 보는 것이다. 사람들로부터 굉장히 존경받는 어떤 목사님이 후배 목사님에게 “설교 아무리 잘 해도 소용없고 교회당을 크게 지어야 한다”고 충고했다고 하더라. 혹시 교회성장을 전도 또는 선교와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잘 아시다시피 크게 성장한 교회 안에 늘어난 교인들은 기독교인이 아니었던 사람보다 이미 기독교인이었던 사람들의 수평이동 더 많다고 한다. 이는 교회 본래 목적과 다르지 않나. 더 크고 더 화려하게 지으면 채워주신다는 확고한 신념이 교회 건축 경쟁을 촉발했다. 건축을 시작하면 국내에서 잘 지었다는 교회 순방을 하고, 또 미국 대형교회를 순방하고, ‘우리도 이렇게’라는 생각을 한다. 교회 지도자들의 경쟁심이었던 것 같다.

○ 신동식(사회자)
교회건축에 있어 늘 불거지는 문제가 내부의사결정의 공정성에 있는데, 그 문제의 원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 정시춘
그래도 요새는 대부분 건축위원회가 구성되어 잘 진행되는 것 같다. 담임목사가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 권혁률
실제 그 점은 좀 발전을 한 것 같다. 장로님들 힘이 더 센 교회가 많아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다만, 여전히 건축위원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사하면서 우왕좌왕 하는 경우는 많다. 정확한 목표 없이 하기 때문에 계속 설계를 변경해 건축을 하니 공사비가 급증하는 것이다. 사전에 논의되고 의견수렴이 광범위 하게 있어야 한다. 그래도 전보다 담임목사 개인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좀 줄어든 것 같다.

○ 신동식(사회자)
청중 중에 또 질문이 있는가?

○ 청중2
한국교회가 건축과정에서 지역사회가 축복해주는 좋은 사례가 있는가? 전주안디옥교회나 높은뜻교회, 나늘목교회 같이 학교를 빌려서 운영하는 경우를 빼고 말이다.

○ 권혁률
굳이 자기 독자건물을 갖기 보다는 지역사회에서 공공으로 사용하는 사례들이 많이 있다. 교회를 늘리기 보다는 분립하자는 경향도 상당히 바람직하다. 그러나 격려도 받고 좋다고도 하지만 기대만큼 확산되지는 않고 있다. 아직도 교회는 독자건물을 갖고자 한다. 사례 하나만 소개하면 최근에 한남제일교회 사례가 있다. 토지가 있는데 거기에 교회당을 지은 것이 아니라 서울시에 기부체납했다. 서울시가 거기다 체육관을 짓고, 운영은 교회가 한다. 평상시는 체육관으로 쓰고, 주말에는 교회로 사용한다. 한정된 자원으로 대출 받지 않고 아름답고 좋은 건물을 갖게 된 사례다. 물론 일반적인 교회건축에 비해 외형상 더 아름답지는 않겠지만, 오가는 사람도 많고 선교에도 도움이 된다. 이렇게 창의적으로 독자건물론에서 벗어나면 좋겠다.

○ 정시춘
샘플보다도 전반적인 교회의 인식변화는 눈에 보인다. 물론 제가 접하는 교회가 제한되어 있지만,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교회의 의식이 굉장히 달라졌다. 담임목사가 건축 자체에 관여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기본 방향만 제시하고 건축위원들이 판단하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교회당 건물을 갖는 것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교회도 있다. 그런 면에서는 아주 희망적이다.

○ 청중3
개인적으로 사랑의교회 건축과 관련해 문제라 생각한 것은 크게 세 가지인데, (1)그렇게 많은 돈을 들였어야 했나, (2)공공도로 밑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한 불법성과 편법성 문제, (3)입당을 한 현 시점에서는 너무 화려해 쇼핑몰 같다는 것이다. 근데, 이게 다 혼합되어 있어서 하나로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지만, 궁금한 점은 작으면 무조건 좋은 것인가 하는 것이다. 볼륨의 측면에서,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 10년 후를 생각하고 지어야 하는 점도 있는 것이 아닌가 궁금하다.

○ 정시춘
그것은 교회 상황이 다 달라서 이야기하기 쉽지 않다. 사랑의교회가 5만명 정도 모인다고 볼 때 2만평도 모자랄 수 있다. 교회건축을 할 때 교회 내 각 부서가 요구하는 면적을 다 들어주면 건축하는 규모의 2-3배가 된다. 최대한 다목적화해서 교회 예산을 최소화 하는 것을 교회와 건축가가 함께 연구해야 한다. 사랑의교회는 디자인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디자이너가 잘 디자인하려고 꽤 노력했다고 본다. 그러나 그 자리에 사랑의교회의 규모와 관계없이, 볼륨과 관계없이, 사람들이 “어. 굉장히 크네!”라고 느낀다는 것이다. 사랑의교회의 화려함은 겉 재료인 유리 때문에 많이 느껴지는 듯하다. 최첨단 재료, 하이테크 같은 느낌을 준다. 박스 형태가 아니라 조형미를 주려고 꽤 노력했다. 기능적으로 안에 비 효율적인 공간이 생기고 비경제적 요소가 생기는데, 그것 자체를 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나도 건축가 입장에서 다른 건축가가 아름다운 건물을 지으려 한 것을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자리에 그렇게 화려하게 보이는 방법으로, 그만한 크기로 해야했는지 의문은 있다.

○ 신동식(사회자)
나는 개인적으로 교회 볼륨은 1부 예배드리는 인원만큼 있으면 된다고 본다. 모든 한국교회가 5, 6부 예배가 생기면서 보편적 예배, 공동체성이 다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 정재영
종교사회학적인 입장에서는 답은 없다. 다만, 개인신앙인 입장에서 말해보면, 흔히 교회를 방주로 생각한다. 다 들어와서 구원받으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교회를 크게 지어서 모두 안으로 들어오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 관념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싶다. 종교개혁 이후에는 일상생활에서도 얼마든지 하나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사회 자원과 연계하는 것이 훨씬 건강하다. 우리들의 필요를 위해 쓰기 보다는 일반 사람들과 지역사회 자원들을 활용하고, 지역단체에 후원하면서 연계하는 식으로 발상의 전환을 해야한다.

○ 권혁률
제가 목회자 친구 선후배가 많다. 최근 만남에서 주변의 목회자 친구들중에서 누가 행복하냐고 꼽다보니까 약 100~200명 정도 모이는 교회에서 목회하며 교인과 가족처럼 지내면서, 자기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선교사역을 함께하는 사람이 제일 행복하다는데 다 동의하더라. 물론 교인들 입장에서 큰 교회 나갈수록 행복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 신동식(사회자)
사랑의교회 건축을 이야기할 때 법 위반 또는 편법 관련된 위법성 문제가 계속 제기된다. 이 문제는 어떻게 볼 수 있는가?

○ 권혁률
위법하면 안 된다. 위법하면 건축허가가 안 나오는 것 아닌가. 법을 뛰어넘어서 하려는 생각은 안 된다. 물론 규제 중에는 시대에 낡은 것도 있다. 당연히 개선과 개정을 요구할 수 있지만, 원칙적으로 사회적 상식을 벗어나서, 교회니까라는 특권의식을 가지고 바꿔내겠다고 하는 것은 안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랑의교회 건축이 한국교회 건축에 아주 큰 기여를 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 이런 게 논란이 되는구나!”하는 점을 알게 해줬다는 것이다. 사랑의교회 분들에게는 아픔이지만, 한국교회 전체적으로는 건축할 때 뭐를 의식해야 하는지 알게 된 것 같다.

○ 정재영
위법적인 것 당연히 안 된다. 일부 교회 중에는 특권의식을 갖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무지해서 하는 경우도 많다. 문화센터나 카페 운영할 때도 그렇다. 우리끼리는 선한 목적에 쓰니까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공공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될 때가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한 교육, 안내도 필요하다. 그러나 제가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단순히 위법하지 않으면 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신앙공동체로서 본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적법하니까 문제가 없다는 것은 소극적 기준이다. 본이 되고 그 자체가 전도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 청중4
사랑의교회 은퇴장로다. 자기교회 행위가 공론화 되어 발제되는 것이 죄송하다. 저는 건축 초기부터 불법성 문제 때문에 반대했던 사람이다. 사랑의교회가 새 예배당을 지을 때 서초구청이 서울시, 국토부, 행자부에 질의했다. 그런 경우는 없었을 것이다. 서울시와 서초구청이 승인했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행태는 못된 기업이 하는 꼼수를 갖고 왔다. 건축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전도의 문이 열리느냐 생각해야 한다. 한국교회 목사님들이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그렇다. 또 질의를 해서 받아오는 과정 중에 한국교회가 종교권력이 생겼다. 유명인의 힘을 빌려 압력을 가했다. 부패의 바로미터다. 사랑의교회는 저 건물 때문에 망하고, 사랑의교회 때문에 한국교회가 망할 것이다. 각성해서 받아주시면 좋겠다.

○ 신동식(사회자)
마지막으로 사랑의교회 건축을 통해 한국교회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과 교회 건축을 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 주시면 좋겠다.

○ 정재영
현 상황이 착잡하고 안타깝다. 오늘 전반적인 건축문제를 다룬다고 해서 나왔는데, 사랑의교회 건축 이야기에 대한 요청들도 많았다. 오해가 있다면 죄송하다. 의사결정 구조에 대해서는 모두발언 때 공동체적인 의사결정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렸다. 전체 한국교회에 대해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고, 비 기독교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교회도 문제 많다. 개척하는 것이 어렵고 다 비용문제다. 1년에 몇 천 개씩 교회가 문을 닫는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좌담회가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건물을 갖지 않는 것, 건축을 하더라도 예배만 위한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위해서 하는 것 등 교회 건물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자는 것이 좌담회 성과로 평가되면 좋겠다.

○ 정시춘
평신도가 이런 이야기해서 안됐지만, 교회가 교회의 본질과 사명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개신교는 종교개혁자들의 후예이고, 한국교회는 청교도정신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어쩌다가 교회 건물이 성전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미팅하우스 개념, 검소함, 낮아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면 좋겠다. 또 작은 교회에 대한 배려, 사회의 인식도 좀 생각을 하면 좋겠다. 엄청나게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종교개혁이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리는데, 정말 그렇다.

○ 권혁률
정시춘 대표 이야기 중에 딱 와 닿는 이야기가 있었다. 교회 부흥이 전도나 성장이냐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누구나 전도와 선교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한국교회의 부흥은 거의 수평이동이고 오히려 전도의 문을 막는 경우가 있다. 얼마 전 신문에서 유현준 교수(홍익대 건축학과)의 “편안한 절, 어려운 교회”라는 칼럼을 본 적이 있는데, 절은 누구나 지나가다가 쉽게 들어오는데, 교회는 같은 기독교인이라도 다른 교회 교인이면 쉽게 들어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칼럼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이 함의를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본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교회대출이 합치면 10조원이다. 5% 이자만 따져도 5천억원이 이자다. 5천억을 영혼구원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로 헌금이 어떻게 쓰이면 좋을지 고민해야 한다.

○ 정시춘
건방진 이야기 한 마디만 더 하겠다. 언론에도 문제가 있다. 교회건축에 대해서 언론이 부추기는 것 같다. 굉장히 크고 화려한 교회들을 아주 훌륭한 교회로 소개하고 상도 준다. 저는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매우 안타깝다. 교회들 보고만 뭐라고 하지 말고 언론도 그런 사명의식을 좀 가져주셨으면 한다.

○ 신동식(사회자)
기윤실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국교회가 18% 정도 신뢰를 받는다. 선교한국 초대총무인 김인호 목사의 1987년 논문을 보면 비기독교 대학생이 본 기독교의 문제가 2가지로 나오는데, 목회자의 권위와 건축문제였다. 그 당시 대학생들이 지금 40, 50대 되어 한국교회를 이탈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또한, 어느 대형교단에 소속된 교회의 유치부 평균 출석이 15명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한다. 위기 상황이다. 한국교회가 건물자체에 매몰되지 않고, 공교회를 강화해 각성하는 기회가 되길 소망해 본다. 오늘 좌담회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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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윤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핵에너지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를 대하는 반응들은 차이가 있습니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핵발전소를 줄이거나 완전히 없애기로 한 반면, 우리나라는 오히려 핵발전소를 더 늘리기로 했지요.

우리나라도 전력생산의 많은 부분을 핵에너지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창조세계를 돌볼 책임을 가진 교회들이 핵에너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12월 12일(목) 오후 2시, 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2013 교회의 사회적책임 심포지엄 - 교회, 핵에너지를 넘어 대안을 생각하다>가 열렸습니다.

<2013 교회의 사회적책임 심포지엄 - 교회, 핵에너지를 넘어 대안을 생각하다>


기조발제는 "탈핵시대 그린에너지"라는 제목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의 김정욱 명예교수님이 해주셨습니다.

김정욱 교수님은 핵에너지에 대해서 ①핵발전소 1기 건설에 최소 3조원 이상 들어가는 등 저렴하지 않다 ②효율이 낮고, 힘 없는 지역주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에너지다 ③우리도 처리할 줄을 모르는 폐기물을 후손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죄악이다 라고 하시면 강도 높게 비판하셨어요.

김정욱 교수님께서 무엇보다 강조하신 것은 핵발전소는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단 한 번의 사고로 한 나라의 운명이 좌우될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 일례로 이스라엘은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추정되지만, 핵발전소는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유사시 적에게 핵무기를 주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지요.

김정욱 교수님은 지역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지역사회 안에서 최대한으로 공급하고 지역사회에서 나오는 폐기물도 그 안에서 최대한 처리를 한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최소한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고 물질순환체계를 구축하고 환경오염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으로 지역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김정욱 명예교수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다음은 다양한 사례발표가 이어졌습니다. 
먼저 교회의 실천사례로 구로동교회 정진회 목사님과, 산정현교회 강철형 목사님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구로동교회는 ①TV와 셋톱박스 함께 끄끼 ②에어컨 적정온도(26도) 지키기 ③전기밥솥 사용하지 않고 압력밥솥 사용하기 ④정수기는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 전원 끄기 등을 집중적으로 실천해서, 지난해 대시 16%나 전기를 아끼는 효과를 거두셨다고 하셨어요.
 

산정현 교회는 올해 "Green & Clean" 표어를 정하고 
일반 형광등을 LED 형광등으로 교체 전원스위치를 통합에서 개별스위치로 교체 전원스위치 마다 전기절약 스티커를 붙이기 ④서울시 "에코마일리지 캠페인에 참여하는 등, 지난해 대비 7% 전기를 아끼는 효과를 거두셨답니다.

정진회 목사님(구로동교회, 왼쪽)과 강철형 목사님(산정현교회, 오른쪽)


다음은 서울시 기후환경본부 에너지정책팀장인 최영수 박사님께서 "에너지 절약과 생산을 통한 서울시 원전하나 줄이기"라는 제목으로 발표해주셨어요.

서울시의 전력 자립률이 2.8%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기는 제일 많이 쓰죠. 결국 지역의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해 송전탑을 통해 받아 쓰고 있는 것이죠. 혹자들은 서울에 원자력발전소가 없는데 무슨 '원전 하나 줄이기'냐고 물어보곤 하신대요. 하지만 말 그대로 에너지 절약과 생산을 통해 실제적 원전 하나를 짓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실제로 2020년까지 20%를 목표로 삼고, 에너지 절약과 생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교회 건물에 대한 에너지 진단을 통해 전기를 절약하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고요. 여러 교단 및 교계단체들과 업무협약을 맺었다고도 하셨습니다. 교회가 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함께 해야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영수 박사님(서울시 기후환경본부 에너지정책팀장)


대안기술센터 이동근 소장님은 "지역 순환형 에너지"라는 제목으로 신기한 대안에너지들을 많이 소개해주셨어요. 이동근 소장님은 가장 큰 에너지원은 태양인데 도시는 햇빛이 잘 비치지 않아서 과연 도시에 대안이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셨어요.

그러면서 
①사람의 인체열, 기계의 발열, 태양빛만으로 냉난방이 가능한 패시브하우스(실제로 대안기술센터 세미나실을 이렇게 지으셨대요!) ②흑돼지의 지방, 폐식용유를 이용한 바이오 디젤 생산 ③태양열을 이용한 태양열 조리기, 태양열 건조기, 태양전지 등을 소개해주셨어요.
 

폐식용유를 넣은 자동차에서 구수한 냄새가 나서 동네 개들이 좇아다닌다는 말씀에는 다들 빵 터졌고요. 음식을 먹고, 똥을 싸고, 거름을 만들어 가스를 생산하고, 퇴비가 되면 밭에 뿌리고, 그것을 통해 생산한 음식을 다시 먹게 되는 순환구조도 인상 깊었습니다.



이동근 소장님(대안기술센터)


<2013 교회의 사회적책임 심포지엄 - 교회, 핵에너지를 넘어 대안을 생각하다>가 막을 내렸습니다. 교회가 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핵 문제에 대해 어떻게 보고, 어떤 대안을 생각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더 좋은 자리에서 다시 만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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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9 - 교회, 협동조합과 만나다! (2012 교회의 사회적책임 심포지엄 "협동조합과 교회" 후기)

2010/10/06 - [영상] 2010 교회의 사회적책임 컨퍼런스 스케치
2010/09/14 - 한국교회SR포럼_ISO26000(사회적책임)과 교회
2010/09/14 - 2010 교회의 사회적책임 컨퍼런스 주요 일정 및 사진보기
2010/09/14 - 2010 교회의 사회적책임 컨퍼런스 참가자 현황 및 평가
2010/09/14 - 2010 교회의 사회적책임 컨퍼런스 백서를 올립니다.
2009/11/27 - 교회의사회적책임 2.0 포럼 '교육, 교회와 함께 달리다'
2009/11/13 - 2009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를 결과를 발표하며...
2009/11/13 - 2009 교회의 사회적 책임 컨퍼런스 자료집을 올립니다.
2009/11/07 - 2009 교회의 사회적 책임 선언
2009/11/05 - 2009 교회의 사회적책임 컨퍼런스 스케치(11/2~4)
2009/05/13 - 교회의 사회적 책임 2.0 포럼 <환경편>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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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민
교회청년 윤실이, '동네청년'이 되기로 하다!

# Faction : 교회청년 윤실이가 동네청년이 되기로 결심한 사연

○○교회에 다니는 청년 윤실이는 최근에 동네사람들이 ○○교회를 불편해하고 심지어 싫어하는 분들까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평소 ○○교회의 모토는 “열방을 섬기자”. 그러나 정작 교회가 자리 잡은 동네에서는 환영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윤실이는 가만히 생각해봤다. 처음에는 억울했다. 교회가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하는데… 그런데 동네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은 깔끔하지만 예배를 드릴 때 빼고는 굳게 잠겨있어 뭐하는 곳인지 모르겠다. 어쩌다 화장실이 급해 들어가면 어색한 눈초리를 받는다. 널찍한 주차장이 있지만 수시로 차 빼달라는 전화가 귀찮아 멀고 비싸도 유료주차장을 쓴다. 때때로 들려오는 소음을 도를 넘어 경찰이 충돌하기도 한다.

윤실이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부터 먼저 섬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가 나서서 우리 동네를 섬긴다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고, 그러면 사람들이 교회를 좋아하게 되고, 또 그러면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신나서 교회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꺼낸 윤실이. 그런데 이게 웬걸. 대부분 시큰둥하다. 외롭고 답답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던 윤실이. 그런데 문득 기윤실 청년TNA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관심이 있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부터 변화를 만들어 보고 싶은, 더불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알릴 수 있는, ‘동네청년’을 모집한다고?

윤실이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기윤실 청년TNA에 가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또래들을 만날 수 있다. 친구가 되어 함께 공부하고 아이디어를 나누며, 각자 사는 동네에서 변화를 일으킬 사람들이다. 자크 엘룰의 말처럼 “사고는 세계적으로, 행동은 지역적으로” 할 사람들이다.


그날 밤 윤실이는 기윤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신청하기 버튼을 눌렀다. ^^

• 복음주의권 내에서 진행되는 여러 가지 청년활동들은 주로 강의, 세미나, 아카데미 등 이미 준비되어 있는 틀 속에서 청년들이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는데 청년TNA는 위로부터의 모임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모임이었다는 점이 감동이었습니다. (1기 임준홍)




## 기윤실 청년TNA는?

기윤실 청년TNA는 복음에 합당한 윤리적 삶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청년모임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로서의 시민, 시민으로서의 성도인 청년들이 함께 모여 토론하고 그 결과를 삶에서 실천합니다. 2012년에 1기 • 2기, 2013년 상반기에 3기가 진행되었습니다.

2013년 하반기에 진행될 청년TNA 4기의 주제는 "나는 동네청년이다"입니다. ^^

오늘날 지역교회에는 허무한 구호만이 난무하면서 역설적으로 지역으로부터 신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 교회가 먼저 나서서 '사심 없이' 지역을 섬긴다면 작지만 뚜렷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지역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고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문제의식과 이를 해결하고 픈 열정이 있으신 분! 뭔가 해보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할 지 아직은 잘 모르겠는 분! 혼자가 아니라 함께 비전을 나눌 동역자가 필요하신 분!

기윤실 청년TNA 4기로 오세요! ^^



• 삶의 현장에서 예수를 따르는 제자로 산다는 것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겠다는 두려움과 함께, 그래도 실제적인 제자도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기윤실에서 만나서 든든하고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3기 조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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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3 - 기윤실 청년TNA > 나의정치 아름답게 만드는 액션플랜ABC

2012/04/10 - 기윤실 청년TNA> 나의정치를 아름답게 만드는 액션플랜_실천편
2012/04/10 - 기윤실 청년TNA> 나의정치를 아름답게 만드는 액션플랜_실천편
2012/04/30 - 기윤실 청년TNA> 우리사회 '노동문제' 바로보기 액션플랜A.B.C
2012/04/30 - 기윤실 청년TNA> 4월모임후기_기독청년, 노동을 말하다!
2012/05/29 - 기윤실 청년TNA 5월모임후기 _ 기독청년과 자본주의(5/24@청어람3실)
2012/06/25 - 기윤실 청년TNA 6월모임 후기 >TNA, 손봉호 선생님과 만나다.
2012/08/06 - [기윤실 청년TNA] 1기 활동보고 "희망과 용기가 되어준 청년들이 만드는 모임, 청년TNA"
2012/09/14 - [TNA2기] 기윤실 청년TNA 2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2012/11/07 - [청년TNA 2기] 기독청년과 하나님나라의 소비방식 후기
2012/12/20 - [TNA2기]아쉬움을 뒤로하고 작은 실천으로 변화를 일구는 청년TNA 2기 활동후기
2013/03/26 - 기윤실 청년TNA 3기가 시작되었습니다!
2013/04/19 - 기윤실 청년TNA 3기 첫번째 모임 후기(2013년 4월 12일)
2013/05/06 - 기윤실 청년TNA 3기 두번째 모임 후기(2013년 4월 26일)
2013/05/22 - 기윤실 청년TNA 3기 세번째 모임 후기(2013년 5월 10일)
2013/05/27 - 사회적경제야, 청년TNA가 간다!
2013/07/18 - 청년TNA 거리캠페인 후기 - 사회적경제, 모두가 행복한 대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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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윤실

하루를 꽉 채워 열심히 살지만 살림살이는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습니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 그에 따른 양극화 심화와 같은 자본주의 폐해에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럴 때 협동조합을 대안으로 꼽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UN이 정한 ‘세계 협동조합의 해’이며 우리나라에서는 ‘협동조합 기본법’이 공포되고, 시행되는 원년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영혼 구원’은 물론이거니와 이 땅에서 정의롭고 평화로운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 갈 책임이 있습니다. 무한경쟁, 승자독식, 양극화 심화가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교회는 세상 속에서 사회적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기윤실은 11월 23일(금) 오후 2시, 기독교회관에서 "협동조합과 교회"라는 주제로 <2012 교회의 사회적책임 심포지엄>을 개최했습니다.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국내외의 다양한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협동조합 정신과 교회의 시대적 역할의 공통점을 모색해보고자 했는데요. 약 150여명이 참석하는 등 아주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2012 교회의 사회적책임 심포지엄 "협동조합과 교회". 왼쪽부터 이원돈 목사(부천새롬교회), 김현대 기자(한겨레신문), 정재영 교수(실천신대원), 신성식 대표(아이쿱생협), 박상규 목사(감리교 사회적기업지원센터 사무국장)가 발제 및 토론자로 나섰습니다.





첫 번째 발제는 "교회와 협동조합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정재영 교수(종교사회학)님께서 해주셨습니다. 정 교수님에 따르면 이미 1920년대에 국내에서 협동조합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그 중심에는 YMCA를 비롯한 많은 기독교 단체와 기독교인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세력이 많이 약화되어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낯선 개념이 되어버렸지요. 

하지만 협동조합은 돈보다는 사람을, 경쟁보다 협동을 추구하는 점에서 기독교 정신과 일맥상통합니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창조 질서의 회복과 생명 가치를 보전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초대교회 공동체와 같이 나눔과 섬김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마지막으로 온전한 인간회복을 이루어가는 희년사상(구약성서 레위기 25장)의 측면에서 성경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 교수님은 다양한 기독교 생활협동조합의 모습을 소개하며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협동조합에 대한 논의들이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재영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종교사회학)



그러면 이제 실무를 잘 아는 분의 발제도 들어봐야겠죠? 아이쿱생협의 경영을 맡고 있는 신성식 대표님이 "협동조합이란"이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해주셨어요.


신 대표님의 발제는 다소 충격적(!)이었습니다. 협동조합 하지 말라는 말씀도 하셨어요. 협동조합운동에 산전수전을 다 겪으신만큼, 협동조합이 결코 만만하게 보고 덤벼들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시겠죠.

특히 신 대표님은 협동조합의 성패는 어쩔 수 없이 '상품'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협동조합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상품력을 높이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아이쿱생협은 현재 품질 높은 우리밀 라면을 일반 기업제품과 같은 가격으로 공급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 대표님은 교회나 목회자가 직접 나서기 보다는 뒤에서 잘 지원해주는 역할을 감당하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경영자 입장에서의 냉철하게 말씀해주신 신 대표님 덕분에 협동조합에 대해 좀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아 좋았던 것 같습니다.

신성식 대표(아이쿱생협)



마지막으로 농업전문기자이신 김현대 기자님(한겨레신문)께서 "왜 협동조합인가"라는 주제로 발제해주셨습니다. 김현대 기자님은 협동조합에 관심을 갖고 탐방도 많이 하시고, 관련된 기사와 글을 꾸준히 쓰신 분이신데요.

협동조합이 세계적으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기업'의 한 형태임을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다양한 협동조합 기업들을 소개해주셨죠. 그리고 한국에서 이런 저런 협동조합을 상상해보면 어떨까 하시며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을 공유해주셨습니다. 

또 김 기자님은 협동조합이 잘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동체'와 '신뢰'가 필요한데, 교회는 이미 이런 것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와 협동조합이 잘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하신답니다.

김현대 선임기자(한겨레신문)



발제 후 토론시간에는 감리교 사회적기업지원센터 사무국장이신 박상규 목사님과, 실제로 부천지역에서 협동조합을 준비 중이신 이원돈 목사님(부천새롬교회)께서 패널로 참여해주셔서 발제자들과 활발한 토론을 진행했는데요. 장장 4시간이 넘는 시간에도 참가자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경청하고, 때로는 날카로운 질문도 던지면서 활기찬 분위기를 이어갔습니다.



2012 교회의 사회적책임 심포지엄 <협동조합과 교회>는 성황리에 막을 내렸습니다.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고요. 이 뜨거운 관심을 어떻게 이어갈 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특히 많은 협동조합에 대해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공부하고 준비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더 좋은 자리에서 다시 만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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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민

기윤실 청년TNA 6월모임 후기
TNA, 손봉호 선생님을 만나다.
"고민하는 것은 젊음의 특권입니다" 

 

기윤실 청년TNA 6월 주제는 "기독청년과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었습니다. TNA 기획단1기가 모여 손봉호 선생님을 찾아 뵙고, 우리시대 기독청년들에게 필요한 기독교윤리가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바쁘신 일정 중에도 시간을 내주신 손봉호 선생님께서는 기획단청년들에게 “그래, 고민이 무엇인지 말해보세요”라고 말씀하시며, ‘고민해결’도사님의 포스로 친근하게 맞이해주셨습니다. 

[윤리, 기독교윤리]
Q1. 6월주제가 기독청년과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인 만큼, 기독교윤리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먼저 윤리를 정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은 자연과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과학의 발달 결과 자연이 주는 위협은 상당부분 극복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는 남아 있는 것이죠. 사람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관계입니다. 이해관계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부당한 해를 끼치면서까지 욕심을 부리고, 이 욕심이 경쟁을 발생시키고, 서로 공격하게 되고, 또 그것을 막기 위해 방어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사회가 불안해진 것이죠.

결국 이 문제를 조절하는 것이 법과 윤리인데, 법은 국가가 강제하는 힘이고, 윤리는 인간이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회마다 규범을 만들어 놓았는데, 예를 들면 ‘도둑질 하면 안된다’, ‘거짓말 하면 안된다’ 등 오랜 시간동안 민간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규범을 지키면 ‘윤리적’이라고 하고. 지키지 않으면 ‘비윤리적’이라고 하는 것이죠.

구체적으로 기독교윤리는 기본적으로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계명은 ‘사랑’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 말씀하신 것이죠.

Q2. 신앙과 사회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고민해왔습니다. 87년 당시 기독교윤리실천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당시 상황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8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 복음주의청년들이 굉장히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교회에서는 사회운동에 참여하지 말라고 하고,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친구들 이야기 들어보면 옳은 일 같았던 것이죠. 그런 상황에서 서울대학교 교수들이 모여서 성경공부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탈출구를 만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수들도 많이 고민했습니다. 기독교수들과 의논을 많이 하면서 뜻을 모았습니다.

교회가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려면 먼저 교회가 도덕적인 권위를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그런 노력을 시작해보자 해서 강령초안을 만들었고, 학생들, 교수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만들어 갔습니다. 그 때 시작한 것이 정직운동인데, 별로 성공하지 못한 것 같아요. 전반적으로 그 때에 비해 한국사회는 훨씬 정직하게 되었으나, 교회는 훨씬 부정직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Q3. 교회 내부 구조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교회 내 민주주의 문제는 우선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되면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성경해석문제, 교리문제, 윤리문제는 다수결의 원칙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외에 것은 다수결로 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문제가 있다면 성도들과 함께 의견을 모아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 교회에 남아서 잘못된 것을 고칠 자신이 있면 교회에 남아 있고, 아니면 떠나야합니다. 그런 교회에 남아 있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 교회를 떠나는 것이 큰 죄로 만들고 있는데, 목회자 개인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Q4. 교회 내에서 사회참여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청년들 사이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아무도 동의하지 않고,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바라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 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인지 고민이 됩니다.

그 고민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동지를 찾는 일밖에 없어요. 같이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불의를 보고 눈을 감는다... 그렇게 하고 하나님의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이죠.

공동체가 불의하게 행동한다면, 바르게 살고자 하는 본인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그 불의에 동참하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발버둥이라도 쳐야 하는 것이지요. 비록 힘들지만 그래도 양심을 바르게 가진 친구들과 규합하고 함께 고민이라도 하고, 울분이라도 터트려야 합니다. 젊었을 때 타협해버리면, 나이 들면 더 쉽게 무너집니다. 나이 들수록 책임을 질 것이 많아지면 사람이 할 수 없이 약해지게 되는 것이죠.

적어도 괴로워라도 해야 합니다. 안주하면 안돼요. 고민하는 것은 젊음의 특권입니다.

[청년, 기독청년]
Q5. 요즘 청년들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돈, 명예, 권력은 제로섬 게임입니다. 내가 가지면 다른 사람은 적게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너무 많이 차리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른 사람에 피해가 갑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해만 안 끼쳐도 훌륭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해를 끼치며 살아가기 때문이죠. 

Q6.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당부하시고 싶으신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의감과 이상 모두 반드시 필요한데, 그것을 구체화시키려면 실력을 쌓아야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됩니다. 공부 열심히 하는 게 하늘나라 가는데 도움 되는 건 아니지만, 세상에서 이상을 펼치기 위해서는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정말 양심 있고 하나님 뜻대로 살아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관계도 실력입니다.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하라는 것은 타협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외유내강 하면, 자기에겐 엄격하고 타인에겐 부드러울 수 있어요. 그것이 곧 실력이 되는 것이죠. 공부뿐만 아니라 건강도 실력입니다. 음식도 절제하고, 운동도 적당히 하고, 결국엔 이런 것들이 다 실력이 됩니다.

타인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이해하려고 하고 경청하는 것도 실력이고, 모임에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것도 실력입니다. 자기 능력 개발(달란트 개발)은 젊을 때 해야 됩니다.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시시한 팝송, 노래, 드라마, 영화, 배우들을 보는 데 시간 쓸 여유가 없습니다. 기독인은 10배 더 공부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칼 마르크스는 다른 학생보다 20배 더 공부했다고 써 있습니다. 남들 시시한 책 읽을 때 고전을 읽으세요. 기독교고전으로 <천로역정>, <참회록>(쉬워보이지만 굉장히 깊은 책입니다), <기독교강요>등이 좋습니다. 기독교고전뿐만 아니라 그리스신화처럼 고전으로 알려져 있는 책들을 읽어야 합니다. 수백년동안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검증된 책을 읽으면 확실합니다. 나는 지금도 지하철에서 킨들(e-북)로 책을 읽어요. 그 시간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절제, 자기훈련이 필요합니다. 성경에도 경건은 ‘훈련’이라고 기록되어있는데, 유혹이 왔을 때 물리치고, 욕을 하고 싶을 때 참고, 화를 내고 싶을 때도 절제해야 합니다. 이렇게 절제 하면서도 악에 대해서는 화를 낼 줄 알아야 합니다. 절제하면서 분노해야 하는 것이죠. 다른 젊은이들이 못할 때, 이것을 할 수 있어야 기독청년들이 리더가 될 수 있어요.

기독학생들끼리 토론하는 것도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토론은 서로의 생각을 전하고 교환하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고, 두뇌에 자극이 되기 때문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토론을 많이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주제까지도 토론을 합니다. 예를 들면, “여름이 좋으냐 겨울이 좋으냐”를 토론합니다. 그런데 이런 토론에서도 온갖 재밌는 생각들이 나와요. 너는 여름편, 나는 겨울편. 그럼 평소에 계절에 대해 아무 생각도 안 했던 사람들이 겨울에 대하여 좋은 점을 계속 생각해보고, 말하게 되면서 두뇌에 자극이 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TV토론은 진짜 토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고집만 부리고, 들어갈 때하고 나올 때 생각이 똑같은 게 무슨 토론입니까? 열린 마음으로, 누가 옳은 말을 할 때는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토론이라고 생각합니다. 네덜란드 유학시절, 같은 연구실 친구와 산책하며 나눴던 많은 대화와 토론이 수업에서 배운 것과 비교할 수 없이 많은 것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서로에게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얼마나 유익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끼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통하는 사람과도 마음이 통하도록 서로 알아가려는 것이, 공부하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그 밖에]
초등학생 자녀의 학급사회 적응기, 어떻게 조언해야 합니까?
정직해서 손해 볼 수 있습니다. 정직해서 본 손해라면 괜찮습니다. 그것을 부모가 격려하고 지지해줘야 합니다. ‘나는 네가 옳다고 생각한다.’ 정직해서 본 손해를 지지해주는 것이 손해 보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보다 낫습니다. 손해보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은 어리석은 교육(부모)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런 상황에 대해서는 선생에게 항의하는 대신, 정중하게 얘기해볼 필요는 있어요. 억울하면 문제를 일으켜야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아이도 일방적인 입장에서 말했을 수 있으니, 선생에게 공정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겸손하게 교사와 이야기해보는 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교육받는 청소년들에게는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청소년들에게 정의, 정직, 불의를 미워하는 것을 가르쳐야합니다. 우리 아이가 중학교 다닐 때, 훈육선생이 한 학생을 몽둥이로 몹시 때렸는데, 그걸 보고 온 아이가 집에 와서 굉장히 분노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말은 안했지만 속으로 굉장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억울하게 매질 당하는 친구를 보면서 분노할 수 있는 정의감을 느꼈던 것이지요. 잘못된 건 잘못되었다고 인식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4.19혁명도 고등학생 때문에 시작 된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어요.



지난 3월부터 시작한 기윤실 청년TNA 모임은 7~8월동안 방학을 갖고, 9월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4개월동안 주제선정, 기획, 진행 등으로  수고해주신 기윤실 청년TNA 기획단 여러분들 - 김효준, 권순창, 백소망, 안지현, 이진영, 임준홍, 정현학, 황재민 님- 께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감사합니다. : )  

*
7월 중, TNA 2기 모집을 할 예정이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추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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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NA PARK
기독교 내에 금권선거와 관련하여 각종 추문이 끊이지 않아 참으로 서글픕니다. 특히 2011년은 새해 벽두부터 한기총 대표회장 금권선거 논란이 터지면서 한국교회는 그 도덕성이 바닥 끝까지 추락하면서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모범을 보여야 할 교회가 오히려 앞장 서서 각종 추태를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금권선거 논란을 일으킨 길자연 직전 한기총 회장(왼쪽)과 홍재철 현재 한기총 회장(오른쪽)




각 교단선거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임원선거에 돈봉투가 오고 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심지어 크루즈여행을 공약으로 내건 사람이 당선되고, 후에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아 총회대의원들이 교단지에 여행보내주겠다던 공약을 지키라고 공개광고를 내는 등, 상식 이하의 모습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요?

그래서 각 주요교단의 선거규칙을 분석해봤습니다. 불법선거를 규정하는 조항도 부실하거니와, 무엇보다 불법선거를 저질렀을 때 처벌하는 조항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러니 "당선되면 끝"이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합니다.

각 교단별 선거규칙 비교

예전에 사회선거가 혼탁했을 때, 교회에서 투표를 통해 임직을 뽑는다는 사실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아울러 기독교계가 중심이 되어 공명선거운동을 벌이기도 했었죠. 이런 노력들이 하나 둘 모여 오늘날 사회는 매우 엄격한 공직선거법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교회는 유명무실한 


교단선거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이런 개선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유명무실한 교단선거법을 실효성 있게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윤실은 올해, 깨끗한 총회운동의 일환으로 교단선거법 개정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시고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여 모범규칙을 개발한 뒤, 대중운동을 통해 각 교단들이 실제적으로 자극을 받고 움직이도록 하려고 합니다.

아오, 주님! 한국교회 좀...



기도와 관심, 그리고 행동으로!

한국교회가 하나님께 영광을, 세상에 모범을 보이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너무나 멀리 가버린 것 같지만, 그럴 수록 더욱 믿음과 용기를 갖고 이 일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기도해주시고, 관심갖고, 함께 행동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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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3월 19일 MTN과 가진 인터뷰에서 종교인 과세에 대해 거론하면서 다시 한 번 종교인과 관련된 세금 납부 또는 소득신고 문제가 화두입니다. 법리적인 해석을 넘어, 자발적으로 소득세를 신고하고자 하는 목회자들이 있지만, 여러가지 어려움으로 직접 소득세를 납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인데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한 번 알아볼까요?



세금납부? '소득신고'가 더 좋은 표현입니다!

'종교인 세금납부' 또는 '성직자 세금납부'라고 표현하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개념상 불필요한 오해와 저항의 소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세금납부'라고 할 때 실제 세금을 낼 수 없는 목사들은 "없는 재정에 무슨 세금까지 내라고 하느냐?'고 의아해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세금납부'가 아니라 '소득신고'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즉 소득이 있는 사람 모두가 소득을 신고해야 합니다. 그래서 소득이 많으면 '납부'가 되는 것이고, 소득이 적으면 '면제'가 되는 것이지요.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종교인 소득신고'라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목회자 소득신고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면 아래 글을 참고하세요.



소득세 신고 어떻게 하나?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소득이 있는 사람은 모두 소득을 신고해야 합니다. 이 점에서 목회자들도 예외는 아닌데요. 소득세 신고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분들도 계실 줄로 압니다. 소득세 신고 어떻게 하면 될까요? 간단하게 그림으로 알아보죠. 

밑에 그림을 한 번 보시죠. 고유번호가 있는가? 부터 출바알~!

어, 그런데 쉽게 이해가 가지 않네? 그리고 ⓐ, ⓑ, ⓒ, ⓓ, ⓔ, ⓕ는 또 뭐야? ^^; 

이런 분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쨔잔~!



목회자 소득세 신고 어렵지 않아요

교회개혁실천연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나눔과셈, 바른교회아카데미, 재단법인 한빛누리 등은, 한국교회의 재정건강성 증진과 이를 통한 온전한 교회로서의 대사회적 신뢰회복을 위해 2005년에 교회재정건강성운동을 설립했습니다.

이번에 교회재정건강성운동에서 소득세를 신고하려는 목회자들을 위해 간편 가이드를 제작했습니다. 이름하여 <목회자 소득세 신고 어렵지 않아요> ^^




Expand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어요 ^^

 
 

목회자 소득신고 Q&A, 이것이 궁금하다!

Q1. 고유번호증 고유등록번호의 가운데 두자리수가 89입니다. 문제 없나요?

A1. 가운데 번호가 89이면 법인으로보는 단체가 아니라는 의미이지만 소득세 납부는 가능합니다. 단, 교인들의 헌금에 대하여 기부금영수증을 발급할 수 없습니다.

Q2. 지방 중소형교회라서 수령하는 급여금액이 적은데도 소득세를 매월 납부하여야 하나요?
A2. 소득세는 과세표준금액이 일정규모 이상인 경우부터 과세하므로 급여 금액이 적으면 납부할 세액이 없으며 2012년 간이세액표 기준 4인 가족의 경우 월 급여 174만원까지는 원천징수할 세액이 없습니다.

Q3. 매월 원천징수하는 세액이 많은데 조정할 수 없는가요?
A3. 원천징수세액의 기준인 근로소득간이세액표는 소득세법 시행규칙의 법규 성격이므로 이를 따라야 하며, 다음해 2월 1년간 소득을 개인별 공제 상황에 따라 다시 계산한 세액과 이미 납부한 세액의 차이를 정산합니다.
 
Q4. 급여 지급항목을 변경하면 소득세를 줄일 수 있나요?
A4. 교회에 소속되어 근로한 대가로 받으면 명칭과 상관없이 모두 근로소득으로 분류됩니다.
 
Q5. 관할세무서코드와 계좌번호를 어디에서 확인할 수 있나요?
A5. 관할세무서에 직접 문의하거나 교회재정건강성운동 홈페이지(www.cfnet.kr) 자료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Q6. 매월 지급하는 급여에 대한 소득세 징수절차를 일정별로 요약하면?
A6. 매월 급여 지급일 : 소득세 등을 원천징수
      급여 지급일의 다음달 10일까지 : 소득세 및 지방소득세 신고 및 납부
      다음해 2월 급여 지급시 : 연말정산
      다음해 2월말 : 급여지급관련 지급내역(원천징수영수증)을 관할세무서 제출
 
Q7. 외부 강의를 하거나 원고를 게재하고 받는 강사료, 원고료에 대해서도 소득세신고를 하나요?
A7. 다음해 종합소득 신고시 기타소득 또는 사업소득으로 수령한 원고료, 강사료를 합산한 종합소득을 개별적으로 신고해야 합니다.
 
Q8. 부교역자인데 소속 교회가 소득세 신고를 하지 않으면 소득세 신고를 할 방법이 없나요?
A8. 소속교회의 등록된 고유번호가 있으면 다음해 5월 개인적으로 종합소득세 신고기간에
소득세를 신고 및 납부할 수 있습니다.

Q9. 소득세를 납부하면 사회보험(국민연금, 건강보험 등)에도 가입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A9. 소득세 납부여부와 무관하게 인원이 1인 이상이면 사회보험에 가입하여야 합니다. 소득세를 납부하면 관련자료가 관련 공단으로 통보되며,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 공단에서 가입하도록 안내하는 공문이 교회로 발송됩니다.




신뢰회복과 이웃사랑 실천의 계기 되길
 

목회자 소득신고는 교회의 재정투명성을 위해 꼭 필요한 절차이며, 장기적으로 교회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에 도움이 되어 교회신뢰도가 낮은 요즘 시대에 교회의 신뢰회복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필수과정입니다.

목회자 소득신고가 정당히 세금 낼 만한 분들에게는 국민의 의무를 수행하고, 세금 낼 형편이 되지 않는 분들에게는 국가의 사회복지 혜택을 받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도록, 또한 이런 조세문화를 통해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관심 갖고 기도해 주십시오.


이번 안내책자는 소득세를 신고하려는 목회자들에게 최소한의 절차를 안내하는 책자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교회재정건강성운동>에서 상담해 드리고 있습니다.

* 교회재정건강성운동 02-741-2793 / protest@protest2002.org / www.cfnet.kr



* 더 읽으면 좋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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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민

실 청년TNA 5월모임 _ 기독청년과 자본주의(5/24@청어람3실)


"TNA 5월모임 : 기독청년과 자본주의"를  잘 마쳤습니다! 특별히 마이클샌델의 신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미리 읽고 모인 준비된 모임이었지요.  

 

모임은 마이클샌델의 하버드대학강의영상을 보고, 더 논의하고자 하는 주제와 질문을 작성하여, 각각 관심있는 주제에 따라 소그룹으로 모여 '기독청년과 자본주의', '매매할 수 없는 것들', '도덕가치가 시장영역으로 넘어간 것들' 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1. TNA기획단 1기 이진영님께서 꼼꼼하게 작성해주신 5월모임 후기! 
 

 



그동안 매월 모임을 마치고 나면, 변화를 위한 액션플랜ABC를 발표했는데요,  5월모임은 실생활에서 나오는 작지만 소중한 액션플랜을 여러분들이 만들어 주세요 : ) 
 
2. 현장에서 와구와구 나왔던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와 질문들" 공유합니다  

함께 이야기 하고 싶은 주제와 질문들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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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NA PARK

장애인에게 편한 것이 모두에게 편한 것입니다

- 서울영동교회 사례 나눔


매년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1972년부터 민간단체에서 4월 20일을 ‘재활의 날’로 지켰는데요. 1981년부터 나라에서 ‘장애인의 날’로 공식 지정하고 기념행사를 해오고 있습니다.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니, 얼마 전 서울영동교회(정현구 목사)를 방문했던 기억이 납니다. ^^ 서울영동교회는 기윤실을 오랫동안 후원하고 지지해준 교회로, 사랑부(장애인부서)를 교회 개척초기부터 운영해 오면서 장애인들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교회인데요. 서울영동교회의 남다른(^^) 사례를 나눕니다.


장애인을 존중하는 교회

보통 교회들은 예배당 입구에 성경책과 찬송가를 비치해놓는데요. 일반적인 크기보다 훨씬 큰 책들이 보였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살짝 꺼내어 보니


짜잔~! 바로 점자성경이었어요. ^^ 처음보는 점자성경이 너무 신기해서 망가지지 않게 조심스레 만져보았습니다. 어떤 뜻인지 알 수 없었지만 올록볼록한 점자가 느껴졌습니다. 시각장애인 분들께서 이렇게 성경을 읽으신다고 생각하니 느낌이 새로웠습니다. 서울영동교회에는 점자성경 뿐 아니라 점자찬송가, 심지어 점자교독문까지 준비되었 있씁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보가 두 가지 크기로 제작되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시력이 약하신 분들을 위해 따로 제작하는 모양입니다.


또한, 3분 예배시에는 청각장애인분들을 위한 수화통역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저도 제가 다니는 교회에 가서 적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섬기고 있는 청소년부 주보를 보통 때보다 조금 더 큰 크기를 소량이지만 만들어 나눠 보았습니다. 

한참 자라는 청소년들이야 시큰둥 했지만, 선생님들이 무척 좋아하시더군요. ^^; '장애인에게 편한 것이 모두에게 편한 것이다'라는 말이 실감되었습니다. 저희로서는 작은 변화지만, 장애인을 비롯해서 여러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 널리 퍼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장애인에게 편한 것이 모두에게 편한 것!

성경에 있는 요한복음 9장 1~3절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와 제자들이 길을 걷다가 선천적 시각장애인을 만납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께 물어봅니다. "선생님, 저 사람이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그 부모의 죄입니까?"

아주 어리석은 질문인 것 같지만, 그 당시 세계관에서 장애는 곧 저주이자 죄에 따른 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물은 것입니다. 예수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닙니다.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예수께서 당시의 편견을 뛰어넘어,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구분 없이, 모두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낼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예리고의 맹인들 (맹인들을 치유하는 예수) (Les aveugles de Jéricho dit "le Christ guérissant les aveugles")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 바로크  / 17세기경 / 유화 / 캔버스에 유채 / 119x176cm / 루브르 박물관 소장

요즘은 장애인에 대해 몰지각한 이해를 가진 사람이 거의 없지만, 아직도 장애인을 존중하는 태도는 많이 미흡한 것이 사실입니다.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면서 남에게 보이는 위한 장애인 활동이 아닌 사랑으로 장애인을 존중하는 교회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래봅니다.


마지막으로 장애인 인권 헌장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장애인 인권 헌장


장애인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장애인은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책임있는 삶을 살아가며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여 자립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국가와 사회는 헌법과 국제연합의 장애인권리선언의 정신에 따라 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완전한사회참여와 평등을 이루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여건과 환경을 조성하여야 한다.


1. 장애인은 장애를 이유로 정치·경제·사회·교육 및 문화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 한다.

2. 장애인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소득, 주거, 의료 및 사회복지서비스 등을 보장받을 권리를 가진다.

3. 장애인은 다른 모든 사람과 동등한 시민권과 정치적 권리를 가진다.

4. 장애인은 자유로운 이동과 시설이용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받아야 하며, 의사 표현과 정보 이용에 필요한 통신, 수화통역, 자막, 점자 및 음성도서 등 모든 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를 가진다.

5. 장애인은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기 위하여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라 필요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6. 장애인은 능력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고 그에 따른 정당한 보수를 받을 권리를 가지며, 직업을 갖기 어려운 장애인은 국가의 특별한 지원을 받아 일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을 권리를 가진다.

7. 장애인은 문화, 예술, 체육 및 여가활동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8. 장애인은 가족과 함께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

9. 장애인이 전문시설에서 생활하는 것이 필요한 경우에도 환경이나 생활조건은 같은 나이 사람의 생활과 가능한 같아야 한다.

10. 장애인은 사회로부터 분리, 학대 및 멸시받지 않을 권리를 가지며, 누구든지 장애인을 이용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여서는 안 된다.

11. 장애인은 자신의 인격과 재산의 보호를 위하여 필요한 법률상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12. 여성 장애인은 임신, 출산, 육아 및 가사 등에 있어서 생활에 필요한 보호와 지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13. 혼자 힘으로 의사결정을 하기 힘든 장애인과 그 가족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필요한 지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14. 장애인의 특수한 욕구는 국가정책의 계획단계에서부터 우선 고려되어야하며, 장애인과 가족은 복지증진을 위한 정책결정에 민주적 절차에 따라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 글 : 박제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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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민
기윤실은 지난 12월 6일(화) 오후 7시 30분, 서울영동교회에서 "참회의 자리로 나아가자"라는 주제로 <한국교회 갱신을 위한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기도회에서는 최근 한기총 금권선거 사태 등으로 표면화 된 한국교회의 죄를 참회하고, 한국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간구하는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이 날의 전체 스케치 및 참회의 메시지 영상을 올립니다.



* 스케치 영상 




* 참회의 메시지1_손봉호 교수(고신대 석좌교수)




* 참회의 메시지2_김형국 목사(나들목교회)





* 관련 글 보기
2011/12/07 - '한국교회 갱신을 위한 기도회'가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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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민

2월 6일(화) 오후 7시 30분, 학동역 근처에 있는 서울영동교회에서 기윤실 주최로<한국교회 갱신을 위한 기도회>가 열렸습니다. 기도회의 주제는 "참회의 자리로 나아가자!". 최근 한기총 문제 등 한국교회가 사회에서 빛과 소금이 되기 보다는 질시와 조롱의 대상이 된 것에 대한 참회의 자리였습니다.
 
 



교회의 전통에 따르면 보라색은 '참회'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파워포인트도 보라색을 바탕으로 했고, 기도회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보라색 띠를 나눠드려서 목에 걸고 기도를 했습니다. 한국교회 갱신을 위한 기도회 공동기도문 





참회의 메시지1은 기윤실 자문위원장이자 한기총 해체 손봉호 장로님(고신대 석좌교수)께서 해주셨습니다. 에베소서 4장 17~20절을 바탕으로 말씀하셨는데요.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손봉호 장로님은 한국교회가 이렇게 부패하게 된 것은 세력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한국교회의 양정성장이 한국기독교를 실패를 가져왔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손해를 좀 보고, 핍박을 좀 받아야 교회가 깨끗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섬기도록, 손해보도록, 가난해지도록, 급진적인 손해를 보는 교회가 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기윤실 교회신뢰운동본부장이신 조성돈 교수님(실천신대원)께서 기도회를 인도해주셨습니다. 시간에 맞춰 기윤실 페이스북에 합심기도를 올리고 함께 기도를 요청했는데요. 많은 분들이 좋아요 눌러주셨네요. (기도도 해주셨죠? ^^)





참회의 메시지2는 김형국 목사님(나들목교회 대표)께서 해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 5~12절을 바탕으로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특별히 새번역성경으로 읽어주셨습니다.


(5) 제자들이 건너편에 이르렀는데, 그들은 빵을 가져 오는 것을 잊었다. (6)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누룩을 주의하고 경계하여라." (7) 그들은 서로 수군거리며 말하였다. "우리가 빵을 가져오지 않았구나!" (8) 예수께서 이것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어찌하여 너희는 빵이 없다는 것을 두고 서로 수군거리느냐? (9)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오천 명이 먹은 그 빵 다섯 개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부스러기를 몇 광주리나 거두었더냐? (10) 또한 사천 명이 먹은 그 빵 일곱 개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부스러기를 몇 광주리나 거두었더냐? (11) 내가 빵을 두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 아님을, 너희는 어찌하여 깨닫지 못하느냐?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누룩을 경계하여라." (12) 그제서야 그들은, 빵의 누룩이 아니라,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가르침을 경계하라고 하시는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첫번째 누룩은 자본과 권력을 추구하는 사두개파 사람들의 모습, 두번째 누룩은 자신들만 경건한 채 했던 바리새파 사람들의 모습인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 두가지가 합쳐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가루 서 말 속에 살짝 섞어 넣으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올랐다.”(마태복음 13:33)


다행히도 항체가 있다고 하셨는데요.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바이러스라고 하셨습니다. 이번 누룩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앞의 두 바이러스를 이기고도 남는다고 하셨습니다.




두번째 합심기도는 기윤실 이사장이신 이동원 목사님(지구촌교회 원로)께서 인도해주셨습니다. 실은 우리 안에도 한기총과 같은 모습이 있음을 회개하고, 한국교회가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내도록 기도했습니다.




특히 기도회에 참석하신 목사님들이 앞에 나오셔서 "우리의 잘못이 제일 큽니다."라고 고백하며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목사가 아닌 성도들은 목사님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 * *

같은 시각, 한기총은 <한국교회의 밤>이란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예산도 지원받고, 차관과 국회의원 등도 축사를 하는 큰 행사였습니다. 오늘 신문에 두 행사가 나란히 보도되었는데요. 하나는 1면 톱기사로, 하나는 2면 하단기사로 나갔네요. 


 

한기총 등 한국교회 문제들은 모두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릇된 욕망부터 쫓아내지 못한다면 한국교회는 밤처럼 깜깜하고 어두울 뿐이겠죠.

우리의 잘못을 참회하며 다시금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내는, 그러면서 겪어야야 하는 고통을 영광으로 받아들이는 한국교회가 되도록...

마음을 다해 기도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볼랍니다! ^^

[관련기사]
뉴스앤조이_"한기총은 부끄러운 내 모습"
* 노컷뉴스(CBS)_돈과 권력에 취한 한국교회 현실 회개
* 쿠키뉴스(국민일보)_교회 갱신을 위한 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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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민

[전월세대란실천캠페인] 이웃을 위한 작은 실천, 큰 기쁨과 자유로 돌아옵니다.

오늘날, 이 땅에서 실천할 수 있는 진정한 이웃사랑은 무엇일까요? 지난 8월과 11월,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원로, 기윤실 이사장)께서 이 시대의 진정한 이웃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셨습니다. ‘집’ 문제만큼 말씀대로 살아내기가 어려운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책임과 역할은 여전히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 그리고 도전을 주는 설교말씀을 공유합니다. 특별히 두 번째 설교에서 첫 번째 설교를 듣고 실천하신 분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이동원 목사님의 말씀처럼 이런 분들의 작은 우리에게도  큰 기쁨과 자유를 선사합니다.                              
                              

△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원로, 기윤실 이사장)

-2011.8.28. [인간관계,어떻게 해야합니까] 설교본문 중에서_ 해당설교바로가기 ☞클릭


우리 시대에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가장 큰 차별과 고통이 무엇인가를 우리는 고민해야 합니다. 이런 시대에 이웃사랑의 실천이 무엇이겠습니까? 다주택 소유자들이 전월세값을 동결하고 인상제한운동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의 부동산 투기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실수요 목적으로만 구입하고 그리고 내 운영 가능한 자금으로 조금씩이라도 가난한 이웃을 섬기고 구제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 성경 최고의 법을 따라 가난한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2011.11.13 [성숙한 성도는 재물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설교본문 중에서_해당설교바로가기☞ 클릭

얼마 전에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로 전세 값 올리지 말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습니다. 최근 이 설교를 듣고 실천에 옮긴 교우의 간증을 듣고 설교자로서 보람이 있고 또 마음에 감동이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 교회 출석하는 유 모 교수님이 지난 9월경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값을 2천만원 올리겠다는 전화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그 때 딱 두 가지가 생각나더랍니다. 하나는 제가 얼마 전 했던 설교이고, 또 다른 하나는 본인도 전세 놓았는데, 그 집의 세입자였다고 합니다. 본인도 집주인으로부터 2천만원을 올려달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너무 힘들었는데 ‘그 세입자도 얼마나 걱정할까, 또 얼마나 고민할까’ 생각이 나서, 본인도 힘들었지만 먼저 전화를 걸어 전세값을 오히려 내리겠다고 말하고, 500만원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작은 실천이지만 이 작은 실천 이후에 마음에 느끼는 큰 기쁨과 자유. 이런 작은 실천이 우리를 성숙하게 만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작은 실천이 성경적 재물관을 실천하는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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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 전월세값동결의 아름다운이야기를 전해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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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NA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