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윤실'에 해당되는 글 834건

  1. 2017.08.28 [부채해방운동] 가장 고통 받는 이웃을 돕는 부채해방운동
  2. 2017.08.28 [부채해방운동] 가계부채 1300조원, 벼랑끝 사회
  3. 2017.06.08 새로운 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② - 백소영 교수(이화여대, 기독교사회윤리학)
  4. 2017.06.08 새로운 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② - 전상진 교수(서강대 사회학과)
  5. 2017.06.08 새로운 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①- 양희송 대표(청어람ARMC)
  6. 2017.06.08 새로운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① - 손봉호 자문위원장
  7. 2017.04.24 [2017_찾아가는기윤실①] 청량교회에 다녀왔습니다.
  8. 2016.12.06 기윤실 열매소식지 11-12월호가 발행되었습니다.
  9. 2016.12.06 기윤실 회원 생활백서 총정리
  10. 2016.12.06 [교회신뢰운동]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어디까지 왔나? (1)
  11. 2016.12.06 [특집] 백남기 농문물대포 사망/ 세월호 특조위 강제종료
  12. 2016.12.06 [특집]경주지진과 핵발전소 위험/북핵문제와 사드배치
  13. 2016.12.06 [특집]목회자들의 성범죄 조성돈 본부장(교회신뢰운동본부)
  14. 2016.11.15 [후원요청] 한국교회 신뢰 회복을 위한 기초 조사, 회원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15. 2016.11.14 제3회 기독교윤리실천학교 "인공지능 시대의 기독교윤리" 참가후기2 오영우 참가자
  16. 2016.11.04 제3회 기독교윤리실천학교 "인공지능 시대의 기독교윤리" 참가후기1 문한나 참가자
  17. 2016.11.03 [회원투고] 사법개혁을 염원하는 한 시민의 제언 (정세열 회원)
  18. 2016.10.31 [간사채용공고] 기윤실에서 활동간사를 모집합니다. (~11/10)
  19. 2016.10.28 [기독교윤리연구소] 목회자윤리세미나 후기
  20. 2016.10.17 기윤실 열매소식지 9-10월호가 발행되었습니다.

가장 고통 받는 이웃을 돕는 부채해방운동

 

기윤실은 지난 3년 동안 “양극화를 넘어 더불어 함께”를 주제로 운동을 펼쳐왔습니다. 창립 30주년과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 이니만큼, 한국교회와 사회의 변화를 꾀하는 기독시민운동으로서의 역할과 의미를 다지기 위해서지요. 무엇보다 1987년 창립당시 시대의 절박한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책임 있는 응답으로서 탄생한 기윤실은 지금 이 시대의 아픔을 관통하는 이슈를 선정하고, 이로 인해 고통 받는 이웃들을 돕고자 했습니다.

 

87년의 시대적 열망이 민주화였다면, 지금 이 시대의 가장 절박한 이슈는 ‘양극화’입니다. 주거, 교육, 보건, 식량, 일자리, 소득 등 모든 영역에서 양극화 현상은 그 정도만 달리했을 뿐 어디서나 발견됩니다. 특히, 지난 몇 년사이 ‘N포세대’ ‘수저계급론’ 등 시대의 절망적 상황을 여실히 드러내는 용어들이 등장하면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사회문제로서 양극화가 재부각되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기윤실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양극화’를 주제로 다양한 포럼을 열어, 성서와 사회, 정치와 경제, 교육과 노동, 그리고 주거에 이르기까지 양극화이슈를 다양하게 살펴보면서 첫째, 한국 사회에서의 양극화의 현상과 원인을 살펴보았고 둘째,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관심과 실천으로 변화될 한국사회의 모습을 그리면서 기윤실의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 부채해방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사회는 ‘빚 권하는 사회’, ‘빚으로 지탱되는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4년제 대학과정이 5년 6년으로 늘어나는 것은 기본이고, 2~3가지 아르바이트로는 턱없이 부족하여 학자금에 생활비까지 대출을 받아야 합니다. 졸업하면 유례없는 취업난을 간신이 뚫고, 취직한다 하더라도 안정적인 주거환경 마련을 위해서는 또다시 대출을 받아야 합니다. 학자금, 전월세자금, 자녀학자금, 은퇴자금 등 생애주기별로 연결되는 빚의 고리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 현실입니다. 빚으로 지탱되는 어두운 일상은 소중한 이웃들을 극단적 선택으로까지 내몰고 갑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기윤실은 빚으로 삶이 무너진 이웃들을 돕기 위해 부채해방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첫째, 경제금융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구성 • 운영해서 구체적인 실천방안들을 모색합니다. 둘째, 기윤실 학교를 열어 부채1300조원 시대의 기독교윤리를 탐색합니다. 셋째,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돌아보아야 할 이웃, 부채문제로 고통받는 이웃을 위한 실천 방안들을 소책자로 구성하여 널리 알립니다. 넷째, 부실채권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단기적, 장기적 방안들을 실천합니다.

 

 

벌써 이 소식을 듣고, 향상교회를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관심과 참여를 보내주고 계십니다. 앞으로의 부채해방운동을 기대해주세요.

 

글 _ 박진영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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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1300조원, 벼랑끝 사회

 

지난해 연말 가계부채가 1300조원을 넘어섰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1300조원 이라는 엄청난 금액의 정서적 거리감 때문인지, ‘빚도 능력’이라는 말이 돌아서인지 알 수 없으나 내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학자금을 시작으로 주거비 마련 등을 위해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데에는 1300조원의 가계부채가 무감각해질 정도로 일상화 되어있음에 다시한번 놀랐다. 자세히 들여다보자.

 

 

출처 : 이투데이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416081

 

ㅌ 

통계청 〈2016년 가계금융 ․ 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6년 3월말 현재 가구당 보유자산은 3억 6,187만원으로 전년에 비해 4.3% 증가했고, 부채는 6,655만원으로 전년에 비해 6.4% 증가했다. 가구당 보유자산 대비 가계당 부채금액의 비율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부채의 구성을 살펴보면, 금융부채 70.4%(4,686만원)으로 전년에 비해 7.5% 증가했고, 임대보증금 29.6%(1,968만원)로 전년대비 3.8% 증가했다. 금융부채에서 담보대출은 3,847만원으로 57.8%를 차지했다.

 

출처 :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photos/1991000000.html?cid=GYH20161220000800044&input=1363m

 

 

특히, 가구주 특성별로 보면, 연령대는 ‘50대’, 종사상 지위는 ‘자영업자’가구의 부채가 가장 많았는데, 자가보유시기, 자녀의 혼인, 정년퇴직 이후의 삶 등 삶의 변곡점이 많은 시기의 부채가 많다는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일보(2017년 5월 19일 "100만명 빚 완전탕감 공약, 기대 우려 교차“ 김동욱 기자)에 따르면 이명박 후보 당시 신용7등급 이하 720만명에게 신용대사면 즉 빚 탕감 및 연체기록을 삭제해주는 공약을 내세웠으나, 신용회복기금 조성 등으로 실제 수혜를 받은 사람은 49만명이었다. 또한 박근혜 정부는 국민행복기금을 조성하여 320만 채무불이행자들의 빚을 탕감해주겠노라 약속했지만,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수혜받은 이들은 약 58만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올해 국민의 기대를 안고 새롭게 들어선 문재인 정부 역시 가계부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여신관리지표로 활용함으로써 부채규모 관리하겠다고 했으나, 실효성 있는 정책이 나오기까지는 아직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빚도 능력’이라면 분명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삶을 지속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이 ‘빚’말고는 답이 없다면 이것이야말로 핵탄두보다 무서운 ‘벼랑끝’의 삶일 것이다. 빚 때문에 가족관계가 끊어지고, 과노동에 쳇바퀴를 계속 돌아야 한다면, 급기야 빚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끊어야만 한다면 우리사회는 ‘윤리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글 _박진영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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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②


※ 이 글은 5월 8일, 평화다방에서 진행된 토론회 원고를 편집한 것입니다.


발제 2.

소수자와의 갈등을 넘어서기 위한


교회와 기독시민의 역할

백소영 교수(이화여대, 기독교사회윤리학)




1. 촛불과 탄핵, 그리고 선거 과정에서 표출된 갈등,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보기

우리 집도 예외 없었다. 인품 좋은 분들이고 사는 동안 크게 언성을 높여 싸울 일이 없었던 친정 부모님과도, 시댁 부모님과도, 여지없이 한판 붙었다. 계기는 촛불집회에 아들아이를 데리고 갔다가 찍은 인증샷 때문. 이후 시어머님은 태극기 집회를 빠짐없이 참석하시며 인증샷을 가족 단톡방에 올리셨다. 이 일을 계기로 양쪽 어르신들의 연대가 급격하게 두터워졌다. 남과 북으로 나뉜 이 슬픈 나라에서 이젠 가족 간에도 양분되는 가슴 아픈 갈등을 보며 “세대 차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발제는 전상진 교수님께서 진행해주실 터라, 나는 같은 현상을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풀어보려 한다.

‘여성주의’는 현 체제 밖의 시선이고 사유이고 언어이다. 모든 ‘여성’이 ‘여성주의적 관점’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 해도 가부장제를 관통하면서 남성 지도자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과 제도를 그대로 수용하고 순응했다면, 아니 오히려 적극 가담해서 한 자리 차지했다면 그녀들은 ‘여성주의자’가 아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되 은유로는 ‘남성’이다. 때문에 ‘여성주의적’이라는 말은 생물학적 ‘여성’이나 구성적 특성으로서의 ‘여성성’과 반드시 일치하는 단어는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시스템 안에 아직 도래하지 않은 어떤 것, 새로움을 가져올 수 있는 ‘시스템 바깥’의 의미이다. 도전적이고 진취적이고 경쟁해서 승리하는 ‘남성’이 지도자의 자질을 갖는 ‘약육강식’의 동물적(실은 동물이 더 낫다. 배고프지 않은데도 잡아먹는 건 인간사회뿐) 시스템이 21세기 신자유주의적 고용유연성의 관료제적 자본주의와 만나니 체제 밖으로 배제된 것은 비단 여성만이 아니게 되었다. 현재 ‘남근중심적’(공격적, 경쟁적, 이성적, 효율적, 기능적, 개별적 혹은 조직이기주의적) 사회구조는 사다리의 제일 꼭대기에 자리를 차지한 소수가 권위를 독점하고 자기들 아래 있는 사람들의 삶의 방향과 종류와 속도, 그리고 죽음까지도 좌지우지하고 있다. 오천 년 가부장 역사 가운데 가장 대규모로 가장 지속적으로 시스템 안에 있으나 그 시스템을 만드는 데 참여한 바 없고 그 시스템 안에서의 자기 위치 역시 스스로 결정한 바 없었던 여성들이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는 ‘주의’를 “여성주의”라고 부른다면, 시스템 바깥에 배제된 남성들도, 그리고 다른 소수자들도 포함할 수 있는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이름을 달리 부를 수도 있다. ‘보편주의’ ‘평등주의’ ‘無/脫 계급주의’・・・ 그러나 이제껏 공적 테이블의 합의와 결정방식에 자신들의 의미가 반영된 바 없었던 ‘소수자들’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대변하기에 “여성”만큼 적절한 이름이 또 어디 있을까.

 


2.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공동체의 답

추운 겨울부터 봄까지 광장으로 뛰어나온 사람들은 마주보기를 원했다. 계급장 떼고, 성별 떼고, 나이 구분 떼고, 모두가 한 시민으로서 자신의 의미를 전하는 일을 축제처럼 즐겼다. 어이없는 일은 이를 위협으로 여긴 사람들이 비단 위계적 리더십을 독점한 상층부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권력도 부도 가지지 않은 ‘어르신들’은 촛불 정국을 낯설어 했고, 나아가 불안해했다. 소위 6.25세대라는 그들의 공동기억도 한몫 했을 일이고, 산업화 세대라는 그들의 ‘업적’이 부정당하는 느낌에 대한 분노였을 수도 있다. ‘우리’가 (살기 좋게) 만들어놓은 이 시스템을 부정하고 뒤흔들다니! ‘어르신들’의 분노는 그들이 성취했고 정당하다고 믿는 위계가 전복된 것(혹은 될 것)에 대한 불안감이다. 어른과 아이, 남자와 여자, 통치자와 시민(거의 ‘신민’), 고용자와 노동자 사이를 ‘위계’로 보는 시선을 가진 사람들은 거의 빠짐없이 ‘태극기’쪽에 섰다. 어디 ‘감히’ 시민들이 대통령을 끌어내리나. 이들은 이미 ‘정답’을 가진 집단이다. 도대체 탄핵 정국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동성애 이슈가 불거졌을 때에도 이들은 목소리를 합하여 이성애를 정답으로 외쳤다. 사람들의 관계 방식에 위계가 존재한다고 믿고, 정답을 가진 쪽이 ‘자신들’이라고 믿는 사람들. 그래서 ‘다름’이 드러나거나 답이 달라질 수 있는 열린 토론이 불편하고 불안한 이들이 인정하지 않는 공간은 다름 아닌 ‘사이’ 공간이다. 너와 내가 ‘n분의 1’의 권위를 가지고 마주본 채, 서로의 ‘다름’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공간, 그래서 서로 의미 있게 마주본 둘이라면 결국엔 중간지점이든 전혀 다른 답이든 함께 할 수 있는 답을 찾아갈 수 있는 관계적 혁명의 공간. 그 ‘사이’를 가져본 적 없는 이들은 답을 주장할 권리가 없다고 응시했던 이들의 의미 표출에 분노하게 된 것이다.

물론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을 따른다. 우리는 내일 있을 투표 결과에 승복하며 내가 뽑은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다수’의 의사결정을 존중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개인의 의사 결정이 있기까지 우리 사회구성원의 목소리들을 가능하면 ‘모두’ 마주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내 답과 다르다면 갈등하는 과정도 ‘악’이 아니다. ‘소수자’ ‘약자’라는 말은 반드시 수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심지어 그 수가 많더라도 공적 결정과 시스템을 만드는 데에 그들의 의미가 들려진 적도 반영된 적도 없었다면, 그들은 ‘소수자’요 ‘약자’다. 그동안 순종적이고 말 잘 듣던 딸이요 며느리가 두 눈 똑바로 뜨고 언성을 높인 일이 공동체의 파괴요 인륜을 저버린 행동이라 여기는 한, 우리는 결코 ‘구성원이 모두 행복한 공동체적 살기 방식’을 향해 근접해 가기 어려울 것이다.


 

3. 잃은 양 한 마리까지도 품는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기

안타까운 현실은, 가장 작은 자의 의미까지도 살뜰하게 품어야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가르치는 기독교인들이 이 엄청난 갈등의 주요 진원지라는 사실이다. 지인이 태극기 집회의 사진을 찍어 보내며 왜 저기에 미국 국기와 심지어 이스라엘 국기까지 있느냐는 질문에 그걸 설명하느라 애썼던 기억이 있다. 역사적 우연성으로 결합되었으나 비본질적인 ‘패키지’는 해체되어야 한다. 예수를 믿는다면서, 잃은 양 한 마리까지 기어이 찾아와 공동체에 포함시키는 그 사랑은 어찌 닮으려하지 않는지. 어린 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들어갈 수 없다는 하나님 나라는 믿으면서 우리 사회의 가장 작고 힘없는 사람들의 의미에는 왜 귀 기울이지 않는지. 예수는 가부장제와 제국이 만들어 놓은 권위의 위계가 정점에 달해있던 시절에, 모두가 형제자매로서 서로 마주보는 공동체인 ‘하나님 나라’를 전하시고 사신 분이다. 그 관계적 혁명을 이룬 공동체가 ‘교회’인데, 어쩌자고 오늘날의 교회는 또 다시 가부장제와 제국의 위계를 닮아가나. 아니, 오히려 더 앞장을 서나. “네 말이 옳도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당시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던 작고 작은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옳다하시고 그들의 삶의 해석을 받아들이신 예수를 ‘주’로 믿는다면, 소수자·약자와의 갈등을 넘어서기 위한 기독 시민의 첫 역할은 자명하다. 나와 다른 답을 가진 이들을 초청하고 자리를 내어주고 그들의 의미를 듣는 일! 단 한 번도 방해받지 않고 내 이야기를 끝까지 해보지 못한 사람들(내가 실재요 은유로서의 ‘여성’이라고 말한)에게 마이크를 내어주는 일, 그것부터 시작해야한다. 그 추운 겨울에 손을 호호 불면서도 발랄하게 무대 위로 뛰어올라왔던 어느 이름 모를 초등학생, 아기 엄마, 노점상인, 그들이 의미가 충분히 들려지고 제도와 정책에 반영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것이다. 안정, 성장, 효용성... 이런 이름으로 생명을 버리는 제도와 정책은 ‘반(反)하나님적’이다. 그러니 교회의 이름으로, 신자의 이름으로 싸워야하는 것은 이제껏 교회의 공적 담론이나 교리에 반영된 적 없었던 소수자나 약자의 ‘낯선 의견들’이 아니다. 싸워야할 무리들과 연대를 하고, 듣고 품어야할 이들에게 칼을 빼드는 어리석음은 이제 그쳐야하지 않겠는가.



2017/06/08 - 새로운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① - 손봉호 자문위원장

2017/06/08 - 새로운 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①- 양희송 대표(청어람ARMC)

2017/06/08 - 새로운 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② - 전상진 교수(서강대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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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②


※ 이 글은 5월 8일, 평화다방에서 진행된 토론회 원고를 편집한 것입니다. 


발제 1.

세대갈등 프레임의 쓸모

광장의 대립을 세대 다툼으로 만들어 이익을 챙기는 세력들

전상진 교수 (서강대 사회학과)

 


나는 세대사회학자다. 세대가 관심을 받을 때 내 연구도 주목받는다. ‘물썬 때는 나비잠 자다 물 들어야 조개 잡듯’한다는 속담이 있다. 때를 놓치고 뒤늦게 행동하는 게으른 사람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말이다. 지금은 ‘물썬 때’다. 열심히 일할 때다.

 

광장의 소란은 세대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서로 으르렁대는 촛불과 반촛불로 광장이 가득하다. 촛불은 젊고 반촛불은 노숙하다. 고로 촛불과 반촛불의 대결은 세대들의 싸움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세대전쟁인지 의심스럽다. 물론 외관 상 그것은 젊은이와 어르신의 싸움처럼 보인다. 특히 반촛불 집회를 생각하면 그런 결론에 도달하기 쉽다. 그곳에서 노인들은 정말 사회 전체와 상대한다.

광장 집회는 흐르는 물과 같아서 그 참여 인원의 속성을 적확하게 판별하기 어렵다. 여론조사가 밝혀낸 탄핵에 대한 연령별 의견으로 그 윤곽을 가늠할 수 있다. 여러 조사는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탄핵을 찬성하는 의견은 20~30대에서 매우 높고(90% 이상) 60대 이상에서 상대적으로 낮다(50~60%). 둘째, 모든 연령층에서 인용 의견이 우세하다. 셋째, 찬성 의견이 반대 의견의 대략 5배 정도 된다. 그에 비추자면 세대 대결이라는 주장은 명백한 과장이다. 그렇다고 연령이나 세대에서 비롯한 차이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분명 긴장이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갈등이라 말하기도 민망하다.

 

세대갈등 프레임 말고 다른 틀로 광장을 살피는 방법이 있다. 예컨대 민주주의 대 반민주주의 또는 법치주의와 반법치주의의 대립 프레임이다. 범법을 저지르고 민주주의를 훼손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으려는 촛불과 제대로 ‘엮인’ 대통령을 구조하려는 반촛불의 싸움이 그것이다. 그것은 세대 프레임과는 전혀 다른 동기와 목적과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세대 프레임은 대립하는 세대 성원의 상호인정을 전제한다. 갈등하는 두 세대는 자신의 행동을 이렇게 정당화한다. 연장자 세대의 전횡에 맞서 새로운 미래를 열려는 연소자 세대의 저항 또는 젊은이의 일탈을 바로 잡아 사회를 수호하려는 어르신의 ‘질서 있는 제어.’ 서로 싸우더라도 목표는 동일하다. 세대 공생이다. 젊은이가 늙은이의 억압에 저항하지만 목표는 그들의 제거가 아니라 그들과의 평화로운 삶이다. 반대로 어르신이 나이어린 녀석들의 방종을 다스리지만 목표는 그들의 제거가 아니라 유산을 보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와 달리 민주ㆍ법치 프레임은 엄격하다. 공생보다 판결이 우선이다. 실제 행위가 민주적 원칙에 부합하는지 또는 적법한지를 사실 관계에 근거해서 따진다. 다수의 스모킹 건이 뿜어낸 연기가 포연처럼 자욱해진 지금, 대통령의 혐의는 의혹의 수준을 이미 넘어섰기에 정당성의 측면에서 촛불과 반촛불은 뚜렷하게 갈린다. 증거에 입각한 민주ㆍ법치는 애당초 음모론과 연민과 오롯한 권력의지에 의존하는 반민주ㆍ반법치와 싸움을 벌일 필요조차 없었다.

어떤 프레임으로 광장의 소란을 보는지에 따라 강조점이 다르다. 세대 프레임이 “상대방의 선의를 인정”하는 데 방점을 찍는다면, 민주ㆍ법치 프레임은 원칙과 법의 위반 여부를 중시한다. 그러니까 후자보다 전자에 여지가 많다. 갈등하는 세대들은 서로 싸우더라도 상대방을 인정한다. 상대가 자식이거나 부모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다음의 질문이 긴요하다. 광장의 대립을 왜 세대갈등으로 보려고 하는가? 그렇게 함으로써 누가 어떤 정치적 이익을 챙길까?

 

첫째, 반촛불 정치세력의 이익. 대통령과의 거리(“진박”, “골박”)가 정치적 프로그램인 세력은 대통령의 추락과 함께 힘을 잃었지만, 맞불 시민들이 본격적으로 광장으로 진출하면서 부활하였다. 친박세력은 민주ㆍ법치 프레임을 적극적으로 회피한다. 그것으로는 자신들을 도무지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대갈등 프레임이 안성맞춤이다. 반민주적ㆍ범법 행위는 무대 뒤로 사라지고 세대의 의견(취향) 차이가 앞으로 나선다. 당신 세대의 의견을 존중할 테니 우리 세대의 그것도 그렇게 하라.

그렇게 사실 여부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도록 만든 후에 본격적 주장을 제시한다. 종북세력의 음모를 간파한 ‘우리 현명한 애국 어르신’과 그들에게 조종당해서 나라를 위기에 몰아넣은 '젊은 녀석들‘. 그렇게 판을 짬으로써 친박세력은 노인들의 고통을 정치적으로 착취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왜 진보는 무능하고 보수는 유능하다고 생각하는가』(시대의 창, 2016)에서 장신기는 장ㆍ노년층이 진보를 멀리하고 보수에 애착을 느끼는 까닭을 복합적 소외로 규명했다. 노인 빈곤과 노인 자살률에 있어서 한국은 OECD국가 중에서, 그것도 수년째 압도적 1위다. 급격한 사회변동 과정에서 어르신들의 “총체적인 소외의식”도 크다. 삶도 힘들고 사회적 무시도 참을 수 없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퇴물 취급이나 당하고 살기도 힘들고 참. 젊은 사람들은 우리 같은 늙은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 못할 거야.”

보수세력은 박정희, 육영수, 박근혜라는 아이콘을 통해 그들에게 자긍심을 제공하여 소외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내가 비록 지금은 이렇지만 소싯적에는 무려 “조국 근대화”를 위해 일했지 그런데 대통령이 자신들을 배신했을 수도 있다는 엄청난 사실이 너무 버겁다. 반촛불 세력의 정치적 메시지는 그러한 노인들의 손상된 자긍심을 치유한다. 단지 ‘엮인’ 것뿐이래. 어휴, 그럼 그렇지. 치유의 대가로 소외와 억하심정에서 비롯된 정치적 에너지를 지불한다. 그렇게 딜이 성사되었다. 노인들은 치유 수단을 받고, 정치세력은 그들의 지지를 얻는다. 극단적 구호와 행동이 문제라고? 아니다.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사람들이 맞불 시민을 혐오하고 적대할수록 에너지는 커지고 지지층도 더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둘째, 친촛불 정치세력의 이익. 한국의 진보세력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언제나 젊음과 진보에서 찾기에 노인들의 사정에 별반 관심이 없다. 특히 21세기의 크고 작은 선거에서 자신들의 지지자를 동원하고 결속하기 위해 낡음과 새로움, 늙은이와 젊은이의 대립을 이용했다. 그렇게 노인차별이나 혐오를 유포한다. 멀게는 2007년 대선 후보의 해프닝(“노인 분들은 투표 안 하고 집에서 쉬셔도 된다”), 가깝게는 “선거연령 18세 하향”과 “공직자 연령 제한의 제도화” 주장이 있다, 선거연령과 연령 제한은 모두 충분히 토론되어야 할 사안이다. 다만 그러한 논쟁적 사안들을 거의 같은 때에 주장함으로써 자신들의 주된 지지층이 누구인지를 의식적ㆍ무의식적으로 자백한다. 또한 친촛불 정치세력은 젊은이들의 투표 독려에 주력했다. 자신들의 정치적 프로그램이 특정 연령층만을 조준하지 않는데도 그런다. 어차피 노인은 보수를 지지할 것이라 지레 짐작하고 청년에만 공을 들이는 것이다. 박력은 인정, 그러나 참 아둔하고 무모한 박력이다. 이미 궤도에 안착한 저출산고령화 추세를 고려하면 더 그렇다.

 

광장의 소란을 세대갈등으로 보면 안 된다. 그것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가 세대들의 싸움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문제, 곧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문제임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게다가 노인 혐오와 차별도 키운다. 혐오와 차별은 어르신의 정치적 목소리를 더 강하고 독하게 만들어 그들의 고통을 착취하는 정치세력의 배만 불릴 것이다. 대응역시 더 강해지고 독해질 것이며, 노인 혐오와 차별역시 더 세질 것이다. 그렇게 소외와 혐오와 적대의 악순환이 공고해질 것이다. 사회적 갈등의 해결이 정치의 목표라지만, 현실 정치는 절대 그렇지 않다. 착취할 수 있는 갈등이라면 오히려 독려한다. 그렇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지역 차이를 지역갈등으로 ‘제도화’(“우리가 남이가”)하였다.

 

요즘 가짜 뉴스에 대한 우려가 크지만 ‘가짜 세대전쟁’도 걱정해야 한다. 싸울 일이 아님에도 싸움을 부추겨 잇속을 챙기려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방심하면 가짜 싸움이 진짜 싸움이 된다. 광장의 소란이 진짜 세대전쟁으로 발전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비록 내가 세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으로 먹고사는 세대사회학자일지라도.



* 원고는 아래 제목으로 실린 글이다. 「광장 대결이 세대 갈등 촉발해선 안 돼」, 『월간 헌정』. 2017. 03, pp.48~51. 



2017/06/08 - 새로운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① - 손봉호 자문위원장

2017/06/08 - 새로운 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①- 양희송 대표(청어람AR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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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①


이 글은 4월 20일, 평화다방에서 진행된 토론회 내용의 원고를 편집한 것입니다. 


발제 2.

갈등을 넘어서기 위한 기독시민과 한국교회의 역할

양희송 대표 (청어람ARMC)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 한국교회의 현재 상황과 사회 내에서의 위상과 역할은 어떠한가? 2015년의 종교인구 센서스 결과는 뜻밖에 개신교가 10년 사이에 한국 사회 1위 종교로 성장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규모에 걸 맞는 신뢰성과 책임성을 인정받고 있는가는 의문이다. 그 괴리현상이 많은 개신교인들에게 고민거리이며, 한국 사회 역시 개신교의 공을 박하게 평가하는 이유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있었던 몇 가지 사건을 통해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세월호 참사 (2014.04.16)

이제 3년차를 맞는 이 참사는 한국사회의 총체적 부실과 사태 수습에 있어 무능력함을 드러낸 충격적 사건이었다. 정부나 언론의 문제도 컸지만, 한국교회의 태도 역시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일차적으로 고난주간 수요일에 벌어진 이 사건을 신학적으로나 목회적으로 감당하지 못했다. 안산지역의 교회들 안에서도 목회적으로 충분히 감싸안지 못했고, 교계 지도층들이 종종 던진 발언들도 적절치 못했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에게 다가가는 자세와 공감과 위로의 언어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이용된다는 우려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적어도 교회가 보여주었어야 할 우선적 자세는 목회적 접근이고 공감적 태도였을 텐데, 지금도 교회 내에서 ‘세월호’는 금기어로 되어 있는 곳이 너무 많다. 마치 ‘5.18 광주’를 담아낼 적절한 언어와 태도를 형성하지 못한 지난 시절과 유사하다. 한국교회는 한국사회가 통과하고 있는 여러 사회적 사건들 사이에서 정치적 우려를 앞세우기 전에 어떤 태도를 내보여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닐까?

 


대통령 탄핵 (2017.03.10)

2016년 가을부터 거세게 몰아닥친 국정농단에 대한 시민적 분노는 전대미문의 규모로 촛불시위가 벌어지도록 촉발했다. 국민 여론이 80-95%선까지 탄핵찬성이었으니 시중의 공감대는 충분히 모아졌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수개월간 폭력시비 없이 평화적으로 진행되면서 결국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에 이르렀고, 세계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성숙한 민주주의를 보여주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런데 이에 반대하는 측도 거리시위에 나서기 시작하였는데, 주요한 동원의 축으로 일부 대형교회들이 등장했다. 한국 보수 세력의 주요한 축으로 개신교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입증한 셈이다.

개신교의 정치참여는 해방 이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왔다. 종종 장로대통령을 배출하려는 열망으로 드러나기도 했고, 반공주의의 선봉에 서기도 했다. 한국 현대사의 주요한 고비마다 개신교가 정치적 동원 대상으로 활용된 것이 여러 번이고, 부정선거나 불법선거에 연루되기도 했다. 물론 그 반대편에는 진보적 교회들이 민주화운동 등에 투신하고, 반정부 투쟁에 나선 역사도 병렬적으로 진행된다. 이런 역사는 제대로 검토되거나 숙고되지 않은 채 에피소드처럼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특히나 이번 국정농단의 원인제공자로 꼽힐 최태민은 편법으로 목사 안수를 받고, 개신교계를 기반으로 정치적 동원에 나선 전형적인 인물이다. 한국교회의 반성과 다짐이 없어선 안 될 대목이다. 기독시민과 한국교회가 정치 참여의 차원과 이슈를 정돈하지 못하면 결국 한국교회는 신앙이 아니라 정치적 지향이 최우선으로 적용되는 공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민주주의 사회의 규칙과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 어떻게 만나고, 균형을 이루어야 할지 생각과 태도를 형성하려는 노력이 시급하다.



기독시민 운동과 한국 교회

나는 교회 그 자체가 사회문제나 정치적 사안의 최전방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측면이 많다고 본다. 교회 구성원들의 정치적 소신이 크게 다를 수 있고, 이를 모아내는 작업은 매우 서툴 가능성이 크다. 그보다는 훨씬 원칙의 차원을 다루어주는 것이 좋다고 본다. 대신 구체적인 사안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여론을 모으고, 행동에 나서는 역할은 기독시민운동 영역이 나서주는 것이 전문성의 문제나 지속성의 차원에서 더 나은 방법일 것으로 본다.

문제는 우리에게 충분한 숫자나 규모의 기독시민운동이 존재하는가, 교회와 시민단체 간의 유기적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1980년대 이래로 해외선교에 소문나게 열심을 보였다. 이제는 사회선교를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사회의 각 영역으로 사회선교사를 파송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시민단체를 후원하고, 기도제목을 서로 나누는 네트워크가 조성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떤 사안에 교회가 성급하게 나서면서, 목회자들의 사고와 경험치 안으로 사안이 축소되거나, 내부의 공감도 세심하게 얻어내지 못한 채 목회자들의 독단적 판단에 따라 동원되는 양상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갈등과 이견을 다루는 내부의 경험도 없이 사회 내의 분열을 봉합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만용이다. 길이 멀지만, 차근차근 내부 정비를 해가면서 걷는 것이 필요한 시절이다. 성찰과 혁신을 키워드로 기독시민과 한국교회의 역할을 새롭게 고민해 보기를 요청한다.

 

<참고자료>

강성호, <한국교회 흑역사> (짓다, 2016); 김건우, <대한민국의 설계자> (느티나무책방, 2017).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하나님의 정의> (IVP, 2017),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출 때까지> (IVP, 2007).

미로슬라브 볼프, <광장에 선 기독교(Public Faith)> (IVP, 2014).



2017/06/08 - 새로운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① - 손봉호 자문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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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 

※ 이 글은 4월 20일(목), 평화다방에서 진행된 토론회 발제 원고를 편집한 것입니다. 


 

 

 

발제 1.

한국사회의 갈등현상에 대한 

기독교 윤리적 관점

손봉호 자문위원장 (기윤실, 고신대 석좌교수)






최근 대선 후보들이 사회 통합을 이루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을 보니 사회구성원들이 동감하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가 갈등해소와 통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제시대에 우리나라가 어려웠던 원인 중 하나는 도산 안창호의 말대로, 분열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은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며 힘을 잃고 퍼져버렸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분열의 이유는 첫째, 도덕성 결여로 서로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산 안창호의 분석에 동의한다. 우리가 단결하지 못하는 것은 서로 속이기 때문이다. 믿지 못하면, 힘을 합칠 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도덕성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국제 투명성 기구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청렴도는 세계 176개 국가 중 52위이다.(2016년 발표, 일본은 20위) 도덕적 후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 예를 들면, 탈세율 28% (경제위기 봉착했던 그리스 27%), 보험사기 14% (일본1%), 교통사고 입원율 일본의 8배.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속이며 고통을 주는 것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 서로 믿지 못하는 개인들이 모인 사회에서 어떻게 통합을 말할 수 있을까. 도산은 ‘거짓말은 군부의 원수’라고 했다. 도산이 애달파했던 상황은 2017년 현재도 여전하다. 기윤실이 창립 초기부터 여러 가지 정직 운동을 해왔다. 그러나 3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할 때 무엇이 나아졌다 싶다.

분열의 둘째 이유는, 이념적 갈등이다. 각자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지나쳤다고 본다.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전에는 정론이라는 것이 있어서(예를 들면 뉴욕타임즈), 어떤 현안이나 문제에 대해 합리적 관점과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주었는데, 지금 시대는 SNS가 발달하면서 온갖 괴상한 생각에도 근거를 찾을 수 있고 쉽게 퍼뜨릴 수 있게 되었다. 자기 마음에 드는 의견만 찾아다니고 수용하여 고집불통이 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그저 다르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나쁜 사람이라고 여기기에 갈등은 더욱 심해진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도덕적 불신을 극복해야한다.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고, 공정해야한다. 100%는 아니더라도 정직하고 공정한 삶을 살도록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성경적 정의’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 남을 속이지 않는 것, 그리고 이웃이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지 않는 것임을 기억해야한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가진 이념을 종교와 연결 지어서는 안 된다. 정치적 이념을 종교적 상황까지 끌어올려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 이념은 비과학적이기에 객관적일 수 없다. 이념을 절대화 하는 것은 우상숭배이다. 성경말씀보다 우선하는 것은 무엇이든 우상이다. 한국사 회는 이념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다. 이념을 성경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을 성경으로 정당화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것을 극복해야한다. 유일하게 절대적인 것은 성경이다. 그리고 윤리이다. 보수도, 진보도 상대적이다. 자신의 이념에 사로잡혀 상대방을 적으로 대하는 태도를 고쳐야한다.

이 두 가지만 극복해도 우리 사회 갈등을 해소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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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찾아가는 기윤실 - 후원교회 방문

 

기윤실 후원교회를 방문하여 여러 성도님들과 교제하고 신규 회원분들과도 연결되었던 '찾아가는기윤실'이 올해에도 진행됩니다.  후원과 기도로 동역해주시는 교회/성도님들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첫번째로 찾아간 곳은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청량교회(담임목사 송준인)입니다.

 

 

 

작년 하반기, '찾아가는 기윤실'이라는 이름으로 기윤실 후원교회를 방문하며 뜻밖의 만남, 따뜻한 격려에 마음이 훈훈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다사다난했던 겨울을 보내고, 3개월만에 기윤실 간사들은 후원교회로 향했습니다. ^^

 

올해 첫 방문교회는 기윤실 자치기구 '기독교윤리연구소' 위원이신 송준인목사님께서 담임으로 계시는 '청량교회'입니다. 청량교회는 기윤실 설립 초기부터 후원으로 함께해준 든든한 동역교회입니다.

 

 

 

 

 

교회 섬김이분들의 환영과 도움으로 교회 입구에 홍보부스를 설치했습니다.

 

 

교회에서 어떤 선교/사회기관을 후원하고 있어도 성도님들께서 그 기관이 어떤 기관이며 무슨 일을 하는지, 교회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낯선 사람들이 교회 입구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궁금한 마음에 다가오시는 분들께, 청량교회가 기윤실을 후원하고 있으며 이에 감사인사도 드리고 단체를 더 알리며 개인 후원도 요청드리러 왔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 날 주보에는 저희가 부스홍보활동을 한다는 광고가 실렸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후원하고 있는 기관의 목록에서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예배 중 광고 시간에는 송준인 목사님께서 기윤실과 기윤실의 사역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성도님들께서 조금 더 관심가질수 있도록 목사님께서 이렇게 지원해주시면 큰 힘이 됩니다 ^^

 

 

 

속속들이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기윤실의 사명과 방향에 동의해주시는 분들, 교회가 후원하고 있고 목사님이 참여하고 계시니 믿을만 하겠지(^^) 라고 생각하시며 그 자리에서 후원을 약정해주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감사하게도 5명의 후원회원과 4명의 뉴스레터회원이 연결되었습니다.

 

격려 차 부스를 찾아주신 송준인 목사님과 , 기윤실 창립 당시 함께 하셨다는 회원님과 함께 사진을 남겼습니다 ^^

 

 

 

 

 

 

새로운 회원님들도 만나게 되고, 교회 곳곳에서 기윤실운동, 자발적불편운동의 흔적을 찾을수 있어 마음이 뿌듯했던 청량교회에서의 하루였습니다. ^^

 

 

매달 한 곳 이상 기윤실 동역교회를 만나고 싶습니다. ^^

기윤실 후원교회가 아니더라도, 출석하시는 교회에 기윤실을 소개하고 싶으시다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문의) 02-794-6200, cemk@hanmail.net (김현아 간사)

 

 

 

▣ 2016년 찾아갔던 교회 후기를 보시려면! (아래 클릭)

 

2016/07/05 - [회원운동_찾아가는기윤실①] 서울영동교회에 다녀왔습니다.

2016/08/04 - [회원운동_찾아가는기윤실②] 서울서문교회에 다녀왔습니다.

2016/09/06 - [회원운동_찾아가는기윤실③] 서교동교회에 다녀왔습니다.

2016/11/01 - [회원운동_찾아가는기윤실④] 부천평안교회에 다녀왔습니다.

2016/12/07 - [회원운동_찾아가는기윤실 ⑤] 주님의보배교회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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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실 열매소식지 11-12월호가 발행되었습니다. 


16년 11-12월 소식지 _최종_웹용(161130).pdf



[특집] 

2016/12/06 - [특집]기독교윤리의 관점에서 본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_정병오 본부장

2016/12/06 - [특집]목회자들의 성범죄 조성돈 본부장(교회신뢰운동본부)

2016/12/06 - [특집] 김영란법/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2016/12/06 - [특집]경주지진과 핵발전소 위험/북핵문제와 사드배치

2016/12/06 - [특집] 백남기 농문물대포 사망/ 세월호 특조위 강제종료

2016/12/06 - [특집] 일본군 위원부/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가습기 살균제


[더높은책무성]

2016/12/06 - [교회신뢰운동]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어디까지 왔나?

2016/12/06 - [교회신뢰운동] 종교인의 성범죄, 어떻게 해야 할까?

2016/12/06 - 기윤실 회원 생활백서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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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실 회원님께 드리는 친절한 실천안내서

기윤실 회원 생활백서 총정리

 

2016년 현재 기윤실 운동은 약 600여명의 회원 분들과 50여 교회 및 단체들이 함께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교회 및 단체의 구성원들까지 생각하면, 1,000명이 훌쩍 넘는 동역자들이 있는 셈인데요. 그 많은 동역자님들께 기윤실 회원으로서 할 수 있는 것, 해야하는 것이 무엇인지 감히 안내해드리고자 합니다. 기윤실회원 생활백서! 총정리입니다.

 

1. 열매소식지 정독하기

- 열매소식지를 통해 기윤실의 이슈와 활동보고, 계획 등을 파악하고 관심 갖고 소식지로 주변에 기윤실을 소개해주세요.

2. 기윤실과 적극소통하기

- 개인정보변경 등을 사무처에 알려주고 기윤실 홈페이지, 블로그, 페이스북 등에 방문하고 의견 남겨주세요.

3. 뉴스레터확인하기

- 기윤실 이메일 뉴스레터 꼭 확인하고 주변에도 전달해주세요.

4. 기윤실 알리기

- 주변에 기윤실을 소개하고 회원으로 연결시켜주세요. 또 기윤실 사무실에는 브로셔, 포스터 등 홍보물이 있으니 문의하시면 보내드려요.

5. 기윤실 행사에 참여하고 캠페인 신청하기

- 기윤실 회원이라면 각종 캠페인에 실천해주시고 관심 있는 주제의 행사에도 직접 참여해주세요.

6. 기윤실 핵심 5대 가치에 맞게 살아내기

- 정직/책임/정의/평화/배려 기윤실의 5대 핵심가치를 기억하고 이에 맞게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내주세요.

 

※ 홈페이지:cemk.org / 블로그:trusti.tistory.com / 이메일:cemk@hanmail.net / 전화:02-794-6200 / SNS:facebook.com/giyunsil

 

2016년 열매소식지를 통해서 [기윤실 회원 생활백서]는 4회 연재가 되었습니다. 많이 관심가져 주시고 기윤실 회원으로서 ‘실천’을 고민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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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어디까지 왔나?

 


기윤실은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2008년, 2009년, 2010년에는 매년 조사를 실시했고, 이후부터는 약 3년을 주기로 조사를 하기로 해서 2013년에 조사를 했고 이제 또다시 조사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교계의 여러 언론과 기관에서 기윤실의 조사를 비중 있게 보도하고 인용하며 한국교회의 갱신을 촉구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런 조사를 한다는 것은 매우 유의미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동안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는 한 마디로 낙제 수준입니다. 2008년 18.4%, 2009년 19.1%, 2010년 17.6%, 2013년 19.4% 등 20%미만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런 결과는 향후 한국 교회가 수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고 개교회 중심주의가 강한 우리 교계 특성 상 새로운 신자의 유입보다는 기존의 신자를 영입하려는 경쟁만이 심화되지는 않을지 상당히 우려스러운 상황을 말해고 있습니다.


 

Schoorman, Mayer, Davis에 따르면 신뢰는 상대방에게 기꺼이 나의 취약성을 드러내겠다는 의지(willing to be vulunerable)’이고, 능력(ability), 호의(benevolence), 언행일치(integrity)를 가진 신뢰할만한 대상에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결국 사람들이 한국 교회를 신뢰하기 위해서는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능력이 있어야 하고, 이는 사랑과 봉사를 통해서 드러나야 하며, 교회와 교인들이 깨끗한 양심으로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이제 새로운 조사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이번 조사는 2017년 1월에 실시하여 2월 말 경에 발표하려고 합니다. 종교개혁 500주년 맞는 교계에 유의미한 자료로 활용되리라 기대합니다. 여론조사에는 많은 재정이 들어갑니다. 감사하게도 여러 회원님들과 교회에서 크고 작은 후원을 해주고 계십니다. 이러한 성원에 힘입어 여론조사는 큰 어려움 없이 진행되리라 예측해봅니다.

 

이 조사를 통하여 발견된 한국교회의 구조적인 낮은 신뢰문제가 너무 늦지 않은 시일 안에 한국 교회, 교회 지도자, 교인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신실함을 드러냄으로 개선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글_ 박제민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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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망

 

박제민 팀장

 

1년여 전인 2015년 11월 14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쌀 수매가 인상 공약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했던 백남기 씨는 경찰이 설치한 차벽을 뚫기 위해 버스에 매달린 밧줄을 잡아당기다가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이후 줄곧 의식불명의 상태에 있다가 올해 9월 25일 사망했습니다.

 

이 와중에 경찰이 물대포의 강도나 직사살수 금지 등 사용수칙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 과잉진압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백남기 씨가 사망하자 서울대병원 측에서 백남기 씨의 죽음의 원인을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기재함으로써 논란이 일었고 이를 위해 부검을 하겠다는 경찰과 고인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시민사회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시민들의 저항에 의해 부검연장은 집행되지 않았고 최순실 게이트 정국 속에 경찰이 영장 재신청을 포기함에 따라 광주의 5.18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앗아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국민의 국가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집회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권리입니다. 무조건 막을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항의에 귀를 기울이고 상한 마음과 어려운 상황을 풀어내야 할 것입니다.

 

------------------------------------------------------------------------------------------------------------세월호 특조위 강제종료

 

박제민 팀장

 

세월호 참사 이후 진상 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특별법에 따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만들어졌습니다. 특별법은 특조위의 활동기간을 ‘그 구성을 마친 날부터’ 최대 1년 6개월까지라고 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구성을 마친다는 것은 인력과 예산이 배치되어 실제로 활동할 준비를 다 갖춘 것을 의미합니다. 특조위는 2015년 7월 27일에 조사관을 채용했고, 8월 4일에 국무회의 의결로 예산을 배정받았습니다. 따라서 특조위의 활동기간은 2017년 2월 3일까지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특별법을 무리하게 해석해서 2016년 6월을 끝으로 특조위 활동을 강제로 종료시켰습니다. 최근에는 사무실까지 폐쇄했습니다. 특조위가 세월호에 제주해군기지로 가는 철근이 과적된 것과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이정현 씨가 방송뉴스 편성에 부당하게 개입한 것을 밝혀내는 등 조사 활동에 소기의 성과를 내기 시작했는데 정부의 이런 대응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감추어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기 마련입니다.(누가복음 12:2) 특조위는 서울 서교동 YMCA 건물에 임시로 사무실을 차리고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합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관심과 응원을 거두지 말아주세요.



이 글은 2016년 기윤실 열매소식지 11-12월호 특집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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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6 - [특집] 김영란법/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2016/12/06 - 경주지진과 핵발전소 위험/북핵문제와 사드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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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지진과 핵발전소 위험

 

박제민 팀장

 

2016년 9월 12일(월) 경주에서 규모 5.1, 5.8의 큰 지진이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9월 19일(월)에도 규모 4.5의 지진이 발생하는 등 최근까지 경주에는 총 520여 회의 여진이 계속 일어나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습니다. 한반도가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진 자체도 큰 재난이지만, 더욱 염려가 되는 것이 핵발전소들입니다. 특히 이번 지진이 일어난 경주에는 월성 1~4호기, 신월성 1~2기 등 총 6개의 핵발전소가 밀집해 있고 방사성 폐기물 관리시설까지 있다. 재난에는 비관적인 자세를 가지고 대비를 해야 하는데 정부와 당국은 막연한 낙관만을 이야기 하고 있어서 더욱 불안합니다.

 

기윤실은 9월 21일(수) 성명을 내고 한반도 활성단층에 대한 정밀조사와 가동 중인 핵발전소에 대한 안전점검, 수명이 다한 월성 1호기 폐쇄 및 새로 승인한 신고리 5,6호기 취소 핵발전소에 의존하여 전력 과소비를 부추기는 에너지 정책을, 친환경적인 대체에너지를 활성화하고 전력 소비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살아 있는 말씀인 성경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깨어 있을 것을 주문합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깨어 있어라. (마태복음 25:13)

 

----------------------------------------------------------------------------------------------------------북핵문제와 사드배치

 

박진영 팀장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THAAD). 사드는 단거리 중거리 탄도유도탄을 종말단계에서 직격파괴로 요격하도록 설계되었다(출처 : 위키트리)고 합니다. 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한반도 상황을 담지하고서라도 국방부 및 정부의 갑작스러운 성주 사드배치발표는 온 국민을 놀라게 했습니다. 일단, 사드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또한 꼭 필요한 것인지, 어디에 배치할 것인지, 성주가 적합지인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면밀하게 분석하고 생각해서 결정해야 될 문제인데, 돌연 발표라니요.

 

지난 보수정권의 대북정책으로 저를 비롯한 온 국민들은 이미 안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하는 정부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해야할 의무와 소통의 기능을 포기한 것처럼 여겨져 도리어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더욱이 최근 국가의 중차대한 일들은 개인적 관계에 의해 좌지우지 된 정황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사드배치 역시 여지없이 재논의하는 것이 진정한 국익이고 국격일 것입니다.  



이 글은 2016년 기윤실 열매소식지 11-12월호 특집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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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6년 기윤실윤리이슈 되짚어보기 



목회자들의 성범죄

 

조성돈 본부장(교회신뢰운동본부)

 

교회에 여자가 많아서일까, 목회자들의 성범죄 이야기는 끊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여자와 남자라는 관점에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남자의 모습이 권위적이고 부인들의 마음에서는 차지 않는 남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사들은 또 영적인 권위내지는 카리스마적 권위를 가지고 여성도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때론 다정하고, 때로는 이상적이고, 때론 범접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지고 여성도들과 만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적 문제는 교회 내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를 중심으로 하는 성범죄의 문제는 공동체의 관점에서 접근해 볼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교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성도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의 문제가 근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가 교인들을 교회성장의 수단으로 볼 때 성적 문제는 쉽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교인이 한 공동체의 지체로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대상으로 보이고 그렇게 여겨질 때 교인은 그 때부터 여자로 보입니다. 그러면 여느 남자처럼 범하고 싶고, 정복하고 싶은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대표적인 성범죄자는 다윗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신실한 장군 우리야의 아내가 목욕하는 장면을 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여자에 대한 음심이 생긴 다윗은 그 여인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그 시대에 왕으로써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여느 여인이 아니었습다. 바로 자신의 신실한 장군 우리야의 아내였습니다. 그것도 전쟁에 나가서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신하가 아닌가요. 그런데 다윗은 이 관계를 잃어 버렸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따라 이 관계를 깨뜨리고, 심지어 우리야를 전쟁에서 죽도록 했습니다. 그것도 그의 상관인 요압에게 은밀한 지령을 내려 그를 함정에 빠뜨려 적의 손에 죽게 했습니다. 다윗은 공동체를 깨뜨렸습니다. 우리야와 자신의 관계, 그리고 장군의 아내인 밧세바와의 관계, 우리야와 밧세바의 가정, 요압과 우리야로 이어지는 군대를 모두 깨어버린 것입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한다면 다윗은 이러한 공동체를 자신의 성공에 따른 도구로 여겼기 때문에 장군의 아내를 이렇게 불법, 탈법적으로 취했고, 그 남편도 전쟁에서 적에게 내어준 것입니다.

 

이런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예수님도 이성의 유혹을 받으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기에 따라 다르게 보겠지만 나는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여인과 함께 예수님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보면 이성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쉽게 이해하기 쉬운 로맨스와 스캔들의 장소인 우물가에서 시작됩니다. 아무도 없는 우물가에서 예수님은 한 여인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다. 여러 과거가 있었던 이 여인은 이 부탁을 물이 아니라 자신으로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남녀간에 일어날 수 있는 농담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여인을 여자로 보지 않았습니다. 농담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점점 진지해지더니 이제 예배의 자리에 대한 질문으로까지 이어집니다. 결국 이 여인은 남자가 아니라 메시아를 만납니다.


 

진정한 공동체 안에 있으면 여인이 안 보입니다. 그냥 성도이고 내가 목양해야할 양으로 보입니다. 그냥 예뻐 보이고 좋아 보입니다. 솔직히 목사의 입장에서 성도들은 사랑해 주어야 할 대상입니다. 그러니 좋게만 보이고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거기에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냥 한 공동체 안에 지체로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강조하고 싶습니다. 솔직히 항상 그러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나다. 내 마음에 여자가 보이고 여인이 보이는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걸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 역시 목회자가 연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어느 한 순간 다윗과 같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도덕은 혼자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가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공동체 안에 건강하게 머물러 있을 때 목회자는 영적 지도자로 바로 설 수 있습니다. 범죄의 줄타기를 하고 있는 목회자들이 다윗이 아니라 예수님의 모범을 쫓아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 안에서 바른 자리를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2016년 기윤실 열매소식지 11-12월호 특집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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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6 - 기독교윤리의 관점에서 본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_정병오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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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를 위한 모금]

한국교회 신뢰 회복을 위한 기초 조사, 회원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자신의 주어진 삶의 현장 가운데 복음에 합당한 정직한 그리스도인, 신뢰받는 교회,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시는 회원님들과 회원 교회에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특별히 국가적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비선실세인 최순실에 의해 국정이 마비가 되는 위중한 상황이라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깨어 국가가 올바른 가치에 의해 세워지도록 기도하고 행동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은 기윤실이 3년에 한 번씩 실시하고 있는 “한국 교회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와 관련해 회원님과 회원교회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입니다. 회원님께서 잘 아시다시피 한국 교회가 성장을 멈추고 퇴조의 길을 들어선 지도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가 문을 닫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청년과 청소년 층의 기독교인들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한국교회의 급속한 퇴조에는 한국 교회가 사회적인 신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데 모두가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가 다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냥 탄식만으로 되지 않고, 한국 사회가 한국 교회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어떤 연유로 신뢰를 잃어버렸고, 또 이러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에 대한 과학적인 조사와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기윤실에서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간 연속해서 “한국 교회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를 실시해 발표했고, 이후에는 3년 간격으로 실시하기로 해 2013년에 실시했고, 2016년 올해 실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5차례 “한국 교회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는 한국 교회의 대 사회적 신뢰도 관련 기초 지표 역할을 충실히 해왔습니다. 교계는 물론이고 일반 언론들도 이 결과를 비중 있게 보도했고, 주요 교단과 기독교계 중요 단체들이 이 지표를 근거해 한국교회 신뢰 회복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 신뢰도 조사”는 과학적 근거 마련을 위해 전문 여론 기관에 의뢰해 실시 및 분석을 하고 있어 1,600만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됩니다. 이를 위해 분당우리교회(담임목사 이찬수)와 울산교회(담임목사 정근두)가 각각 500만원씩 부담해주시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600만원 마련에 회원님들과 회원교회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자세한 후원방법과 예산내역은 아래를 참고해주십시오. 회원님의 참여가 한국교회의 신뢰 회복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

 

 

(사)기독교윤리실천운동 사무처 드림

 

 

후원금

예상 참여

회원/교회

총액

비고

500만원

2명

1,000만원

분당우리교회,

울산교회 약정완료

100만원

1명

100만원

 

50만원

2명

100만원

 

10만원

10명

100만원

 

5만원

20명

100만원

 

2만원

50명

100만원

 

1만원

100명

100만원

 

총 합계

 

1,600만원

 

 

 

지출 내역

금액

여론조사비 (지앤컴리서치)

1,300만원

분석연구비 (연구원 2명)

100만원

여론조사 발표세미나 진행비

100만원

여론조사 자료집 인쇄비

100만원

총 합계

1,600만원

 

 

《 후원 모금 기간 》 2016년 11월 14일(월) ~ 12월 2일(금)

《 후원 모금 계좌 》 하나은행 109-228746-01205 예금주 (사)기독교윤리실천운동

《 문의 》 02-794-6200, cemk@hanmail.net 김현아간사

 

 

 

 

2014/02/05 - 2013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 발표 세미나 후기 및 자료집(언론기사+영상포함)

2016/04/27 - 2016년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를 실시합니다.

2016/10/17 - 기윤실 열매소식지 9-10월호가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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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이례적으로 엄청난 관심을 받은 바둑대국이 있었습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은 평소 바둑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이 바둑은 생중계로 볼 정도로 관심이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세돌의 압승을 예측했지만, 알파고가 4:1로 승리했습니다. 충격적인 대국 결과만큼이나 사람들의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란 무엇일까요? 컴퓨터에게 양심이나, 배려와 희생같은 윤리의식도 생길 수 있을까요? 또 이런 인공지능의 발전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 까요? 인공지능의 발전만큼이나 우리의 미래의 삶에 끼칠 영향에 대해서도 궁금한 것이 많아집니다. 이 궁금증을 함께 풀어나갈 기독교윤리실천학교가 있었습니다.  오영우 참가자님의 참가후기를 남깁니다. ^^


제3회 기독교윤리실천학교 

"인공지능 시대의 기독교윤리" 참가후기2 


오영우 참가자



지난 10월 18일부터 11월 1일까지 3주 동안 기독교윤리실천학교에 개근하였다. 

이번 주제는 ‘인공지능 시대의 기독교윤리’였으며한국외국어대학교 정석오 교수님, 라브리공동체의 성기진 박사님,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박찬수 연구원님께서 발제를 맡아주셨다.


정석오 교수님은 ‘인공지능 너의 정체가 뭐냐’라는 주제로 인공지능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주셨다. 성기진 박사님은 ‘인공지능이 판사가 된다면 어떨까?’라는 주제로 현재 인공지능의 윤리성을 다루는 연구들이 어디까지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흥미롭게 알려주셨다. 마지막으로 박찬수 연구원님께서는 ‘제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발전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경제학적 관점에서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해서 다뤄주셨다.



기독교윤리실천학교에 참여하시는 분들의 배경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각도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다학제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져서 더욱 재미있고 흥미로웠던 시간들이었다.

이런 분위기에는 Talking Stone도 한 몫 하였는데, 참가자들은 이 Talking Stone을 갖고 있을 경우에만 원칙적으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이를 통하여 참가자들이 돌아가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2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길지 않을까 싶었는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아쉬울 정도였다.



이러한 나눔의 시간에는 비록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는 지식적인 측면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였지만, 그 밑바탕에는 기독교인으로써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삶에 대한 고민 등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윤리실천학교라는 취지에 걸맞은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끝으로 좋은 주제로 발표해주신 발제자분들, 그리고 기독교윤리실천학교를 준비해주신 기윤실 간사님들, 그리고 열정적으로 참여하신 모든 분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서서히 다가오는 인공지능 시대를 향하여 인공지능, 인공지능의 윤리, 기독교 윤리에 대한 우리의 지적탐구, 실천적 고민 또한 닻을 올리고 출항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기독교윤리실천학교 후기보기

2016/01/04 - 제1회 기독교윤리실천학교 참가 후기 (차정아 회원)

2015/12/31 - 제1회 기독교윤리실천학교 참가 후기 (박제우 회원)

2016/07/05 - [기독교윤리실천학교]“기독교윤리, 정치가에 묻다!”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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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이례적으로 엄청난 관심을 받은 바둑대국이 있었습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은 평소 바둑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이 바둑은 생중계로 볼 정도로 관심이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세돌의 압승을 예측했지만, 알파고가 4:1로 승리했습니다. 충격적인 대국 결과만큼이나 사람들의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란 무엇일까요? 컴퓨터에게 양심이나, 배려와 희생같은 윤리의식도 생길 수 있을까요? 또 이런 인공지능의 발전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 까요? 인공지능의 발전만큼이나 우리의 미래의 삶에 끼칠 영향에 대해서도 궁금한 것이 많아집니다. 이 궁금증을 함께 풀어나갈 기독교윤리실천학교가 있었습니다.  문한나 참가자님의 참가후기를 남깁니다. ^^


제3회 기독교윤리실천학교 

"인공지능 시대의 기독교윤리" 참가후기1 


문한나 참가자


 나는 생명윤리를 전공하는 학생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지키고 있으려 노력하면서 ‘내가 생각하고 고민하는 다양한 생명윤리 현안에 대해서 청년 기독교인들은 어떤 논의를 하고 있을까..’라는 궁금함과 아쉬움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인공지능에 대한 논의는 2016년 3월 알파고 vs 이세돌의 대결로 무엇보다 뜨거운 핵심 이슈였지만 기독교관점 뿐 아니라 생명윤리영역에서도 논의되는 곳은 별로 없는 듯 보였다. 나는 또한 학업과 직장의 영역에서 로봇윤리, 첨단기술윤리, 인공지능에 대한 문제가 간략하게 거론될 때마다 이것은 내가 알 수 없는 전문지식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마음과 동시에 언젠가는 그 개념에 대해서 알아보자는 마음만을 가지고 있던 차였다. 그 와중에 평소에 와보고 싶었던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제3회 기독교윤리실천학교의 주제가 “인공지능 시대의 기독교 윤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홍보물을 보자마자 평소에 생각했던 명확하지 않았던 이 인공지능에 대한 개념을 이번 강의에서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신청하고 참여하게 되었다.



기대감을 가지고 갔던 첫 번째 시간에는 “인공지능, 너의 정체가 뭐냐?” 라는 주제로 강의 및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석오 교수님께서 인공지능의 역사와 머신러닝 알고리즘, 빅데이터, 딥러닝 등의 개념을 간략하게 설명하여 주셨다. 또한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로봇윤리헌장과 같이 사회적 합의를 통하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여 주셨다. 


두 번째 시간에는 “인공지능이 판사가 된다면 어떨까?”라는 주제로 라브리 공동체의 성기진 박사님께서 강의를 진행하여 주셨다. 특별히 판사는 실제로는 단지 법을 적용만 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복잡한 작업을 해야 하지만 ‘주어진 데이터에 일련의 규칙을 정확하게 적용한다’는 의미에서 인공지능시대에 대체가능 직업으로 많이 거론되고 있다. 또한 박사님은 우리가 당장 인공지능 판사를 보기는 어려워도 이미 인공지능의 판단은 현재 일정영역에서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거나 우리의 삶에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모든 컴퓨터는 인간의 윤리적 판단을 흉내내는 수준으로 사람의 명령을 따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결국 로봇이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영역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인간이 어떠한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인간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능력이 어떻게 정의되던지 간에 인공지능에게 그것을 추월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박사님은 기독교에서 인간성의 본질은 하나님에게로부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며 이는 아무리 발달한 인공지능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대체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여 주셨다.  


마지막 시간에는 “제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발전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을 주제로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박찬수 연구원님께서 강의를 진행해 주셨다. 4차 산업혁명이란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에서 한걸음 나아가 사람과 사물사이의 소통을 말하는 ‘초연결사회’를 말한다. 이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경제활동에서 ‘노동’의 의미는 점점 더 축소될 것이며 기존의 안정적 일자리 중심이 아닌 일거리 중심인 긱경제(Gig economy)로 노동 플렛폼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이를 통한 경제적 불평등의 확대 및 포켓몬 고와 같은 사이버가 창조해내는 또 다른 현실세계 내에서의 소비자에게 만족을 주는 비즈니스 모델 등의 등장이 예견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매 시간마다 돌아가며 토킹스톤을 손에 쥐고 나누는 과정에서 나는 내가 지금까지 비기독교인과 다를 바 없는 관점에서 이 인공지능시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고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이 영역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고자 하였던 것임을 재차 알 수 있었다. 또한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로 인한 결과를 올바르게 예측하여 불필요한 오해는 해소하고 막연한 두려움은 거두어야 한다는 생각과 동시에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세계관으로 다가오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국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하고 살아가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로봇이 절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이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돌아가야 하며 이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시대가 계속 발전할수록 기계를 가진, 자본을 가진 사람에게 부가 축적됨에 따라 사회적 불평등 문제가 심화될 것이라는 공통된 예측에 대하여 부의 재분배에 대한 문제를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논의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미래시대의 노동의 의미에 대한 재정립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여 세 번의 강의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였지만 이 기독교윤리실천학교를 통하여 평소에 잘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훌륭한 강의를 들으며 자유롭게 토론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고 또한 이를 시작으로 사회의 다양한 영역을 바라보면서 조금 더 깊이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매우 값진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매시간 강의를 지원해주신 간사님들과 강사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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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윤실


사법개혁을 염원하는 한 시민의 제언


글 _ 정세열 (기윤실 회원)



 

* 이 글은 기윤실 회원님께서 이메일을 통해 투고를 요청하신 글입니다. 이후 다른 기윤실 회원분들께서도 이후 나누고 싶은 내용, 제안하고 싶은 운동이 있으시면 기윤실 이메일로cemk@hanmail.net 보내주세요.

 



저는 법을 전공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래 동안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회원으로 있으면서도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제목으로 글을 올릴만한 자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요즈음 우리 사회 및 정치가 너무 어지럽고 여러 면에서 나라의 장래도 암울해 보여 한 시민으로서 사법개혁과 관련하여 마음에 가지고 있는 생각을 여러 분들과 나누며 기독교 시민운동단체인 기윤실에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사법부의 공명정대함과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어느 나라나 정의 실현과 사회 안정의 최후의 보루이자 사회 번영을 위한 기초라는 데에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모든 국민이 사회의 합의를 거쳐 정해진 법 아래에서 평등함을 실현하는 법치주의의 확립에도 사법부의 공명정대함과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그 기초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는 약자의 보호 차원에서 사법개혁은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지만, 최근 다시 드러난 법조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인해 참담함을 느끼지 않는 국민은 없을 것입니다. 최근의 상황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헬 조선” “지옥 반도”라는 말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이 같은 사태를 맞아 다시금 제도 개혁이 절실함을 느낍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유주의와 법치주의를 위한 제도들이 도입되었지만, 제도를 뒷받침하는 사상 및 이념에 대한 이해가 사회 전체적으로 여전히 미흡하고 이와 함께 선진국에서와 같은 구체적인 제도적 장치가 많이 결여되어 있다고 판단합니다.


예를 들면, 선진국 중에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을 지낸 후 변호사 개업을 하는 일은 제가 짐작컨대 없을 것이라 여기며, 이러한 일은 국격(國格) 내지의 국가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정말 부끄러운 것이라 여깁니다. 그 간 사회 정의 실현의 최후 보루인 최고위 법관에게 명예와 돈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도저히 상식적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아닐까요?


최근에는 대법관을 지내고 변호사 개업 신청을 하면 변호사 협회에서 신청서를 반려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개인적으로 기쁜 일이라 여깁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사법부 개혁과 사법부 신뢰 회복에 턱없이 모자란다고 판단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전문가 집단에게 조차 ‘자율 규제’는 많은 경우에 전문인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전문인의 윤리의식 제고 및 사회 공익 실현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사익)을 추구하는 도구로 비쳐지고 있습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이 전문인 집단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한 예를 들면, 얼마 전 국회를 통과하고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른 바 ‘김영란 법’에 언론인이 포함된 것에 대해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법리적으로 판단할만한 전문성이 제게는 없지만, 이런 시비가 일고 있는 것 자체로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알기로는 영미의 권위 있는 언론사의 경우 기자 등 언론인이 공식 행사가 아니면 취재원으로부터 커피 한 잔도 얻어 마시지 못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고 이런 전통이 언론계 및 사회에 불문율로 굳어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김영란 법’에 언론인을 포함시키자는 이야기는 선진국이라면 아예 나오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문인 및 지도자들을 도덕, 윤리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가도록 국민들이 목소리와 압력을 높이는 것이 여러 분야에서 절실하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생업만으로도 바쁜 소시민들이 이러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뜻있는 전문가들과 순수한 시민운동단체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모든 제도는 거의 예외 없이 크고 작은 부작용을 동반하곤 합니다. ‘김영란 법’에 대해서도 벌써부터 우리나라 풍토에서는 사문화될 것이 아닌가 하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럼에도 이 법은 국민의 목소리와 압력을 법조계와 정치권이 최종적으로 이끌어낸 합의의 산출물이자 우리나라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해소할 수 있는 한 이정표가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적지 않다고 판단합니다.


저는 사법개혁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한, 두 가지 제안해 보고자 합니다. 사법개혁은 정치개혁이나 행정개혁보다는 덜 복잡하여 로드맵이 상대적으로 쉽게 그려질 수 있다고 봅니다. 먼저,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을 미국과 같이-미국에는 헌법재판관이 없습니다만-종신제로 하여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없도록 제도적으로 못 박는 것은 상징적인 면에서만 보아도 큰 의의를 지닌다고 여깁니다.


다음으로 법조계의 윤리성 및 독립성 확립을 위해 고법 부장판사나 수석 부장판사의 경우에도 청문회-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청문회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를 거치고 정년을 최소한 70세 이상으로 하며, 변호사로 개업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판사의 경력이 오래될수록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없는 기간을 늘리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제도가 도입될 경우 대법관, 헌법재판관, 그리고 고법 (수석)부장판사 등의 처우 개선도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사회에서 정당한 대우를 하지 않으면서 개인의 도덕성에만 호소할 수는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와 더불어 판사는 궁극적으로는 변호사나 법학 교수 중에서 실력과 경력을 엄밀히 검증하여 임용하도록 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런 방향으로의 구체적인 일정을 담은 로드맵을 마련해야 하겠습니다. 임용 전 검증에 있어서는 사익보다는 공익을 얼마나 추구했는지가 당연히 중시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법개혁은 사법부를 포함한 법조계 전체의 개혁, 정치개혁 및 행정개혁과 별도로 진행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민정수석 자리를 폐지하거나 순수한 자문이나 보좌 역할로 권한을 축소해야만 합니다. 어느 선진국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민정수석 자리를 만들어 민정수석이 검찰, 경찰 및 국정원을 통제하고 있습니까? 민정수석실의 한 비서관 자리는 특정 로펌 출신의 변호사가 계속 차지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개탄할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법부의 개혁을 위한 구체적인 제도적 장치들이 도입되면 검찰을 비롯한 법조계 개혁, 그리고 정치개혁과 행정개혁에 한 기초가 마련되어 이들 개혁에도 큰 자극이 되리라 믿습니다.

사법개혁은 결국에는 법조계와 정치권이 주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사법개혁을 위해 국민들과 순수한 시민운동단체의 목소리와 압력이 필수불가결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기윤실에서 이 같은 사법개혁을 위한 제도개혁 운동에 힘을 기울여주셨으면 합니다. 기윤실 내에도 신실한 그리스도인 변호사들이 적지 않고, 법조계에도 사법개혁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법조인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분들이 함께 논의하고 지혜를 모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데에도 기윤실이 일조하기를 바랍니다. 한편 기윤실이 다른 시민운동단체와도 연대하기를 당부드리고자 합니다. 사법개혁 및 법치주의 확립에는 좌우가 있을 수 없다고 보기에 다른 사안에 비해서는 연대도 어렵지 않다고 보고, 그 부작용도 거의 없으리라 판단됩니다.


* 정세열 회원님의 글은 지난 9월 26일(월)자로 송고되어왔습니다만, 그동안 사무처의 내부 사정 및 일정 조정 등의 이유로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회원님들께 양해를 구합니다. 또한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국가기밀유출과 최순실 씨 등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사건 등으로 혼란에 빠져있습니다. 검찰수사의 공정성과 독립적 수사 보장을 위한 시민의 요구가 빗발치는 이때에 앞선 혜안으로 사법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주신 정세열 회원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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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채용공고] 기윤실 활동간사를 모집합니다. 





안녕하세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입니다. 1987년 창립된 기윤실은 정직한 그리스도인, 신뢰받는 교회,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기독시민운동단체입니다. 아래의 내용과 같이 기윤실 활동가를 모시고자 하오니, 뜻있는 분들의 많은 지원 부탁드립니다. 



1. 모집인원 : 사업담당 정간사 1명, 인턴간사 1명


구 분

직무설명

우대사항

공통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사명에 동의하며 기독시민(대중)의 소양과 교회/교계이슈에 대한 전반적 이해가 있고, 사회 내에서의 성도/교회 역할에 대한 지향이 있는 분.

시민활동 경험

사업당당

정간사

기독시민대상의 캠페인과 교육, 교회 및 교계 사안에 대한 프로젝트 진행, 사회 이슈에 대한 참여운동 기획하는 것 등 운동 전반에 일정의 능력을 갖춘 분

글쓰기, SNS 및 블로그 운영,

디자인, 운전 등

인턴간사

기윤실 30주년기념총회 등 행정업무 지원

전화업무, 문서편집 등의 기술



2. 근무기간 : 정간사(2016.12-), 인턴간사(채용일로부터 4개월)



3. 근무조건

● 근무시간 주5일 ( 주40시간, 탄력근무제, 야간/주말행사 시 대체휴가 등)

 급여

-  정간사 기본급165만원 + 식비 + 부양가족수당 + 근속수당 + 직책수당 + 상여

- 인턴간사 서울시생활임금에 기초한 월급여 (*자세한 내용은 개별 이메일 문의)

 복리후생 1년만기근무시 연차 15일, 퇴직금지급 및 4대보험 (*단, 인턴간사의 경우 4대보험가입만 해당) 2년 1회 정기검진, 안식월(만5년근무시 1개월, 만10년근무시 6개월), 육아휴직 등

  채용 후 2개월 수습적용(급여100%)


4. 전형일정


서류제출

11월 10일(목) 오후 6시까지

서류합격자발표

11월 14일(월) 오후 3시

면접 및 과제제출

11월 17일(목)~18일(금) (*시간조율)


5. 제출서류

 [공통] 간사지원서, 자기소개서, 추천서 (기윤실양식)

 [사업담당] 서류합격자에 한 해 사업기획서를 면접과제로 제출 

   ("한국사회 내에서의 교회 신뢰도 제고방안" 또는 "한국 기독교 윤리실천운동의 한계와 방향" 중 택1)

 

기윤실_간사지원서(2016년).hwp

기윤실_간사지원추천서(2016년).hwp


6.접수방법

이메일제목 "[사업담당 or 인턴] ooo 기윤실 간사지원서"

 

이메일접수 cemk@hanmail.net


7. 기타

 채용관련 문의는 이메일로만 접수합니다

 적합한 인재가 없을 시, 채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문의 : 박제민 팀장 cem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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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윤리연구소] 목회자윤리세미나 후기 



이 글은 2016년 10월 27일(목) 오후2시,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 지하2층에서 진행되었던 "목회자윤리세미나 : 목회자의 성윤리와 경제윤리" 세미나 참석후기입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현장실천참가자 박나래님께서 작성하셨습니다.





지난 27일 기윤실 목회자 윤리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다.목회자 윤리 세미나가 열린다는 것 자체가 오늘날 한국교회가 목회자 윤리의 문제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을 것이다.목회자들은 사회의 그 어떤 직업군보다도 윤리적이고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당연하게 여겨져왔다.그래서일까, 진행을 맡은 이장형 소장(기독교윤리연구소)에 따르면 그동안 목회윤리를 논한 경우는 많았지만 목회자 윤리를 다룬 적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목회자 윤리에 있어서도 여러 영역이 있지만,이번 세미나에서는 경제윤리와 성윤리의 영역을 다뤘다.



경제윤리 관련 발제를 맡은 신기형 목사(이한교회)는 신뢰를 강조했다.목회자는 목회에 있어서도,개인생활에 있어서도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목회자라고 할지라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먹고 살아야 하기에 돈 문제에 있어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그렇기에 목회자들은 청빈해야 한다는 부담과 물질적 필요를 채우고 싶은 본성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성경은 가난을 멸시하지 않고, 부함을 무조건 나쁘게 보지도 않지만, 돈에 대한 탐욕의 위험성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다.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만큼의 부를 갖게 되면 그것은 그를 넘어뜨리는 시험거리가 된다.신 목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정직한 청지기의 자세를 가질 것을 권유했다. 목회자 수입의 정도를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게 사용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했다.신 목사는 교회에서 재정 사용의 절차와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과 재정 사용에 대한 재량권을 적절하게 제한하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목회자의 성윤리 발제를 하게 된 신원하 교수(고신대)는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 사건을 계기로 목회자 성윤리에 관한 논문을 쓰게 되었다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목회자의 성적일탈 행위에 대해서, 성도들이 목회자에게 말씀을 잘 전하라고 부여한 권위과 권력에 대한 남용이며, 성도들과의 신뢰를 깨뜨리는 배신행위라고 규정했다.목회자의 성적일탈의 피해자들은 목회자를 넘어뜨렸다라는 낙인 때문에 교회를 떠나거나 심지어 신앙에서 떠나는 등 매우 심각한 내적, 외적 상처를 입게 된다. 가해 목회자들도 제대로 치리를 받고 회복 과정을 거친다해도 다시 사역으로 돌아오는 비율은 매우 낮다.이처럼 목회자의 성적일탈로 인한 결과가 너무나도 심각한 만큼,목회자는 자신을 믿지 말고 문제가 생겼을 때 전문가의 도움 받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신 교수는 목회자의 성적일탈을 개인적 일탈로 치부하고 조용히 덮으려는 태도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신 교수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 노회, 총회 차원에서 먼저 진실을 명명백백히 밝히고 원칙대로 처리함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해야 피해자의 억울함도 풀어주고, 목회자도 재기와 회복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또한 향후 또다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목회자의 경제윤리와 성윤리는 목회자들이 가장 많이 저지르는 윤리적 실책의 영역이다. 실제로 재정비리로,성문제로 무너지는 교회, 상처받는 성도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인지 질문 시간에는 분위기가 다소 격앙되기도 하였다. 일일이 언급하기는 힘들지만,목회자들의 윤리적인 문제로 상처받은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면서 가슴이 아팠다.또한 신학생으로서 바른 목회자 윤리를 가져야 한다는 책임감이 무겁게 다가왔다.사실 이번 세미나에서 발제 된 내용은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라기보다는 목회자들의 기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아주 기초적인 윤리의 내용이었다. 지도자로서 신뢰받는 사람이 되고,재정을 투명하게 사용하고,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성도들과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하지 않는 것은 굳이 목회자 윤리라고 말하지 않아도 일반적인 상식에 속하는 것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발제가 의미가 있는 것은 이런 기초적인 부분조차 목회자의 절대적인 영적 권위라는 미명 하에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목회자 역시 연약한 죄인에 불과한만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목회자의 권력 남용을 견제하고,공동체안에 하나님의 공의가 바로 세워질 수 있도록 책임있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나 역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들, 특히 연약한 지체들이 겪는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관련글보기 > 

2016/10/27 - 기독교윤리연구소 목회자윤리세미나 사진 (201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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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실소식지(16_09 10)_web.pdf

 

 

기윤실 열매소식지 9-10월호가 발행되었습니다.

 

[특집] 사회 속의 그리스도인

[비전메시지] 빛 권하는 사회, 빚 갚아주는 교회(정병오 본부장)

자살에 대한 교회의 대책 (조성돈 본부장)

부정청탁과 부패의 고리를 끊어야 산다 (신동식 본부장)

[성명] 핵에 의존한 에너지 과소비 구조를 친환경적 에너지 절약 구조로 전환해야 합니다.

 

 

한국교회를 건강하게,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동역서약'(박제민 팀장)

[회원운동_찾아가는기윤실②] 서울서문교회에 다녀왔습니다.

[회원운동_찾아가는기윤실③] 서교동교회에 다녀왔습니다.

2016/10/17 - 기윤실 회원생활백서 ③ 참여하기!

 

 

2016년 전국기윤실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논평] 청탁금지법 시행을 환영하며, 교회가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을 만들어가는 일에 앞장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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