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 해당되는 글 44건

  1. 2016.10.17 부정청탁과 부패의 고리를 끊어야 산다 (신동식 본부장)
  2. 2016.06.08 2016년 기윤실 홍보 브로셔를 소개합니다.
  3. 2016.04.27 2016년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를 실시합니다
  4. 2016.04.27 2016년, 기독교윤리실천학교에 초대합니다.
  5. 2016.04.27 기윤실 열매소식지 3-4월호가 발행되었습니다.
  6. 2016.04.27 [기윤실포럼] 양극화와 한국사회의 갈등현상 : 주거 교육 세대 노동 - 발제문
  7. 2016.04.07 [2016 기윤실 포럼] 한국경제 양극화 진단과 대안(4/1) 자료집 공유합니다
  8. 2016.01.19 목회자 소득세 어렵지 않아요 안내서 발간(2015년)
  9. 2015.12.07 [교회신뢰운동] 교회와 부교역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도록
  10. 2015.12.04 [비전메시지] 한국교회의 사회적 책임(백종국 공동대표)
  11. 2015.12.04 [기윤실 포럼] 양극화 해소를 위한 성서적 실천(11/27) 자료집
  12. 2015.11.18 기윤실 홍보 포스터를 소개합니다.
  13. 2015.10.19 [표절과 한국교회 포럼] 진리는 사되 팔지는 말며(남형두 교수) 발제 요약
  14. 2015.05.21 기윤실 열매소식지 2015년 5-6월호가 발행되었습니다.
  15. 2015.04.15 [세월호 참사 1년, 기독인 연합예배 성명서] 정부는 진실을 가로막는 시행령 폐기하고 온전한 선체인양, 배보
  16. 2015.03.24 [기윤실포럼] 양극화 해소를 위한 실천적 과제연구_기윤실포럼
  17. 2014.12.16 기윤실 열매소식지 2014년 11-12월호가 발행되었습니다.
  18. 2014.12.04 [자발적불편운동 12월 캠페인] 화려한 빛보다 따뜻한 빛이 되어주세요
  19. 2014.07.30 [세월호 참사]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1인시위 - 참가후기
  20. 2014.07.30 [2014년 일본연수 - 방문기] 주식회사 나이스(NICE)(박진영 간사)
부정청탁과 부패의 고리를 끊어야 산다 (신동식 본부장)

 

 

 

부정청탁과 부패의 고리를 끊어야 산다

 

글 _ 신동식 본부장(정직윤리운동본부, 빛과소금교회 담임목사)

 

 

 

요즘 상상을 초월하는 수임료를 받은 변호사가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한 대형교회 직분자이며 법조 선교회 소속이라고 한다. 이러한 소식을 들으면 참으로 우울하다. 세상 사람과 다를 것이 없는 유사 그리스도인을 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부정과 부패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직을 생명으로 삼아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과 부패를 통하여 얻은 성공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저주이다.

 

지금 사회는 좀 더 정직하게 살고자 몸부림 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정부는 2012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했던 법인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을 5월 9일에 입법예고 하고 9월에 시행한다고 발표하였다. 이 법의 내용에는 공무원이 직무 관련성이 없는 사람에게 100만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으며, 공직자와 언론인, 사립학교 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이 직무 관련인으로부터 3만원 이상의 식사 대접을 받으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고 나와 있다. 그리고 공무원 등이 받을 수 있는 선물 가격은 5만원으로 정했고, 경조사 비용은 10만원이다.

 

일반 국민의 눈에는 상식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법의 시행에 앞서서 많은 저항을 받고 있다. 일부 직능단체가 법의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경제적인 위축이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부정과 부패의 고리를 끊는 일에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우선 하는 생각이 앞서고 있음을 본다. 더구나 이러한 반대에 일부 정치인들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참 씁쓸하다.

 

정말로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 국가 경제가 위축될까? 아마도 당분간은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긴 시각으로 보면 국가 경쟁력에 큰 힘이 된다.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김병연 교수는 “우리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 중에 부패지수가 더 높은 국가는 하나도 없지만 우리보다 소득이 월등히 더 낮은 나라가 부패가 더 적은 나라는 150여 개국에 달한다. 그러면서 부패정도에 있어서 한국이 일본만큼만 되어도 경제성장률이 1% 가량 증가할 것이다. 성장률이 1% 증가하면 일자리가 10만개 증가한다”라고 했다.

 

결국 국가 경제의 성장을 위하여 부패지수를 줄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준다. 국제투명성기구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의 부패인식지수는 100점 만점에 56점으로, OECD 34개 회원국 중 27위로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경제의 침체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어떠한 개정 없이 이 법은 시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우리 기독교인들의 책임은 없는지 물어 보아야 한다. 김병연 교수는 수십 개국의 부패문제의 원인을 연구한 트라이즈맨의 보고를 인용하면서 개신교를 믿는 숫자가 증가할수록 부패는 감소한다고 보고하였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한국에서는 기독교인들의 수적 증가가 부패의 감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한국 교회 스스로 정직에 대하여 강력하게 반응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이원론적인 신앙에 물들어 있는 한국 교회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성공하고, 부자 되고, 성장하면 존경 받고 교회의 리더가 되는 이러한 악순환 가운데 불편하더라도 반드시 감당해야 하는 정직한 삶에 대하여 강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종 교회 정치의 현실에도 부정 청탁과 부패의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가장 정직하여야 할 지도자들이 가장 세속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이 교회를 우습게 보는 것이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하여 김영란 법의 처음 취지대로 스스로 규제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교회가 먼저 부패의 기회를 박탈한다면 사회는 교회를 존중하고 따라 올 것이다. 이것이 교회를 살리고 국가를 살리는 일이다.


 

* 이 글은 2016년 5월 23일, 기독신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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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윤실

2016년 기윤실 홍보브로셔가 나왔습니다. 조금 늦어지기는 했지만, 기윤실을 알릴 수 있는 핵심적인 내용을 담아서 깔끔하고 심플하게 제작하였습니다. ^^  혹시 주변에 기윤실을 알리기 위해 브로셔를 사용할 곳이 있으신 분들은 사무실로 연락을 주시면 보내드리도록하겠습니다. ^^ (담당 : 김효준 간사, 070-7019-3758, cemk@hanmail.net)


앞면은 기존의 사용한 기윤실 포스터와 거의 비슷한 디자인으로 제작하였습니다.


먼저 아래쪽엔 평지를 나타냈습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이사야 40장 4절]

기윤실은 2017년까지 한국사회 갈등의 핵심인 "양극화"를 해소하는데 역략을 집중해서 운동을 펼칩니다. 이사야서의 말씀처럼 평탄한 평지가 되는 것을 형상화한 평지의 이미지입니다. 


건강한 토양에 '정직한 그리스도인, 신뢰받는 교회,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라는 기윤실의 사명을 담은 빗방울이 내리는 모습입니다. 


건강한 토양에 맑은 비가 내려 나무가 자라고 열매를 맺습니다. 게다가 나무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더불어 살아갑니다. 








뒷면은 열매맺은 나무를 강조하였습니다.

땅속에서는 회원분들의 후원이 거름이 되고 "양극화를 넘어 더불어 함께"라는 큰 나무 기둥을 타고 기윤실의 운동으로 열매를 맺게됩니다.


1. 기독교윤리실천학교

건강한 기독시민의 교양학습터 


2. 한국교회 신뢰도 여론조사


3. 기윤실포럼

양극화 해소를 위한 실천적 대안연구


4. 4.13총선 공명선거운동


5. 자발적불편운동

나부터 지금부터 작은 것부터


6. 부교역자 처우개선운동


7.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8. 교회재정건강성운동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기윤실이 의미있는 운동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기도와 후원 그리고 또 다른 여러 방법으로의 응원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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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를 실시합니다

 

 

2016년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를 실시합니다

 

 

 

기윤실은 2008년을 시작으로 3년마다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 내에서 갖는 신뢰도에 대한 인식 조사로서, 2013년 문항에 기초하여 전국남녀 1000명 대상으로 전문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하여 진행합니다. 특별히 2016년 여론조사는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과 기윤실 창립 30주년을 감안하여 대 사회적 문항을 중심으로 여론조사가 실시 됩니다. 또한 2015년 정부에서 실시한 인구총조사 결과 내 한국사회 종교관련 지수와 더불어,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가 흥미로운 분석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한국교회를 신뢰하는가?”라는 기초질문에 약20%내외만이 ‘그렇다’라고 답한 것을 보며 기윤실을 비롯하여 많은 교회와 성도들의 노력이 이어져 왔습니다. 불신의 이유로 꼽힌 ‘언행불일치’,‘내부불투명성’등 교회와 성도들의 정직한 일상에 대한 요구가 뼈아픈 질책으로 다가왔던 것이죠. 그리하여 기윤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의 삶의 모델로서 “자발적불편운동”을 지난 3년동안 진행해왔고, 교회 내 투명성을 위한 노력으로서 “교회재정건강성운동”,“세습반대운동”, “부교역자처우개선운동” 등 다양한 운동들을 펼쳐왔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의 일상 속에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진행되는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 한국교회의 신뢰회복 방안 연구를 위해 더욱 힘쓰겠습니다.

박진영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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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기독교윤리실천학교에 초대합니다.

 

 

 

2016년, 기독교윤리실천학교에 초대합니다.

 

기독교윤리실천학교(이하 기윤실학교)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한국 사회를 보며 윤리, 특히 기독교윤리를 다시 배울 필요성을 절감하며 만들어졌습니다. 이름은 ‘학교’라고 했지만 정리된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성경적 원리와 실천 대안들을 모색해가는 ‘배움터’가 더 적합하다 하겠습니다.

 

 

 

기윤실학교의 두 가지 특징은 작고 소박한 모임, 그리고 참가자가 강사만큼이나 많은 말을 하는 모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날의 주제의 전문가가 강사로 나서지만 발제 시간은 30분 내외로 비교적 짧은 편입니다. 그 후에는 참가자 모두에게 평등하게 발언기회가 돌아갑니다. 그 발언에 대해서 다시 강사가 답변을 하고 남은 시간은 서로 자유롭게 대화합니다.

 

 

기윤실학교는 지난해 11월에 1회를 진행했습니다. 1회의 주제는 ‘일상의 도전과 기독교윤리의 응답’이었습니다. 총 4주 동안 진행된 1회는 자녀와의 관계, 부부 사이의 문제, 실제적인 돈 문제, 그리고 공동체로 살아보는 것 등 그리스도인들이 일상에서 겪을만한 문제들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참가하신 분들이 상당히 만족해하는 반응을 보여주셨습니다

 

 

2016년에는 총 4번의 기윤실학교가 진행됩니다. 2회는 4.13총선을 앞두고 3월에 ‘기독교윤리, 정치가에게 묻다’라는 주제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치 현장에서 일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만나 신앙을 바탕으로 각각 다양한 정치적 진로를 걷고 있는 것을 비교하면 듣는 시간입니다.

 

3회는 7월경에 ‘기독교윤리, 청춘에게 말을 걸다’라는 주제로 진행됩니다. 기독청년은 또래 청년들과 똑같은 고민을 하면서 동시에 신앙인으로서의 고민도 안고 있는데, 고리타분하지 않고 세속적이지도 않은 제3의 길은 없을지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4회는 9월경에 기독교윤리, 중년의 길을 찾다’라는 주제로 진행됩니다. 은퇴에 내몰린 중년들에 대한 돌봄이 시급한데, 은퇴 이후의 사회와 가정에서의 의미 있는 삶에 대해 함께 고민해볼 것입니다.

 

5월과 11월경에 ‘기독교윤리, 육아와 신앙을 함께 고민하다’라는 주제로 하루짜리 기획강좌를 진행합니다. 육아기에 있는 부부는 제대로 예배를 드리기조차 힘들 정도로 신앙적 갈급함이 있는데,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 신앙생활을 지혜롭게 하는 노하우에 대해서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2016년, 다양한 기윤실학교에 초대합니다!

 

박제민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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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실 열매소식지 3-4월호가 발행되었습니다.

 

 

기윤실소식지(16_03 04)_web.pdf

 

 

 

 

 

 

[특집] 2016년 회원총회 + 신년강연회 "양극화를 넘어 더불어 함께"

 

●비전메시지 | 양극화 해소와 기윤실 운동" 강연(임성빈 공동대표)

2016년 사역소개 | 2016년 기윤실 이렇게 일하겠습니다 - 2016년 기윤실 사역안내

2015년 외부회계감사보고서 및 결산요약, 해설 등 세부지표를 보고드립니다. 

불편하게, 즐겁게, 더불어 함께 만드는 기윤실(총회후기)

2016년 기윤실에 기대합니다. 회원 한마디~

 

 

더높은 책무성

[정직윤리운동] 2016년, 기독교윤리실천학교에 초대합니다.

●[교회신뢰운동]2016년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를 실시합니다

●[사회정치윤리운동]양극화 해소를 위한 실천적 대안연구, 2016 기윤실 포럼

 

 

 

더 깊은 투명성

1-2월 회계보고 후원자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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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기윤실포럼]

 

양극화와 한국사회의 갈등현상 : 주거 교육 세대 노동 


 

이 글은 지난 4월 25일(월) 오후3시,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에서 진행되었던 "양극화와 한국사회의 갈등현상 : 주거 교육 세대 노동" 포럼 자료집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주석 및 발제문 전문은 기윤실 홈페이지 자료실(cemk.org)에 첨부된 PDF 파일을 내려받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기윤실 자료실 바로가기 클릭)


 



"자식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은 천지개벽했다'

 

 

오 찬 호 박사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진격의 대학교 』


 

 

   지금세대가 과거와 얼마나 다른 환경에 처한 지를 수치적으로 확인하는 건 구글 검색 몇 분이면 가능하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공인중계소 앞에서 한번이라도 머뭇거려 보았다면 ‘달라짐’을 느껴야함은 당연하다. 일례로 1991년에 5500만원 했던 분당의 아파트가 지금은 5억 5천만 원이다. 이 팩트 하나만으로도 여러 논의를 뽑아낼 수 있다. 첫째, 집을 마련한다는 개념자체가 완전히 달라진 시대의 등장이다. 10년 바짝 모으면 가능했던 시대와 20년을 바짝 모아도 불가능한 시대는 결코 같은 시대가 아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많이 잡는 시대는 끝났다. 지금은 몸만 피곤할 뿐이다. 둘째, 아파트가 의미 있는 재테크가 불가능해진 시대다. 아파트 가격이 과거처럼 오를리 없다. 그러니 열심히 산다고 자산증가폭이 동일할리 없다. 티끌모아 태산이 아니라 ‘티끌은 모아봤자 티끌’이 되는 시대다. 그리고 이 문제는 같은 청년세대‘안’에서의 균열이 과거에 비해 커질 수밖에 없음을 이해한다. 그렇게 가난했다던 시대에도 ‘내 집 마련을 포기’한다는 말이 드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N포세대란 말이 자연스러워졌다. 그중 가장 대표적 ‘삼포’ 중 하나가 바로 내 집 마련이다. 무슨 수영장 딸린 3층 저택을 구입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24평짜리 아파트도 가격에 입이 떡 벌어진다. 그런데 누구는 부모 잘 만난 덕에 ‘주거권’을 쉽게 확보한다. 누구는 당연한 권리를 얻기 위해 몇 십 년간 아등바등 거리는데 누구는 ‘몇 십 년’을 시간 절약 한다. 그러니 이들의 격차는 결코 좁혀지지 않는다. 잘 사는 집안의 자녀가 크루즈 세계여행을 가는데 누구는 못 간다면 이는 불평등이긴 하지만 사회문제까지는 아니다. ‘세계여행’이 보편적 인간의 권리는 아니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개인이 수긍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집’은 그렇지 않다. 사회가 정상이면 ‘열심히 공부한 다음 어떤 일이든 성실하게 주 40시간을 일하면’ 자기 소유의 집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가?

 

 


그때는 그걸 묻지 않았다


시간대가 다른, 그리고 경제적 수준이 달랐던 가정에서 살았던 A, B 이야기를 할까 한다. 이야기는 과거와 다른 상황에 처한 지금의 청년세대의 실상, 그리고 지금의 청년들 안에서의 어떤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그 내용을 미리 말하자면 A보다 부유한 가정에 살았던 B가 다른 이유도 아닌 ‘자신이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것을’ 탓하면서 부모를 ‘끊임없이’ 원망하게 된 사연에 관한 거다. 먼저 과거에 살았던 A다. A는 지방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아버지는 A가 어릴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앞 2평 남짓한 공간에서 떡볶이를 평생 파셨다. 고로 A는 힘겹게 살았다. 과외는커녕 학원조차 맘 편히 다닐 형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A는 개의치 않았다.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을 본인이 악착같이 한다면 대학은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A는 ‘성문종합영어’와 ‘수학의 정석’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했고 나름 사학명문이라 불리는 지방의 한 대학으로 진학했다. 지금은 ‘지잡대’라면서 조롱의 대상이 된 대학이지만 그때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니 ‘대학서열’의 상층부 학교, 이른바 ‘인서울’의 이름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지 못한 것은 A에게 약간 아쉬울 뿐이지, 인생의 ‘발목’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좀 더 좋은 조건에서 공부시켜주지 못한 부모에 대한 원망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지배적’이지 않았다.

 


대학에 진학한 후 가정형편상 등록금과 생활비를 부모로부터 받을 수 없었던 A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교 앞 호프집에서 저녁 6시부터 밤 12시까지 서빙을 하는 일이었다. 이는 곧 학점관리의 문제로 이어졌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했고 A는 평균 3.0 학점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B학점에 턱걸이를 한 수준이니 학업성적이 탁월했다고 볼 수는 없으나 취업과정에서 이것이 문제되지는 않았다. “왜 학점이 이 정도죠?”라고 묻는 사람이 없으니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던 힘든 상황과 이것이 야기된 이유에 대한 원망도 없었다. A의 취업이력서는 단촐 했다. 엄연히 말해 평균 B학점으로 졸업한 대학의 학위증은 당시로서 결코 초라한 대우를 받지 않았다. 그 시절, 영어성적과 자격증은 보유한 사람만 적는 것이지 의무가 아니었다. “너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토익을 공부하는 거야?”라는 눈총을 받았던 친구 몇몇만 남들하고 다른 어학능력을 이력서에 기재했는데 이들은 실제 그런 능력을 필요로 하는 희소한 자리로 진출했다. 그러지 않은 곳에서 일할 사람에게 영어능력은 있으면 좋겠지만 없다고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변수는 아니었다. 그래서 A는 이력서의 자격증 칸에 군대에서 취득한 ‘태권도 1단’과 ‘운전면허’를 적었고 무난하게 정규직으로 취업했다. A의 부모는 자식이 영어를 배움에 있어서 ‘아낌없는 지원’을 전혀 할 수 없었지만 이 때문에 자녀와의 관계가 소원해지지 않았다. A는 대학에 입학한 후 취업할 때까지 부모님께 딱 한번 손을 벌렸다. 면접 때 입고 갈 정장을 사야 하는데 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중에 갚아드리겠다’면서 받은 5만원이 전부다. 이 ‘나중’도 취업의 공백기가 없었기에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학입학과 졸업, 그리고 취업에 이르기까지 부모의 도움이라곤 받아 본 적이 A는 지금에도 부모님을 늘 공경한다. ‘낳아주고 하루 세끼 밥 굶기지 않으면서 길러주신’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할지 전전긍긍한다. A는 부모로부터 ‘하루 세끼’ 밥 얻어먹는 것조차 대학을 입학한 다음은 그마저도 스스로 해결했다. 하지만 부모로부터 적극적인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해서 나타나는 ‘자녀의 역량’을 과거에는 그렇게 묻지 않았다. 쉽게 말해, 비행기 표 살 돈도 없는 가정이라도 ‘어학연수’를 취업의 기본으로 묻는 시대가 아니라면 이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개인이 처한 ‘가난’은 마음먹기에 따라 극복될 가능성이 어느 정도는 있었다. 설사 가난이 개인의 삶을 제약하더라도 감당할만한 수준의 사회였다. 나는 이 시기를 ‘좋았다’라고 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지금이 이때보다 ‘더’ 나빠진 건 분명하다.

 

 

 


끊임없이 부모를 원망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하다


B 이야기를 해 보자. B의 아버지는 중학교 교사이며 어머니는 9급 공무원이다. B 가족은 서울 끝자락에 있는 23평 아파트에 ‘자가로’ 살고 있다. 말이 끝자락이지 시세가 5억이다. 두말할 것 없이 B가족은 ‘중산층’이다. B는 흔히 하는 말로 ‘풍족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 않게’ 유년시절을 보냈다. A와 비교한다면 단연코 풍족했다. A는 목욕탕에서 독학했다는 수영을 B는 아파트 앞 유소년스포츠센터에서 무려 3년간 배웠다. A는 사교육이란 것을 고3때 시험을 앞두고 수학학원 3개월 다닌 게 전부였지만 B에게 사교육은 성장과정의 일부였다. B의 부모는 변호사, 의사 집안의 자녀처럼은 아니더라도 또래 평균치 정도는 투자했다. A는 유치원 때부터 집을 들락날락거리는 학습지교사를 만났고 과학캠프, 영어캠프도 꼬박꼬박 참가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터는 동네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그래서 ‘더 비싸다는’ 학원도 다녔다. 대학을 입학해서도 B는 A와는 차원이 다른 호화를 누렸다. 등록금은 부모님이 책임졌고 졸업할 때 까지 매달 50만원의 용돈도 받았다. 이처럼 부모로부터 아낌없는 투자를 받으면 자란 B, 그는 A보다 ‘더’ 부모에게 감사를 하고 있을까? 아니다. B는 오래전부터 ‘부모의 지원 부족’이 늘 불만이다. 그리고 해가 갈수록 이는 반복 그리고 누적되어 이제 B는 자식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던 부모를 ‘능력 없다’면서 원망하기에 이르렀다.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B가 부모를 원망하게 된 시기는 특목고 진학에 실패하고 나서부터였다. 중학교 때 나름 괜찮은 성적을 유지했던 B는 3학년이 되어서 외고 진학을 희망했다. 하지만 내신 성적이 ‘퍼펙트 하지 않으면’ 외고입학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B는 좌절감에 빠지게 된다. 외고진학을 희망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B가 다닌 학원의 ‘일반부’보다 수강료가 두 배 이상 비싼 ‘특목고 진학 특별반’을 다니고 있었고 별도의 과외를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초등학교 5, 6학년 때부터 ‘해외유학 대비반’을 다녔다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각종 경시대회 수상, 입이 떡 벌어지는 영어 공인점수 성적 등은 기본이었다. 이런 업적(?)들은 입시에서 공식적으로 요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지만, 어떻게든 자기소개서에 기록되어 개인의 경쟁력을 올려준다. 뉴질랜드나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다녀 온 이들도 수두룩했다. 방학 때 다녀 온 사람, 방학‘마다’ 다녀 온 사람, 아예 그쪽에서 학교를 한 학기, 두 학기를 다녔다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B는 생애 처음으로 ‘가정형편’을 탓했다. “왜 나는 어릴 때 외국에 안 보내줬어!”라면서 불만을 토로했지만 부모는 가슴이 먹먹하다. 설마, 중학교 때 외국에 안 보냈다고 ‘부모 노릇’ 못한다는 소리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B는 좌절하기 않고 일반고에서 열심히 공부하고자 했다. 그런데 지금의 입시는 학교에서의 엉덩이싸움만으로 성적이 보장되진 않는다. 몇 백 가지가 넘는 입시 전형방식, 학교별로 달라지는 가중치를 꿰뚫고 있지 않으면 눈 뜬 장님이 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무엇보다도 일반고 ‘안’에서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려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일반고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 외고, 과학고를 ‘가는’ 시대의 일반고가 아니다. 지금은 ‘능력이 부족해서’ 특목고를 ‘가지 못한 자들이’ 모인 결핍의 공간이 바로 ‘일반고’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러니 학생들은 일찍 감치 열패감에 사로잡혀 공부에 대한 열의를 놓아버리고 선생들은 가르칠 의지를 상실한다. 이는 일반고 학업평균치를 낮춰버리게 되는데 문제는 ‘그래서’ 논술시험이라든가 수시전형의 다채로움에 부합하는 교육과정이 ‘수요가 원체 부족하니’ 굳이 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요하면 ‘알아서’ 학원을 가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학원이 어디 ‘평등’한가. 무상일리도 없지만 돈을 얼마만큼 내는지와 성과물은 비례한다.


B는 논술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대치동 학원가를 찾았다가 5일과정의 100만 원 정도의 수강료가 ‘저렴하다’고 하는 상담을 받고 충격을 받았다. B는 당연히 이 학원을 다닐 수 없었고 원했던 대학에 가지 못했다. 하지만 50만원을 내고 3일 코스라도 수강할 수 있어서 ‘그나마’ 서울소재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만족보단 아쉬움이 크다. 자신보다 성적이 낮은 친구가 전담 과외선생 밑에서 포트폴리오 작성에 열중하더니 ‘더’ 유명한 대학에 수시전형으로 진학을 한 것을 알게 된 이상 배가 아픈 걸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B는 다시 부모를 원망한다. 왜 자신의 부모는 허구한 날 “우리는 입시설명회 쫓아다닐 시간도 없고 입시상담 받을 현금도 없단다. 이해해주렴”이란 말을 달고 살았을까. 부끄럽지도 않은가!


대학을 진학한 B는 그래도 열심히 살고자 했다. 하지만 대학은 ‘부모에 대한 원망’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쌓아가는 곳이었다. 취업, 아니 ‘대기업에 원서를 넣기 위한’ 기본 자격으로 필요하다는 9종 세트(학벌, 학점, 영어점수, 어학연수, 자격증, 공모전, 봉사활동, 인턴 그리고 마지막은 충격적이게도 성형수술)는 모두 ‘부모의 소득’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었다. B는 그나마 부모의 도움으로 1년간 매달 22만원의 학원 수강료를 지불할 수 있었기에 토익점수 800점을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답이 없었다. 어학연수는 여태 제주도에도 한 번 안 가본 B에게는 언감생심이다. 자격증으로 태권도단증, 운전면허증은커녕 워드프로세서, 컴퓨터 활용능력 같은 걸 묻는 시대도 오래 전에 끝났다. 향후 진로가 회계사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전문성 어필 차원에서 공인회계사(CPA)를 기본으로 취득하고 금융권에 원서를 넣기 위해서는 증권투자상담사, 자산관리사, 변액보험판매사 자격증 정도는 기본으로 보유해야 한다. 재무설계 전문 자격증인 AFPK(Associate Financial Planner Korea)도 가급적 취득해야 한다. 이런 자격증을 보유한다고 합격보장이 되지도 아니다. 다 갖추고도 백수인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이 와중에 공모전을 챙겨야하고 봉사활동을 ‘업적화’해야 한다. 평가하지 말아야 할 것을 평가하니 봉사활동도 혹시나 꼬투리 잡힐 ‘야학교사’보단 ‘캄보디아 가서 집짓기 봉사’가 훨씬 경쟁력이 있다. 그러니 ‘돈’이 많을수록 유리해진다. 학점 좀 관리하고 영어점수 높다고 해서 50만원 내고 ‘기업에 따른 적합한 자기소개서 작성법’을 첨삭 받은 자보다 ‘뛰어난’ 글을 쓰긴 어렵다. 운 좋게 서류전형에 합격해도 취업전문학원에 100만원을 지불하고 ‘압박면접’ 예행연습을 한 경쟁자를 이기긴 어렵다. 이 모든 것은 돈과 시간의 문제요, 고로 아무리 효심이 지극하다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부모‘탓’을 할 가능성은 높아졌다. 이런 것들을 요구하지 않았으면 ‘원망하지 않았을’ 부모님이지만 시대는 완전히 변했다. 면접 때 영향을 주는 ‘첫인상’에도 부모의 존재가 개입된다. 인상이 좋은 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게 취업의 ‘기본’이 되어버려 누군가에게 ‘불이익’을 주는 일이 실제 발생하니 취업준비생들은 이마저도 경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외모’는 노력으로 쉽사리 변하지 않는 것, 그러니 과학(?)에 의지할 가능성은 당연히 높아졌고 이와 비례하여 부모의 돈은 자꾸만 호출된다.


지난 2004년 ‘스펙’이란 단어가 국립어학원 신조어가 될 때 등장한 취업세트는 고작(?) 3종이었다(학벌, 학점, 영어점수). 이 시절에는 부모에 대한 원망이 그나마 ‘고등학교 때 좀 더 투자하지 않은 것’, ‘대학 때 자신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지 않은 것’ 정도의 차원에서 이루어졌겠지만 지난 십년간 취업세트는 3배로 진화했다. 그만큼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 난지가 더 중요해졌다. 고난을 극복한다는 건 인간으로서 감당해야할 삶의 무게일 수 있겠으나 그 임계치를 넘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헬조선’이란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B는 현재 졸업한지가 2년이 지났지만 취업하지 못했다. 작은 가게라도 하나 해볼까 하지만 집안형편이 그 정도가 아니라서 또 부모를 원망스러워 하고 있다. B는 부모의 도움으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평점 4.1로 졸업을 했지만 세상은 다른 것들도 요구했다.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행정기준으로는 명백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청년이 부모의 ‘중산층 정도에 불과한’ 재산 때문에 겪게 되는 삶의 좌절은 결코 ‘일부’의 이야기가 아니다. 평범한 삶을 누리지 못한다는 건 극도로 가난한 자들만의 경로였지만 이제는 가난하지 않게 자란 자들도 가난해지게 된 세상이다. 부모의 힘은 자녀의 삶을 탄탄하게 만드는데 있어 언제나 중요한 변수였겠지만 지금은 ‘정말로’ 막강해졌다. 앞서 등장한 B의 부모는 자녀의 대학재학 기간 4년간 등록금 4천만 원, 생활비 2천만 원을(그래봤자 한 달에 50만원도 되지 않는다. 휴대폰 요금, 학원비 등을 제외하면 밥값, 교통비 수준에 불과함) 지원했지만 그 정도로는 ‘아무것도 해 준 것 없는’ 부모일 뿐이다. 5억짜리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가난이 죄다”라고 말해야 한다면 그보다 경제적 형편이 좋지 못한 수많은 가정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열심히 산다고 ‘엄청난 부자의 삶’이 보장되지는 않지만 최소한 ‘빈곤하지 않음’을 목표로 삼을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 앞서 등장한 A가 그랬다. 그런데 이 참을만한 불평등이 참을만한 수준을 넘겨 버렸다. 보다 나은 삶을 향한 개인의 여정이 다시금 ‘태어날 때의 조건’ 앞에 막혀버린다.


통계수치는 이런 변화를 그대로 드러낸다. 통계청의 <2015년 사회조사 결과>을 보면 “평생 노력을 하면 본인 세대에게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21.8%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문제는 10년, 100년이 아니라 불과 6년 사이에 그 낙하 폭이 상당하다는 것이다(2009년 35.7% → 2015년 21.8%). 이는 개인이 삶의 불안에 대한 공포를 보다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음을 뜻한다. “생각해보니, 예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정도의 상황과 “작년엔 재작년보다 엉망이었어. 그런데 올해는 더 나빠졌어”라고 말하는 경우는 전혀 같은 상황이 아니다. 후자의 개인들에게는 ‘그래도 나아지겠지’라는 긍정성이 없다. 이는 고스란히 ‘내 자녀 역시 괜찮아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예측으로 나타난다. 2009년에는 48.4%가 그래도 자녀들은 노력이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했지만 2015년에는 그 수치가 31%로 줄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현재의 객관적 상황이 반영된 결과다. 한국사회에서 빈곤층이 중산층 이상이 되는 경우는 22.5%에 불과하다(보건사회연구소, 2014년 기준). 빈곤한 사람 4명 중 1명도 계층상승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조사가 시작된 2006년에는 32.4%였는데 급락했다. 20~40대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2012년 기준), 이들 중 한국사회를 ‘한번 실패하면 다시는 일어서기 어렵다’ 응답한 경우가 64.4%였고 ‘노력한 만큼 보상과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경우는 75.5%, ‘부모의 지위에 의해 자녀의 계층 상승 기회가 닫혀 있는 폐쇄적 사회이다’는 78.8%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초중고 학생들의 부모님들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학부모 1500명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니 성공이나 출세의 요인으로 ‘학벌과 연줄’을 꼽은 비율이 2006년 33.8%에서 2008년 39.5%, 2010년 48.1%로 매년 급증하고 있는 것은 ‘날이 갈수록’ 한국사회가 절망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런 상황은 한국사회에서 중산층이 되는 것도 힘들어지는 현실로 고스란히 나타났다. 1990년만 하더라도 전체의 75% 중산층이었다. 그리고 진입장벽이 도전불가의 수준도 아니었다. 당시의 중산층 가구의 가장은 ‘고졸, 기혼, 평균가구원 4, 홑벌이’가 평균치였다. 그리고 평균연령이 38.2세였다. 하지만 2013년도에는 중산층 비중이 전체의 67.1%로 과거에 비해 줄었다. 이것도 소득범위를 너무 넓게 잡아서 그런 것이지 실제 자신을 중산층에 속한다고 느끼는 '체감 중산층'의 비율은 46.4%에 불과하다. 자격도 달라졌다. 대학졸업은 기본이며 중산층 평균 가구원 수도 3.4명으로 줄었다. 자녀를 두 명이상 양육하면 평범하게 살기조차 힘들어져다는 말이다. ‘맞벌이’가 기본이고 평균연령은 48세였다. 이는 40대가 넘어서도 중산층에 되지 못한 가구가 과거보다 늘었음을 의미한다. 중산층의 자격이 ‘상향조정’되었으니 한 사회의 빈곤탈출이 그만큼 힘들어졌음은 당연하다.


숫자들이 말하는 바는 명백하다. 이 사회는 일을 해도(working) 가난하다(poor). 그렇게 ‘지금’은 ‘과거’보다 더 지옥이 되었다. 지그문트 바우만, 리처드 세넷 등 여러 사회학자들이 이런 사회를 ‘생애에 대한 기획이 불가능’한 시대라 한다. 고등학교‘만’ 나와도 먹고 사는 것이 가능했던 시대가 대학‘까지’ 나와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변했다. 일자리를 구해도 일한만큼 벌지도 못하고 ‘정년’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정년을 다 채워도, ‘오래 살게 된 덕택에’ 노후불안에 대한 공포는 심해졌다. ‘시키는 대로만 열심히 했는데’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이런 전 세계의 특징이 한국에서는 ‘더’ 심하게 드러난다. 괜히 ‘신자유주의가 한국에 가장 잘 착륙했다’고 하겠는가. 흔히들 자본주의 사회를 ‘정글’로 비유한다. 그러나 탈출구라도 존재하는 곳과 이조차도 찾기 힘든 곳은 ‘같은’ 정글이 아니다.


다시 주택문제로 가 보자. 주택문제는 B와 같은 ‘중산층 가정’에서도 손 쓸 도리가 없다. 2014년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 3억 3천 849만원은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을 6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치 모아야 하는 수치다. (물론 그렇게 6년을 모아도 절대 살 수 없다. 그 사이 집값은 임금노동자의 소득인상분보다 훨씬 가파르게 오르지 않겠는가.) 자본주의 사회 어디를 가더라도 집값이 만만치는 않다. 하지만 무슨 저택에 살겠다는 것도 아니고 24평형 아파트 전세 얻는데 저만한 금액이 드는 것은 상식이 아니다. (그리고 저 금액도 서울의 평균일 뿐이다. 서울 강남구, 서초구 쪽에는 24평형 아파트 전세가격이 8억이 넘는다.) 그리고 다른 모든 ‘나쁜’ 수치가 ‘나빠지는 것’처럼 이 가격도 악화일로다. 2004년에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이 1억 5,432만원이어서 그래도 4년만(?) 죽었다 생각하고 저축하면 될 일이었는데 말이다. 소득을 모두 저축한다는 비현실적인 계산에서도 이 정도인데, 실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전세가 아니라 ‘주택매입’을 기준으로 주판을 두드려보면 이건 거의 절망이다. 소득분위를 5분위로 나누었을 때, 가운데인 3분위에 해당하는 사람은 기본적인 지출을 제외하고 1년에 평균 797만 4천 원 정도를 저축한다. 그렇게 27년을 성실히 살면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2억 1,677만원), 43년을 살면 수도권에서(3억 4,700만원), 그리고 59년을 살면 서울에서(4억 7,000만원) ‘평균’에 해당하는 주택을 마련할 수 있다. 어디 이것뿐인가. 검색 몇 번만 하면 불명예스러운 통계지표에서 독보적으로 ‘OECD 1위’를 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민낯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이 많다. 노력할 근거가 없고 도둑질이나 사기 치지 않는 이상 희망이 없는 사회에서 충분히 있음직한 일 아니겠는가.


“왜 4년 만에 졸업을 하지?”라고 묻는 시대의 등장


지금의 청년세대가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특이한 현상 하나를 이해해보자. 졸업을 안 한다는 뜻의 ‘NG족’(No Graduation)은 이미 보편적인 시사용어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영화촬영장에서 외쳐대는 “NG!”(No Good)와 발음이 같은데 원래사용시의 뜻과 너무나도 어울릴 정도로 NG족은 부정적인 세태를 대변한다. 지금까지 대학생활의 기간이 연장되는 지점이 사회적 관심이 된 것은 군대문제와 상관없이 휴학을 하는 경우가 늘어난다든지, 반수를(대학을 다니면서 수능재수) 선택하면서 야기되는 자퇴생의 증가 정도였다. 졸업논문을 쓰지 않거나, 영어시험 점수를 제출하지 않거나, 교수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멀쩡한 학점 하나를 F처리해서 졸업조건을 고의적으로 누락시키는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졸업유예는 일상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NG족이 2006년도 ‘올해의 신조어’로 여러 언론매체에 등장했을 만큼 졸업유예는 2000년대 중반이후의 ‘암울해진’ 대학생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된다.2013년 12월 12일자 <한국대학신문>이 국회 교육과학문화관광위원회 박성호 새누리당 의원이 공개한 ‘대학별 졸업생 등록학기 수 현황’ 자료를 바탕으로 보도한 “서울대도 피해갈 수 없는 ‘취업한파’ - 인문대 졸업자 절반이 10학기 이상 등록한 ‘5학년생’” 기사를 보자.


1. 올해 서울대 졸업자 3495명 가운데 10학기 이상 등록한 학생의 비율은 34.1%(1192명)에 달했다. 이는 2009년 25.2%(979명)보다 5년만에 8.9%p나 증가한 수치다. 단과대별로 인문계열 ‘5학년생’ 비율이 자연계열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아 취업난을 실감케 했다. 인문대가 2009년 34.3%에서 2013년 49.8%로, 사회대가 30.6%에서 41.3%로, 경영대가 32.8%에서 46.7%로 급증했다. 반면 공대(29.2→28.0%)와 자연대(26.2→26.8%)는 ‘5학년생’의 비율 변화가 거의 없었다. 9학기 등록자 현황을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인문계열 단과대학의 경우 거의 80%에 육박했다. 2013년 졸업자 가운데 9학기 등록자 비율은 법대(79%)가 가장 높았고 이어 인문대(77.9%), 경영대(77.4%) 순이었다. 공대(54.1%)와 자연대(48.7%)는 절반가량이 4년 반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2. 29학기로 좁혀보면 전체평균이 59.7%이며 인문대, 경영대 등은 “남들 다 하니까” 유예한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자연대, 공대에서나 “아직 절반은 유예 안 해”라고 자조가 허락된다. 물론 이는 대학 전반적 풍토다. 이화여대는 53%, 연세대는 46%가 9학기 이상을 등록하고 졸업한다. 서강대의 경우 졸업자 중 유예자 비율이(2011년→2013년) 인문학부(42→57%), 사회과학부(42→50%), 경제학부(32→53%), 경영학부(31→43%), 커뮤니케이션학부(40→63%) 등으로 확인되었는데 이런 수치들을 종합하면 전체 대학까지는 아니지만 ‘서울권 일부대학은 이미 유예비율이 절반을 넘었다’고 할 수 있다. 인문계열이 더 높은 이유는 당연히 취업문제가 타의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이는 스펙관리를 더 철저히 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는데 복수전공으로 경영학 계열까지 선택해서 공부해야 하는 상황은 절대적인 시간 개념에서 8학기가 부족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졸업을 위해 필요한 120~130학점 중 100학점 정도를 전공과목으로 취득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학교 다니면서’ 할 수 있는 건 학점관리와 토익시험 응시 정도다. 재학기간 중 2~3학기 정도 가능한 휴학을 어학연수, (취업용) 봉사활동 등에 활용하 공모전 응시 및 자격증 취득을 하기 위해서라도 ‘졸업유예’는 당연해진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5년 만에 졸업하면 '집안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걱정했지만, 요즘은 4년 만에 졸업하면 '왜 4년 만에 졸업하지?'”라고 묻는 시대다. 고용정보원의 <2015년 4월 고용동향 브리핑>을 보면 전체 대학생 중 휴학 없이 졸업한 사람은 30.9%에 불과했다. 나머지 69.1%는 휴학과 유예 등을 통해 어떻게든 졸업을 연기한다. 평균 졸업기간이 남자의 군복부 기간을 제외하고도 5.2년이다. 누구든지 평균 1.2년을 ‘더’ 대학을 다닌다. 사실상 ‘모든’ 대학생이 휴학을 하고 ‘상당수’가 졸업유예를 하는 시대다.


지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졸업유예가 대수겠는가


별 다른 고민을 하지 않아도 이유를 추론하는 건 어렵진 않다. 일을 해도(working) 가난한(poor) 시대에는 ‘어떤 곳’에서 ‘무슨 일’을 하는 것이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중요하다.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를 따져야하고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를 고려해야 한다. 이와 비례하여 전체의 학력상승이 나타나지만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바늘구멍을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들만 적체된다. 투자한 비용을 고려하면 쉽사리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릴 수도 없다. 이건 눈이 높아서가 아니라 ‘다른 쪽’이 워낙 엉망이기 때문이다. 이제 청년의 문제를 ‘예전에도 그랬다’는 식으로 생애사적 위기의 차원에서 쉽사리 규정할 수 없다. “기성세대가 어떤 삶을 살아왔든지 그와 별반 관계없이 그들의 자식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은 천지개벽했다.” 지금은 엄청나게 사교육 받아 이름 있는 대학을 가서 학기를 초과하면서까지 취업을 준비한다. 너무나도 비정상적이다.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문제를 바탕으로 ‘비정상화의 일상화’가 가능한 이유를 살펴보자.


1980년대에는 중소기업 노동자들도 대기업 노동자 임금대비 97%의 수준의 소득을 보장받았다. 이것이 1994년에는 77%로 떨어졌고 2014년에는 60%까지 급락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나라이니 대기업과 동일한 대우를 기대할 순 없지만 ‘차이’가 있다면 이는 감당할만한 수준이어야 한다. 대졸 신입사원 월급이 300만원이 경우와 180만원인 경우는 그렇지 않다. 중소기업을 가는 것이 곧 삶의 질이 추락됨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 존엄성의 문제다. 그런데 현재 전체 노동자의 81%가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일자리를 구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10명 중 ‘2명’에 포함되어야 하는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다. 단지 임금만 차별 받는 게 아니다. 대기업의 경우 국민연금 가입률이 95%가 넘지만 중소기업은 64.1%에 불과하다. 한국사회에서 중소기업에서 일한다는 건 현재는 물로 노후까지 불안함을 예약하는 꼴이다. 유급휴가 역시 대기업은 93.4%가 혜택을 보았지만 중소기업은 44.4%만이 당연한 권리를 행사한다. 휴가를 쓰는 만큼 월급이 깎으니 제대로 쉴 수도 없다. 2%에 불과한 중소기업 노동조합 조직률을 볼 때 문제가 있다고 어디에 하소연도 못한다. 쉽게 말해, 지금의 대학생들이 대기업을 고집하는 것은 ‘욕심’이 아니라 일종의 ‘생존본능’이다.

여기에 비정규직 문제까지 고려하면 ‘대학생들의 졸업유예 전략’은 쉽게 이해된다. ‘임금이 낮은’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이 될 바에는 다른 기회를 엿보기 위해 ‘강의도 듣지 않으면서 대학에 돈을 납부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사회마다 여러 이유가 중첩되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구분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임금의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비정규직’은 쉽사리 인정할 만한 수치가 아니다. 이들의 월평균 임금 149만 7천원은 정규직 대비 55.8%에 불과하다. 이 수치도 정부통계이고 노동자 통계에 따르면 2014년부터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대비하여 절반도 되지 않는 49.9%의 급여를 받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과 비교하면 40%밖에 되지 않는다. 대기업 대졸신입사원 월급이 300만원이라면 120만원 받는 셈이다. ‘밥만 먹고 살라’는 뜻이다. 그 차이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2002년도에는 정규직이 100만원을 받을 때 비정규직은 67만 1천원을 받았다.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는 상황이라 다들 그랬는데, ‘더’ 나빠졌다. 그래서 노동자 중위계층 급여의 3분의 2 이하로 급여를 받는 ‘저임금자 비율’도 비정규직 정규직 노동자에서 압도적으로 높다. 2015년 기준으로 정규직 1062만 명 중 저임금 종사자는 70만 명인데, 비정규직 노동자 868만 중 402만 명이 저임금 노동자다. 미래마저 어둡다. 한국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매우 낮다. OECD 16개 국가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비정규직으로 채용된 3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율이 22.4%에 불과해, 평균 53.8%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정규직으로 전환은 커녕 해고되기 일쑤다. 한국에서는 비정규직으로 채용 3년 내 해고될 확률이 26.7%인데 이는 평균 16.9%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비록 비정규직이라도 ‘나중에’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크고, 해고될 가능성은 낮다면 대학생들은 졸업유예보다 ‘어디든 취업부터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아니다. 정규직에 비해 6분의 1 수준인 비정규직의 노동조합 가입현실을 고려하면 중소기업의 경우와 마찬가로 문제가 풀릴 여지도 없다. 그러니 8학기가 끝나갈 때, 구직성과가 좋지 않으면 ‘취업준비생’ 신분을 더 늘려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봄직 하다.

불안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국가가 ‘공기업’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보면 쉽게 이해된다. 2010년 이후 4년간, 한국의 30대 공기업에서 정규직은 1.2%, 비정규직은 12.4% 증가했다. 이는 국가가 앞장서서 고용의 풍토를 ‘비정규직화’ 하겠다는 의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러니 일반기업이 “더 이상 해고할 정규직이 없는 상황”인건 놀라운 일도 아니다. 말 그대로 ‘헬조선’이다. ‘지옥에서 살아남고자 하는데’ 졸업유예가 뭐가 대수겠는가.


의심하라! 그것은 신(神)이 선사한 사람의 권리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제도적인 도움을 바탕으로 언급된 ‘나쁜 지표’들이 좋아져야 한다. 제도적 도움을 넓은 의미에서 정책이라고 본다면 이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물론 정치인들이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이겠지만 그 정치인이 ‘대변하는’ 민심은 결국 개인이 평소 어떤 여론을 생산하기 위 노력 했는가와 무관치 않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들은 자신의 삶을 늘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일상에 대한 문제제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비판적’으로 살아간다는 게 한국사회가 만만치 않다. 특히! 종교는 이를 무슨 죄악처럼 여긴다.


‘비판적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은 (바로 신이 직접 만드셨다는) 인간의 ‘자격’이다. 인간은 침팬지와(심지어 ‘쥐’하고도) 유전자의 99%가 흡사하다. ‘다른’ 1%는 바로 이성의 유무다. 이성은 언어를 만들고 추론능력을 만들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배양한다. 그래서 인간만이 ‘공동체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본능을 억제한다. 그렇기에 인류는 “시행착오를 줄이며 생물학적 진화와는 비교되지 않는 엄청난 속도로 사회적 진화를” 할 수 있었다. 사회학자 김찬호는 『사회를 보는 논리』에서 다음과 같이 인간의 특징을 설명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점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는 지적인 호기심이 매우 강렬하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의 생존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끊임없이 뭔가를 새롭게 알고 싶어 한다. (…) 인간은 주어진 것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시도 속에서 문화를 발전시켜온 것이다. 질문할 수 있는 능력! 바로 이것이 인간 진화의 비결이다. (…)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삶과 사물의 이치를 되묻는 작업만이 아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서 제기되고 내게 던져진 질문 그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단계로도 나아가야 한다. 오답도 문제지만 오문(誤問), 즉 잘못 던져진 질문도 그에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타인이 내게 던진 질문에 대해 과연 그것이 정당하고 필요한 질문일까하고 물음표를 달아보는 태도가 요구된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실 타인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주어진 질문도 우리를 구속하지만, 스스로 던진 질문 가운데도 잘못 던져진 것이 얼마나 많은가. (….) 질문 자체에 질문할 수 있는 힘, 그 지적인 에너지로 우리는 생각과 삶의 자유를 확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불’이란 걸 이해해 보자.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모든 동물들은 ‘불’을 무서워하고 피한다. 본능에 충실한 반응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를 영리하게 사용했다. 직접적 위협을 가하는 경우를 제외하니 ‘불’은 무궁무진한 효용이 있었다. 음식에 ‘가열’하면서 더 건강해졌고, 그래서 수명이 연장되니 ‘미래를 위해서 현실을 희생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인간은 ‘불’을 적의 위협을 막아내는 도구이자 공부를 위해 어두운 밤을 밝히는 빛으로 응용했다. 때론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서로간의 갈등을 씻기도 하고 ‘촛불시위’때는 강력한 사회적 저항의 무기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 ‘불’을 아주 거대한 사회적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해보자. 인간은 그 고정관념을 합리적으로 의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깨부수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인간을 “신이 정해준 운명에 도전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온 유일한 동물”이라 한다. 따라서 인간의 삶 안에는 언제나 ‘갈등과 긴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성장통’을 바탕으로 인류는 전진한다.


‘확신하지 않는 자세’를 인간의 ‘능력’으로, ‘자격’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언제나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명심하길 바란다. ‘집단사고’(group thinking)는 미국의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rving Janis)의 개념이다. 재니스는 미국의 케네디 정부가 쿠바의 피그만을 무력 침공했다가 혼쭐난 사건을 통해 ‘아무리 지성들이 고민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집단의 결정은 ‘멍청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미국은 자기 바로 앞에서 사회주의 깃발을 보란 듯이 꽂고 있던 쿠바가 눈에 가시거리였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쿠바를 어떻게든 해결(?)할 방안을 준비하고 있었다. CIA는 무력으로 침공하여 내부갈등을 통한 체제개혁이 가능하다는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물론 쉽사리 실행에 옮길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젊음’을 무기로 한 ‘케네디 정부’는 자신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자 이 카드를 사용하기로 한다. 백악관 회의실에 미국에서 제일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모여서 논의를 했고 사실상의 만장일치로 ‘피그만 침공’을 실행에 옮긴다. 이들은 ‘우리처럼 잘 나가는 집단에서’ 오류를 범할 리 없다는 ‘극단적 낙관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완벽하게 실패한다(1961년). 작전에 참가한 1400명 중 1200명이 ‘생포’되었고, 미국정부는 이들을 돌려받기 위해 쿠바에 5,300만 달러 수준의 물자를 제공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작전실패는 예정된 것이었다. 미국정부는 만약 문제가 될 때,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빌미를 만들기 위해, 1400명의 요원들을 ‘쿠바망명자’로 구성했다. 여기서 일차 문제가 발생했다. 과테말라에서 훈련을 한 이들은 시작부터 불안해했다. ‘왜 미국인들은 여기에 없는 거지?’라는 지극히 당연한 의문이 등장했고 이는 ‘잘못되면 우리 모른 척 하는 것 아닐까?’라는 합리적 의심으로 이어졌다. 작전이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자 대다수가 즉시 ‘항복’을 선택한데에는 이런 불신이 존재하고 있었다. 또 다른 실수는 미국정부가 ‘쿠바’라는 국가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쿠바’는 엄연한 ‘국가’의 틀을 탄탄히 갖춘 나라다. 이런 ‘쿠바’를 사실상 비(非)정예요원을 투입시켜 ‘전복’시킬 수 있다는 것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었다. 쿠바가 무슨 ‘부족단체’란 말인가? 그리고 ‘무려’ 1400명을 투입시키면서도 내부분열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순진한 발상과 그리고 ‘고작’ 1400명을 가지고 무력침공이 성공할 것이라는 이상한 확신이 ‘한 명의 독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답게 케네디정부는 열심히 토론을 했다. 그러나 ‘결속력이 너무나 강한 것’이 문제였다. 정당한 비판이 ‘우리가 과연 실수할 것 같아?’라는 반론에 막히고 합리적 의심을 ‘너 겁쟁이구나?’라는 조롱하는 곳에서 ‘옳은 결정’이 등장할 가능성은 낮다. ‘집단사고’는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과 비교되는데, 후자는 다수의 의견이 ‘모여’ 보다 지혜로운 결과물이 창출됨을 뜻한다. 하지만 집단이 모였다고 ‘지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어도 그 집단이 추구하는 목적과 이를 달성위한 과정의 철학이 어떤가에 따라 그 결과는 최악일 수 있다.


당신이 한국인이라면 이 문제를 더 무게감 있게 이해해야 함이 마땅하다. 왜냐하면, ‘결속력이 높을수록 집단사고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볼 때, 한국사회는 이 ‘결속력’이라는 것의 이미지가 매우 신성하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가 그렇다!) 조직의 치부를 드러내는 ‘내부고발자’를 ‘고자질쟁이’ 정도로 취급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 것은 한국사회가 ‘결속력’에 대한 과잉된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는 증거다. 전체를 위해 개인의 당연한 권리를 희생하는 것이 한국처럼 ‘미덕’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면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당연한 요구’가 ‘이기주의’로 오해되기 쉽다. 결국 ‘논리’와 ‘상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집단의 가치’가 늘 추종될 가능성이 높고 이런 사회는 ‘집단사고’는 구조적으로 자주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비판적 사고’를 일단 ‘내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한 다음’으로 고려하는 부차적인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비판’을 추후개념으로 미루게 될 때, ‘현실성’이라는 덩어리는 집요하게 개인의 일상을 지배한다. 그 결과는 ‘영원히’ 먹고사는 문제에만 개인을 집중시키는데, 좀처럼 이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그리고 설사 추후에 ‘여유가 있는 삶’이 있다 하더라고, 이미 그때가 되면 ‘비판’은 매우 어색한 개념이 되어 있다. 비판적 사고, 그건 ‘이성’에 충실한 지극히 인간의 자격이자, 나아가 자신이 동물과 다른 인간임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오늘의 지혜가 내일의 어리석음이 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니까 언제나 당신의 믿음을 의심하길 바란다(Suspend Your Belief!). “인류가 성인이라 칭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기성체제에 순응하지 않은 혁명성”이었음을 기억하자. 신이 인간을 그렇게 ‘동물과 구별되게’ 만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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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윤실

[2016 기윤실 포럼] 한국경제 양극화 진단과 대안(4/1) 자료집 공유합니다 



지난 4월 1일, 기윤실은 "한국경제양극화 진단과 대안"을 주제로 2016년 기윤실 포럼을 열었습니다. 환경재단 레이첼 카슨홀에서 열린 이 포럼에서는 1. 한국경제발전과정을 통해 본 한국경제양극화 현상의 원인 _ 백종국 교수(경상대 정치외교학과, 기윤실 공동대표) 2. 한국사회 경제적 갈등과 불평등함정의 극복방안 _ 윤덕룡 연구원(대외경제정책연구원, KPI 부원장) 님의 발제로 구성되었습니다. 



* 포럼 자료집은 첨부된 PDF파일로 내려받기 하실 수 있습니다. 


* 윤덕룡 연구원의 발제 본자료는 PPT로 구성되어있으며, 포럼 당일 발제내용의 녹취/요약 텍스트는 별도의 PDF파일로 내려받기 하실 수 있습니다. 





[2016 기윤실포럼] 한국경제양극화 진단과 대안(160401).pdf


[2016 기윤실포럼] 한국사회경제적갈등과 불평등함정의 극복방안_윤덕룡.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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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윤실

‘목회자 소득세 신고 어렵지 않아요’ 2015년 안내책자 발간


목회자소득세신고_안내서(2015년)_웹용.pdf


기독경영연구원,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교회개혁실천연대, 바른교회아카데미, 재단법인 한빛누리가 2005년 한국교회의 재정 건강성 증진을 통한 온전한 교회로서의 대사회적 신뢰회복을 목표로 결성한 <교회재정건강성운동>에서는 올해 주요사업 중 하나로 "목회자 소득신고 지원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종교인 과세와 관련해 다양한 입장이 있지만, 법리적/종교적인 해석을 넘어 자발적으로 소득세를 신고하고자 하는 목회자들이 있고, 그분들의 소득세 납부를 돕기 위해 지난 2012년 나온 책자의 개정판으로 2015년 안내책자가 발간되었습니다.

이번 안내책자는 소득세를 신고하려는 목회자들에게 최소한의 절차를 안내하는 책자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교회재정건강성운동>에서 상담해 드리고 있습니다.


• 교회재정건강성운동 02-741-2793 / protest@protest2002.org / www.cfan.or.kr

• 목차
1. 소득세 신고 및 납부 흐름도
2. 지급 항목별 분류 및 공제 금액 계산
3. 원천징수이행상황신고서 작성
4. 신고(전자신고/방문접수/우편접수)
5. 납부(홈택스 전자납부/인터넷뱅킹 전자납부/납부서 작성 후 금융기관 창구납부)
6. 고유번호등록신청
7. 자주묻는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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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교회신뢰운동] 부교역자처우개선운동


교회와 부교역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도록


기윤실은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한국교회 부교역자의 사역현황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총 949명의 응답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결과 내용 자체가 센세이션하다고 할 수는 없고 어쩌면 우리가 모두 예상했던 응답들이 나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결과는 교계에서 나름 반향을 일으키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국교회,부교역자를 생각하다>2015 기윤실




그런데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나서 의외의 항의를 받았습니다. 개척교회를 하시는 목사님들께서 “개척교회 목사에 비해 부교역자들은 그래도 살만한데 무슨 소리냐”며 항의를 하셨습니다. 그 중에는 표현이 거친 항의도 있었습니다.


저희는 부교역자가 있는 중대형교회에서 항의가 있을 것을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중대형교회로부터는 항의가 없고, 개척교회 목사님들께 항의를 받으니 다소 난감했습니다. 개척교회에서 어려운 중에 사명을 갖고 열심히 사역하시는 목사님들을 상심하게 한 것은 아닌지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러나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확인한 부교역자들의 삶 역시 녹록치 않았습니다. 넉넉지 않은 사례비, 언제 교회에서 나갈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정한 삶, 그리고 차마 말로 다 못 할 몰인격적 대우들을 호소하신 부교역자들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문제가 그렇겠지만 교회 문제 역시 단순하지 않습니다. 어느 한 가지 원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원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막상 부교역자들의 사역 여건을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섣부르게 접근하다가는 예상치 않았던 분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방법을 찾기 위해 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설문조사를 발표할 때 발제를 맡아주셨던 강문대 변호사, 고형진 목사, 배덕만 교수, 조성돈 교수께서 흔쾌히 참여해주셨습니다. 위원장은 기윤실 공동대표이신 박은조 목사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위원회는 몇 번의 모임을 통해서 지난 설문조사와 결과 발표에 대한 반응들을 살펴보고 논의 끝에 부교역자를 고용할 때 구체적인 사역합의서가 필요하다는데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부교역자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불안정한 삶 때문입니다. 사역합의서가 있을 경우 교회와 부교역자 모두 사역 내용 및 기간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안정적인 사역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사역합의서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상식에 상응하면서도, 사회의 그것과는 달라야 하겠습니다. 당사자를 소위 ‘갑’, ‘을’로 지칭하거나, 딱딱한 조건들이 삭막하게 배열되도록 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교회의 정서와 현실을 반영하여, 교회와 부교역자들에게 모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지혜롭게 잘 진행되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글_ 박제민 팀장 


 

관련글보기 >>


2015/03/26 - 부교역자의 사역 및 생활환경 개선합시다

2014/12/11 - 한국교회 부교역자의 사역현황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합니다.(1/11까지)

2015/05/15 - [회원님께 드리는 서신] 한국교회 부교역자를 생각하다 설문결과와 자료집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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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윤실

[비전메시지]

한국교회의 사회적 책임

 

 

글 _ 백종국 공동대표

 


복음과 사회적 책임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이에 합당한 책임이 수반된다. 보통 “청지기 사상” 혹은 “빚진 자 사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창조세계를 맡은 자로서의 책임이 강조되고, 후자의 경우에는 은혜로 구속함을 입은 자들이 가지는 불가피한 숙명으로 강조되고 있다.

세상에 대한 교회의 사명 즉 “증거의 사역”을 위해서는 ‘총체적(holistic)' 노력이 필요하며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사회적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믿음에 합당한 삶의 모습을 그 신앙의 증거로서 보여야 한다. 초대교회 이래로 모든 기독교 공동체들이 이러한 실천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기독교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 모든 기독교인들에게는 일정한 사회적 책임이 부과됨을 강조하였다.

 

존 스토트의 정리에 따르면, 미국 기독교는 한동안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동으로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을 등한히 하는 근본주의적 신앙운동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면서 다시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반성이 나타났다. 1966년에 개최된 미국 세계선교회의가 휘튼 선언을 채택하였고, 1974년 7월 스위스의 로잔에서 열린 세계복음화국제회의에서 채택한 로잔 언약에는 복음전도와 함께 정치사회 참여가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선언하였다. 또 1982년 6월 그랜드 래피드에서 개최된 '복음전파와 사회적 책임관계협의회(CRESR)'는 ”복음은 뿌리이며 복음 전파와 사회적 책임은 모두 그 열매“라고 했다.

 

사회적 책임 실천 수단의 다양성은 사고가 잦은 교차로를 다루는 일과 유사하다. 잘못된 교차로로 인해 사고가 나서 죽는 사람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그들의 영혼 구원만을 논의하는 위선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다. 긴급 구조과 함께 장기적인 제도개혁의 비전과 이 비전을 유지하기 위한 의식개혁의 노력도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해야 할 소명이다. 스토트의 주장대로 “진정한 기독교의 사회참여는 사회봉사와 사회활동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 분명하다.” 보다 완전한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이 태도는 성경의 지지를 받고 있다.

 

사회적 책임은 복음 그 자체에서 연역적으로 파생된다. 진실과 정의뿐만 아니라, 정의와 평화, 그리고 인애의 마음은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수행해야 할 신앙적 삶의 증거이다. 예레미야서 23장의 표현처럼, “하나님은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실현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이는 거룩한 하나님의 공유적 속성이다. 그러므로 기독인들의 사회적 책임은 이러한 인애와 공평과 정직에 대한 연구와 실천에 있다고 요약할 수 있다.

 

 

양극화 해소, 평화통일과 사회적 책임
한국교회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하다. 신앙의 공공성을 간과하거나 폄하하는 신학교에서 배출된 목회자들, 또 그들에게 이원론적 교육을 받은 성도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양극화 해소는 한국기독교가 당면한 가장 우선적인 사회적 책임이다. 국민주 력기업이 주도하는 수출대체산업화 전략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그 특성상 독점의 강화로 인한 경제적 양극화라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심화되었다. 안타깝게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빈익빈 부익부를 강화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양극화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제 경제적 양극화는 사회적 양극화와 지리적 양극화, 문화적 양극화, 이념적 양극화를 복합적으로 초래하여 국가적 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중이다.

 

한반도의 평화통일도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수행해야할 사회적 책임이다. 1994년 2월에 개최된 기독교학문연구회와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의 통합학회에서 이만열 교수님은, 남북통일이야말로 마치 모세가 출애굽이라는 소명을 받은 것처럼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시대적 소명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복음주의적 지도자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통일문제에 있어서 여전히 분열되고 왜곡되어 있다. 대북지원, 북한인권, 북핵 등의 문제는 남한 내부의 권력 획득 문제와 연결되면서 소위 “남남갈등”을 더욱 확대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아쉽게도 한국교회의 다수는 이 갈등의 치유에 공헌하기는커녕 도리어 편승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은 양극화 해소와 한반도의 평화통일이라는 주제에 한정되지 않는다. 헌법 개정, 국제적 테러의 해결, 동북아 경제공동체 구성, 이민자의 국적 부여, 효율적인 환경보호정책, 국제기구와 NGO 지원, 지역주의 극복 등 수많은 과제들이 우리 앞에 산적해 있다.

 

공의의 구현과 사회적 책임
한국은 제3세계 국가들 중 유일하게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국가이다. 경이적인 경제성장은 두말 할 나위도 없고 제3세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실제적인 정권교체가 발생했었다. 1980년대 이후 한국교회는 이러한 사회 발전의 추세가 무색하게 뒤떨어지고 있다. 복음화와 성령폭발과 순복음과 제자훈련을 내세웠으나 사실은 군사독재를 지지하거나, 성장제일주의의 천민자본주의를 추종하거나, 반지성적 열광주의라는 세속화의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세를 틈타 이단종파의 활동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와 동시에 신앙의 이름으로 포장하고 정당화하는 세속화의 사상과 주장들이 교회 안에 정착하고 있다. 심지어 노골적으로 권력에 아부하는 정치 이데올로기들이 신앙 강연 혹은 부흥회의 형태로 교회와 교회단체를 휩쓸고 있었다. 이들의 주장은 기독교인들에게 익숙한 종교적 수사로 가득 차 있지만 실제로는 갈등과 증오를 부추기는 허위의식들이다.

 

현재 한국교회의 모습은 다니엘서 2장에 나타나는 느브갓네살의 신상을 연상케 한다. 장엄하고도 휘황찬란한 신상의 머리는 정금이었으나 그 이하로는 갖가지 혼합물로 구성된 신상이었다. 표방하는 바는 참된 신앙이지만 그 이하의 실체는 온갖 세속적 욕망과 이론으로 혼합되어 있다. 미로슬라브 볼프가 지적하듯이, 한국교회는 현재 해야 할 일은 하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신앙의 기능장애에 빠져 있다.

 

한국교회가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는 자유와 평등과 독립의 상징이었으며, 한국전쟁과 개발독재 치하에서는 고통 받는 자들의 위안처이며 민주화를 위한 최후의 보루였다. 미래에 있어서 한국교회는 복지의 공급자요 공동체 내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는 균형자가 되어야 한다. 권력을 추구하는 정부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한국교회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시민단체들을 육성하는 기반이다. 몇몇 선구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한국교회는 시민단체의 산실이며 요람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시민운동의 담당자로서, 내부적 비판자로서, 그리고 후원자로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과 시민단체가 견제와 균형의 삼각점을 이루면서 민주주의와 복지체제를 이룩할 수가 있다. 이 균형의 실천을 통해 한국교회는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을 원만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며, 주님 앞에 서는 날 잘했다고 칭찬받는 종이 될 것이다.

 

 

이 글은 2015년 6월 26일 IVF 학사회 블로그에 개제되었던 글을 편집한 글입니다. 전문은 IVF학사회(GCF) http://ivfgcf.tistory.com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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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실 포럼] 양극화 해소를 위한 성서적 실천(11/27) 자료집
   

2015년 11월 27일(금) 오후2시, 삼각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강당에서 진행되었던 <양극화 해소를 위한 성서적 실천> 자료집 공유합니다.

 

 

● 일시 : 2015년 11월 27일(금) 오후 2시

● 장소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강당

● 주최 : 기독교윤리실천운동

● 협력 :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뉴스앤조이  목회사회학연구소  복음과상황

● 순서 :

 

인사말 _ 백종국 공동대표 (기윤실 공동대표, 경상대 정치외교학 교수)

• 발제① 구약에서 살펴 본 공평과 정의의 개념 _ 김근주 연구위원(기독연구원 느헤미야)

발제② 사회 양극화와 평화에 대한 신약성서적 통찰 _ 차정식 교수(한일장신대학교 신학부)

발제③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한 기독교윤리적 모색 _ 고재길 교수(장신대 기독교와문화)

 

 


자료집 내려받기

 

▼▼▼

 

양극화해소를 위한 성서적 실천_자료집(15112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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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실 홍보포스터를 제작했습니다. 교회 또는 단체 등에 기윤실을 알리고 싶으신 분들은 신청하시면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기윤실 사무실을 방문하여도 받아가실 수 있습니다. 이 게시물에서는 포스터가 담고 있는 의미와 취지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 기윤실 포스터 신청하기




포스터는 A2(420mmx594mm) / 아트지 150g 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기윤실 홍보포스터 신청하기



<포스터가 담고 있는 의미>


1. 전체느낌

캘리그라피와 수채화를 이용하여 무겁지 않고 경쾌하고 생동감이 있는 느낌의 포스터입니다. 기윤실이 무겁고 다가가기 어려운 단체가 아니라 다가가기 쉬운 친근감있는 단체임을 표현했습니다. 


2. 평  지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이사야 40장 4절]

기윤실은 2017년까지 한국사회 갈등의 핵심인 "양극화"를 해소하는데 역략을 집중해서 운동을 펼칩니다. 이사야서의 말씀처럼 평탄한 평지가 되는 것을 형상화한 평지의 이미지입니다. 



3. 빗방울

건강한 토양에 '정직한 그리스도인, 신뢰받는 교회,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라는 기윤실의 사명을 담은 빗방울이 내리는 모습입니다. 




4. 나  무

건강한 토양에 맑은 비가 내려 나무가 자라고 열매를 맺습니다. 게다가 나무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더불어 살아갑니다. 





5.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이러한 운동을 해나가겠습니다. 높고 낮음이 없는 평탄한 평지를 만들고 '정직, 신뢰, 정의, 평화'의 가치를 가지고 맑은 빗방울을 내려, 더불어 여러 나무가 함께 자라고 다양한 열매는 맺어 나가겠습니다. 





☞ 기윤실 포스터 신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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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과 한국교회 포럼] 남형두 교수 기조발제 요약 


 진리는 사되 팔지는 말며


정리 _ 박제민 팀장

 

* 이 글은 지난 8월 27일(목), 백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에서 열린 <표절과 한국교회 포럼> 기조발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표절과 한국교회 포럼> 자료집은 기윤실 홈페이지 (www.cemk.org)에서 내려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잇단 설교 및 신학서적 표절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표절 문제에 대한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교회개혁실천연대,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청어람ARMC는 지난 8월 27일(목) 오후 7시, 백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에서 <표절과 한국교회> 포럼을 개최했습니다. 이날 포럼에서는 남형두 교수(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가 ‘신학의 학문적 보편성과 종교저작물로서의 특수성’을 주제로 기조발제를 진행했습니다.


남형두 교수는 지적재산권을 전공한 표절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남 교수가 쓴 <표절론>이란 책은 이번 표절 논란 중에서도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측이나 이를 해명하는 측에서 모두 참고 및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남 교수는 최근의 논란에 대해서 일부러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자칫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데요. 남 교수는 발제를 시작하기 전에 "일단 손에 든 돌을 내려놓자"면서 지난친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한국 교회의 표절을 지켜보자고 당부했습니다.


우선 남 교수는 저작권법과 표절을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남 교수는 저작권법의 목적과 정의에서 볼 수 있듯이 저작권법은 단순히 저작권자들의 보호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 발전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며“공표된 저작물은 보도와 비평, 교육과 연구 등을 위해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얼마든지 이를 인용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인용하는 경우 합리적이라고 인정되는 방법으로 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경우를 표절로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작권법 제1조(목적) 이 법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남 교수는 저작권법에 저촉되는 경우 민형사 책임을 지지만, 표절로 증명되는 경우 대다수 민형사 책임보다는 윤리적 책임을 지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면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피표절자의 동의가 표절하는 이들의 면책 사유는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박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모 목사의 경우, 표절 시비가 불거지자 자신의 스승인 교수가 연구논문의 내용을 참고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주장했지만 표절 당한 사람의 용서나 허락이 표절을 한 사람의 표절을 면책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 남 교수는 1990년대 초반 있었던 미국 연방법원의 '포크너 박사 판결' 일화를 얘기했습니다. 지도 교수가 제자에게 "내 논문을 가져다 학위 논문 작성에 쓰라"고 허락해서 제자가 이를 그대로 가져다 썼지만 결국 그 논문은 심의 과정에서 표절로 판명됐고, 제자는 박사학위를 받지 못했는데요. 이에 불복한 제자가 소송을 걸었지만, 미국 연방법원은 표절당한 사람의 용서가 표절 책임을 면제해 준다면, 겨울철 하얀 눈밭에 아버지 발자국만 따라가는 아들은 그 주제에 대해 연구하려는 노력도 없이 아버지의 연구물을 복제할 것이라면서 표절 책임은 저자 동의로도 면책할 수 없다고 명확히 판결했다는 것입니다.


또 저자가 서문에 '누구의 도움을 받았다', '누구에게 힘입은 바 크다' 등의 문장으로 출처 표기를 대신한 경우도 있는데요. 남 교수는 이러한 포괄적인 출처 표시는 제대로 된 출처 표시가 아니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남 교수는 이를 '학은형(學恩型) 표절‘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아무리 원작자가 표절을 허락했다 하더라도 정직하게 글을 쓰는 학계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표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는 ‘일반 지식’인 경우 출처 표기를 달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논문에 ‘1+1=2’라는 내용이 있는데 그것을 그대로 인용할 경우 구태여 출처 표기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표절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조건 표절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남 교수는 표절을 ‘전형적 표절’과 ‘비전형적 표절’로 나눴는데요. 전형적 표절의 경우 해당 분야의 일반지식이 아닌 타인의 저작물 또는 아이디어를 적절한 출처 표시 없이 자기 것인 양 부당하게 사용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비전형적 표절은 ‘전형적 표절’이 아닌 경우로 출처표시를 제대로 했더라도 정당한 범위를 벗어나 인용한 경우와 자기표절, 중복게재, 부당한 저자 표시 등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 교수는 교회법과 세상법이 충돌하는 경우 교회는 더욱 저작권 및 표절 여부를 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에 목적이 있더라도 저작권 및 표절과 충돌해서는 안 되며 이를 벗어나는 경우 기독교의 본질은 훼손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진리는 사되, 팔지는 말아야 한다’는 잠언(23:23)의 말씀처럼 학자들이 저작권 및 표절과 관련해서 권리와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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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실 열매소식지 2015년 5-6월호가 발행되었습니다. 



기윤실소식지(15_05 06)_웹용.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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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년, 기독인 연합예배 성명서]

 

 

세월호 참사 1년, 시행령 폐기, 선체 인양, 배•보상 일정을 중단하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1년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한 순간에 잃은 피해자 가족들에게 지난 1년은 끔찍한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고통 속에 울고만 있을 수도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왜 단 한 사람도 구조하지 않았는지 이유조차 설명하지 못하는 정부의 거짓과 무책임 때문입니다.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의 희생을 헛되이 할 수 없기에,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기에 가족들은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많은 국민이 그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분노했습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는 말씀에 따라 많은 그리스도인 역시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에 함께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공통의 고통의 경험으로 하나가 되었고, 광화문과 청운동에서, 안산과 팽목항에서, 전국 곳곳에서 진상 규명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상황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진상 규명은 요원하기만 하고, 9명의 실종자는 여전히 차가운 바다 속에 남아 있습니다. 정부와 국회는 피해자 가족들과 6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간절히 요구한 특별법을 누더기 특별법으로 만들더니 이제는 그마저도 무력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 3월 27일 <4·16 세월호 참사 피해 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하였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입법 예고한 시행령은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 범위를 ‘정부 조사 결과의 분석 및 조사’로 한정하고, 특별조사위원회 인원을 120명에서 90명으로 축소할 뿐만 아니라, 잠재적 조사 대상인 정부 부처 공무원이 특별조사위원회 주요 업무를 담당하게 함으로써 사실상 특별법을 무력화하는 시행령입니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뒤로 한 채, 생명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온 피해자 가족들에게 ‘배·보상’을 운운하며 소중한 생명을 그저 돈과 숫자로 취급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세월호 참사 1년을 맞는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정의를 구하며 고통 받는 자를 위하여 신원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사 1:17)에 따라 현재의 상황을 통탄하며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첫째, 정부는 세월호 특별법의 취지를 훼손하고 특별조사위원회의 독립적 조사를 방해하는 시행령(안)을 즉각 폐기하십시오.

아벨의 피가 땅에서부터 하나님께 호소한 것처럼(창 4:10), 304명의 억울한 죽음이 저 바다에서 하나님께 울부짖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으로서 불의한 일에 분노하시는 하나님(시 7:11)이십니다. 또한 국민의 권력을 위임받은 정부의 역할은 조금의 의혹도 남김없이 진상을 명백히 밝히는 것입니다. 정부는 진상 규명을 바라는 특별법의 취지를 훼손하고 특별조사위원회의 독립적 조사를 방해하는 정부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을 즉각 폐기하십시오.

 

 

둘째, 정부는 온전한 세월호 선체 인양을 즉각 결정하십시오.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형상을 따라 존엄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창 1:26, 시 8:5). 돈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인간의 존엄은 죽음 이후에도 지켜져야 합니다. 시신 수습은 그 존엄을 지키기 위한 살아있는 자들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실종자 가족들은 지금도 가족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며 팽목항을 묵묵히 지키고 있습니다. 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해서도 온전한 선체 인양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는 선체 인양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해양수산부 ‘세월호 선체처리 기술검토 TF’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양 결정을 미루고 있습니다. 정부는 더 이상 선체 인양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희생자 가족과 국민의 요구처럼 온전한 선체 인양을 즉각 결정하십시오. 나아가 조속한 인양을 위한 종합 계획 수립을 시급히 추진하십시오.

 

 

셋째, 정부는 지금 진행하고 있는 배․보상 일정을 즉각 중지하십시오.

희생자 가족들은 정부가 시행령(안) 폐기하고 선체 인양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모든 배·보상 절차를 중단하라고 요구한 바 있습니다. 가족의 억울한 죽음은 어떤 금전적 보상으로도 맞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내 가족이 왜 죽어야 했는지 알려 달라는, 진상 규명이 최우선이라는 가족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난 4월 1일 세월호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절차에 착수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이는 가족들이 보상금을 더 받아내려고 떼쓰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려는 파렴치한 행위입니다. 정부는 지금 진행하고 있는 배·보상 일정을 즉각 중단하고 그에 앞서 진상 규명과 선체 인양이라는 정부의 마땅한 책임을 우선 실시하십시오.

 

 

우리는 생명을 아름답게 창조하시고, 정의의 기둥으로 세상을 통치하시며, 평화로 피조세계를 완성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숨겨진 불의를 심판하시며 가난한 자를 편드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2015년 4월 14일

세월호 참사 1년,

시행령 폐기, 선체 인양, 배․보상 일정 중단 촉구를 위한 기독인 연합 예배 참가자 일동

 

 

 

 

관련글 보기

2015/03/28 -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는 4월에 한국교회에 드리는 제안] 세월호를 기억하고 실천하라

2014/12/31 - [세월호 참사특별 뉴스레터 4호 - 141231]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2014/09/04 - [세월호 참사 특별 뉴스레터 3호 - 140904] 슬픈 마음 짓밟는 일을 멈춰 주세요

2014/09/02 - [세월호 촛불기도회 설교] 심판을 이기는 긍휼(김병년 목사)

2014/08/29 - [촛불기도회] 탄식하라, 탄원하라, 탄핵하라_양희송 대표(청어람ARMC)

2014/08/11 - [성명서]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정치권의 야합을 규탄하며, 유가족들이 원하는 특별법 제정을 강력히 촉구한다.

2014/08/05 - [세월호 참사 특별 뉴스레터 2호 - 140805]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합니다

2014/08/05 - [세월호 참사 특별 뉴스레터 1호 - 140623] 세월호 참사는 온 국민의 아픔입니다.

2014/04/18 - 애도와 위로의 부활절을 보냅시다 - '세월호 침몰사고'에 따른 2014 부활절 긴급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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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실포럼]


양극화 해소를 위한 실천적 과제연구

기윤실포럼



기윤실과 양극화가 무슨 상관인가?

복음의 합당한 윤리적 삶을 사명으로 하는 기독교윤리실천은 창립 30주년(2017년)을 앞두고, 한국사회의 많은 갈등과 분열의 근본원인 중 하나로서 양극화 해소에 기여하는 운동을 펼쳐나갈 것입니다. 정통적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기윤실은 성서가 말하는 기독교윤리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임을 기억하며, 이유와 종류에 관계없이 현재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웃이 되고자 양극화 해소에 힘쓸 것입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기윤실 포럼은 양극화 현상과 원인을 면밀하게 진단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기독교 윤리적 대안을 연구합니다. 뿌리 깊은 정치이념의 양극화, 중산층 급감과 계층 간 부동 현상이 말해주는 경제적 양극화를 비롯하여 교육, 문화, 복지 등 사회 전반에 나타난 양극화 원인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뿐만 아니라, 이를 다소간에 해소하기 위한 일상에서의 구체적인 변화를 도모해 갈 것입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양극화 문제가 성도와 성도, 교회와 교회, 성도와 교역자 등 교회 공동체도 예외가 아닌 지금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를 단번에 해소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윤실의 초기 작은차타기운동을 비롯해 현재 자발적불편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는 실천운동을 생각할 때, 양극화 해소를 위한 실천적 과제를 연구하고 기독시민들의 참여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로까지 운동을 확산해 나갈 때 일어날 변화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기윤실 포럼에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글_박진영 간사 


관련글보기 >> 

2015/03/04 - 2015년 기윤실 이렇게 일하겠습니다 - 2015년 기윤실 사역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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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실 열매소식지 2014년 11-12월호가 발행되었습니다.



기윤실소식지(14_11 12)_웹용.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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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불편운동 12월 캠페인]



유난히도 마음 아픈 일들이 많았던 2014년, 성탄절을 기념하는 화려한 조명은 낮추고, 어둠 가득한 이 세상의 빛이 되는 것은 어떨까요?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고, 정의와 평화가 되는 따뜻한 빛이 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비춥시다. 성탄절 장식은 간소하게 꾸미고, 조명은 제한된 시간동안만 운영하되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뜻을 생각하며 고통당한 이웃을 찾아가요. 산타가 전해주는 화려한 선물보다, 장애아동의 한걸음을 응원하고, 노숙인들의 하루를 기억하는 2015년을 선물하세요.


 이렇게 실천해요 >>>

●교회 성탄 조명 간소하게, 운영시간 조절하기

- 성탄절 조명과 장식은 간소하게 준비해요

- 십자가 등과 장식조명은 일정 시간동안만 운영해요

●송년회는 검소하게, 고통당한 이웃 방문하기

- 연말 송년회는 검소하게 보내요

- 세월호 유가족 초청예배 드리기, 노숙인 지원 현장 봉사하기 등 고통당하는 이웃들과 함께해요

 

●산타선물대신, 특별한 2015년 선물하기

- 산타와 루돌프가 전해주는 선물을 기대하기보다, 특별한 달력을 선물해요

- <한걸음 달력>은 장애아동, 청소년들의 이동편의성과 독립적 생활을 돕는 맞춤형 보조기구를 지원하는 프로젝트입니다. -> 한걸음 달력 자세히 보기(클릭)

- <하루를 쓰다>는 노숙인, 외국인, 예술가, 어린이, 탈북 새터민 등 365명의 손글씨로 만든 달력으로서 노숙인의 자활을 돕고, 판매수익금 전액을 노숙인의 밥집 바하밥집에 기부합니다.-> 하루를 쓰다 자세히 보기(클릭)

★출력해 사용하실 분들은 아래 PDF 파일을 활용해 주세요~

자발적불편운동_12월캠페인_화려한빛보다따뜻한빛되기.pdf


 



기윤실 자발적불편운동은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로 오신 예수님을 본받아 가정과 교회, 사회에서 '나부터, 지금부터, 작은 것부터' 그리스도인들이 자발적으로 불편과 손해를 감수함으로써 고통받는 이웃과 약자를 위한 복음의 합당한 윤리적 삶을 이루어가는 운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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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30 - [자발적불편운동 10월 캠페인] 남김없이 먹고, 아낌없이 나누기(~10/31)

2014/07/16 - [자발적불편운동 여름캠페인] 창조세계를 돌보는 그리스도인(~8/31)

2014/05/30 - [자발적불편운동 6월 캠페인] 대중교통으로 교회가요

2014/06/13 - [자발적불편운동 4월 캠페인] "종이컵은 줄이고, 생명은 살리고"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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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윤실

[세월호 참사]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1인시위 - 참가후기

글_ 박진영 간사


“잊지않겠습니다”

기윤실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기독인 모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두 차례에 걸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와 진상규명 촉구를 위한 촛불기도회”를 비롯하여, 지난 7월 9일부터 시작된 “4.16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에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참사 발생 이후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부적절한 언사는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사람들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한국기독교의 뼈아픈 현실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어두운 한국기독교의 그늘을 마주하면서, 동시에  1인 시위 참여를 통해 여전히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생존자, 희생자 유가족, 실종자 가족들의 요구는 단순합니다. 참사의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그리고 재발방지. 이러한 주장은 비단 세월호 참사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이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온 국민이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면서 이미 깊은 관계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요구는 국민의 요구로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여야간의 입장차이, 이념공세, 초점흐리기 등 온갖 장애물들로 세월호 특별법은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뭐라도 해야겠는데... 뭐라도 하고 싶어서 왔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유경근 유가족대변인의 부탁처럼 기억하는 것, 그리고 함께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기윤실도 작은 목소리를 보태게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뙤약볕에서 서서 평범한 엄마, 회사원, 신학생 등 다양한 분들이 뭐라도 하고 싶은 순수한 연대의 마음으로 함께 해주셨습니다. 가르쳤던 학생이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가 되었다는 한 참가자는 백마디 말보다 더 큰 침묵의 외침으로 자리를 지켜주셨습니다.

피켓 하나 들고 서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때마다 그 뒤로 보이는 멀고 높은 국회의사당 건물을 보며 부디 국민이 국회로 보낸 사람들은 목소리를 잃은 자들에게 귀를 기울여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간절해졌습니다.

인간의 생명이 존중받는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함께 해 주세요.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1인시위 참가자를 모집합니다(클릭)


# 7월 17일(화)
오늘 12시, 국회앞으로 "4.16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갑니다. 단원고 학생들이 맨몸으로 걸어와서 말하고자 했던 것, 기억하면서 함께 하겠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기독인모임 주관으로 가족 대책위의 의견이 반영된 세월호 특별법을 촉구하는 1인시위중입니다. 오늘은 기윤실이 담당해 일반시민 2명이 함께 참여해 주고 계십니다. 현재 국회에서 여야가 세월호특별법에 대해 논의중인데, 이 특별법은 말만 특별법이지 유가족이나 실종자가족, 생존자들의 입장이 반영되지 못한 정치논리의 산물입니다. 가족대책위의 입장이 반영된 특별법(세월호 4·16 특별법) 제정을 위해 가족대책위 분들이 국회에서 농성중인데, 이 분들을 지지하기 위한 1인시위입니다.

# 7월 22일(화)
국회앞에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기독인모임" 주관으로 <세월호특별법제정>을 촉구하는 1인시위중입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순수한 연대가 힘이 됩니다.


세월호 특별법 자세히보기


관련글 보기 >> 

2014/08/05 - [세월호 참사 특별 뉴스레터 1호 - 140623] 세월호 참사는 온 국민의 아픔입니다.

2014/08/05 - [세월호 참사 특별 뉴스레터 2호 - 140805]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합니다

2014/07/30 - 한국의 침몰과 기독교윤리실천운동(백종국 공동대표)

2014/07/10 -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1인시위 참가자를 모집합니다

2014/06/16 - [연속포럼②] 세월호 참사에 대한 신학적 성찰(박득훈 목사)

2014/06/16 - [연속포럼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사회적 성찰(김호기 교수)

2014/06/10 - [특집_세월호 참사 앞에 선 기독교윤리]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신동식 본부장)

2014/06/10 - [특집_세월호 참사 앞에 선 기독교윤리] '돈맛'에 빠진 한국교회, 교묘한 맘몬숭배에서 벗어나라(박득훈 목사)

2014/06/10 - [특집_세월호 참사 앞에 선 기독교윤리] 이번에는 반드시 고쳐야 한다.(손봉호 자문위원장)

2014/06/09 - [성명서] 세월호 사태를 참회하며 모인 우리의 소리

2014/06/09 - [함께 드리는 기도] 세월호 희생자 추모와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촛불기도회

2014/06/09 - [세월호 참사 추모시] 잊지 말아주세요 / 정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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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NA PARK

2014년 기윤실 간사 일본연수

●연수기간 : 2014년 6월 17일(화)~6월 20일(금) (3박4일)
탐방지 : 일본 간사이 지역(고베, 오사카)
방문기관 : 고베대지진기념관, 주식회사 나이스(N.I.C.E), 에스코프 오사카, 가가와 도요히코 기념관, 기타노 공방, CS고베
●연수 전체 일정 및 보고서는 아래 링크를 클릭하고 확인해 주세요.
   ☞ 연수 전체 내용, 보고서 보기(클릭)


[2014년 일본연수 방문기]
주식회사 나이스(NICE, Nishinari Inner City Enterprises)

글_ 박진영 간사


• 방문지 : 주식회사 나이스(NICE)

• 방문기간 : 2014년 6월 18일(수) 오후1시

• 홈페이지 : www.nice.ne.jp

설립연도 : 1997년 5월 설립

주소 : Osaka Prefecture, Osaka, Nishinari Ward, Nagahashi, 3 Chome−6−33, Japan

주요활동 : 주거시설 개선 및 지원, 약국, 식당 등 지역비즈니스, 노인지원 사업 등 


주식회사 나이스는 니시나리(Nishinari)지역에서 활동하는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한 모델이다. 이 지역은 고령자와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서, 지역주민 1/4이 생활보조금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취학아동 1/2 정도가 정부의 보조를 받는 대표적인 빈곤지역이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과 주민들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주택공급과 일자리 창출, 지역사회 내에서의 자원순환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역개발로 인한 원주민이탈과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도시로 떠나는 젊은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주거안정권 사업. 지역주민들이 주거안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주택을 지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공급한다. 아울러 이러한 주택사업을 통해서 고용을 창출하고, 새로운 경제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 또한 나이스의 중요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이스가 공급하는 주택은 생애주기별 특성에 맞추어 제작하고 있는데, 그 중 신혼부부를 위한 아파트에 방문해보니 깔끔하고 효율적으로 구성된 공간짜임을 보고 감탄했었다.



신선했던 것은 목욕탕 사업이다. 대부분이 목욕탕이 찜질방으로 바뀐 지 오래인 서울과 달리 동네 마다 지역 목욕탕이 있는데, 요금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 나이스는 고령인구가 많은 이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요금의 일정부분을 보조해주고, 목욕탕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인문학 교실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노인들이 목욕탕을 중심으로 모임으로써,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공동체의 특성을 발휘하는 장이 된다. 단순히 요금의 일부를 지원하는 것이 아닌 지역 활성화에 대한 투자 사업이었다. 더불어 나이스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주택공급을 제외한 다양한 비즈니스를 돕고 있었다. 병원, 약국, 식당, 지역 내 NGO 등 지역 내의 다양한 섹터들이 각자 활동을 하는 동시에 서로 상생할 수 있도록 연결망들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목욕탕 내부의 교육장소


작게 시작했던 주식회사 나이스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주거안정권을 중심으로 지역의 필요를 연결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단순히 주택 공급, 일자리 공급이 아닌 공동체적으로 살기 좋은 동네를 구성하는 동시에 개인들에게는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제공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기윤실 운동에 적용할 수 있는 내용들을 생각해보면 장기적으로 운동을 위한 조직구성에 대한 부분을 생각했다. 즉, 현재 기윤실은 서울을 비롯한 대전, 부산, 청주 등 10여개 지역 네트워크 조직으로 되어 있는데,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운동을 펼쳐나가고 전국적 이슈가 발생하면 운동을 공유하기도 하는 상황이다. 기윤실 운동이 지역 상황과 필요를 고려해 네트워크 형식으로 운영되는 것에 대한 장점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서울과 달리 적합한 인적 물적 자원부족에 대한 아쉬움이 지속적으로 제기 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각 지역 기윤실이 해당 지역의 필요를 면밀하게 살피고 효과적인 운동의제 설정, 기획과 진행 등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역시 장기적인 기윤실 운동의 지속성을 담보한다는 측면에서 유의미하게 생각해봐야 할 지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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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NA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