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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그리스도인

윤리적혁신여행을 마치며_백요한회원 인터뷰



아리스토텔레스, 매킨타이어, 하버마스 등등...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사람들의 철학을 숨가뿐 직장생활을 끝낸 저녁시간에 따로 배우고 나누기로 작정한 이들이 있다. 6주간의 윤리적 혁신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5인!(강성호, 백요한, 윤수정, 윤나래, 최하은) 그 중에서 독서모임 광고를 보고 알리(기윤실 총장님을 칭함)에게 친히 메일을 보내 자신은 20, 30대가 아닌데 참여를 해도 되겠냐는 강력한 의지를 전한 분이 계시다.  

호기심 많은 윤실이, 당장 백요한 회원님 사무실 근처로 달려갔으니... 6월의 마지막날, 바쁜 점심시간에 짬을 내 주신 덕분에 선릉역 근처 갈비탕을 먹으며 우리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기윤실회원은 언제부터 되신 겁니까?

본래 대학가서 학생운동에 관심이 있었는데 사학과 선배가 나를 기학연 세계관강좌 비슷한 곳에 데리고 갔다. 모태신앙 특유의 뜨뜨미지근한 신앙이었던 나는 그 곳에서 일종의 사회적 회심을 경험하였던 거 같다. 기학연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레 같은 공간을 쓰던 기윤실에 관심이 가게 되었다. 그때 당시에는 유해신 간사님께서 활동하고 계셨는데 함께 활동을 하자고 했던 거 같다. 그렇게 알게 된 인연이 대학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후원을 해야겠다는 마음까지 갖게 되었다.

그럼 윤리적혁신독서모임은 어떻게 신청하시게 되셨나요?

평소에 배우는 것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바쁘게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뭔가 배우기가 쉽지 않았는데 기윤실에서 독서모임을 한다고 하길래 선뜻 마음이 동했다.

함께 독서모임 하시니 어떠셨나요. 커리큘럼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처음엔 의욕을 갖고 시작했는데 굉장히 어렵더라. 고비가 있었는데 두 번째, 세 번째되던 날은 다른 약속과 겹쳐서 기윤실 독서모임을 빠져야겠다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그 약속이 당일 취소가 되더라. 그래서 뜻이 있나보다 하는 마음으로 그 이후로는 꾸준히 참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철학이라는 것이 참 좋은게, 평소에 내가 고민하던 것을 이미 그 천재철학자들은 생각을 해서 정리를 해 놓았더라. 그걸 읽으면 나 역시 수월하게 정리가 되었다. 철학이라는 것이 쓸데없는 뭔가를 고민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뭔가 도움이 되었다기 보다는 인생에 있어 든든한 보약을 먹어둔 느낌이 든다.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다.

특별한 후원을 하셨던데요?

기윤실을 후원하면서 기윤실 사무실을 처음 와 봤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굉장히 크고 회의실이나 강의실도 여럿 되는 줄 알았다. 근데 막상 와보니 이게 굉장히 작고...뭐랄까...후원을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생각했던 기윤실이랑은 너무 달라서 솔직히 놀랐다. 그런데 후원액수를 늘리는 방법도 있는데 나는 보험을 하는 사람이라 보험방식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후원을 하는 것은 어떨까 싶었다. 그 전에도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았던 거 같다. 일종의 생명보험 같은 거다. 내가 죽으면 기윤실이 보험금을 받게 되는 식이다. 단기적으로는 도움이 안 될 거다. 기윤실의 운동이 지속되리라는 믿음을 전제한 후원방식일 수 있다. 가치의 면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그 죽음의 때에 보험금을 기윤실에 내어 놓겠다는 거다. 열심히 살아야 할 거 같다.

기윤실 회원으로서 직장생활 하시기 어떠신가요?

쉽지 않다. 거짓말하지 않고 직장일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거 같다. 거짓말을 하는 당연한 태도와 거짓말을 절대 해서는 안되는 태도 사이에서 여러 고민을 했던 거 같다. 이제는 그 둘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더니 지혜가 생기더라. 제3의길을 찾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나같은 경우는 이름이 ‘요한’이라서 직장일로 만나는 사람들이 선입견을 갖고 나를 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게 불편해서 개명을 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다른 이유로 개명을 하고 싶어졌다.

어떤 이유때문인가요?

내 이름 때문이 아니라 내가 사는 방식과 태도를 보고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름 때문에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에 걸맞게 살아가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여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