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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기윤실 회원총회+신년강연회] 타자를 위한 윤리(신년강연회 영상과 녹취요약본)

2014년 기윤실 회원총회+신년강연회
"타자를 위한 윤리"

강연 : 손봉호 자문위원장(기윤실, 고신대 석좌교수)

☞ 2014년 기윤실 신년강연회 영상 - 손봉호 자문위원장(보기 클릭)

과거 서양철학자들은 철저히 자기중심으로 윤리와 도덕의 문제를 다뤄왔습니다. 소크라테스부터 칸트, 헤겔 등이 대표적인 철학자들이지요. 그러나 <아가페와 에로스>의 저자인 니그렌에 따르면 기독교가 이런 서양철학의 전통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주장합니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는 일관성 있게 ‘관계’를 윤리적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아왔다는 것인데요. 이 관계는 윤리를 개인의 관점에서 이해하지 않고, ‘사회 속에서의 인간’,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에서 이해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윤리는 직․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에 해가 되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윤리를 개인의 의지나 선행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이해하는 것은 곧 윤리를 ‘정의’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서양철학의 전통처럼 내가 얼마나 선한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해를 끼치지 않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윤리는 타인을 행복하게 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고, 타인에게 부당하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윤리적 의무인 것이죠.

약육강식이라는 말은 정글의 법칙입니다. 결국은 사회질서가 무너지면 양육강식의 상태가 벌어지고, 결국 약자가 손해를 보는 것은 불가피하게 됩니다. 이러한 점에서 사회질서로서의 법을 안 지키면 반드시 약자가 피해를 보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교통질서가 무너지면 누가 제일 이익을 볼까요? 도로의 무법자들이겠죠. 가장 큰 피해자는 수레를 끄는 사람과 걸어 다니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자기중심이 아닌 타자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타자중심의 윤리는 약자중심의 윤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일리라는 사람은 ‘뇌물은 가난한 사람의 돈이 부자에게 직행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윤리적 질서가 무너지면 가난한 사람의 돈이 부자에게 가버리는 것이고, 부자는 질서가 무너지면 무너질수록 이익을 보게 되는 것이죠.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의 악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더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 과거에는 자연이 사람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했지만, 오늘날에는 다른 사람과 사회가 행복과 불행을 결정합니다. 과거에는 입고 먹을 것이 자연으로부터 나왔지만, 이제는 완전히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활하기 때문인 것이죠.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어떠한가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연이 만든 재앙으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1만 8천명이 사망했고, 역사에서 가장 큰 자연재난으로 알려진 1931년의 중국홍수로 인해 4백만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가져온 재앙을 살펴보면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군인만 수천만명이 전사했고, 히틀러에 의해 유대인 600만 명이 학살당했습니다. 한국전쟁에서도 군인과 민간인 약300만 명이 사망한 것을 보면, 자연이 우리에게 끼친 해와 인간이 우리에게 끼칠 수 있는 해가 비교 조차 할수 없는지 알게 됩니다.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 사회>를 보면 개인은 도덕적 일 수 있지만, 사회는 도덕적이 되기 어렵다는 주장이 담겨있습니다. 인간은 양심, 합리성, 염치가 있어 악이 견제 받을 수 있지만, 집단은 양심도, 체면도, 합리성도 없기 때문에 훨씬 더 비도덕 해진다는 주장인 것이죠. 집단적 이기주의는 개인의 이기주의보다 훨씬 무섭습니다. 현대인의 고통을 잘 살펴보면, 집단 이기주의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사회 문제를 살펴봅시다. 영국에 있는 레가툼연구소는 해마다 번영지수를 발표하는데, 2지난 해 발표된 2013년 각 국가의 번영지수를 살펴보면 한국은 세계 26위를 기록했습니다. 반면, 평균 생활만족도는 104위를 기록했습니다. 행복지수는 OECD 34개국 중 32위이고, 자살률은 가장 높습니다. 왜 이럴까요? 정치, 경제적 수준이나 생활의 편리를 볼 때, 불행의 이유가 없는데 이러한 양면적 수치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강한 경쟁심으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이 심하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윤리적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국제투명성기구에 따르면 투명지수가 2013년 세계 46위로, 3년 연속 하락 중입니다. 탈세율은 26.8%로 그리스나 스페인과 비슷한 수준이고, 사기보험금 지불액이 12.4%로서 일본의 수치가 1%인 것에 비해 약 13배 높은 격차를 보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갈등지수가 2위로, 250조원의 낭비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입니다.

위와 같은 수치는 우리사회의 낮은 도덕 수준은 사람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정도가 심각한 수준임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회는 결국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질서를 있게 함으로써 불행을 줄이고 특히 약한 사람을 보호하는 질서가 필요합니다.

기독교의 정의라는 것은 구체적입니다. 즉 약한 사람을 먼저 보호하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인 것이죠. 사회질서를 바르게 세우는 것은 약한 사람을 보호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 자신만 하나님 앞에 올바로 사는 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기주의일 수 있습니다. 약한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신년강의를 마치겠습니다.

* 본 글은 2014년 2월 25일, 숭실대학교에서 진행된 2014년 기윤실 회원총회에서 진행된 강연 내용을 녹취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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