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에 대한 우리의 자세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다. 지구의 생일날이다.
지구를 기쁘게 해주는 서프라이즈파티가 지난 주말동안 지역마다 거창하게 치뤄졌다.
지구에 관한 다큐가 연일 방영된다. 불편한 진실류의 이야기, 북극곰의 이야기, 가라앉는 섬들에 관한 소식들을 보면서 뭔가 심각한 기운을 느낀다. 지구에 뭔가 큰 일이 일어나고 있다.
지구의 온도가 점점 높아진다. 빙하가 녹아간다. 각종 천재지변이 곳곳에서 일어난다. 동식물의 개체수가 점점 줄어든다.
지구에 사는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교회는 어떻게 지구를 시원하게 할까?
전세계적으로 협력을 하고, 국가적으로 저탄소운동을 진행하고 녹색성장을 이야기하고, 기업은 친환경 경영을 고민하고 있다.
단순히 '에코', '친환경', '웰빙'이라는 시대적 유행이 아닌 창조세계를 책임져야 할 교회의 본질적 고민으로서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교회가 실천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것들 5가지!
1. 교회에서 매주 발행되는 주보, 소식지 재생종이로 바꾸기
해리포터가 5편까지 나오면서 인쇄에 사용된 종이의 양이 무려 나무 650만그루에 해당한다는 사실, 아시나요? 전세계 환경단체에서 시작되어 최근 한국에서도(녹색연합) 해리포터 한국판에 대한 재생지사용 캠페인을 벌여 결국 20%고지율 재생지에 인쇄하기로 했다더군요. 교회도 작은 실천에 동참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 종이컵 안쓰기 운동 : 저희교회는 청년집회가 끝나면 200~300여명이 성경공부를 하는데 매주 사용되는 종이컵만 해도 300여개에 달합니다. 교회컵을 사용하거나 개인휴대컵을 교인들만이라도 들고 다닌다면 훨씬 좋겠지요~^^
2. 부활절엔 생명을 품은 유정란을 나누자!
무정란을 생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닭이 좁은공간에서 밤낮없이 무정란을 생산하고 있는지 안다면 좀 더 동물친화적인 환경에서 자라 닭으로 부화될 수 있는 유정란을 소비하고 나누는 것이 훨씬 부활의 의미와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요? 개교회마다 매년 4월경에 소비되는 계란의 양을 생각하면 유정란의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거예요.
3. 유년부, 초등부 간식을 친환경적으로~~
화학첨가물에 찌든 아이들에게 자연친화적인 음식을 교회에서 공급하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바로 자라게 하는 것은 하나님나라 다음세대 양육을 위해 중요한 일입니다. 특히 화학첨가물이 아이들의 정서장애와 발달장애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안다면 더욱 교회가 아이들의 생명과 영육강건에 마음을 쏟아야겠지요.
4. 착한 소비를 교회에서부터!
환경문제는 지역의 문제이면서 전세계적인 문제입니다. 요즘 들어 제3세계의 빈곤문제와 아동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윤리적인 소비를 고민한답니다. 하나님나라를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이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입니다. 요즘엔 꽃도 윤리적인 꽃이 있더군요. 교회 강대상에 매주 바뀌는 꽃들도 이런 가치를 담으면 더욱 좋을 거 같아요.
5. 재활용, 재사용, 분리수거 교회안에서도 열심히!
집에서는 다들 잘 하고 익숙한 것들이 교회에서는 좀 소홀한 거 같아요.(우리 교회만 그런가요?^^;;)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작은 부분에서 실천해 보아요~~
실천적 지혜를 나누자, 그리고 실천하자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실천적인 지혜를 모으는 자리!
더 많은 교회가 책임감 있는 감당해야 할 환경문제들~
이제 함께 이야기 해요!^^
글쓴이 : 느림
기윤실 교회신뢰회복
네트워크에서 주최하는
"교회의 사회적 책임 2.0 포럼<첫번째:환경>"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일시 : 2009년 5월 8일
오후 3시 ~ 5시
장소 :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
(시청역 부근)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을 참조하세요.
2009/04/17 - 지구적 교회, 지역 환경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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