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감리교 사태를 통해 본 선거
감리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4년 전 감독회장 선거에서 파행을 시작하더니 4년이 지나는 동안 해결을 하지 못했다. 감리교를 대표해야하는 감독회장을 선출하는데 그 자격에 대한 시비가 있었고, 그 이후에 편이 갈리어서 서로에 대한 고소와 고발이 끝이 없이 이어졌다. 결국 이 문제는 사회법정으로 옮겨졌고 그 문제의 판결이 법원에서 재판장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잘 알다시피 결국 법원이 임명한 임시감독회장이 선출되어, 목사가 아닌 평신도가 변호사의 자격으로 임시로 나마 감리교단을 이끄는 초유의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정상화가 되는 듯 하더니 다시 고소고발이 이어지고, 오늘날까지도 해결의 기미가 안 보이고 새로운 고소고발만 이어지고 있다.
이 사건에서 보는 것은 결국 선거법에 관한 것이다. 감리교의 선거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결코 그 법이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 정해진 법에 따라 움직여지지 않았고, 그 실행, 그리고 해석에 있어서 합리적이지 않았거나 법적으로 하자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법을 실행함에 있어서 정해진 바가 명확하지 않았고, 그 해석에 있어서도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명확하지 않은 것, 또 해석의 여지가 있는 부분들로 인해서 불법이 나타나고 ‘관행’이라는 것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먼저는 한국사회의 특징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인정에 이끌리고, 관계에 매이는 한국사람들 특유의 습성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법이 있다고 하여도 사람의 관계를 깨트려 가면서까지 법을 지켜야한다는 생각이 없다. 또한 한국사람들은 법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좀 모자란 것 같다. 사람들이 법을 얽어매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불편하다면 불법, 편법도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오히려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교회법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믿는 이들끼리 법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라는 생각이 있는데 거기서 법을 말한다는 것은 관계를 깨겠다는 의도로 생각이 든다. 특히 주 안에 우리는 하나인데 법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불경하고, 불애(不愛)한 일이 된다. 이것은 한국사람들이 정에 따라서, 인정에 이끌리어, 그리고 다양한 관계를 따라서 법을 넘어서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 같다. 또한 한국교회에서는 율법에 대한 안 좋은 생각이 있다. 은혜와 자유의 사상을 따라서 규칙을 정하고, 법을 따른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아마 여기에는 믿는 사람들에 믿음이 있을 것이다. 함께 믿는 이들은 도덕적으로 더 완벽하고, 교인들 간의 관계는 사랑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것을 믿기에 법적인 문제에 대해서 그리 깊이 생각을 안 해 본 것 같다.
그러나 결과는 교회에서, 그것이 개 교회이던지, 교단이던지, 연합기관이던지 비슷한 상황인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사회법정으로 나아가고, 재판정에서 시시비비가 가리어져 법적인 해결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믿고 있었던 교인들간의 믿음과 도덕이 역할을 하지 못하고, 교회법으로는 준비되어지지 못하고, 그 실행 자체를 믿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서 교회의 문제가 사회법정에 판가름 당하고 있는 것이다.
2. 총회가 난맥상
교계의 선거가 치러질 때면 어김없이 나오는 이야기가 그 후보가, 또는 그 당선자가 얼마의 돈을 썼다는 이야기이다. 전에는 총회장을 뽑는 총회의 선거에서나 그러한 돈 이야기가 오고갔는데 이제는 노회뿐만 아니라 교계의 연합기관에서도 관행화되고 만 것 같다. 총회의 자리에 참여하는 목사나 장로들이야 그래도 신앙이 성숙되어 있고, 그 신앙에 굳은살이라도 배겨있으니 그래도 괜찮은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도 목사는 인간 이상인 것으로 생각하는 많은 성도들이 있다. 그 사람들에게 목사의 대표라는 분들이 돈을 써서 그 자리를 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 얼마나 큰 충격이겠는가?
그래도 총회장, 노회장, 연합기관의 대표라고 한다면 일반 성도들에게는 존경의 대상이요, 존중해 드려야할 신앙의 어르신들이다. 인격적으로나 신앙적인 면에서 훌륭하신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존경받는 자리에 계실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이전투구의 싸움을 벌이고, 불법을 사용하고, 돈을 사용하여서 표를 샀다면 그 소리를 들어야하는 우리 성도들은 얼마나 큰 실망을 할 것인가?
여기에 더 나아가 안 그래도 개신교의 문제만 불거지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안티기독교나 기독교에 대해 냉소적인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이러한 이야기가 그들의 귀에 들어가면 ‘그러면 그렇지’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고, 손가락질과 거친 이야기들이 오고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들의 욕심과 불법이 주의 몸된 교회를 세상에서 조롱거리가 되게 만든 것이다.
3. 내 규례를 거슬러서 이방인보다 악을 더 행하며(겔5:6)
에스겔서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규례, 즉 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질책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도덕적이고 옳아야 할 이들이 이방인들보다도 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최소한의 제한만 있는 이방인들의 규례조차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 한국에서도 선거하면 고무신과 막걸리가 생각나던 때가 있었다. 그 이후에도 누구 이름이 들어간 시계나 금품이 오고 갔다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는 그러한 관행들은 사라졌다. 선거법을 위반하면 과태료가 50배가 된 것이다. 밥을 한 번 얻어먹어도, 기부금이나 선물을 받아도 50배의 과태료를 물게 한 것이다. 물론 초기에는 과하다는 의견도 있었고, 실효성이 있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심지어는 법저항이 대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거관리위원회가 엄격하게 법을 적용했고, 실제적으로 법에 저촉되어 50배를 물어내는 사람들이 속출하게 되자 ‘관행’으로 이루어지던 일들이 사라졌다. 가볍게 생각하고 모임에 후보자 불러서 밥 얻어먹는 일들조차도 다 사라지고 말았다. 법이 만들어지고, 그것을 엄격하게 지켜나가자 그간의 불법함들이 일시에 다 사라지고 만 것이다.
이렇게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 교회는 변하지 않았다. 아직도 불법선거운동이 난무하고, 여러 편법이 발달하여 불법이 더욱 교묘해지기만 한다. 아니 이제는 뻔뻔하기까지 하다. 여기저기서 금권선거가 폭로되어지고, 심지어 양심선언도 잇따르고 있는데도 ‘그래서 어쩌라고’하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 ‘나만 하는 일도 아니고, 다만 내가 더 썼을 뿐인데 뭐가 그렇게 문제인가’하는 항변만 나오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아무도 책임을 지거나, 신앙의 양심을 따라서 그 직책을 내려놓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4. 법과 기준을 세워야 한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이제 더 이상 인정에 기대고 신앙의 양심에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총회장의 자리가 이미 존경과 존중의 가치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그들의 인품에 기댈 수도 없게 되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교단헌법에서 선거법(선거관리규정, 선거조례 등)을 새롭게 정비하는 것이다. 그간 두루뭉술해서 코에 걸면 코걸이 되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법제도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양심의 기준을 세워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방면의 정비가 필요하다. 첫째는 무엇이 위법인가를 확실히 하는 것이다. 교회 선거이지만 그간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것들이 있다. 지역이나 선거에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을 자신의 교회에 강사로 부른다거나 자신이 관여되어 있는 단체에 부르는 것, 또는 단체에서 입후보자들을 불러 설교를 시키고 기부금을 내도록 하는 행위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인정에 끌리어 사람들을 만나며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라든가, 기념품이라는 이름으로 돌리는 선물 등도 불법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아주 구체적이어야 한다. 달리 생각해 볼 여지가 없도록 아주 구체적으로 어떠한 행위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밝혀야 한다. 사회가 바뀌면서 그 양태가 항상 변하고 있다. 이에 따라서 그 변화의 형태도 모두 포함하여 밝혀야 한다. 그래야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을 조심해야하는지를 후보자나 유권자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불법이 적발되었을 때 그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하는가를 명확히 해야 한다. 그간 총회나 다른 선거에서 불법이 적발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치리과정에서 항상 유야무야되었다. 총회 임원들의 임기가 1년이기 때문에 조사하는 기간, 심사하는 기간 등을 거치다보면 이미 임기가 지나 있는 경우들이 많았다. 그리고 목사가 목사를 치리한다는 것이 쉽지 않아서 서로를 봐 주다 보니 명확한 치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더군다나 그 불법을 명확히 밝혀내는 데에 있어서도 조사권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선거법을 개정한다면 그 조사기간이나 재판과정의 기간을 명시해야한다. 그냥 임원의 임기 동안 유야무야 넘어가던 관행을 끊어야한다. 그리고 불법에 대해서 어떠한 벌칙이 가해지는 지를 명확히 해서 괜한 논란을 벗어나야 한다. 이번 조사에 보면 몇몇 교단의 경우는 선거과정에서 어떠한 것이 불법이라고 명시는 하고 있는데, 그러한 것을 어기면 어떠한 제재나 치리를 받게 되는지는 아예 나타나지 않는 곳도 있었다. 바로 이러한 부분을 이번에 바로 잡아야 한다.
5. 나아가며
초대교회의 감독들은 자기가 그 자리를 얻고자 하지 않았다. 사람들에 의해서 추대가 되는 것이지 결코 그 자리를 탐하여 운동을 하거나 노력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공식적으로 순교의 자리로 나아가겠다는 공식적인 선포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즉 감독이 된다는 것은 곧바로 죽음을 각오하고, 순교하겠다는 표시였다. 그런데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고, 감독의 자리가 권력의 자리가 되기 시작한다. 그 때부터 귀족들에 의해서 그 자리는 꼭 차지하고 싶은 자리가 되고 만다. 그러나 그 때부터 기독교는 타락하고 만다. 권력이 있고, 돈이 모이는 그 자리로부터 기독교는 썩어 들어가게 된 것이다.
* 본 내용은 2012년 8월 31일(금) 오후2시, 한국교회백주년회관에서 개최된 <교단선거법 개정을 위한 토론회> 주제발제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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