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불편운동, 이것이 궁금해요
손봉호 자문위원장(기윤실, 고신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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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한국 사회가 경제적으로 절대 빈곤으로부터 탈출했고, 또 독재로부터 민주화도 이룩하고 상당히 좋은 성과를 이룩했지만 한 가지 매우 뒤쳐진 것이 있습니다. 바로 윤리적인 수준이 너무 낮습니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청소년 폭력문제, 또 성폭행 문제 그 외에도 우리 사회의 윤리적인 문제가 아주 심각하게 돼있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모두 불행하고 되고 말았어요. 그래서 자살률이 OECD에서 가장 높고 노인 자살률은 미국의 3,4배나 되고 하여튼 엄청나게 부정적인 그런 결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도덕적으로 매우 뒤떨어진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너무 경쟁적이라는 것입니다. 경쟁적이라는 말은 서로 공유할 수 없는 가치들을 서로 빼앗으려고 하기 때문에 경쟁적이 되는 거거든요. 예를 들어서 돈이나 명예나 권력 같은 것은 한 사람이 많이 소유하면 다른 사람이 많이 소유할 수 없습니다. 고급 가치, 사랑이라든가 자비라든가 혹은 지혜라던가 이런 것은 한 사람이 많이 가져도 다른 사람이 적게 가질 필요가 없어요. 고급 가치보다는 하급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에 이렇게 경쟁적이 되고 경쟁적이 되니까 결국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고요. 공정하게 경쟁을 하면 그래도 괜찮은데 불공정하게 경쟁을 하게 되면 약자들은 결국 엄청난 피해를 보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사회 전체가 불행해지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Q2. 한국사회가 경쟁적인 원인은 무엇일까요?
A2. 이렇게 경쟁적이 되는, 또 하급 가치를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시 우리 한국적 세계관에 있다고 봅니다. 한국적 세계관의 특징은 첫째, 전능하신 하나님 혹은 내세를 믿지를 않아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모든 삶의 의미를 다 성취해야 되기 때문에 결국은 이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 유명해져가지고 이름을 날리는 것, 이게 삶의 의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하려니까 단순히 잘 사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어요. 다른 사람보다 앞서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 경쟁적이 될 수밖에 없고 다른 사람보다 앞서려니까 힘을 소유해야 되고, 힘을 소유하려니까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쳐가면서도 자기 힘을 늘리는 이런 방법을 쓰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죠.
Q3. 경쟁이란 것이 왜 기독교인들에게 문제가 될까요?
A3. 기독교인들에게 이게 문제가 되는 것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많이 요구하시는 것이 사랑인데 이것은 사랑에 아주 위반이 되는 거거든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사랑이 될 수가 없죠. 그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믿고 내세를 믿기 때문에 이 세상의 가치관을 절대시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도 만약에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를 심하게 추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뜻이고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거거든요. 그것은 기독교인답지 않고 또 기독교인으로서는 그렇게 해서도 안 됩니다.
Q4. 편하게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 시대에 자발적 불편운동이 왜 필요한가요?
A4. 예. 편하게 산다는 것 역시 나한테 힘이 있어야 되고 돈이 있거나 권력, 명예가 있으면 편하게 살 수가 있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편하게 사는 것을 포기한다하는 말은, 즉 조금 손해를 본다는 말은 결국은 돈이나 명예나 권력에 양보한다는 것을 뜻하는 겁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또 공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좀 더 편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조금 손해를 보는 것, 이것이 성경의 정신이고 그게 바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희생의 사랑이죠.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의 다른 사람들이 추구하는 걸 다 같이 추구하고 다른 사람만큼 편리하게 살고 편하게 살려고 하는 것은 십자가의 정신에 어긋납니다. 물론 믿음의 정도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엄청나게 큰 희생을 할 수가 있지만은 그걸 모든 사람에게 요구할 수는 없고 그래도 조그마한 것부터 우리가 조금 불편하게 조금 손해 보는 그런 노력이 있어야 다른 사람이 그만큼 더 편리해지고 이익을 보거든요. 그게 사랑이고 그게 결과적으로는 우리 모두를 다 편리하게 만드는 그런 상황이 벌어집니다.
Q5. 기독교인들이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A5. 가장 간단한 것 가령 지하철을 탈 때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이용하면 에스컬레이터 타는 다른 사람에게 공간을 더 많이 내주고 또 그만큼 전기를 절약해서 결과적으로 환경을 보존하는데 도움이 되고, 또 원자력 발전소 같은 것을 적게 지어서 그 피해를 줄일 수 있고,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거거든요. 그리고 내 자신도 그렇게 손해를 보지 않습니다. 나이가 많거나 미약하거나 무거운 짐을 들고 갈 때는 어쩔 수 없죠. 그렇지 않고 건강한 젊은이들이 계단을 이용하면 결과적으로 자기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이익이 되고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는 뭐 그런게 한 가지 예입니다. 그 외에도 주차할 때 자기가 가장 편한 자리에 주차하지 않고 조금 불편한 자리에 주차함으로서 다른 사람이 더 편리하게 아주 급한 사람이 그 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든가, 교회에 가령 차를 몰고 가면 그 교회 입구에서 가장 먼 곳에 가장 불편한 곳에 주차를 하게 되면 늦게 온 사람이 좀 더 좋은 자리에 주차할 수 있고 그가 빨리 예배에 참석할 수 있는 그런 장점이 있죠. 이런 것들이 우리 주위에 무수합니다. 우리가 조금 손해 보자, 조금 불편하자 하면은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것이 엄청나게 많아요. 그러나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것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정도에 따라서 또 인격의 성숙도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아주 간단한 것은 좀 불편하게 손해 볼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큰 것을 손해 볼 수가 있고요. 그래서 나는 우선 아주 간단한 것부터 시작하자는 거죠. 가령 부동산 투기는 안하지만 차는 자기가 제일 좋은 자리에 세운다. 나는 그것은 좀 문제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걸 나쁘다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만,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을 하자는 거지요. 그러니까 물론 아주 큰 것도 손해를 보고 희생을 하면 더 좋겠지만 쉬운 것부터 시작하자 우리 기윤실이 그런 운동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조금씩 경건의 훈련, 이것이 경건의 훈련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해서 나중에 큰 것까지 손해보고 불편할 수 있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해요.
Q6. 일종의 습관이라는 말씀이시죠?
A6. 작은 것, 가령 주차만 조금 다른 사람 배려한다든가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탈 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만 해도 다른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평판이 좋아질 것이고 결국 전도의 효과도 있다고 봅니다.
Q7.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질까? 나만 손해 보는 것 아니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A7. 예. 그게 내가 주장하는 소위 선지자적 비관주의인데요. 우리가 이렇게 노력한다고 해가지고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옳으면 해야 돼요. 나는 그렇게 해가지고 우리 사회가 조금 나아진다면 그건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해야 되는 거죠. 그래서 나는 반드시 어떤 열매가 맺어져야 일을 한다는 것은 나는 그건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우리 성경이 가르치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은 어쨌든 무조건 좀 손해보고 불편하게 살자 그게 옳다고 봅니다.
Q8. 우리나라의 행복지수와 자살률은 세계에서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A8. 영국의 레가툼 연구소라고 옥스퍼드 대학과 관계해가지고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연구하는 기관인데, 2011년도 각국의 번영지수를 발표를 했습니다. 110개국을 조사를 해서 발표를 했는데 우리나라의 경제적 번영은 세계 26번째라고 했어요. 그런데 생활만족도가 110개국 가운데 104번째라고 했습니다. 그게 조금 과장된 것이 아닌가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OECD의 조사도 비슷하고 지금 자살률도 어느 정도 그 조사가 전혀 엉터리가 아닌 것을 보여준단 말이죠. 이건 끔찍한 거죠. 110개국 가운데 104번째 행복하다면 이건 아주 불행한 나라입니다.
Q9. 왜 그럴까요? 결국은 인간의 욕심, 탐심 때문인가요?
A9. 그렇죠. 탐심이라는 것이 결국은 믿음의 부족에서 나오는 건데요. 즉 이 세상에서 모든 삶의 의미를 다 만족시켜야 되고,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에게 이겨야 되고,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하게 살아야 되고 이 모든 것을 탐하는 것이 탐심이니까요. 성경은 탐심을 우상이라고 골로새서에서 가르치고 있고 또 에베소서에서도 가르치고 있는데 탐심이 왜 우상일까. 첫째 이 세상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는 것 그걸 그리스도인들이 같이 따라하면, 그건 구약 시대의 이방인들이 하는 짓을 이스라엘 백성이 따라하면 그건 우상숭배였거든요. 그리고 또 우상을 섬기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삶의 안전을 보장해준다 이렇게 믿기 때문에 하는 건데 탐심이라는 것이 그런 생각에서 나온 거란 말이죠. ‘내가 열심히 탐해가지고 돈, 명예, 권력을 갖게 되면 그것이 나의 안전을 보장해준다.’ 그게 우상숭배라는 거거든요.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이, 피해야 할 것이 우상숭배인데 탐심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주 심각한 죄랄까요. 우리가 경계해야할 대상이라고 봅니다.
Q.10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그런 삶을 계속 추구한다는 것이 문제가 되겠군요?
A10. 그럼요. 그런데 이게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돈 많이 벌고 명예, 권력 얻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이렇게 보거든요. 그건 성경이 말한 복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성경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고, 그렇게 되어 있는데 어떻게 돈 많고 권력 많고 명예 얻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 그건 얼토당토않은 성경관이에요. 그건 아주 한국의 전통적인 복관, 즉 불로소득. 우리 한국에서는 불로소득을 복이라고 보는데요. 그것과 성경이 말하는 복을 완전히 혼동한데서 나온 잘못입니다.
Q11. 기독교인들은 다른 세계관을 가져야겠군요?
A11. 그렇죠. 그게 바로 기독교의 아주 가장 중요한 특징이죠. 우리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지 자연종교가 아닙니다. 계시의 종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우리에게 나타내신다는 것에 근거해서 우리가 살고, 믿는 다는 건데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자신의 뜻을 나타내셨겠어요.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이 다 옳으면 괜히 우리에게 계시를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의 생각, 인간의 감정, 인간의 세계관 이것이 잘못돼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를 하신 거거든요. 그러니까 기독교는 이 세상과 다를 수밖에 없어요.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것을 우리 그리스도인이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특색을 잃어버리는 겁니다.
Q12. 결국 기독교인으로서의 본질, 특색을 드러내자는 것이 자발적불편운동의 핵심이겠군요.
A12. 그렇죠. 우리 자발적 불편운동이라는 것이 아주 간단하게 보이지만은 그건 기독교의 본질에 일관성 있게 행동하는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이건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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