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직한 그리스도인

영화읽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을지라도, 복음에 합당한 윤리적 삶을 살아갈 하나님의 사람은 필요합니다

코언 형제 감독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2008년 아카데미를 휩쓴 수작입니다. 특별히 말세의 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시사점이 있습니다. 함께 나누어 봅니다.
----------------------------------------------------------------------------------

영화 읽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을지라도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와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꼬”(마11:16, 눅7:32)라고 물었고, 사람들이 이를 잘 몰랐기에 비유로써 설명해 주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당대와 당대의 사람들이 어떤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선각자들은 시대의 문제와 흐름을 꿰뚫어 보고 문제제기하며 외쳤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감독인 코언 형제는 이 시대를 하나의 이야기로 설명한다.

무기력한 의인이 된 노인

영화는 보안관의 독백으로  시작하고 독백으로 끝난다. 은퇴를 앞둔 보안관 벨의 독백으로 시작된 영화는 은퇴한 벨의 독백으로 마감한다.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은 이 두 독백에 충분히 담겨 있다. 나머지 러닝 타임은 독백이 진실로 옳다는 것을 증명할 따름이다.

벨의 첫 독백에는 요즘의 범죄와 범죄자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한탄이 묻어난다. 남자라면 위험에 자신을 던져야 하고, 세상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을 마땅히 감당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런 시대는 이미 사라져 가고 있었다. 악당을 제압하고 마을의 평화를 지키던 보안관의 시대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시대로 마감한 것 같다. 노인 벨에게 그런 시대와 나라는 사라져 가고 있었다.

영화 속의 그는 언제나 범인의 뒤만 따를 뿐이다. 황량한 텍사스 사막으로 바람이 불고, 그 사막에서 텍사스 남자 벨은 어떤 선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 채 무기력할 뿐이다.

 청부 살인업자 “쉬거”는 악의 화신처럼 등장한다. 영화 속 그의 첫 번째 살인은 자신을 연행한 보안관을 수갑으로 목졸라 죽이면서 일어난다. 범죄자를 제압해야 하는 보안관은 자신이 연행한 범인에게 죽임 당한다. 쉬거는 가는 곳곳마다 자신만의 원칙으로 사람들을 죽인다. 그 원칙은 합리적인 상식이 아닌 그의 마음이 정한 그만의 방식이다.

“모스”는 우연히 총격전이 벌어진 사막을 지나다 240만불이 든 돈가방을 얻게 된다. 횡재하였지만 그 댓가는 잔인하였다. 벨과 같은 텍사스 남자로 자신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고, 돈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자신도, 아내도 모두 쉬거에게 목숨을 잃는다.

악을 제압하고 선을 적극적으로 행해야 하는 벨은 무기력했고, 악의 화신인 쉬거는 강력하고 치밀하고 집요했다. 그렇게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모스는 돈에 대한 욕심으로 자신과 가족 모두를 지키지 못하고 죽고 만다.

이 영화의 감독인 코언형제는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코언형제의 말처럼 세상은 점점 나빠지는데, 이것에 대항해서 적극적으로 선을 행해야 하는 선인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기껏 할 수 있는 것이 소극적으로 은퇴 후 가족들과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벨의 마지막 독백은 꿈 속에서 만난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꿈 속에서 그의 아버지는 자신보다 앞서 가서 온통 깜깜하고 추운 곳에서 불을 피워 주었다. 아버지는 항상 아버지의 자리를 지켜 주셨다는 것을 그는 꿈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가 감당했던 역할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을지라도

진실로 의인들은 점점 무기력하고, 세상의 악은 더욱 창궐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며 온 천하 만민에게 복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이 바로 적극적으로 악을 제압하며 의를 행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한 때이다. 온 세상에 빛되신 하나님을 증거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하나님의 사람이 바로 우리이다. 소극적 선을 행하며 무기력하게 은퇴하는 벨의 모습이 우리가 따를 전형이 아닌 것이다. 온 세상은 악한 자에 속하였다 하여도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담대하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을 지라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나아가야 할 세상”이 지금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OnAir 기윤실"을 구독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