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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받는 교회/창의 여성

[국민일보] '세상을 바꾸는 크리스천 여성' 소개 - 한국염 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

국민일보에서 올해, 곳곳에서 섬기는 리더십으로 사회를 바꾸어 나가는 크리스천 여성 시리즈를 격주로 시작하였고 기윤실 창의여성리더십 위원회 위원장이신 김은혜 교수께서 리더십 분석을 해주셨습니다. 이 시대가 원하는 리더십의 역할모델을 함께 읽어가며 또 다른 섬김의 자리에 서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기사는 국민일보의 허락을 받아 올립니다.)


차별 바로잡는 ‘거룩한 분노’
조건없는 구제로 마음 움직여야


“오늘날 이 땅에서 가장 고통받는 민중이 누구냐는 질문을 늘 던집니다. 이주 여성이라는 답을 들었죠.”

10여년간 외국인 노동자, 특히 이주 여성 인권 보호에 앞장서 온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소장 한국염(60) 목사. 그는 남편 최의팔 목사와 서울 창신동에 청암교회를 세우고 빈민구제 활동을 펼치다 경기도 성남 양말공장에서 도망쳐 나온 중국동포 8명을 만난 것을 계기로 이주 여성들과 함께하고 있다. 그는 교계에서도 소문난 ‘강성’으로 꼽힌다. “태생적으로 반골 기질이고, 불의를 보면 저항합니다. 하나님께서 불의를 보고 분노하는 ‘거룩한 분노’의 힘을 주신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그를 지난 5일 서울 숭인동 센터 사무실에서 만났다.



남편과 함께 꾸려 가던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2001년 여성들과 독립해 나온 것이 시작이었다. 한 해 1000명이 넘는 이주 여성들이 이주여성인권센터를 거쳐 간다. 어떻게 하면 이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고민한다. '사람답게'란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라는 말씀과 닿아 있다. "하나님 형상을 가진 존엄한 존재로서 살도록 하는 것이 나의 고민이죠."

존엄성 회복에 사역 중점… 연 1000명 이상 찾아

그 당시만 해도 이주민 인권에 관심을 갖는 이가 드물었다. '이주민 100만 시대'인 2009년, 한국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마음속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한국이 다문화사회가 되고 있음을 인지하고, 관심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이주 노동자를 바라보는 차별적 시선은 여전한 것 같아요. 한 사람의 존엄성보다 우리나라에 와서 일하는 사람, 또는 살림하고 시부모 봉양하고 애 낳아 키우는 사람이라는 도구적인 존재로만 보는 거죠."

한국 교회가 이주민 사역에 앞장서고 있는 현상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는 "사역을 하는 교회가 1000곳이 넘고, 점점 늘어날 겁니다. 장학금 등 여러모로 지원하는 건 좋은데 제일 중요한 것은 과연 그 목적이 뭐냐는 거죠. 물질적인 지원을 유인책으로 당장 어려움을 해결해줄테니 교회를 나오라고 하는 것은 그들을 거지로 만드는 거예요. 말 없이 도와주면 '저 사람이 믿는 하나님이라면 믿어도 되겠다'고 생각하며 알아서 믿어요. 이들이 무슬림 국가인 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기독교인으로 살려면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래서 백이면 백 돌아서지만, 은혜에 감동해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은 배교하지 않아요. 결국 이주민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고, 이들을 차별하면 안되기 때문에 잘해주는 것과 교인으로 만들기 위해 잘해주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거죠."

그는 차별에 엄격하다. 타협하지도 않는다. 삶 자체가 여성 차별, 이주민 차별을 없애려고 싸워온 시간이다.

그는 1969년 한국 최초의 여목사가 되겠다며 한신대에 입학했다. '하나님 아버지'에서처럼 하나님은 남자고, 예수의 제자가 모두 남자였으며 바울이 '여자는 잠잠하라'고 했기 때문에 여성 목사 안수를 못 준다는 논리에 수긍할 수 없었다. 화가 났다. 그는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사 46:4)는 말씀을 읽던 중 하나님이 '낳아서 업고 기르는' 어머니의 상으로 겹치는 경험을 하면서 하나님과 화해하게 됐다"고 했다.

최초 여목사 꿈 차별에 포기… 1996년 안수 받아

여성안수제는 74년 통과됐다. 신대원까지 졸업한 그는 한 교회에 교육 전도사로 지원했다. 신학교만 졸업한 남자 후배보다 적은 월급을 준다는 선배 목사의 얘기를 듣고 포기했다. 목사 안수는 독일 유학을 다녀온 뒤 청암교회의 담임목사가 되기로 결심한 96년에서야 받았다.

그는 한국 교회의 여성 차별적인 풍토를 여전히 참을 수 없다. 그는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질서화돼 있다"며 "30년 전에 외친 성차별 설교, 교회 내 성폭력, 교역자간 남녀 대우 차별 문제를 지금도 똑같이 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 차별 설교를 여성들이 듣고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차별에 분노하는 대신 하나님께 '내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한다"며 "제도는 그대론데 그 사람에게만 차별해서 길을 열어준다면 이는 곧 하나님이 차별적인 분이라는 얘기가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약자로 눌려 본 경험 바탕 약자를 섬기련다"

그는 하나님을 차별적인 존재로 만드는 교회와 인간의 모습엔 좌절하지만, 한번도 하나님에 대한 절망감은 느낀 적이 없다고 했다. 그에게 기독교는 해방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성경 속 여성 중에는 훌륭한 해방자의 모델이 많다. 그는 특히 누가복음 1장, 어머니 마리아가 부르는 찬가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쳤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를 좋아한다고 했다.

"가난한 자를 그냥도 아니고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는 하나님, 그분이 가져올 새로운 세상을 노래한 마리아는 나에게 해방자로서의 모델"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 목사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물었다. 그는 "남자와 여자 중엔 상대적으로 여자가 약자죠. 약자로서 눌려 본 경험을 갖고 또 다른 약자를 섬기는 것. 그게 여성 목사의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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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한국염


사회·제도가 변하고 경제가 성장했지만 가난한 이들은 늘 그곳에 머물러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사회양극화로 긴급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양산되는 구조는 오히려 고착되고 있다. 자녀 양육과 가정 살림을 책임지는 여성, 어머니들에게 가난은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파괴력으로 다가온다.

한국염 목사의 리더십은 하나님 형상을 향한 모성적 리더십이다. 가장 고통 받는 자, 가장 약한 자식에게 보여주는 어머니의 큰 사랑은 기독성과 여성성 그리고 민중성이 중첩된, 이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강인하고 끈질긴 생명살림의 힘으로 나타난다. 모성적 힘, 이것은 생명에 대한 근원적 사랑에서 나온다. 그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존엄한 존재인 이주 여성의 인권을 지키고 그들의 어머니로 우뚝 서 있는 것은 이주 여성들의 삶의 자리 때문이리라.

그는 빠르게 변하는 사회의 편안함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낮은 곳을 향해 실천의 터를 옮겼다. 고통 받는 이들은 항상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수의 삶도 죽어가는 생명을 위해 더 낮은 곳을 향해 걸어가신 골고다의 길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끈질기게 더 낮은 데로 향할 수 있었는지 그 답은 '어머님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경험과 신앙고백에서 시작한다. 한국 사회에서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는 이중적이다. 여성은 피해자나 2차적 존재의 이미지로 묘사된 반면 모성은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도 희생과 헌신의 모델로 추앙받아 왔다. 그가 모성이 함의하는 문화사회적 한계를 초월해 이를 바닥 공동체를 향한 강인한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모성적 하나님에 대한 발견이었다. 그 하나님은 왕 통치자 심판자 같은 권위적이고 지배적인 상징이 아니라 연약한 자식을 안고 업고 품으며 끝내는 구해내는 모성적 하나님의 이미지다. 이러한 하나님의 모성은 자기비하적, 자기파괴적인 희생이 강요된 모성과 구별된다. 더욱이 성경에서 그의 삶의 모델이 되어 준 수많은 여성들은 복음이 여성을 배제하지 않았음을 기억하게 하고 이 땅의 어머니들에게 거룩한 사명을 주셨음을 매일 확인하게 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었다.

그의 신앙은 가족, 교회, 민족이기주의를 뛰어넘어 억울하게 무시당하는 자식을 위한 거룩한 분노로 이어지고 이는 마리아가 예수를 품고 꿈꾸었던 다른 세상을 발견케 한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으로 네 자식, 내 자식을 구분하지 않는 어머니의 품속 같은 사회를 이뤄간다면 그곳은 이미 천국을 경험하는 곳이 될 것이다.

김은혜 (기윤실 창의여성리더십위원회 위원장·숭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