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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됨이 나타나는 혼인을 위하여

결혼 1주일 전에 결혼에 대하여 쓴 소논문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됨과 부부의 하나됨에 대해 고찰한 글을 함께 나누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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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하나님하나됨이 나타나는 혼인

 

부제: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양식과 부부의 하나됨의 관계에 대하여

 

 

서론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특별히 이것이 성도인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아는 것은 중요할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나를 아는 것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1) 삼위일체로 계신 하나님이 오늘날 성도 개개인과 교회와 가정에 던지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본 논고에서는 하나님께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양식과 남녀가 혼인으로 맺어져 가정을 이루는 것과의 관계를 살피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양식이 오늘날 성도의 혼인과 가정에 주는 실제적인 교훈과 지침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다.2)

 

1.     삼위로 계시는 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그 영광을 현시하여야 하는 존재인 인간

 

인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을 제 일된 목적으로 가지는 존재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 1문은 사람의 제 1된 목적을 묻고,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답한다. “ 사람의 제 1(주요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Man's chief end is to glorify God, and to enjoy him forever.)"라고 밝히고 있다(고전 10:31, 시편 73:24-26, 17:22, 24).3)  성경에 명시된 바와 성경 내용의 석의를 통해서 우리는 소요리문답의 제 1문에 대한 답에 동의할 수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고( 1:26-27),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여야 하는 존재이다(고전 10:31).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이 땅 가운데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이 땅에 드러낸다는 것은 모호한 개념이 될 수 있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알기가 어렵다.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배우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고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가? 많은 이들이 그 의미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서도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말을 쓰고 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이 땅에 드러낸다고 할 때는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써야 할 것이다. 뜻도 모르면서 임의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구원받은 성도들도 사람을 처음 지으실 때 목적 그대로, 또 성경에 명시된 그대로 하나님을 이 땅 가운데 드러내어야 할 존재, 즉 하나님의 영광을 현시(顯示)하기 위한 존재4)이다. 성도란 말이 단지 멸망받지 않는 사람들의 집합만을 뜻하지 않는 것이다. 멸망받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들만의 독특한 특성이 나타날 것이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것은 하나님을 이 땅 가운데 밝히 드러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이미 영광스러운 분이기 때문이다. 그 분은 홀로 영광이 부족하시지도 않고,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여야 완전해지는 것도 아니다. 오직 스스로 완전하시고, 스스로 영광스러운 분이시다. 그 분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그 분을 인정하고, 그 분을 이 땅 가운데 밝히 드러내면 하나님 스스로 자신의 영광을 이 땅에 나타내실 것이다.5) 또한 교회의 일원으로서 성도가 존재하는데, 교회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의 충만이기 때문이다.( 1:23) 교회의 지체인 성도는 이미 그리스도를 이 땅에 충만히 드러내어야 하는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2. 삼위일체 하나님을 드러내어야 하는 존재인 사람: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 그 자신에게 충만히 있다.

 

그런데 교회가 그리스도를 충만히 드러낸다는 것은 결국 삼위 하나님을 충만히 이 땅에 드러내는 것이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고전 11:3). 그리스도께서 홀로 독립된 신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이 세 위격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세 위격 모두 그 본질과 권능과 영광에 있어 동등하신 분이기 때문이다.6) 성경은 세 인격(혹은 위격, person)으로 존재하는 삼위 하나님이 오직 하나의 살아있는 하나님이며, 진리의 하나님이라고 밝히고 있다.7) 그러므로 삼위 하나님을 이 땅에 충만하게 드러내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현시하여야 하는 것이 성도의 바른 태도인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 땅에 충만히 드러내는 것은 삼위의 인격성과 존재양식까지 이 땅에 현시하는 것이다. 한 하나님께서 세 위격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단순히 한 개인으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8)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는 것이 이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는데, 이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1:26)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을 우리라고 표현하여 그의 복수성을 나타내고 있다. 복수로 존재하시는 하나님께서 또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단수로 표현된다. 하나님께서는 복수이면서 단수이신 속성, 즉 다양성과 통일성을 함께 가지고 계신 것이다.

물론 이것으로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양식을 다 나타낼 수는 없지만 한 하나님께서 복수성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나타난다. 또한 성경 전체의 내용을 조화롭게 볼 때, 한 하나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세 위격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사람도 역시 단수성과 복수성을 함께 가지는 데 이는 창세기 1장의 사람을 창조를 언급한 부분에서 정확히 할 수 있다. 1 27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다고 표현할 때는 단수이지만, 그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고 밝힘으로써 사람을 지을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한 사람을 창조한다는 것이 곧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는 것이었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남자와 여자로 지음 받았다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른 것이므로 남자와 여자 각각 혼자서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기에 부족하다. 남자와 여자 모두가 필요하다. 창세기 1 27절에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창세기 2장에서는 그 둘을 한 몸되게 하신다( 2:24). 창세기 2장에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여 그를 잠들게 하여 갈비뼈를 취해 하와를 만들었고, 그녀를 아담에게로 이끌었다고 밝히고 있다( 2:18 ; 2: 21-22). 그리고 “남자가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분리시켜 놓으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그 둘을 한 몸 되게 하신 것이다. 남자와 여자로 만드신 하나님께서 둘을 한 몸 되게 하시고, 남편과 아내로 혼인시켜 한 가정을 이룬 것이다.

 

3. 혼인을 통해서 나타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속성과 존재의 본질

 <출처: press.gophilia.com, Credit: Photo by B. Krist for GPTMC>


  앞의 논의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현시(
顯示)하는 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 땅 가운데 충만히 드러내는 것이라는 것을 밝혔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 땅에 현시하기 위해서는 그의 속성과 존재 양식까지도 포함되는 것이 마땅하다. 삼위 하나님의 인격성은 남자나 여자가 단독으로는 절대 나타낼 수가 없다.9) 하나님의 존재의 속성을 남자와 여자가 홀로 드러낼 수 없는 것이다. 앞에서 충분히 논의하고 밝혔듯이, 혼인을 통하여 둘이 한 몸으로 연합될 때 삼위로 계신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다.

혼인을 통해서 드러나게 되는 하나님의 다른 속성은 바로 사랑이다. 아담이 사랑을 나눌 존재로 하와를 지었고10),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2:23)로 표현된 아담의 고백에서도 알 수 있다. 이 사랑의 관계성도 삼위 하나님의 관계성 속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함으로써 삼위 하나님의 사랑의 관계성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혼인으로 이루어진 부부관계가 삼위 하나님의 관계를 유추하는데 완전하지 않음은 자명하다. 성도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죄인의 습성을 가지고 있고, 여전히 세상 속에서 살고 있기에 현세의 인간의 부부 모습으로 삼위 하나님의 관계성을 추론하는 것에는 제한이 따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삼위 하나님의 관계성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의미가 반감될 수는 없다. 또한 삼위 하나님의 관계성이 이 땅 가운데 교회와 가정의 모범이 되며, 이 세상의 많은 공동체들의 기원이 된다는 생각은 충분한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4. 이 첫 혼인의 의미, 부부사명교회사명

 

하나님께서 태초에 이루신 이 일은 인류 전체에게 하나의 모범을 보이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담의 범죄가 모든 인류의 대표로서 의미가 있듯이 혼인 또한 하나님께서 아담을 통해서 이 세상에 모범으로 보이신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모범으로 제시된 이 혼인은 오늘날 현대인들의 사랑에 기반한 혼인과는 다르다. 이 혼인은 남녀의 사랑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혼인과는 구분되는 태초의 혼인, 이 세상 첫 혼인의 의미는 그 전 문맥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두 사람을 혼인에 이르게 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사람(아담)에게 사명을 주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1:28)이 그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고, 그 창조를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서 하셨고, 또한 그들에게 사명을 주시고, 29절과 30절에는 두 사람에게 필요한 먹을 것을 제공하셨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고, 그들에게 사명을 주셨고, 그 사명을 이루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신 것이다.

이 사명은 처음부터 아담 홀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사람은 홀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어야 이룰 수 있는 사명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서 하와를 취하여 혼인으로 인도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하게 부합하는 것이다.

사람이 남자와 여자 각각 개체로서 사명을 이룰 수 없고, 또 부부로 한 몸됨이 없이는 하나님의 존재의 양식을 드러낼 수 없듯이, 이 세상에는 또 하나의 기관이 그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12) 그 기관은 가정과 더불어 하나님이 직접 제정하신 기관이다.13) 바로 그리스도께서 피 흘림으로 성도된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사명이 부부로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통해서 더 분명하게 이룰 수 있다. 성경은 한 개인에 대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지 않고, 교회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부부에게 주신 사명 역시 교회를 이 땅에 두신 뜻에 의거하여 생각하여야 하며, 교회의 사명을 이루는 것과 함께 가야 한다.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예수 그리스도)의 충만인 교회는 “만물의 충만이 온전히 완전히 실현되기 전에 먼저 충만하게 된 영적 실체”14)인 것이다. 이 땅에 하나님의 은혜로 만물이 충만해 지는 종말론적 구원이 가장 먼저 실현된 곳이다.15)  그러므로 교회가 이 땅 가운데 임할 하나님 나라를 찬연하게 증시(證示)하여야 한다. 교회가 아니고는 이 땅에 그것을 드러낼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몸이요, 신부로 존재하는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증시하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속성과 존재 양태를 드러내는 데 그 핵으로서 부부16)(다시 말해서 가정)가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부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표준으로 하여서, 교회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가정에 주신 사명을 붙잡고 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와 무관한 존재로서 자신의 가정을 보는 것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두시고, 그 몸의 지체로 각 성도를 두신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다. 지체로 존재하는 성도들이 각자 부부로 한 몸을 이루고 있고, 또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있기에 가정이 교회의 핵이 되며, 이 땅에 하나님의 백성을 길러내는 그릇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성한 신자의 가정은 항상 교회에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각성하고, 그 사명을 교회의 회원전체가 함께 붙잡고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결론

본 소논문에서 기독교 신앙이 고백하는 한 분 하나님이 삼위로 존재하고 계시다는 사실이 부부의 하나됨과 어떠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지 살펴 보았다. 삼위일체로 계신 하나님의 존재양태를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기관으로서의 가정과 그 가정을 이루어지도록 하는 혼인을 통해서 오늘날 부부됨의 의미를 살펴 본 것이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하나되어 살아가는 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 땅에 드러내는 것과 상관관계가 있다. 하지만 성도들은 부부됨을 단지 하나님의 존재양태만 드러내는 것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교회에 주신 사명을 이루는 핵심기관으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하여야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됨이 나타나며 교회의 사명을 이루는 기관으로서의 가정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 현실 속에서도 외쳐야 할 진리이다.

 이제 곧 혼인을 하게 되는 필16)가 삼위 하나님을 묵상하며 그에 합당한 가정을 이루도록 노력하는 것이 이 논고의 가장 정직하고 효과적인 실천이요 결론이 될 것이다. 삼위 하나님의 하나됨이 나타나며 교회의 사명을 이루어 가는 가정을 꿈꾸며 다짐하며 이 소논문이 허공 속에 맴돌지 않고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참고문헌

그루뎀, 웨인 . 『조직신학(), 노진준 옮김. 서울: 은성. 1997.

길성남, 『에베소서를 어떻게 읽을 것이가』. 서울: 성서유니온. 2005. 131.

김홍전, 『혼인, 가정과 교회』서울: 성약. 1994.

벌코프, 루이스. 『조직신학』. 권수경 옮김. 서울: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2000.

칼빈, . 『기독교강요』서울: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2004.

Westminster ShorterCatechism.

  http://www.shortercatechism.com/resources/wsc/.


1) 존 칼빈, 『기독교강요』(서울: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2004), I.i.1.

2) 본 논고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방식과 혼인과의 관계성에 대한 부분은 김홍전 목사의 『혼인, 가정과 교회』(서울: 성약, 1994)에 기반하여 얻게 된 생각임을 밝힌다. 김홍전 목사는 하나님의 존재양식을 성도인 우리가 개별적인 남성, 여성으로는 드러낼 수 없기에 혼인을 통해서 둘이 하나되는 것으로써 하나님의 존재양식(삼위일체)를 드러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3) Westminster Shortcatechism Question 1, http://www.shortercatechism.com/resources/wsc/wsc_006.html

4) 김홍전, 『혼인, 가정과 교회』(서울: 성약, 1994), 143.

5) 이 생각은 대학교 시절 학생신앙운동을 통해서 배운 하나님 주권사상과 국제신학대학원 이승구 교수의 “하나님 나라와 그 백성된 삶”이란 제목의 수련회 강의를 통해서 형성된 것이다. 또한 GP선교회 대표셨던 김형익 목사가 “날마다주님과”라는 큐티책에 쓴 칼럼을 통해서 구체화되었다. 또한 성경이 이를 증거하고 있다. 개인적 통찰로 인해 형성된 생각이 아니므로 각주를 달고자 하였으나, 그 기원을 밝히는 것이 어려워 이를 대략적으로 밝힌다.

6) Op. cit, Question 6.

7) Ibid, Question 5.

8) 김홍전, 『혼인, 가정과 교회』, 149.

9) Ibid, 114.

 

10) 웨인 그루뎀, 『조직신학(), 노진준 옮김(서울: 은성, 1997), 308. 368-369.

11) Ibid, 369.

12) 김홍전 목사는 이 땅에 하나님의 존재 양태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교회와 부부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가 각각 두 개의 인격이지만, 하나의 큰 몸을 이루어 복수성을 가진 단수이신 하나님의 존재 양태를 잘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와 가장 방불하게 나타나는 것이 부부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김홍전, 『혼인, 가정과 교회』, 18.

13) 길성남, 『에베소서를 어떻게 읽을 것이가』(서울: 성서유니온, 2005), 131.

14) Ibid, 131.

15) 이 표현은 김홍전 목사의 독특한 표현이다. 그의 책, 『혼인, 가정과 교회』표지에 다음과 같은 부제가 적혀 있다. “ 은사를 낭비하지 않는 혼인, 그리고 교회의 핵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길러내는 그릇인 가정의 참 뜻”.

16) 2007 1 6일에 결혼한 필자가 결혼 1주일 전에 완성한 소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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