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3장 17절
저는 머슴처럼, 일하는 현장에 늘 있었기 때문에, 기윤실과 같은 모임은 제 체질이 아닙니다. 그래서 잠깐 처음 시작할 때 몸을 담았지만 이것은 내 본령이 아니다 싶어서 뒤에서 지원하는 것 아니면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해 오신 일을 보니까 몹시 귀한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기우(杞憂)를 다시 생각해보고, 그 잘못에 빠지지 않고 바로 가는 걸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기독교의 여러 좋은 운동들이 남의 잘못을 잘 보았다고 해서 자기가 바른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봅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정확히 보는 것과 내가 바로 되는 것은 전혀 관계없더라고요. 또 좋은 지성운동이 생명운동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우리가 종종 독일의 예를 들 때가 많은데, 그처럼 윤리의 논의가 치밀하게 반추되었고, 사상적이고 객관적인 체계를 갖춘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악독한 전쟁 두 번의 주범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미국의 예를 들 때도 많은데, 미국은 지금부터 100년 전에는 정신이상자를 마녀라고 불태워 죽인 나라였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너무 잘못되었다는 자괴감도 안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1984년에 런던에서 존 스토트 목사님과 3개월 정도 가까이 지낼 기회가 있었는데, 제가 처음 가니까 그분이 패티슨 선교사가 쓴 책을 주면서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그 책을 알고는, 읽고 싶었는데 절판되어서 읽지는 못하여 내용이 늘 궁금했는데, 밤을 새서 읽었습니다. 며칠 후 존 스토트 목사님이 어땠냐고 물어서 “참 유익했습니다. 얼마나 좋은 책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닙니다.”라고 그랬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이 “무슨 말이냐”고 되묻기에, 제가 “한국교회는 패티슨이 쓴 것보다 훨씬 실체가 큽니다. 신실한 그 분이 썼다고 전체라고 오도되면 안 됩니다. 100년 전에 영국은 어땠습니까? 1500년이나 됐던 영국 기독교는 어땠습니까? 그 당시 책들을 읽어보면 이것이 정령숭배인지, 귀신노래를 부르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1500년이 되도 이런 모순이 있는데, 100년 된 젊은 교회에 너무 많은 요구를 하는 것도 안 된다고 봅니다. 역사와 세월 속에 자라는 것이지 한꺼번에 되는 것은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이 ”아, 그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생각이 신실한 사람이 신실하게 짓는 죄가 있을 수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종합적으로 봐야 합니다. 대부분 이런 운동에 있어서 남의 잘못을 정확하게 보려는 노력은 참 중요하지만, 우리가 “올바른 생각 하니까 올바른 사람이다”라는 생각에서는 벗어나야 합니다. 기독교인이 가장 많이 속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생각하는 나쁜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가 기독교윤리사색운동이라면 사회의 잘못과 교회의 부족을 잘 짚어주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서 한국교회가 역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더 적극적으로 나서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7절에 보면,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그 행한 일도 온전케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계속 추구하며 살면서, 내가 행한 일도 온전한지 함께 반성하면, 우리 윤리운동이 힘차고 복되게 펼쳐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생각하느냐 하면, 한국의 정신운동 중에 가장 영향력 있던 운동이, 해방 전에는 안창호 선생이었고 해방 후에는 김용기 장로였다고 생각하는데, 비누를 손바닥에 세 번만 문지르는 간단한 삶의 운동이 믿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참 재밌는 것은 두 분 모두 학문적인 배경이 많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들은 간단하게 생각하고 간단하게 순종했던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이 생각하면 생각의 생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세미나도 많이 해야 하고, 일도 많이 해야 하지만, 우리가 정말 옳음에 대해 단순하게 순종할 때 기독교윤리운동이 아니라, 실천운동이 될 것입니다. “너 왜 안 했냐”가 아니라 내가 뚜벅뚜벅 먼저 해나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런 정신으로 우리 운동이 잘 되었으면 한다는 욕심을 가져봅니다.
지금까지 해 오신 일을 보고 받으면서 참 열심히 잘 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더욱 디모데후서 3장 17절 말씀대로, 열매로 그 나무를 안다는 주의 말씀이 이 운동을 통해 맺어져서 생명운동으로 번져가는 은혜가 있었으면 합니다. 저도 이런 귀한 일에 동참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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