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식'에 해당되는 글 27건

  1. 2016.10.17 부정청탁과 부패의 고리를 끊어야 산다 (신동식 본부장)
  2. 2016.08.18 [기윤실포럼_4차]양극화해소를 위한 실천과제 자료집첨부합니다.
  3. 2015.06.29 [삼풍백화점 붕괴 20년] 삼풍백화점을 알고 있습니까(신동식 본부장)
  4. 2014.09.04 [세월호 참사 특별 뉴스레터 3호 - 140904] 슬픈 마음 짓밟는 일을 멈춰 주세요
  5. 2014.09.02 [기고글] 슬픈마음 짓밟는 일을 멈춰 주세요(신동식 본부장)
  6. 2014.08.05 [세월호 참사 특별 뉴스레터 1호 - 140623] 세월호 참사는 온 국민의 아픔입니다.
  7. 2014.06.10 [특집_세월호 참사 앞에 선 기독교윤리]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신동식 본부장)
  8. 2013.12.20 [기윤실 송년모임] 2013년, 함께라서 행복했습니다
  9. 2013.03.07 [2013년 기윤실 회원총회+이야기마당] "변화를 일구는 한 걸음" 스케치
  10. 2012.12.21 [나부터,지금부터,작은것부터] 2012년 자발적불편운동 한눈에 보기~
  11. 2012.12.05 [기윤실 25주년 기념 윤리부흥회] 참여와 기도 감사합니다.(영상 보고)
  12. 2012.08.17 [자발적불편운동 레터05] 자발적으로 불편한 삶을 산다는 것(신동식 본부장)
  13. 2012.07.22 기윤실 열매소식지 2012년 07~08월호입니다.
  14. 2012.07.22 [자발적불편운동 레터04] 우리 사회의 전기 과소비 원인으로서 밤 문화(조흥식 이사)
  15. 2012.07.02 [자발적불편운동 레터01] 자발적 불편운동을 시작합시다(신동식 본부장)
  16. 2012.06.07 강영안 교수, <더보이스> 인터뷰 "생각하지 않으면 우상을 섬기게 된다"
  17. 2012.04.19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신동식)
  18. 2011.10.12 목회자윤리 연속 심포지엄 첫번째 <목회자와 돈 심포지엄> 후기 및 자료집
  19. 2011.08.10 기윤실 열매소식지 2011년 7~8월호입니다.
  20. 2011.07.02 [비전레터] 도곡동과 포이동의 얼굴
부정청탁과 부패의 고리를 끊어야 산다 (신동식 본부장)

 

 

 

부정청탁과 부패의 고리를 끊어야 산다

 

글 _ 신동식 본부장(정직윤리운동본부, 빛과소금교회 담임목사)

 

 

 

요즘 상상을 초월하는 수임료를 받은 변호사가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한 대형교회 직분자이며 법조 선교회 소속이라고 한다. 이러한 소식을 들으면 참으로 우울하다. 세상 사람과 다를 것이 없는 유사 그리스도인을 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부정과 부패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직을 생명으로 삼아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과 부패를 통하여 얻은 성공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저주이다.

 

지금 사회는 좀 더 정직하게 살고자 몸부림 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정부는 2012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했던 법인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을 5월 9일에 입법예고 하고 9월에 시행한다고 발표하였다. 이 법의 내용에는 공무원이 직무 관련성이 없는 사람에게 100만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으며, 공직자와 언론인, 사립학교 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이 직무 관련인으로부터 3만원 이상의 식사 대접을 받으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고 나와 있다. 그리고 공무원 등이 받을 수 있는 선물 가격은 5만원으로 정했고, 경조사 비용은 10만원이다.

 

일반 국민의 눈에는 상식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법의 시행에 앞서서 많은 저항을 받고 있다. 일부 직능단체가 법의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경제적인 위축이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부정과 부패의 고리를 끊는 일에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우선 하는 생각이 앞서고 있음을 본다. 더구나 이러한 반대에 일부 정치인들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참 씁쓸하다.

 

정말로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 국가 경제가 위축될까? 아마도 당분간은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긴 시각으로 보면 국가 경쟁력에 큰 힘이 된다.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김병연 교수는 “우리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 중에 부패지수가 더 높은 국가는 하나도 없지만 우리보다 소득이 월등히 더 낮은 나라가 부패가 더 적은 나라는 150여 개국에 달한다. 그러면서 부패정도에 있어서 한국이 일본만큼만 되어도 경제성장률이 1% 가량 증가할 것이다. 성장률이 1% 증가하면 일자리가 10만개 증가한다”라고 했다.

 

결국 국가 경제의 성장을 위하여 부패지수를 줄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준다. 국제투명성기구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의 부패인식지수는 100점 만점에 56점으로, OECD 34개 회원국 중 27위로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경제의 침체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어떠한 개정 없이 이 법은 시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우리 기독교인들의 책임은 없는지 물어 보아야 한다. 김병연 교수는 수십 개국의 부패문제의 원인을 연구한 트라이즈맨의 보고를 인용하면서 개신교를 믿는 숫자가 증가할수록 부패는 감소한다고 보고하였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한국에서는 기독교인들의 수적 증가가 부패의 감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한국 교회 스스로 정직에 대하여 강력하게 반응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이원론적인 신앙에 물들어 있는 한국 교회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성공하고, 부자 되고, 성장하면 존경 받고 교회의 리더가 되는 이러한 악순환 가운데 불편하더라도 반드시 감당해야 하는 정직한 삶에 대하여 강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종 교회 정치의 현실에도 부정 청탁과 부패의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가장 정직하여야 할 지도자들이 가장 세속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이 교회를 우습게 보는 것이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하여 김영란 법의 처음 취지대로 스스로 규제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교회가 먼저 부패의 기회를 박탈한다면 사회는 교회를 존중하고 따라 올 것이다. 이것이 교회를 살리고 국가를 살리는 일이다.


 

* 이 글은 2016년 5월 23일, 기독신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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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실포럼_4차]양극화해소를 위한 실천과제 자료집첨부합니다.

 

8월 11일(목) 오후5시, 기윤실 회의실에서 4차 기윤실포럼이 열렸습니다. 기존의 포럼과 달리, 내부 좌담회로 열린 이번 포럼은 "양극화 해소를 위한 실천과제모색"을 주제로, 교육, 부동산, 청년, 비영리 조직 등 각 분야에서 꾸준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을 모셔서,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의 원인과 기독교적 해결방안을 제안하고 토론하는 시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당일, 양극화에 대한 논의 뿐만아니라, 기독교계 내에서의 기윤실 운동이 갖는 역할과 기대 등 기윤실 운동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밤 11시가 넘어서야 마무리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앞으로 기윤실이 소명대로 정직한 그리스도인, 신뢰받는 교회,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게 기여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기도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기윤실포럼 4차 _ 내부좌담회

●일시 : 2016년 8월 11일(목) 오후5시

●장소 : 기윤실 회의실

●주제 : 양극화 해소를 위한 실천과제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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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윤실

2015년 6월 29일은 삼풍백화점이 붕괴된지 20년이 되는 날입니다. 기윤실은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여러 기관, 교회들과 함께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을 조직해, 구조활동을 하던 119 구조대원들에게 식사 및 간식을 제공하고, 자원봉사 활동과 부상자 방문활동 등을 전개했었습니다.

붕괴 사고가 일어난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수많은 대형 참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인재가 발생하지 않기를 소망해 봅니다.


삼풍백화점을 알고 있습니까?

신동식 목사(빛과소금교회, 기윤실 정직윤리운동본부장)



6월29일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 있는 날입니다. 군사정권의 종식을 가하는 선언이 발표된 날입니다. 하지만 20년 전의 이날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준 날입니다. 새로운 도시를 여는 강남의 한 대형 백화점이 한 순간에 무너진 날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지 꼭 20년이 되는 시점입니다. 이 사고로 인하여 사망자는 502명, 부상자는 937명이며 6명은 실종되었습니다. 그리고 피해액은 약 2700여억 원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모든 문제를 다 드러낸 사건입니다. 공무원의 뇌물, 무허가 변경, 부실시공, 무리한 건축, 안전 무시 등 부정부패와 각종 비리의 종합상자로 밝혀졌습니다. 정부는 이러한 상황 앞에서 두 번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감독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삼풍백화점 붕괴를 통하여 달라진 것은 무엇입니까? 건축 현장에서 나타나는 부실시공은 사라졌습니까? 공무원들의 뇌물수수는 뿌리 뽑혔습니까? 안전에 대한 국가의 준비는 잘 되어있습니까? 아마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동안에도 안타까운 일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가깝게는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 사건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 국민을 침울하게 만든 사건인 세월호 침몰 사건이 있습니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부정과 비리 종합세트라는 것입니다.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안전은 개선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국민 안전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생색내기 정치로 되지 않습니다. 국민 안전은 부정부패의 근절에서 시작합니다. 이것이 우선 되지 않으면 30년 뒤, 40년 뒤에도 삼풍백화점과 세월호의 아픔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이 약이라는 말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시간만 지나면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모든 것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라도 시간만 지나가기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붕괴를 가져온 그 원인입니다.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반복되는 슬픔을 겪게 됩니다. 우리는 그 아픔을 생때같은 우리 자녀들이 눈앞에서 수장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천박하고, 정직하지 못하고 여전히 부정과 비리에 빌붙어 사는 이들이 있는 한 우리의 슬픔은 해소 될 수 없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 않는 아픔이 있습니다. 그리고 분노가 있습니다. 이것을 다스리지 않으면 사회는 미래를 향하여 한 발작도 나갈 수 없습니다. 물질에 양심을 파는 천박한 자세를 쓰레기통에 버려야 합니다.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면 남이야 어떻게 되는 상관없는 이기적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이웃의 아픔이 바로 나의 아픔임을 알아야 합니다. 서로에 대한 무관심은 공멸에 이르게 됩니다.

다시금 우리의 자리를 보아야 합니다. 빨리 가고, 빨리 성장하고, 빨리 돈 벌기 위해 온갖 부정과 부패에 눈을 감고 동참하는 추악한 행태를 멈춰야 합니다. 조금 느리더라도 정직하게 삶을 감당해야 합니다. 바르게 갈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누가 가족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슬픔을 원하겠습니까? 그러나 정직하지 않으면 내 가족이, 내 친구가, 내 동료가 내가 보는 눈앞에서 사라지는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우리에게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합니다.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정직함과 이타적인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교훈을 무시하였던 우리는 세월호라는 국가적 슬픔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외형은 달라도 내용은 다를 것이 없는 불행한 사건들이 또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우리는 역사가 가르쳐주는 교훈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잊어져야 할 슬픔이 늘 우리를 짓누를 것입니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이러한 아픔 앞에 책임을 공유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다면 감당 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오는 죄악을 막아야 합니다. 부조리에 대하여 교회는 회초리를 들어야 합니다. 또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됨을 강력하게 선포하여야 합니다. 교회는 시대의 아픔에 동참하고 불의에 저항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참혹한 죄악을 벗어나게 하는 일입니다.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지 20년이 된 이 시점에 우리는 더욱 경성하여야 합니다. 역사의 가르침에 우리 모두 정신 차려야 합니다. 이것이 슬픔으로 가득 찬 세상이 아니라 웃음으로 충만한 미래를 열어갈 수 있게 할 것입니다.


>>> 관련 글 읽기

삼풍백화점 참사와 한국 기독교(손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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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련글 보기

2014/08/05 - [세월호 참사 특별 뉴스레터 1호 - 140623] 세월호 참사는 온 국민의 아픔입니다.


2014/08/05 - [세월호 참사 특별 뉴스레터 2호 - 140805]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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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마음 짓밟는 일을 멈춰 주세요


신동식 본부장(기윤실 정직윤리운동본부장, 빛과소금교회 목사)




이틀 동안 단식을 했습니다.

함께 할 수 있는 몸이 될 때 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기회가 왔고 서슴없이 하룻밤을 광화문에서 묵었습니다. 그곳에는 단식하시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다양한 의견 가운데 자발적으로 단식에 동조하시는 분들입니다. 노숙 단식이라는 것인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특히 잠자리는 정말 힘듭니다. 이러한 현장에서 장기적으로 단식을 하며 지내는 것은 대단한 결단이 없이는 어려운 일입니다.

 

이들이 자발적 불편을 감수하고서 단식하는 이유는 하나, 바로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때문입니다. 4월 16일, 진도 앞 바다에서 304명이나 되는 고등학생과 일반인들이 죽었습니다.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국상에 해당되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국상을 치러야 할 만큼 엄청난 일이 일어났지만 아무도 그 원인을 모릅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아들, 딸이 어떠한 죽음을 맞이하였는지 알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은 이유를 알고 싶어 합니다. 도대체 구출할 수 있는 시간에 구하지 않고 죽게 내 버려둔 그 진실을 알고자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요구입니다. 그런데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가 이 일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은폐하려고 했던 정황들이 나타났습니다. 여기에 정부 여당 정치인들도 한 통속이 되어버렸습니다. 정직한 수사와 기소를 위하여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였는데 도망가기만 합니다. 여기에 야당 정치인들의 모습은 더욱 큰 실망을 안겨주고 말았습니다. 유가족들이 믿을 구석이 없어진 것입니다.

 

슬픔 당한 이들의 마음을 짓밟는 유언비어를 멈추어야 합니다.

이러는 사이에 언론과 SNS을 통하여 온갖 유언비어들이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디서 흘러온 정보인지는 모르지만 확인되지 않은 거짓말들이 난무하고 일반 시민들은 그러한 정보가 사실인양 받고 퍼트리고 있습니다. 유언비어가 무서운 것은 사람들이 정말 속는다는 것입니다.

그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세월호 특별법이 요구하는 수사권과 기소권은 대한민국 사법체계를 흔들고 부정하는 법이라는 소문입니다. 그러나 거짓입니다. 결코 사법체계를 흔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들이 무섭게 우리 사이에 퍼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니라고 하고 설명해도 하루만 지나면 의심합니다. 신문과 방송에 나온 많은 이들이 정치적으로 계속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법안에 명시 되어도 유가족이 직접 조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검처럼 모두 사법적 자격이 있는 분들이 합니다.

 

또한 유족들이 의사자에 준하는 보상을 원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안 역시 유족들이 낸 법안에는 없습니다. 유족들이 원하는 법안은 오직 수사권과 기소권이 주어져서 실체를 정확하게 밝히자는 것입니다. 이 법안을 읽어보시면 압니다. 제발 읽어보고 말 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가장 슬픈 것은 자식을 사랑하기에 목숨 걸고 하는 단식에 대하여 돈 때문이라는 온갖 거짓을 배포하는 이들입니다. 돈이 무엇이기에 죽음을 담보하겠습니까? 그런데 속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유가족들이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가정사와 개인사를 들춰서 본질을 호도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유가족들 역시 우리와 같은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성자가 아닙니다. 성자가 되어야 진실을 믿을 수 있다는 해괴한 논리에 빠져있습니다. 유가족들의 단식은 오직 하나입니다. 내 자식이 허망하게 죽은 이유를 알지 못하면 이 땅에서 살 수 없다는 절박함입니다.


 

세월호 특별법은 다음세대를 위한 법입니다.
더 이상 이러한 끔찍함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부모들의 몸부림입니다. 가장 소중한 생명을 잃은 부모들의 외침입니다. 더 이상 이러한 죽음이 나타나지 않게 하는 것이 죽은 자녀들을 위한 살아있는 부모가 할수 있는 마지막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대통령으로부터 이 땅의 작은 아이에 이르기까지 정직할 때입니다. 거짓과 은폐에 호도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희망이 있는 나라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버림 받은 나라를 만들 것인지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정직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숨기면 그 나라는 소망이 없습니다. 정직할 때 서로 신뢰할 수 있으며 더 나은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치인들 역시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정치의 본분은 국민을 위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시장 잡배보다 못한 정치인인 것입니다. 국회는 국민을 대신하여 법안이 다루어지고 만들어 지는 곳입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생각을 잘 받들어서 법을 만드는 공복입니다. 그래서 의회를 민의의 전당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의원과 의회는 언제나 국민의 마음을 담아야 합니다. 국민의 마음을 담지 않으면 국회는 도둑소굴이 됩니다. 그러기에 국민들은 자신들이 뽑은 정치인들을 주시하여야 합니다. 무관심은 자신에게 재앙이 됩니다. 국회의원을 뽑을 때고 정직하여야 하고 뽑은 뒤에서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무지하게 결정하면 국회가 무능해지고 나라가 천박해집니다.

 

나라의 근본은 국민에게 있습니다.
국민이 무지하면 나라가 무능해 집니다. 깨어 정신을 차리고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은밀하게 소문을 퍼트리고 있는 무지한 이들의 놀음에 놀아나서는 안 됩니다. 지금도 음침한 곳에서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를 찾는 마귀처럼 온갖 유언비어를 생산하고 배포하는 이들에게 분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이제 그 사악함을 버리고 조국과 민족을 참으로 사랑한다면 이러한 몰상식은 끝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상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께 탄원하여야 합니다.

특별히 이렇게 혼란스러울 때, 이러한 때에 기독교인들과 목사들은 말과 행실을 조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목사들의 망언 때문에 하나님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슬픈 이들의 마음을 짓밟는 일들을 멈추어야 합니다. 더불어 그리스도인들은 상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께 탄원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불행이 일어난 죄악들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가 바르게 시행됨을 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 모두 기도하고 함께 아파하고 행동하며 분별하며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려야 합니다.

 


2014/09/02 - [세월호 촛불기도회 설교] 심판을 이기는 긍휼(김병년 목사)


2014/08/29 - [세월호 촛불기도회 설교] 교만과 공의(김근주 교수)


2014/09/04 - [세월호 참사 특별 뉴스레터 3호 - 140904] 슬픈 마음 짓밟는 일을 멈춰 주세요


2014/08/05 - [세월호 참사 특별 뉴스레터 2호 - 140805]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합니다


2014/08/05 - [세월호 참사 특별 뉴스레터 1호 - 140623] 세월호 참사는 온 국민의 아픔입니다.


2014/07/30 - [세월호 참사]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1인시위 - 참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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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_세월호 참사 앞에 선 기독교윤리]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신동식 본부장)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글_신동식 본부장(정직윤리운동본부, 빛과소금교회 목사)


한 갤럽조사에 “정직하게 살면 잘 살수 없다”라는 질문에 “예”라고 답변한 사람이 63%였습니다.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정직하면 잘 살수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니다. 그러나 더욱 절망스러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세대도 그리 밝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한 청소년들의 의식 조사에 의하면 “10억 벌 수 있다면 10년 감옥가도 좋다. 10억 벌수 있다면 감옥 가겠다.”고 20% 이상의 청소년들이 응답했습니다. 또한 “보는 사람이 없으면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47%가 대답하였고, “성공을 위해서라면 뇌물을 줄 용의가 있는가?”에 30%가 “제공할 의향이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나를 잘 살게 해준다면 지도자들이 불법을 해도 되겠는가?” 라는 질문에 30%가 넘는 청소년이 “불법을 해도 된다.”고 언급하였습니다.

이러한 결과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들이 얼마나 사악한 일을 하였는가를 엿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성공과 물질적 쾌락에 눈을 시뻘겋게 달구고 아이들을 동물 사육하듯이 이리저리 사교육으로 내몰았던 이들의 실체를 아이들의 모습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보는 대로 배우고 살아갑니다. 민주화를 가져왔던 기성세대들의 사악한 탐욕이 다음세대를 어둡게 만들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들 사이로 온갖 이단 사이비들이 틈을 타고 들어와서 시민 생각을 혼잡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실체적 모습입니다.

정직함이 사라지고 돈과 권력과 쾌락이 성공의 잣대가 되어버린 시대의 자화상은 괴물입니다. 성경 시편을 보면 유달리 “정직함”에 대한 강조가 많습니다.(시7:10,11:7,32:11 등) 시편기자는 소리 높여 부르짖기를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달라”(시51편)고 간구합니다. 시편 저자가 이렇게 정직함을 강조하는 것은 정직함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시11:7) 정직한 자가 누리는 놀라운 선물은 바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시대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를 싫어합니다. 이 말은 정직하게 사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며, 정직하게 말하고 행동하였다가 손해 보는 일을 결코 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정직함이 없이는 잠시는 부를 누릴 수 있겠지만 마침내 모든 것을 버리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에서 이러한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정직하지 않은 것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세월호는 우리 사회에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나팔소리입니다. 사악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부를 누리고자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정치인, 학자, 언론인, 종교인들이 한 몫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평안하다고 거짓말을 나불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소리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죽음으로 이끄는 거짓 소리입니다.

부정직함은 결코 살아남아서는 안 됩니다. 정직함이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길임을 우리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부정직에 이르게 되는 것은 철저한 개인적 평안을 추구하는 왜곡된 이기주의 때문입니다. 개인과 가족의 평안을 위해서라면 무엇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마침내 비참한 결과를 맞이한 것입니다. 자신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빈약하고 사악한 가치가 이웃의 죽음을 방기한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개인의 평안과 풍요만을 추구하다가 결국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개인적인 평안만을 추구하는 이들은 정치적 무관심과 물질적 정욕에 빠져 삽니다. 이웃이 어떻게 되든 중요한 것은 오직 나와 가족의 행복뿐입니다. 그러나 이웃의 행복이 없이 결코 나의 행복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개인은 개인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평범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러한 상식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웃이 없어도 살 수 있다는 허상이 우리의 눈과 귀를 막았고 우리의 생각을 정지 시켰습니다. 아주 사악한 세력이 우리를 휘어잡은 것입니다. 광명의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사단은 우리에게서 양심을 굳게 하고, 상식을 갈취하였습니다. 결국 보이는 것이 전부인양 살아가는 현세주의자들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세주의는 맘몬의 행동대원들이 되게 하였습니다.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맘몬의 지배아래서 오로지 개인적인 평안과 물질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괴물들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교회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맘몬의 괴수가 교회를 뿌리로부터 흔들고 있습니다. 교회도 맘몬이 주인 노릇합니다. 돈이 없이는 교회에서 행세도 못합니다. 식구로 존재하는 관계가 아니라 비인격적 관계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성도와 목사가 서로 알지 못하는 기형적인 모습이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방치 되었습니다. 결국 사회를 인도할 능력은 상실하였고 자연종교에 모든 지위를 빼앗기고 말은 것입니다.

3%의 소금이 바다를 짜게 합니다. 그것은 소금이 97%의 물에 온전히 녹아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성도가 20%가 넘는다고 자랑하지만 사회 속에 녹아 들어있지 못합니다. 결국 사회의 병폐를 치유할 능력이 무너진 것입니다. 교회가 정신을 차리고 성도들이 삶의 영역에서 성경의 가르침으로 녹아들었다면 우리 사회는 사악한 세력이 몰고 오는 전쟁을 능히 감당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슬픕니다. 처절하게 패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나게 하는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정직히 말하고 순종하길 원합니다. 잠언 14장 11절에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잠언 10장 29절에 “여호와의 도가 정직한 자에게는 산성이요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니라”. 이사야 33장 15~16절에 “오직 공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의 요새가 되며 그의 양식은 공급되고 그의 물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정직하게 살면 하나님이 책임지신다고 말씀합니다. 정직하게 살면 하나님이 높이십니다. 정직하면 분명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정직함이 이웃을 위한 책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외쳐야 합니다.

우리가 외칠 때 부정직의 사회는 반드시 무너집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보여도 반드시 침몰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부정직한 자들로 인하여 무고한 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직한 사회를 위하여 몸부림쳐야 합니다. 그리고 부정직한 이들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들려진 나팔 소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귀를 막거나 외면하면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이 우리에게 또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금 정직함이 주는 영광을 회복해야 합니다. 정직함은 반드시 이웃에 대한 책임을 감당합니다. 내가 정직할 때 이웃은 슬픔을 피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나팔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들으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듣지 않는다면 그 마지막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 출처 : 기윤실 열매소식지 2014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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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NA PARK
[기윤실 송년모임] 2013년, 함께라서 행복했습니다  



어제(12월19일)는 기윤실이 시끌벅적했습니다. 까페바인을 빌려 오후 1시부터 진행된 기윤실 송년모임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늦은밤 10시까지 계속되었어요.     



기윤실 송년모임의 시작을 알려주신, 1호 손님 박은애 회원님. 
지난 5년간 기윤실 활동가로서 계셨는데 이제는 기윤실 운동을 후원하는 회원으로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블링블링한 박은애 회원님 


낮시간동안에는 함께 협력하시는 활동가님들, 또 이곳저곳에서 기윤실을 응원해주고 계신 벗님들의 방문이 이어졌습니다. 근황토크로 시작해서 운동의 협력 방안도 모색해보는 귀한 시간이었어요. 



▲단체의 저력을 보여주신 IVF(아베퍼)


기윤실의 히어로, 박제민 간사님의 사회로 본격적인 송년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미리 신청을 받아 진행된 <띵크토크>는 평소 기윤실에 대한 생각을 진_하게 발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정직윤리운동본부장으로 활동하고 계신 신동식 본부장님과  교회와 가정에서 자발적불편운동 홍보대사로 활동하시는 박제우 회원님, 청년 TNA 3기 조에녹 청년의 발제로 구성된 <띵크토크>는 서로 생각하지 못했던 기윤실 운동에 대해 귀기울여 듣고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 신동식 본부장님(정직윤리운동 본부, 빛과소금교회 담임목사) 




▲ 청년TNA 3기 조에녹 청년 




 박제우 회원님

둥글게 둥글게 앉아서 참석하신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복음에 합당한 윤리적인 삶을 살도록 격려하고 마음을 모아 응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석자 한마디 보기 

더보기

 


각자의 자리에서 여러모양으로 기윤실을 응원해주시는 분들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그동안 기윤실과 함께해주신 여러분 덕분에 2013년이 행복했고, 또 다가올 2014년도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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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NA PARK

2013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 회원총회+이야기마당

"변화를 일구는 한 걸음" 


 

2013년도 기독교윤리실천운동 회원총회+이야기마당이 3월 4일 월요일, 숭실대학교 한경직기념관에서 "변화를 일구는 한 걸음"이란 주제로 열렸습니다.




총회 컨셉 : 변화 3종 세트


기윤실부터 작은 변화를 시작하자는 의미로 이번 회원총회의 컨셉을 검소한 변화, 정직한 변화, 불편한 변화로 잡아보았습니다.


# 검소한 변화

해마다 회원님을 모시는 자리인데 좋은 것으로 풍족하게 대접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리기도 합니다만, 검소와 절제를 강조하는 기윤실인지라 고민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전에 조금 화려한 식단을 준비하면 회원님들께서 "기윤실이 이러면 되겠느냐!"고 꾸중을 하시기도 했고요.


그래서 서울시 중구자활센터에서 운영하는 사회적기업인 <밥이보약>을 통해서 간결한 가정식 뷔페를 준비했습니다. 반찬 수는 많지 않았지만 정갈한 맛이 있는 소박한 식단이었습니다. 식사 후 간식은 사회적기업 제품으로 준비했습니다. ^^


냠냠쩝쩝... 맛있는 식사중~



# 정직한 변화

기윤실은 매년 외부회계감사와 내부업무감사를 받고 있습니다. 기윤실이 그리 큰 단체는 아니지만 이렇게 하는 이유는 정직을 강조하는 단체로서 우리부터 정직해야 한다는 생각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회원총회에서는 회의자료에 회계감사와 업무감사 내용을 실은 것은 물론이고, 회의장에 2012년 월별 결산표, 회계감사보고서, 내부 업무감사보고서, 단행본 및 발간된 자료집 등을 비치하여 회원들께서 언제, 얼마든지 열람하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정직한 변화 코너를 둘러보시는 회원님



# 불편한 변화

과도한 경쟁으로 얼룩진 우리사회에서 무조건 편리를 추구하기보다 그리스도인 먼저 이웃과 약자를 위해 자발적 불편의 삶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회원총회도 조금 불편함을 감수하는 방법을 찾았는데요. 환경을 위해 재생종이를 이용해 자료집을 만들고, 종이컵 대신 스텐컵을 사용했습니다.


불편한 변화 코너를 둘러보시는 회원님



아울러 오시는 회원님들도 불편함을 부탁드렸는데요. 주위에 안 쓰는 펜을 가져와 기부해달라고 요청드렸습니다. 펜이즈유어펜이라는 단체를 통해 제3세계 어린이들에게 전해질 것입니다. 기부해주신 펜으로 펜이즈유어펜에서 보내준 자그마한 박스가 가득찼습니다. 고맙습니다.


상자 가득 모인 펜들



총회 스케치


홍정길 이사장


홍정길 이사장께서 개회선언을 해주셨습니다. 기도원에 가셨다가 바로 오시는 바람에 복장이 이상하다고 하셨지만 오신 분들 중 최고의 패셔니스타셨죠. ^^ 인사말을 통해 오늘날 한국교회의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 안타까워서 자다가도 깨고, 그러고 나면 다시 잠을 못이루고 있다고 하셨어요. 비록 소수가 모였지만 진짜면 된다, 가짜는 아무리 많아도 소용없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헌수 자문위원(숭실대학교 총장)


장소를 대여해주신 한헌수 자문위원(숭실대학교 총장)께서 축사를 해주셨습니다. 처음 뵈었는데 젊으시더라고요. ^^ 본인이 부족한 사람인데 축사를 하는 것은 가당치 않고, 앞으로 기윤실 운동을 지지하고 후원해주시겠다고 겸손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조제호 사무처장


조제호 사무처장이 2012년도 사업 및 재정결산을 보고했습니다. 기윤실은 2012년 목회자윤리운동, 자발적불편운동, 깨끗한총회운동, 교회의사회적책임운동, 기독유권자운동, 기윤실청년TNA(Talk& Action) 등 6대 사업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했습니다.



2012년 기윤실 사역열매영상 "함께 걷는 길"






섬기는 분들



총회를 통해 임원을 임명할 수 있는데요. 신임 감사로 김남홍 변호사(법무법인 소명)의 임명과 임성빈 공동대표(장신대 기독교와문화 교수), 문애란 이사(G&M 글로벌문화재단 대표)와 이문식 이사(산울교회 담임목사)의 연임이 승인되었습니다.



2013년 기윤실은 무엇을 할 것인가?

 

>>> 2013년 기윤실 사역안내서 보기(클릭)


 



기윤실은 세 가지 운동방향을 토대로 회원설문조사와 여러 회의를 거쳐, 아래와 같은 2013년 사업을 진행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 이야기마당


이번 행사의 명칭이 "회원총회"가 아니라 뒤에 "+이야기마당"이 있는데요. 막상 회원님들께서 총회에 오시면 어색해 하시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하면 회원님들께서 즐겁게 참여하실 수 있을까 고민하다. 총회 자체는 짧고 굵게 진행하고 이야기 마당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사회는 정직윤리운동본부장으로 섬기는 신동식 목사께서 맡아주셨고, 이야기손님으로 기윤실 운동의 3주체인 회원, 자원활동가, 상근활동가를 고르게 섭외하여 손봉호 자문위원장, 백종국 공동대표, 조제호 사무처장, 박제우 회원을 모시고 기윤실 운동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왼쪽부터) 백종국 공동대표, 손봉호 자문위원장, 박제우 회원, 신동식 본부장, 조제호 사무처장



총회의 마무리는 역시 기념촬영이겠죠?

다함께 "기윤실 화이팅!" 외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




2013년 기윤실은 변화를 일구는 한 걸음을 뚜벅 뚜벅 걸어나가겠습니다. 많이 응원해주시고 잘못하면 따끔하게 질책도 해주세요. 


기도와 후원, 삶에서의 실천으로 함께 걸어요! ^^


>>> 같이 보기 : 회원님들께서 정해주신 2013년 집중사업은?

>>> [2013년 기윤실 회원총회+이야기마당] 2013년 기윤실에 기대합니다. 회원 한마디~

회원님들께서 적어주신 "나의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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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민
기윤실 비전레터

낭비와 무절제, 과도한 경쟁으로 지친 한국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2012년 기윤실은 고통 받는 이웃과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손해보고, 스스로 불편을 선택하자는 취지의 자발적 불편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뉴스레터를 통해 보내드린 비전레터, 자발적불편운동 이것이 궁금해요 QnA영상, 메인 다큐영상, 실천아이템 등을 한 눈에 보실 수 있도록 종합 정리했습니다. 그
동안 여러 모양으로 참여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13년에 전개될 자발적불편운동에도 성원과 참여 요청드립니다.

 

 
 

기독교인의 생활실천운동(손봉호 자문위원장)
에너지절약은 고통을 수반하는 운동입니다(김재철 교수 인터뷰)
우리 사회의 전기 과소비 원인으로서 밤 문화(조흥식 이사)
자발적으로 불편한 삶을 산다는 것(신동식 본부장)
자발적이지만 절박함으로 해야 할 불편감수(전재중 공동대표)
자발적 불편, 그리스도인의 표지(정병오 상임집행위원)
마음의 불편과 시간의 불편(조성돈 본부장)
자발적불편운동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방선기 이사)
이웃과 약자를 위한 자발적 불편(손봉호 자문위원장)
지금 보니, 자발적 불편함이었다(정애주 이사)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한 가족자원봉사활동(조흥식 이사)
조금 불편하지만 많이 기쁜 일 (이의용 이사)
직장에서 실천하는 자발적 불편(방선기 이사)


 

 

기윤실 홈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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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감사합니다!
이웃을 위한 자발적불편, 기윤실 25주년 기념 윤리부흥회

기윤실 25주년 기념 윤리부흥회가 지난 11월 19일 감사함 가운데 잘 마쳤습니다. 2주 전이었는데 더 빨리 행사후기를 나누지 못한 점 양해 구합니다. 참석해 주신 회원님들과 멀리서 함께 해 주신 지역기윤실 동역자 및 기윤실 사역에 관심 갖고 동참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정현구 이사님의 기도, 홍정길 이사장님의 인사말, 손봉호 자문위원장의 격려사 및 박은조 공동대표의 설교까지 한결 같이 순서를 맡아주신 분들께서 기윤실이 더 진실한 마음으로 현 시대 조롱받는 한국교회가 한국사회 가운데 신뢰를 받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강조해 주셨습니다.

또한 25년 전 창립취지문을 다시금 곱씹으며 “기윤실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권리나 특권도 없으며, 다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만 있다.”는 문구를 통해 참가자 모두 다시금 기윤실 운동에 마음을 모으는 시간이었습니다. (창립취지문 보기-클릭)

많은 분들과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의 길 위에서 하나님의 길을 걸어가는 기윤실 운동과 회원님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계속해서 성원해 주시고, 실천과 기도로 함께 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12년 12월 4일
사무처장 조제호

 



1. 기윤실 25주년 기념 윤리부흥회 - 스케치 영상 보기

* 영상이 보이지 않으시는 경우 <영상 바로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2. 기윤실 25년 사역열매 영사 보기

* 영상이 보이지 않거나, 세부내용을 보실 분은 <영상 바로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기윤실25년_사역열매보고(웹용).pdf

3. 기윤실 25주년 기념 윤리부흥회 - 홍정길 이사장 인사말 영상 보기


* 영상이 보이지 않거나, 세부내용을 보실 분은 <영상 바로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4. 기윤실 25주년 기념 윤리부흥회 - 손봉호 자문위원장 격려사 영상 보기

* 영상이 보이지 않거나, 세부내용을 보실 분은 <영상 바로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5. 기윤실 25주년 기념 윤리부흥회 - 박은조 공동대표 말씀 영상 보기

* 영상이 보이지 않거나, 세부내용을 보실 분은 <영상 바로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1. 자발적불편운동 다큐 영상 보기(클릭)
2. 자발적불편운동 이것이 궁금해요 영상 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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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자발적으로 불편한 삶을 산다는 것

신동식 본부장(정직윤리운동본부, 빛과소금교회 담임목사)


이번 여름은 정말 더웠습니다. 이번 더위에 닭 수십만 마리가 죽었습니다. 더위에 민감한 닭들이 더위를 견디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연로한 어르신들도 안타까운 변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은 단지 이상 기온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경고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 기온에 대한 원인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문제로 세계가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 나라는 기후 협약을 통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 세계적을 조금 불편하게 살자는 협약입니다. 가까운 거리는 차량을 사용하지 말고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자는 것입니다. 또한 되도록이면 대중교통을 애용하자는 운동입니다. 조금만 불편하게 살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는 협약입니다.

이번 여름에는 전기 사용량에 대하여 위기수준이 두번씩이나 발령되었습니다.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지 않으면 모두가 불편해지는 상황이 옵니다. 자신만 생각하고 남을 돌아보지 않으면 이웃은 물론이고 자신도 불행하게 됩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토는 좀더 편한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온갖 매체를 통하여 나오는 광고는 편안한 세상을 위한 유인술임을 알 수있습니다. 거대한 냉장고의 발전은 필요없는 물건을 채워넣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인작전은 안락한 아파트 보다 거대한 아파트를 소유하게 하였고 결국 거주의 의미로서의 집은 상실되고 허영과 투기로서의 의미만 남겨놓았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된다면 우리 미래는 매우 암울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불편한 삶을 살자고 하는 것은 모두가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고자 함입니다. 그리고 이 일에 누구보다도 그리스도인이 제격이라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시작 그 자체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불편하게 살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방인이 구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자로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자발적인 불편은 그리스도인들의 자연스러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발적 불편은 멀리있는 삶이 아니라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손봉호교수는 그리스도인이 먼저 에스켈레이트 타지 않고 계단으로 오르는 운동을 하자고 제안 하였습니다. 작은 불편을 통해서 이웃을 섬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특별히 신혼부부들에게 빛내서 집 장만하는 일을 멈춰야 합니다. 즉, 결혼을 탐욕과 허영으로 시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작은 집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편하더라도 대출인생으로 시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혼수도 동일합니다. 혼수 때문에 싸우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수치입니다. 그래서 혼수는 간소하게 하고 살면서 장만하는 기쁨을 누리자는 것입니다. 다 준비하면 행복하고 잘 살 것 같아도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결혼은 편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하나씩 만들어 가는 행복이 오래 갑니다. 조금 불편해도 큰 행복이 다가옵니다.

또한 대출 받아 부동산 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은 주택에 대하여 바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주택은 거주이지 소유나 재산 증식의 도구가 아닙니다. 재산증식에 불편하더라도 부동산 투기는 금해야 합니다.

그리고 작은 빨래는 세탁기 대신 손 빨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손 빨래하는 것이 불편 할 수 있지만 빨래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고 전기와 물 사용도 줄일 수 있습니다. 

자발적 불편 운동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부담이 되는 운동입니다. 그래서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정신을 온전히 따르는 길입니다. 자발적 불편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멋진 길입니다. 우리들이 자원함으로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문의 | 박진영 간사 02-794-6200, loverlina@naver.com

☞자발적 불편운동 아이디어 제안하기 클릭 
*실천하고 계신 자발적불편의 생활 또는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은 아이디어를 제안해주세요

2012/07/02 - [자발적불편운동 레터01] 자발적 불편운동을 시작합시다(신동식 본부장)
2012/07/05 - [자발적불편운동 레터02] 기독교인의 생활실천운동(손봉호 자문위원장)
2012/07/16 - [자발적불편운동 레터03] 에너지절약은 고통을 수반하는 습관입니다.(김재철 교수 인터뷰)
2012/07/22 - [자발적불편운동 레터04] 우리 사회의 전기 과소비 원인으로서 밤 문화(조흥식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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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NA PARK
기윤실 열매소식지 2012년 7~8월호가 발행되었습니다.
회원님들께는 7월 23일(월) 우편발송될 예정입니다.^^






* 관련글 보기
2012/07/02 - [자발적불편운동 레터01] 자발적 불편운동을 시작합시다(신동식 본부장)
2012/07/05 - [자발적불편운동 레터02] 기독교인의 생활실천운동(손봉호 자문위원장)
2012/07/16 - [자발적불편운동 레터03] 에너지절약은 고통을 수반하는 습관입니다.(김재철 교수 인터뷰)
2012/07/22 - [자발적불편운동 레터04] 우리 사회의 전기 과소비 원인으로서 밤 문화(조흥식 이사)
2012/06/21 - 기독교계 금권선거를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2012/06/25 - 기윤실 청년TNA 6월모임 후기 >TNA, 손봉호 선생님과 만나다.
2012/05/29 - 기윤실 청년TNA 5월모임후기 _ 기독청년과 자본주의(5/24@청어람3실)
2012/06/14 - “죽을 때 가져갈 수 없는 것들, 내려놓으니 평안해요” 이명임 회원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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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전기 과소비 원인으로서 밤 문화

조흥식 이사(기윤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민방위훈련을 정전 대비 위기대응훈련으로 대체할 정도로 전기 대란이 오고 있다. 급기야 정부는 안정적인 전력수급을 위한 에너지절약 대책의 일환으로 공공기관, 회사, 가게 등 모든 사업장에서 문을 열고 에어컨을 가동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단속만으로 전기 대란을 이겨 낼 수 있을까? 한정된 인력으로 모든 건물과 사업장을 빠짐없이 단속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그리고 전기세 요금인상도 문제다. 전기요금 인상으로 절전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시각은 너무 안일하다. OECD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 전기세가 가장 낮다고 하지만 1인당 가정용 전기 소비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그러므로 전기 요금체계 보완과 평균 연봉이 1인당 7133만 원이나 되는 한전의 방만한 경영의 개혁이 요금 인상보다 우선돼야 한다. 섣부른 공공요금 인상은 물가 상승과 바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제 해결의 핵심적인 실마리는 역시 모든 국민 개개인의 절전의식에서 찾아야 한다.

물을 물 쓰듯이 하고, 전기도 물 쓰듯이 하는 풍조를 버려야 한다. 모든 면에서 과소비해도 생활에 지장을 전혀 느끼지 않는 계층의 솔선수범으로부터 빈궁한 생활을 하는 계층에 이르기까지 에너지에 대한 위기의식을 단단히 갖지 않으면 결코 전기 대란 사태를 막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에너지 위기의식에 의한 절전 실천은 역시 가장 필요치 않은데 전기를 사용하는 것을 막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생활에 크게 지장이 없는 데서부터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그 지점은 어디일까? 우선 우리나라의 과잉 밤 문화를 과소화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외국 사람들을 가끔 만나게 되면 그들이 한국에서 놀라는 게 두 가지 있다고 말한다. 한 가지는 지정된 지역이 아닌 도시의 웬만한 곳에서 24시간 불을 밝혀 술을 팔고 대중 사우나를 즐기는 것을 보고도 아무 제재가 없다는 것에,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찬란한 교회 십자가 네온사인이 너무 많다는 것에 놀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 중 크리스천 외국인은 한국 사회에서 악과 선이 공존하면서 교회가 악을 그대로 두는 불가사의한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해 되묻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십자가 네온사인이 밤 문화를 정화시키지 못하는 현실을 두고 가슴 아파 한 적이 너무나 많았다. 물론 이 마음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밤은 하나님께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고 주신 것이다. 그래서 밤 10시 이후 잠을 자게 되면 밤 1시부터 3시까지 사이에 누구에게나 건강을 잘 유지시키게 하는 물질이 몸에서 생성케 된다는 얘기가 과학적 근거로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충분한 숙면, 적절한 운동과 섭식, 친밀한 대인관계, 끊임없는 기도생활이야말로 영육 간에 강건함의 기초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충분한 잠을 자기 위해서라도 전기 과소비를 통해 형성되는 밤 문화를 대폭 줄여야 한다. 밤 문화를 통해 이익을 보려고 하는 사람, 그리고 밤 문화에 길들여진 사람 가운데 크리스천은 우선 누구보다 빨리 여기서 빠져 나와야 한다. 밤 문화가 지배한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하루빨리 탈출해 십자가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집에서 가족과 함께 오손 도손 지내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 일찍 퇴근하도록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을 줄여 준다고 하더라도 밤 문화가 활개 치는 한 가정에 일찍 들어가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는 건강에도 악영향을 주게 돼 다음 날 생산성에도 결코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러니 총체적인 밤 문화를 줄이는 일이야말로 절전의 효과와 함께 가정을 살리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일찍부터 서구 선진국들은 세금으로 밤 문화를 다스려 왔다. 밤 영업에 대한 사전 규제 대신, 사후 고율의 세금으로 조절하였다. 누구나 밤 영업을 자유롭게 하도록 하되, 낮 영업 보다 심야 영업의 경우 영업해서 번 이윤의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내도록 하여 스스로 영업을 하지 않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일찍 가정에 돌아가서 가족과 함께 지내고 밤에는 충분히 자도록 국민을 적절히 인도한 것이다.

전기 과소비 원인이 되는 밤 문화를 낮 문화로 전환시키는, 다시 말해 어둠의 문화를 빛의 문화로 개조시키는 일이야말로 전기 대란을 막을 수 있는 단초가 된다. 그렇다면 십자가 네온사인을 어느 정도 내려놓는 것도 절전의 한 방법은 아닌지도 생각해 보게 된다.

문의 | 박진영 간사 02-794-6200, loverlin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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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2 - [자발적불편운동 레터01] 자발적 불편운동을 시작합시다(신동식 본부장)
2012/07/05 - [자발적불편운동 레터02] 기독교인의 생활실천운동(손봉호 자문위원장)
2012/07/16 - [자발적불편운동 레터03] 에너지절약은 고통을 수반하는 습관입니다.(김재철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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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윤실

자발적 불편 운동을 시작합시다.

신동식 목사(빛과소금교회, 기윤실 정직윤리운동본부장)

 

“국가적 위기가 다가옵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결코 헛소리는 아닙니다. 지금 지구촌에 불어 다친 경제적 위기는 우리에게 분명한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서구 자본주의는 새로운 세상을 열고 영원히 호령할 것 같았지만 지금은 그 소리가 기어들어가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는 이미 그 생명을 다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시장 경제 체제의 근본이었던 자본주의가 사망 선고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다보스포럼에서 자본주의는 죽었다는 말이 현실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입니다.

지금 서구 유럽의 상황은 벼랑 끝에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단순히 한 나라 국가 부도가 아니라 전 세계의 경제에 연쇄 부도 사태를 가져 올 수 있다는 진단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의 경제공항이 현실화 된다면 수출로 경제적 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는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제2의 IMF시대가 올 것이고 그 강도는 이전보다 더 클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 앞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안전할 수 없습니다. 지구촌 시대에 거리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경제공항시대를 위한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지혜는 위기의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잘 훈련시키는 일입니다.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지혜는 생명과 사망의 갈림길에서 바른 길을 가게 하는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영적인 지혜를 구하는 일에 삶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정직하게 알려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통하여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들이 매우 무겁습니다. 그 동안 한국 교회와 성도들은 이 땅의 생명의 깃발 이었습니다. 어둡고 혼란스러웠던 역사의 현장에서 교회를 세우고 나라와 민족을 인도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경제. 정치, 교육, 문화 어느 분야에서라도 한국 교회는 선구자 역할을 하였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삶의 형식은 교회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매우 어둡습니다. 16%의 사람만이 교회를 신뢰하는 현실입니다. 이렇게 된 이면에는 우리의 불찰이 너무 컸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가 본질적인 사명에 붙잡혀 있지 않고 자신의 몸뚱이만 키우려고 눈에 불을 키고 달려왔습니다. 그 결과 외형적인 효과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면의 모습은 너무나 허약해졌습니다. 교회안의 이방인들을 너무 많이 양산하여 낸 것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만 머물고 있거나, 철저한 이원론적 신앙으로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세상은 점점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우습게보았습니다. 결국 우리 스스로 교회를 부끄럽게 만들은 것입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세상과 다르게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을 거부하고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함께 살지만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참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을 본다면 교회의 구별됨이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교회 역시 성공과 허영에 들떠 있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이 갈 길을 몰라 헤매는 것입니다.

교회의 교회됨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복음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르게 감당할 때 교회의 교회됨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위하여 우리가 감수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본질에 합당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손해 보아야 할 것이 많습니다.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접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 됨의 현장은 자발적 불편을 감수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려거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이 땅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왔다고 하셨습니다. 섬김을 받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섬기는 것은 어렵습니다. 섬김을 받을 수 있음에도 섬김의 자리에 서신 것이 바로 자발적 불편입니다. 얼마든 부유한 삶을 살 수 있지만 스스로 포기하고 나눔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발적 불편은 자발적 가난의 삶이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고지론, 저지론, 미답지론, 청부론, 청빈론이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자발적 불편과 자발적 가난의 삶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지만 스스로 누림을 포기하고 함께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러한 그리스도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불편을 기꺼이 감 수 할 수 있는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 밝아집니다. 물론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맡겨진 일들입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합니다. 돈과 권력과 명예를 사랑하는 자리에서 내려와서 이름도 없이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자발적 불편을 살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무기력하고 궁상맞게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발적 불편의 삶은 이웃과 공동체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웃과 공동체가 없이 자신이 존재 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함께 공유하는 삶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자발적 불편은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삶이 아니라 이웃 즉 타자를 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 됨을 나타냅니다. 앞으로 작은 부분에서부터 실제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삶을 나눌 것입니다.

지금은 그리스도인들의 자발적 불편이 정말로 필요합니다. 기윤실은 이전부터 이 일을 추구하였습니다. 정직, 검소, 절제의 삶을 강조하였던 기윤실은 작은 차 타기 운동을 통하여 자발적 불편을 실천하였습니다. 기윤실은 2012년을 기점으로 자발적 불편운동을 펼치고자 합니다. 우리 시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위기의 시대입니다. 이미 앞서 말씀드린 대로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위기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매우 실제적인 위기가 있습니다. 바로 “전기”입니다. 이상 기온으로 인하여 전기의 사용량은 한계치를 넘고 있습니다. 지금의 전기를 감당하려면 원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원전은 일본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결코 안전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우리 스스로 전기 사용을 줄이는 것입니다. 더운 여름, 추운 겨울에 전기를 줄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서 불편의 자리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창조계를 보존하고, 교회를 살리며 그리스도인 됨의 모습을 되찾는 일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앞으로 계속 다룰 것입니다.)

물론 자발적 불편 운동은 여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다만 그 시작일 뿐입니다. 앞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교회의 무너진 터를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세상은 자발적으로 불편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부터 우리이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자발적 불편을 시작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교회를 바르게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는 일에 함께 동역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2/07/05 - [자발적불편운동 레터02] 기독교인의 생활실천운동(손봉호 자문위원장)
2012/07/16 - [자발적불편운동 레터03] 에너지절약은 고통을 수반하는 습관입니다.(김재철 교수 인터뷰)
2012/07/22 - [자발적불편운동 레터04] 우리 사회의 전기 과소비 원인으로서 밤 문화(조흥식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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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NA PARK
기독교인터넷신문 <더 보이스>에 강영안 교수(서강대 철학과)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강영안 교수는 기윤실 창립발기인으로 공동대표를 역임하는 등 오랫동안 기윤실 운동에 헌신하셨으며 현재 이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인터뷰 중에도 기윤실 운동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터뷰는 기윤실 정직윤리운동본부장인 신동식 목사(빛과소금교회)가 진행했습니다.

<더 보이스>의 허락을 받고 전재합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우상을 섬기게 된다
철학과 신학의 접점에서 그리스도인의 좌표를 제시하는 강영안 교수 ①
 

<어떻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인가>,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두 권의 책을 낸 강영안 교수를 인터뷰하려고 20일 전부터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바로 전날 갑자기 연락이 왔다. 당일에 일정이 많아서 약속 시간보다 1시간 정도 일찍 만났으면 하는 내용이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시간에 쫓기면 깊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없다. 조금은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서강대를 찾았다. 그런데 예상은 기우에 불과했다. 강영안 교수는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기에 시간이 부족할 것을 염려해 앞당겨 주신 것이다. 인사를 나눈 직후부터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강영안 교수는 다양한 현안에 대해서 폭포수처럼 이야기를 뿜어냈다. 연구실에 도착한 후 인사를 나누자마자, 최근에 출간된 <그 사람의 서재>를 선물로 건네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터뷰는 더보이스 편집위원인 신동식 목사가 진행했다.



강영안 교수(오른쪽)를 인터뷰하는 신동식 목사(왼쪽) ⓒ더보이스 이은창


신동식 : ‘복음과 상황’의 코너 ‘그 사람의 서재’에 실렸던 교수님 인터뷰 내용을 읽었습니다. 책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강영안 : 당시 ‘복음과 상황’의 인터뷰 요청을 받고 경남 사천에 내려가서 밥 먹으면서 식당에서, 박재삼 기념관이 있는 공원에서, 그리고 책이 있던 집에서 6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글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었습니다. 인터뷰 진행자로 김기현 목사를 먼저 요청했습니다.

신동식 : 최근에 한국교회에서 기독교 평화주의 활동이 활발한 것 같습니다.

강영안 : 교회에서 십계명에 관해 설교한 것을 책으로 냈습니다. 그중에서 전쟁과 사형제도에 관한 설교도 했었는데, 결론은 단순합니다. 사형제도와 전쟁은 원칙적으로 가능지만 실제로 해서는 안 됩니다. 현재 전쟁수단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막강한 화력을 갖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전쟁수단인 창과 화살로 해당된 사람, 곧 전쟁에 참여한 군인만 죽일 수 있었습니다. 정당한 전쟁론에 의하면 전쟁의 시작(원인)과 전쟁의 수행 과정도 정당해야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공격이 아니라 방어만 해야 한다거나 민간인과 아이들을 죽여서는 안 되고, 농지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그런 룰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켜지기도 하고, 안 지켜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전쟁무기는 핵무기 외에도 막강한 파괴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라크 전쟁의 경우 군인을 투입하지 않고도 다양한 무기로 제압할 수 있었지만 지상군을 투입하면서 3,500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폭탄이 건물은 파괴하지 않고도 사람만 죽일 정도로 정교해지면서 무차별적인 살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현대 전쟁에서는 아무리 정당한 전쟁이라 해도 그 자체가 정당하지 않은 전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적으로 전쟁은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전쟁이 불가능한건 아닙니다.

신동식 : 제럼 바즈라는 사람이 쓴 책을 보면 핵무기 시대이기 때문에 아나뱁티스트의 평화주의적 관점은 맞지 않다고 한 것을 봤습니다. 이런 시대에는 오히려 핵 억제정책이 더 바람직하다는 주장으로 평화주의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는데요.

강영안 : 우리나라에서 평화주의를 내세운 대표적인 한 사람이 함석헌 선생입니다. 그도 절대적 평화론자는 아니었습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일어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절대 전쟁이 불가하다는 주장은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까요?

신동식 : 한국사회는 뭔가 들어오면 논쟁을 통해 걸러지는 여과장치 없이 그냥 여론몰이로 마치 정설인 것처럼 되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강영안 : 옛날에 손진태라는 분이 계셨는데, 우리나라 문화인류학의 선구자이신 분입니다. 그분이 쓴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유교가 왜 이렇게 순수주의 유교가 되었는가에 대한 글입니다. 오히려 공자나 맹자 나중에 주자보다는 순자를 받아들였더라면 그렇게 순수주의가 되지 않았을텐데, 글로 배워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자기 현실 속에서 유교가 실천되기 때문에 그런 유교가 없습니다. 우리는 책보고 배웠습니다. 예를 들어 태권도 할 때 실제로 하는 게 아니라 교본 보고 배우는 것과 같은 방식입니다. 몸을 통한 삶 속에서의 배움보다는 책과 글을 통한 배움이 훨씬 교조적이고 순수하면서도 극단적인 종교형태를 띄게 되었습니다.

텍스트가 삶을 반영하고 삶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삶은 아니지 않습니까? 삶도 맨 몸 자체가 삶은 아닙니다. 텍스트를 통해서 삶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아니면 삶을 텍스트로 삼으면 그 삶을 컨텍스트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삶이 텍스트가 되고 삶을 읽어내는 다른 것이 컨텍스트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관련해 마태복음을 보면 “기록되었으되 이는 성경에 기록된 것을 이루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12살 때 성전 올라가셔서 토론하실 때나 30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그리고 공생애 사역 전에 금식하고 세례받고 하는 장면을 보면 이미 정해져있는 그 길을 철저히 순종하면서 따라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십자가에서 이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주어진 사역과 역할을 다 이루었다는 삶의 의식이 있으셨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정하신 대로 절대 순종하면서 걸어가겠다고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부활도 바울이 고전 15장에서 말했듯이 ‘성경대로’ 이루어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에 근거한 삶이었습니다. 성경대로 기계적으로 따른 것이었다면 ‘순종’이라고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에 응답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에서도 삶과 텍스트 사이의 관계가 드러난 것입니다.

신동식 : 교수님에 대해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강영안 교수님의 지상강의는 역사의 현장 속에서 살아가는데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였다. 철학은 삶의 연속가운데 드러나는 사랑인 것 같다. 배울 수 있을 때 배웠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철학으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이 누릴 수 있는 풍요로움은 무엇인가요?

강영안 :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학문적 철학을 공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수년간 개념을 가지고서 개념을 다루고 개념을 연결시키고 개념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훈련을 거쳐야 학문적 철학을 익힐 수 있습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를 이해하고 거기서 물음을 제기할 수 있으려면 한 두 달로 되는 게 아니라 몇 년을 집중해서 씨름해야 이해하고 그 다음에 남에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건 학문적 철학보다는 ‘생각하기’입니다. 생각하기는 생각을 하는 연습, 생각하는 훈련, 생각하는 습관이 몸에 배는 것입니다. 사는 게 무심코 생각 없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무념무상이 인간의 복된 삶이라고 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생각한다는 게 논리적, 창의적으로 생각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생각한다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건 한걸음 뒤로 물러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화분에 꽃이 피어나왔다고 무심코 자르려고 하다가 멈추고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서 다시 바라보고 곰곰이 들여다보고 따져보고 분간, 분별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문화는 서양 15세기 근대문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건 활동, 행복. 심장을 멈추고, 내려놓고 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고 목표를 세우고, 수단을 찾아내고, 그 목표를 이루어내는 방식의 활동의 문화. 성과의 문화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게 효율성입니다. 여기서는 활동하고 성과를 내는 가운데는 깊은 생각이나 넓은 생각, 둘러보고 뒤져보는 방식에 시간을 내줄 여유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신앙생활하면서 이것 또한 활동이 되니까 업적을 거두는 게 됩니다. 성경통독, 전도숫자, 헌금액수, 예배참석횟수 등. 신앙생활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외적인 것들에서 일정한 업적, 결과를 산출하는데 집착하게 됩니다.

15세기 이후 근대문화의 영향입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면서 근대교육, 정치, 학문 등 근대 방식의 문화를 형성해가고 있습니다. 왜 철학이 필요하냐면, 성과중심의 신앙생활을 다시 들여다보고 그 속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자리할 수 있는 공간,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도 잠시 멈추어 서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걸 세밀하게 분별하고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나를 바라보기 위해서라도 철학이 필요합니다.

생각이 전부는 아닙니다. 논리적·비판적 생각, 창조적·창의적 생각,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상식적 생각 등 다양한데, 사람을 생각하고 자연, 이웃을 생각한다고 할 때 생각한다는 것은 배려한다는 말입니다. 나를 중심에 놓지 않고 하나님과 이웃에게 내어놓는 것입니다. 성과중심, 업적중심 사회에서는 하나님, 이웃, 자연, 우리 주변을 배려할 수 있는 여유가 없습니다. 노동의 문화, 노동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의 문화는 삶을 지배 가능한 하나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헤셀의 ‘안식’이란 책에서 안식일을 시간의 시간, 시간의 지성, 곧 시간을 거룩하게 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공간의 개념이라면 잡을 수 있지만, 시간은 잡을 수 없습니다. 시테크라는 말은 시간을 잘 활용하고 내 생활계획을 잘 짠다는 말이지 시간이 내게 지배당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공간은 지배할 수 있지만 시간은 지배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 헤셀 방식으로 생각하면 안식을 제외한 다른 엿새는 공간의 시간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이고 우리가 지배할 수 있는 시간이고, 안식일이라고 하는 하루는 공간의 시간이 아니라 시간의 시간, 시간의 지성소를 만드는 것이고 지배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닙니다. 물론 공간의 지배라는 것도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서 내가 깃들여 사는 것이지 내가 떠나면 내 지배 속에 있는 게 아닙니다. 어떤 점에서 우리는 지배한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공간이 나를 받아주지 않으면 내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세계 속에 살면서 세계를 가꾸고 통제한다고 하지만 세계가 날 받아주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내가 이 땅에 발을 딛고 숨 쉬고 사는 것 자체가 내 이전에 내게 주어진(GIVEN) 것이기 때문에 선물(GIFT)입니다. 우리는 그 선물, 곧 은혜 가운데서 공간과 시간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공간을 지배한다는 말은 상대적으로 어느 정도는 옳지만 절대적으로 옳은 말일 수는 없습니다.

생각한다는 것이 들여다보고, 살펴보고, 뒷걸음쳐 되묻고 그 앞에 나를 드러내는 이런 행위라면 일차적인 의미는 나와의 관계입니다. 사물을 접할 때나 삼위일체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 등입니다. 두 번째 의미는 배려, 곧 내 중심이 아닌 하나님과 이웃 그리고 주변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배려하고 다음 세대를 배려하고, 한국교회를 생각한다면 한국교회를 어떻게 돌보고 가꿀 것인가 고민하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신앙 뿐 아니라 삶을 업적주의에 흐름에 맡기지 않고 한걸음 물러서서 이레 가운데 하루는 비워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쉼으로 그 하루가 나머지 엿새를 풍요롭게 합니다.

신동식 : 한국교회는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강영안 교수 "생각하지 않으면 우상을 섬기게 된다" ⓒ더보이스 이은창 


강영안 : 좁게 보면 교회 문제고, 크게 보면 근대문화의 문제입니다. 근대문화가 만들어 놓은 하나의 틀입니다. 그에 대한 반성 없이 많은 것을 근대문화의 성과, 업적을 개 교회와 개인이 가져왔습니다. 성장주의라는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라 이 틀에서 하나의 우상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성장은 중요하지만 그것은 자연스럽게 결과로 따라오는 것이지 성장을 목표로 그것을 위해 모든 걸 수단화시키는 건이 성장주의인데, 성장주의를 포함한 모든 주의는 잘못됐습니다.

하웃즈바르트가 그것을 잘 지적했습니다. 하웃즈바르트가 ‘현대, 우상, 이데올로기’에서 안보주의, 복지주의, 경제주의 같은 주의에서 안보, 복지, 경제가 우상이 되면 나머지는 다 수단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상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수단이 되어야 할 게 이데올로기화 되어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돈은 수단으로서는 정말 소중한데, 돈이 목표가 되고 우상이 되면 인간의 삶을 해방시키기보다 억압하고 노예로 삼는 것입니다. 우상은 인간을 노예로 삼고 억압하지만, 참된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시는 분입니다. 인간이 목적을 설정해두고 그것을 섬기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욕망덩어리입니다. 명예, 국가, 민족, 교육, 복지, 심지어 교회조차도 우상이 되기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생각한다는 것은 제 1계명과 관련이 있습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수많은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신동식 :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을 오랜 기간 섬겨오셨습니다. 기윤실 운동은 교회의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교회가 보다 더 교회답기 위해서 기독교 윤리를 추구하는 운동인데, 초대교회에 나타난 부흥운동을 보면 영적 회복을 통해 그 사회나 교회가 회복된 후에 기독교적 윤리가 뒤따르는 패턴을 보게 되는데요. 기독교 운동에서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강영안 : 한국교회에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전통 같은 것은 윤리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윤리는 간단하다. 한 시간만 배우고 훈련하면 됩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윤리가 아닙니다. 원칙이고 생명입니다.”라고 말씀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기독교 복음을 생명이라고 한다면 생명은 자라는 것 아닙니까? 자라는 것은 결국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기독교 윤리는 복음의 생명이 자라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명이 태어나지 않고 자라지 않는다면 윤리를 말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 윤리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씨앗이 뿌려져서 나무가 되고, 나무가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그 열매의 결과가 기독교 윤리라고 생각합니다.

에베소서 5장 8절 말씀을 보면 빛의 자녀, 9절에 빛의 열매에 대해 나오는데, 어둠에서 빛으로 존재, 신분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변화입니다. 그 변화에서 거두는 빛의 열매 착함, 의로움, 진실함이 하나님의 성품이고 그것이 열매로 드러난 것, 그것이 기독교 윤리입니다. 사람들이 영적으로 변화된 다음 운동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기독윤리실천운동 방향이 잘못된 게 아니라 운동 초기에서부터 줄곧 얘기해온 것처럼 목사들의 설교, 교인들이 바뀌면 기윤실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손봉호 교수님이 우리는 없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기독인들이 윤리실천 운동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얘기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정말 빛으로 살고 열매를 맺는다면 기윤실 운동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이 문제입니까? 존재변화가 안 일어나는 게 문제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받고 중생하고 성령충만하면 우리가 삶의 중심에 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먼저 중심에 두고, 이웃을 먼저고, 내 자신이 마지막에 두게 됩니다. 이런 변화가 생긴다면 누가 이래라저래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구원의 확신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삶의 근본적인 변화와 방향설정의 변화가 없기 때문에 기독교윤리실천 운동이라는 걸 억지로 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신동식 : 그렇다면 존재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건 교회에서 신앙고백적 신앙이 없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요?

강영안 : 신앙고백적 신앙이 없기 때문이죠. 신앙고백적 신앙을 좁혀서 사도신경에 국한해서 보면 “내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에 대한 속성, 성품에 대해 진술하는 행위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백하는 순간에 그 안에 끌려들어가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면 나는 그분의 자녀고, 성자 하나님 나의 구주시라면 나는 그분에 의해 구원받았고 그분의 종이 되며, 성령하나님이 나를 의롭게 하셨다면 나는 그분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대해 신앙고백을 할 때 나는 하나님의 자녀, 종, 백성으로서의 내 삶을 고백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신앙고백을 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상 오늘날 우리 삶이 여러 가지 체제, 경제적으로 자본주의, 자본주의에서 통용되는 성과주의, 소비주의 틀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다시 들여다보고 분별하고 식별하는 노력이 지금 상황에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동식 : 교수님의 책 중에 에베소서 말씀에 관한 부분을 보면 목사의 사명이 성도를 온전케 하고, 그리스도의 사명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온전히 세우는 것으로 나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사명이 이 땅에 교회를 세우는 것으로 주장해 왔는데, 그런 부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지요?

강영안 : 저는 '교회'라는 말을 쓰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썼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단수형이지만 그 안에는 여러 지체들이 함께 하나로 뭉쳐 온전한 한 사람을 이루는 것입니다. 동격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히 이르기까지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장성한 분량은 그리스도의 충만한 키의 크기까지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만큼 크게 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목표입니다. 몸이 목표가 아니라 훈련시켜 섬기게 하고, 몸을 이루고, 성숙한 인간이 되게 하는데, 그 기준과 목표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목회한다는 건 성도를 온전케 하는 것으로 어원을 보면 베드로, 야고보, 안드레가 고기 잡다가 그물 수선할 때 쓰는 동사와 동일합니다. 고기를 잡을 수 없는 성도들을 치유와 회복을 통해 쓸모 있는 사람으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절에서는 ‘성불합시다’라고 인사합니다. 교회도 ‘그리스도가 됩시다’라고 인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모방하고 따라가는 것만 생각하는데, 그리스도가 되라는 뜻입니다.

요한일서 2장 6절에 “하나님 안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처럼 살아야 할지니”라고 되어 있는데, 그 말씀은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목회자도 먼저 그리스도가 돼서 그리스도 모습을 보여야 하고, 성도도 그리스도가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목사, 장로가 교회에 끼치는 영향이 무척 큽니다. 목사들이 변화가 없으면 성도도 변화가 없고 세상도 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목회 윤리 얘기하는데, 그건 윤리적 목회가 영적 목회고, 목사를 포함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는 것입니다.

신동식 : 교수님께서 쓰신 글 중에서 “이 땅의 기독교는 어떤 모습으로 커갔나”라는 글에서 윤치호 선생을 조명한 것이 인상적이었는데요. 한국기독교의 변화가 윤치호 선생의 변질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기독교가 개인뿐만 아니라 민족 전체를 구원할 것이라는 초대교회의 기대가 급격하게 개인의 신상과 관련된 종교로 전락한 것이 가슴 아픕니다. 기독교가 시대의 조류를 이기지 못하고 순응하게 되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강영안 : 한국에만 있는 특이한 현상은 아닙니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서양교회에서도 있었던 현상입니다. 윤치호 선생을 다뤘다고 못마땅해 하는 사람도 있는데, 윤치호 선생을 다룬 것은 한국기독교신앙의 실천의 방식에 전형적으로 영향을 준 분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윤치호 선생은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대표적인 분이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초기에는 민족과 자기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상당히 내면적인 구원의 경험도 있는데, 후에는 왜 변질되었을까요? 윤 선생이 변질한 것에는 민족적 동기도 컸다고 봅니다. 교육운동을 하면서 일본의 모든 지배에 동조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모든 인간의 유혹 가운데 하나는 영향력을 얼마나 행사하려 하는가 입니다. 영향력, 파급효과, 결과가 중요하다면 어느 정도 제도적, 시대적인 것은 타협하면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하려고 합니다. 그것으로 인한 결과입니다. 나중에 최남선, 이광수 같은 이들이 일본과 타협하는 것과 조금 다를 수 있지만, 목적을 이루기 위해 타협한 것입니다. 윤치호의 경우에는 그것이 교육이었습니다. 물론 민족교육을 위해 투신했지만 일본 협조를 받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윤치호 선생은 타협을 통해 민족교육에 기여하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들이 좀 나쁜 수단을 쓰더라도 좋은 목적일 경우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아주 쉽게 빠질 수 있는 사고의 패턴입니다. 하나님의 선교, 전도, 교회 세우기 위해서 약간의 탈세를 하는 것에 대해 죄의식 갖지 않고 세상의 제도를 이용하는 것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좋은 동기에도 불구하고 불의현 현실과 타협하는 이유는 힘의 확대, 곧 영향력 때문입니다.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 나와 타협할 수 없는 권력과 타협하는 경우 외에 또 다른 모습도 있습니다. 중세 수도원 운동이 일어나면서 9~10세기 되면 주교들이 수도원 출신들에서 다 나옵니다. 왜냐하면 세속 교구에서는 그럴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없고, 능력있는 사람들은 전부 수도원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수도원이 비대해지고, 권력화 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전의 베네딕트와 사막교구운동은 유명무실해집니다. 이 경우에는 영향을 미치기 위한 수단으로 힘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자기 권력화 되거나 세속화 된 것입니다. 두 경우는 교회사에서 자주 보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가치는 타자에 대한 존경" 
강영안 교수, "성도의 목표는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② 


"동성애 문제는 타자와의 관계 문제"  ⓒ더보이스 이은창  


신동식 : 교수님은 개인주의와 다원주의에 기반을 둔 ‘현대’사회에서 문화는 취향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동성애 결혼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것도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현대’사회에 편승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문화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요?

강영안 : 첫째는 동성애자 관련해서 20년 전하고 지금 비교해보면 사회적 이해와 관용도가 엄청나게 바뀌었습니다. 성과 결혼을 취향의 문제로 보는 것입니다. 이성애는 타고난 것이고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주어진 것입니다. 필연성이라고 생각했던 데서 지금은 선택의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그 선택은 취향을 바탕으로 합니다. 큰 변화입니다. 결혼도 과거는 부모들이 맺어주는 결혼에서 지금은 선택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둘째는 피부색깔 때문에 차별받는 문화에서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피부색, 성, 종교, 지역, 학력 등 어떤 차이를 기초로 해서 어떤 차별도 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동일한 권리를 가지고 때문에 권리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빈다.

이 두 개를 결합시켜봅시다. 사회 속에서 내가 가진 차이(difference) 때문에 차별(discrimination)을 받는다면 그것은 나의 권리(right)가 침해받는 것입니다. 동성애 문제를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동성애 문제와 관련된 차별은 인종차별문제와 마찬가지로 논리적으로 자명한 것입니다. 이 변화의 틀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쉽게 그에 대해 대항하고 반항할 수 있었던 게 성경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도 오용될 수 있었습니다. 남아공이 인종분리정책을 쓰면서 노아가 함의 자손을 저주한 것을 인용합니다. 야벳 족속을 섬겨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억압받는 자 입장에서 성경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의 절대적 권위가 무너진 현 시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 동성애가 금지되어 있다고 얘기해봐야 권위 갖지 않는 말로 들립니다.

세 번째, 동성애 뿐 아니라 이성애 경우에도 성이나 결혼 문제가 무조건 잘 되는 건 아닙니다. 이혼, 외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결국 동성애든 이성애든 우리안의 죄, 어둠의 힘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동성애를 이해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런 점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은 이해해야 합니다. 동성애 문제를 떼어놓고 보면 그것은 권리의 문제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도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성경의 관점에서 여전히 동성애가 잘못이라는 얘길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다만 동성애자들을 교회에서 배척하거나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번 기윤실에서도 세미나를 했는데, 결론은 동성애는 죄지만 동성애는 사랑, 수용해야 한다는 그런 입장이었습니다.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당연시 될 경우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왜 성적장애자만 배척하는가에 대해서 답해야 합니다.

실제 경험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같은 형제 자매로 수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문제는 어떤 사람이 다른 종류의 죄를 범할 때 공동체가 계속 수용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럼 동성애는 또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고요. 지금 동성애는 문화적으로 촉진, 격려되는 상황입니다. 좀 더 철학적으로 보자면, 결국 타자와의 관계문제입니다.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알러지 현상은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존재합니다. 동성애자 관점에서 보면 대다수의 이성애자들 사이에서 타자로 배제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또한, 동성애 자체만 보면 타자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나와 다른 성에 대해 닫고 나와 같은 성에 대해서만 열리는 것입니다. 타자성에 대한 결핍증이 동성애 성향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그런 방식으로 태어난 사람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동성애자 관점에서 보면 문화를 통해 자신들이 타자화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관점에서는 동성애자들의 동일한 것에 대한 추구는 타자에 대한 관계결핍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그렇고, 실제로 동성애자들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가는 큰 도전입니다. 무신론, 다원주의, 배타주의와는 또 다른 도전입니다. 교회공동체가 그에 대한 분별의 노력이 필요하고, 토론해야 합니다.

신동식 : 교수님은 개인의 존재성을 타자와의 관계에서 해석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강령을 연상시킵니다. 성경은 개인이 ‘타인’과 어느 정도까지 어떤 연대를 지향하라고 말씀하고 있는지요? 다원적 상황에서 관계 속에서 타인의 얼굴에 대해 배려한다고 했을 때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잡으면 좋겠지만 종교다원주의 성향을 띄지 않는지요?

 

"타자에 대한 존경이 가장 중요한 가치다" ⓒ더보이스 이은창


강영안 : 종교다원주의가 아닌 인간다원주의입니다. 정치적, 윤리적 개인주의보다는 형이상학적으로 어떤 한 사람은 각각의 고유한 가치를 가집니다. 가장 중요한 건, 타자에 대한 존경입니다. 성경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백성이든 아니든 사람이면 하나님의 모습으로 지음 받은 존재라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포함해 기득권층은 아무도 없었고, 다 죄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우리는 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금욕적이었던 세례요한의 사람들과 예수님의 제자들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 관점에서 존경을 구해야 하는 타자는 예외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현실적으로 이것은 잊혀진 사실입니다. 자기를 잊은 것입니다. 나는 의인이고, 저 사람은 죄인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정말 예수님처럼 한다면 이 세상에서 배타적 타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예수님이 배타적으로 대한 사람은 헤롯왕, 바리새인, 사두개인, 대제사장들이었다. 우리는 이런 걸 금방 잊어버립니다. 나도 예외는 아닙니다. 타종교의 경우는 조금 덜합니다. 동성애 당사자는 (타자에 대한) 존경의 대상이고, 타종교는 토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같은 타자들에 대해서는 질책할 수 있습니다.

애매한 것은 제주도 강정문제, 한미FTA, 한일군사동맹 같은 현실정치 문제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입장을 보여야 하는가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해군기지를 건설한다면 정치 여러 측면들을 가지고 팩트가 뭔지를 놓고 뭔지 알아보는 게 필요합니다. 올바른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고, 행동이 필요하면 행동하면 되는데, 지금은 다 각개전투. 정치적 개인 성향에 따라 행동합니다. 지금 현재 한국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의견의 통일, 진지한 토론이 전무한 상황입니다. 토론을 하는데 전제는 항상 팩트가 뭐냐는 것이고, 그리고 어떤 관점, 가치관에서 보는가 입니다. 다양한 가치관에서 계속 논의하고 분별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게 필요합니다. 이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별과 판단을 대신해주는 게 언론의 역할인데, 언론도 각각의 관점을 갖고 있고 그 목소리가 너무 높아 대개 각각의 언론에 쏠림 현상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사실이 뭔지를 끄집어내고 분별, 판단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그룹도 필요하고, 확산될 수 있는 매체, 여론을 형성해나가는 사람들이 필요한데 지금은 다 어려운 상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주제를 가지고 토론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현실화 되지 않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익명성 문제도 있고, 인터넷 언론만 보아도 그곳이 그리스도인들의 공간인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서로에 대한 일말의 존경도 없이 내용도 말꼬리 잡기 일색입니다. 이게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화인 것 같습니다.

신동식 : 소유하신 책이 1만권에 이를 정도로 독서의 양과 깊이가 상당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평소 독서습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성경은 어떻게 읽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강영안 : 책은 집과 연구실 다 합치면 1만 3천권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미국 가서도 800권 사왔습니다. 평소 신나게 책을 보고 있지만 막상 강의가 시작되면 책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책 볼 때 상당히 집중하는 편입니다. 연구와 관계없이 최근에 읽은 책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으로 산지는 오래되었는데 통독을 못하다가 지난주 지하철 타고 다니면서 읽었습니다. 오늘 읽은 책은 예일대 미로슬라프 볼프 교수 <배제와 포옹 exclusion and embrace>입니다. IVP에서 번역되어 나올 예정입니다. 이런 책들은 한가하게 읽은 것들입니다. 지하철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제일 한가한 곳입니다. 신학 서적들이 제일 읽기 쉽고, 제일 어려운 책은 철학책으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서는 한 두 페이지도 읽기가 어렵습니다. 원래 소설책을 참 좋아하는데 요즘은 소설책 읽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성경은 프란시스 쉐퍼 목사님처럼 최소 1년에 두 번, 6개월에 한 번씩 맥체인 표를 가지고 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맥체인 표를 가지고 읽는 것 보다는 거의 매주 한 권을 정해서 쭉 읽어 내려가는 방식으로 읽고 있다. 학교에서 읽는 책은 볼프 책으로 주로 서서 읽습니다(연구실에 서서 읽는 독서대가 있다). 한 달에 두 번은 설교해야 되니까 성경은 복음서 위주로 많이 읽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을 텍스트로 6번 설교했는데, 설교하고 나니 벌써 원고지로 75매가 되었습니다. 올 연말까지 설교가 다 끝나면 엄청난 분량이 될 겁니다.


강영안 교수가 서서 읽는 독서대가 교수실 한켠에 자리하고 있다 ⓒ더보이스 이은창 


신동식 : 교수님은 성경관은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강영안 : 나는 축자영감설을 믿지 않습니다. 내가 그렇게 이야기했더니 신국원 교수는 그때는 일단 축자영감설을 믿는다고 말하고 시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웃음) 나는 축자영감설을 믿는 것은 성령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받아들이는 건 유기적 영감설입니다. 성경말씀이 하나님 말씀으로 역사하는 것은 역시 성령 하나님의 역입니다. 우리가 주어진 글자를 읽는다 하더라도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하나님 말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말씀과 성령을 잊어버리고 둘 중 하나만 내세우는 건 잘못되었습니다. 성령은 항상 말씀과 함께하고, 말씀은 항상 성령과 함께 합니다.

칸트나 하이데거, 레비나스 같은 철학이 사람들에게 지적인 깨달음을 주지만 그것이 근본적으로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나는 철학자가 사람을 바꾸는 걸 본적이 없을뿐더러 믿지도 않습니다. 사람을 바꾸는 건 하나님 말씀입니다. 간혹 목사님들도 성경을 읽어놓고 엉뚱한 소리 할 때가 있는데, 성경의 능력에 의존하기 보다는 자기의 지혜를 믿고 그걸로 어떻게 어필해보려고 합니다. 어떤 목사님 인터뷰를 보니 옛날 목사들은 성도들을 울음바다로 만드는데 요즘 목사들은 성도들을 웃음바다로 만든다고 합니다. 재밌는 지적입니다. 요즘은 웃기고 재밌어야 은혜 받았다고 하지, 죄를 고백하고 통회하게 만들었다가는 나무라는 것으로 듣습니다.

신동식 : 학문의 길을 걸으려는 청년대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소양은 무엇인가요? 신앙과 지성을 통합하려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결국 하나를 버리고 하나만 취하는 편의주의로 흐르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교수님은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이겨냈는지요?

강영안 : 두 가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첫째로, 자기가 하는 전공은 철저히 해야 합니다. 그게 요리든, 인문학이든, 철학이든, 정치학이든 뭐든 간에 할 수 있을 만큼 탁월하게 되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공부 철저히 해야 합니다. 둘째는, 신앙이 확고한 사람들과 긴가민가한 사람들도 있을 텐데, 나는 신앙을 통해 학자로 생활하는데, 신앙이 학업에 불리했다기보다는 신앙생활 하는 것이 학업에 훨씬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어떤 공부 주제를 정할 때 신앙이 심리적 안정을 주었다든가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방향, 주제까지 신앙이 유익했습니다. 학자로써 뿐 아니라 어떤 전문적 직업을 가지던지 간에 필요로 하는 게 긴장과 집중인데 신앙은 방향을 제시해줍니다. 전문 직종에서 주어진 전문 분야의 일을 할 때 신앙은 방향타가 됩니다. 혹시 신앙 때문에 망설인다면 분명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은 단순히 감정적이거나 교제, 찬양, 어울림에 머물지 말고 청년 때일수록 훨씬 더 많이 생각해서 지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꼭 읽어야 할 책을 가능한 한 많이 읽어서 무엇을, 왜, 누구를, 내가 믿는지, 어떻게 해야 제대로 믿는지를 분명히 알고 신앙생활을 해야 신앙이 크게 흔들리지 않고 방향타가 될 수 있습니다. ‘제발 공부 좀 합시다’라는 당부를 하고 싶습니다. 공부(Study)가 중국어로 ‘애쓴다’라는 뜻으로 라틴어로도 같은 뜻을 갖고 있습니다. 동서양이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공부의 의미처럼 애쓰지 않고서는 어떤 일도 이룰 수 없습니다. 업적주의와는 좀 구별해야 합니다. 그 애씀은 결국 그걸 통해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삶의 목표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공부 할 것이 잔뜩 쌓였는데 속도는 예전보다 느려진 것 같습니다. 읽고 나면 쉽게 잊어버리는 게 힘듭니다.

신동식 : 역사적, 신학적 개혁파 신앙이 한국교회에 유효하다고 보는지요? 또 한국교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일에 개혁파 신앙이 대안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 이유는 복음주의 안에서 성경의 절대 권위가 무너지고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교수님의 앞으로의 계획도 듣고 싶습니다.

강영안 : 개혁파라는 말을 즐겨 쓰고 개혁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현재 많은 것 같습니다. 개혁파, 개혁주의의 정의는 약간 다릅니다. 누가 말하길 한 개혁파 운동하는 곳에 갔더니 목사가 설교를 위해 단상에 오르기 전에 장로와 악수하고, 설교 후 장로들과 토론하였다고 하더군요. 내가 개혁주의 전통에서 배우고 읽고 한 바에 의하면, 가장 중요한 건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인간의 전적 타락.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그게 삶의 모든 일상을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게 성도의 삶입니다. 거룩하게 하는 것은 어느 한 치도 하나님이 내 것이라 하지 않은 부분이 없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먹든지 자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주되게 하는 삶이 우리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핵심입니다.

철학적 작업 가운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일상에 대한 기독 철학적인 논의를 계속 해나가는 것입니다. 좀 더 학문적 활동이라면 20세기 후반 유럽대륙의 종교철학 전통. 초반에는 기독교에 대한 반기독교적인 흐름이었다가 후반에 오면서 친기독교적인 성향을 가진 철학자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유대교인지만 레비나스. 카톨릭 쪽에는 마리옹, 그레티앙,개신교 쪽에는 볼리크, 미셀 앙리가 아주 중요한 유럽의 철학자들이었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한 작업하고 미국 쪽에 윌리암 올스톤, 월터 스토프. 플라팅카 같은 개혁주의 인식론철학자들의 작업을 어떤 방식으로 통합할 것인가에 대해 연구를 해 보고 싶습니다. 실현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떤 때는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작업 해놓은 걸 연구하기보다 내가 새롭게 작업 하는 게 낫지 않나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곧 지금 해야 되는 게 있다. <어떻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인가>라는 책 제목은 사실 지금 나와야 될 책 제목인데 먼저 사용되었습니다. 곧 나올 책의 제목은 ‘그리스도인, 어떻게 생각 할 것인가’, ‘그리스도인,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스도인, 무슨 소망을 가질 것인가’,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입니다. IVP하고 약속이 되어 있는데 아직 원고를 못 넘기고 있습니다. 사도신경 두 번째 책 쓰는 것도 있고, 주기도문에 관한 책 요청도 받았습니다. 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문 모두 쓰게 되었는데, 조금 더 한다면 칼빈의 기독교 강요도 할 거 같습니다.(웃음)

신동식 : 귀한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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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민



매년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입니다.(장애인의 날이란?) 장애인의 날을 맞아, 기윤실 정직윤리운동본부장이신 신동식 목사(빛과소금교회)의 글을 나눕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신동식 목사(빛과소금교회, 기윤실 정직윤리운동본부장)


사람이 동식물과 다른 분명한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것 만으로도 사람은 존중받기에 합당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인격을 부여받은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사람을 사람 되게 합니다. 사람은 단지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DNA로 구성된 화학적 부산물은 더더욱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존엄한 존재입니다. 이것이 사람됨의 가장 중요한 근본입니다.


우리시대의 아픔은 사람의 존엄성이 사라졌음에 있습니다. 사람을 인격적인 존재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비인격적인 존재로 생각합니다. 마치 백화점에 진열되어 있는 물품처럼 사람을 대우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추악한 일입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추악함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한 추악한 무리에 함께 동조하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성적순으로 줄을 세웁니다. 사회는 학교 순으로 줄을 세웁니다. 그리고 이제 얼굴 순으로 줄을 세우기도 합니다. 어디에도 인격적인 대우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장애인에 대한 인식 역시 빈약한 것이 사실입니다. 모든 것을 돈과 도구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장애인은 관심 밖의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패망으로 치닫는 사회를 만드는 일입니다. 장애인들이 인격적인 존재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는 비정상적인 사회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비장애인들은 잠재적 장애인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황금률이라 불리는 마7장12절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남에게 인격적인 존재로 대접받고자 한다면 누구를 막론하곤 인격적으로 대접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서구사회에서 보여주고 있는 장애인들에 대한 태도를 보면 부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장애인이 한명만 생겨도 지역 공동체 자체가 장애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실천적 변화를 만듭니다. 또한 장애인들이 사회생활 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최선의 배려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장애인들을 위한 우리의 사랑과 섬김은 사실 우리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과 같습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우리는 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엄한 존재입니다. 차별받고 무시 받는 것은 인격이 없이 본능만으로 살아가는 정글에서나 있을 법한 일입니다.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창조된 존엄한 존재임을 인식하는데서 시작됩니다. 존엄한 태도 없는 구조의 변화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태도의 변화와 함께하는 구조의 변혁만이 참된 공동체를 만들어 갑니다. 장애인이 웃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들의 부모들을 위한 사랑과 배려 그리고 오래 참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이는 반쪽만의 사랑이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장애인들 스스로도 용기와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시각 장애인이었던 고 강영우박사는 우리가 오르지 못한 산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시각과 청각 장애인이었던 헬렌켈러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이 불쌍한 것이 아니라 보고 들으면서도 비전이 없는 사람이 불쌍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장애는 비전을 포기하게 만드는 거치는 돌이 아닙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소명이 있습니다. 팔다리가 없는 닉부이치치는 자신이 이렇게 태어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실제로는 그는 전 세계의 복음과 희망을 전해주는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하고 있습니다. 비장애인이 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면서 우리 모두는 정직하게 우리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엄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존엄한 존재로 인식하고 함께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회가 인격적인 사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모두가 함께 손을 잡고 기뻐하는 공동체입니다. 섬김과 사랑과 배려와 나눔이 있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모두가 하나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식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는 진정한 하나가 되고 변화를 가져옵니다. 우리 모두 다 하나님의 형상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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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민
목회자윤리 연속 심포지엄 <목회자와 돈 심포지엄>


지난 월요일(10/10), 온누리교회에서 기독교윤리연구소가 주관하는 <목회자윤리>연속심포지엄의 첫번째 "목회자와 돈" 심포지엄을 잘 마쳤습니다.

최근 금권선거와 교회재정의 임의적 운용 등으로 목회자의 경제윤리가 교계 안팎으로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기독교윤리연구소의 이번 심포지엄은 '맘몬의 우상에 취둘리고 있는 한국교회를' 돌아보고, 문제의 본질에 대한 심도있는 진단과 현실적인 방안들에 대한 논의가 오고 갔습니다. 

 



많은 청중들, 특히 현재 목회를 하고 계신 분들과 예비 목회자들이 참석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박정윤교수(영남대,경영학),황호찬교수(세종대, 경영대학원),신동식목사(빛과소금교회,기윤실정직윤리운동본부장)님들의 발제와 최원준편집장(목회와신학)의 사회로 진행된 패널토의시간은 많은 청중들이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4시간동안 이어진 이번 심포지엄에 자리해주시고 또 여러가지 방법으로 관심을 표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어지는 <목회자윤리>연속심포지엄의 두번째, 세번째 주제에도 지속적인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목회자윤리 연속 심포지엄 ① <목회자와 돈 심포지엄> 자료집 보기(클릭)
[기조발제] 심포지엄, 목회자와 돈을 시작하면서...: 이상원 교수(클릭)
[주제발제1] 교회와 투자 : 박정윤 교수(클릭)
[주제발제2] 하나님의 돈 - 교회재정 사용의 원칙과 방향 : 황호찬 교수(클릭)
[주제발제3] 교회 직분과 돈의 관계 : 신동식 목사(클릭)


>>> 목회자윤리 연속 심포지엄 ② <목회자와 성 심포지엄> 자료집 및 영상 보기(클릭)

[기조발제] 목회자의 성, 불편한 그러나 철저히 연구되어져야 할 주제 : 신원하 교수(클릭)
[주제발제1] 한국교회의 성도덕에 대한 비판적 고찰 : 김혜령 박사(클릭)
[주제발제2] 목회자의 성적 위기와 극복자원 : 하재성 교수(클릭)
[주제발제3] 목회자의 성스캔들 그 이후, 어떻게 할 것인가? : 고직한 상임대표(클릭)

>>> 목회자윤리 연속 심포지엄 <목회자와 교회정치 심포지엄> 자료집 및 영상 보기(클릭)
[기조발제] 한국교회의 위기와 교회정치-장로교회를 중심으로 : 임성빈 교수(클릭)
[주제발제1] 한국교회의 정치, 무엇이 문제인가 : 지형은 목사(클릭)
[주제발제2] 교회 내 분쟁의 사회법 절차에 따른 해결에 대한 검토 : 이상민 변호사(클릭)
[주제발제3] 한국교회 정치회복을 위한 원리와 제도 : 배종석 교수(클릭)



글 _ 박진영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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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출처 : 프레시안
도곡동과 포이동의 얼굴

신동식 _ 기윤실 정직윤리운동 본부장, 빛과소금교회 담임목사

“강남이냐 강북이냐” 서울에서 사람을 평가할 때 종종 듣는 말입니다. 서울의 차별은 이미 도를 넘어선 사항이 되었습니다. 강북과 강남의 차별은 학교교육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교육의 현장에서 그 차별은 도를 넘고 있습니다. 강남은 자신들만의 세계를 살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보여주었던 표 집중 현상은 이 사실을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강남공화국이라는 말이 더 피부로 다가오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차별은 국가적으로 볼 때 결코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강남은 가진 자들이 지금까지 누렸던 것을 대를 이어 누리고자 하는 욕망이 가득 차 있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부를 누리고 사는 것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코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욕망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무시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강남 가운데 도곡동은 현대사회의 극단을 잘 보여주는 곳입니다. 한국 사회의 상류층이 모여 살고 있는 타워팰리스라는 상징적인 공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뒷편에 포이동에는 도시 정화라는 미명아래 강제 이주당한 가난한 이웃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강남의 사람들이라고 불릴 수 없는 강남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작게나마 자신의 터전에서 삶을 일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끼리의 정을 나누며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도곡동과 포이동의 두 얼굴입니다. 둘 다 같은 민족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물질적인 차이입니다. 권력의 유무입니다. 하나는 너무 많이 가지고 있고, 한쪽은 너무 없습니다. 그래서 같은 하늘 아래 살고,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조상을 가지고 있지만 전혀 다른 대접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차별성이 이번 포이동 화재로 극명하게 들어났습니다. 화재가 나자 시와 강남구청은 좋은 기회로 여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유지에 사는 이들을 또 흩어버릴 것을 궁리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살던 터전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비 호감 지역을 없애고자 하는 생각만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잔인한 일입니다. 삶의 터전을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애적 관점에서 일을 처리하여야 합니다. 화재로 휩쓸려진 지역에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 준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겠습니까? 포이동 주민들도 동일한 시민입니다. 좀 더 신중하고 진실된 대책이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고 돕는 아름다운 손길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잠14:31) 우리가 주를 존경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선행을 기뻐하십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잠19:17)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주는 자입니다.(잠29:7)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받았다면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주는 미덕이 있어야 합니다.
 
강남에 사는 그리스도인을 비롯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을 알아주는 의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어렵고 힘든 우리의 이웃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포이동 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지역과 열방 가운데 어렵고 힘든 이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일들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외국의 가난한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만큼 이 땅의 굶주린 아이들과 이웃을 돌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선한 눈을 가진 그리스도인입니다.(잠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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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lub.cyworld.com/ClubV1/Home.cy/51287383

● 모금 : (국민)767401-01-276083(조철순 포이동주거복구후원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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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재 치우기 및 복구 작업 시 준비물: 작업화 혹은 등산화, 긴바지와 긴팔, 장갑, 비옷 등을 준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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