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5. 20
5월18일, 여느 때보다 늦은 아침식사로 하루를 열고 차를 몰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시내외곽에 위치한 한적한 영화관이었다. 이미 소설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영화로 제작되어 많은 관심을 모았던 영화 ‘다빈치코드’를 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원작소설을 읽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의 내용이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영화화 된다는 점보다는 영화에 대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의 강력한 문제제기 때문에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언론을 통해 ‘다빈치코드’에 관한 정보를 얻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리라. 언론은 온통 ‘다빈치코드’에 대한 한기총의 대응에 관한 기사들로 넘쳐났다.
언론에 보도된 예매율을 통해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른 아침부터 북적대는 영화관의 풍경은 매우 낯설어 보였다. “영화에 대한 관심이 단순한 거품이 아니었구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가 원작소설의 풍성한 상상력을 담아내는 일은 늘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가진 나는, 영화에 대한 관심이 곧바로 흥행성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예상이 빗나간 걸까. 나는 좌석에 앉은 채 평일 오전 같지 않은 분주함에 놀라고 있었다. 남녀가 짝을 이루어 앉아있는 관객은 대부분 대학생들처럼 보였다. 듬성듬성 외딴 섬처럼 홀로 앉은 사람들도 보였다. 영화관의 조명이 짙은 어둠으로 대체되고 영화가 시작되자 난 영화에 집중하기 위해 자세를 바로잡고, 스크린에 시선을 묻었다.
러닝타임 147분, 영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랭던(톰 행크스)의 노력이 차츰 결실로 드러나는 과정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조심스레 풀려나가는 실타래 같았다. 그러나 영화는 한계가 있었다. 감독은 한정된 필름 안에 방대한 내용을 담아내기 위해 역사적 사실관계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는 친절함을 버렸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대학생처럼 보이는 한 사내에게 영화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 대한 가벼운 경계를 머금은 채 내어놓은 대답은, “어렵다”였다. 실제로 영화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는 소화하기 어렵다. 영화에는 ‘십자군 전쟁’, ‘니케아공의회’, ‘막달라 마리아’, ‘오푸스데이’, ‘시온수도회’등과 같이 사전 지식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때문에 영화한편을 이해하기 위해 별도로 공부를 해야 할 만큼 버거운 영화가 되어 버렸다. 또한 영화는 한기총이 주장한 것처럼 ‘기독교의 진리를 훼손’할 만큼 설득력이 있지도 않았다. 확정적인 몇 가지 역사적 사실들을 연결하여 기독교의 진리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지만 대부분의 논리는 이미 역사 속에 반복되어 온 이단교설일 뿐이었다. 이미 여타의 이론과 주장을 통해 반박된 논리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를 관람한 이후에 찾은 청년포럼은 영화 ‘다빈치코드’에 대한 단순한 이해와 평가 외에도 기독교에 대한 문화적 도전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해야 하는지에 관한 폭넓은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신동식 목사(빛과소금교회 담임목사, 청년대학생위원회 위원)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포럼에서 먼저 말문을 연 것은 송태현 박사(한국외대 외래교수)였다. ‘「다빈치코드」와 기독교’라는 주제로 진행된 발제에서 송태현 박사는 가장 먼저 ‘다빈치코드’의 토대인 ‘기밀문서’의 사실여부에 대해 언급한다. 발제자는 파리 국립 도서관에 보관중인 ‘기밀문서’ 자체뿐만 아니라, 제작자들도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이는 1996년 BBC에서 제작된 ‘어떤 미스테리의 역사(The History of a Mystery)'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어서 발제자는 허구에 토대를 둔 ‘다빈치코드’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를 이 작품이 지닌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요소라고 지적한다. 이를 통해 기독교의 약점을 파고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에 대해 깊은 성찰과 함께 바른 대응을 요구했다.
두 번째 발제자인 김용민 기자(뉴스엔조이 편집장)은 가장 먼저 ‘다빈치코드’의 인기비결과 한기총의 반대이유를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했다. 그는 ‘다빈치코드’의 인기비결을 성역인 기독교 신성에 대한 언급이라는 점, 사회 저변에 확산된 ‘반기독교 정서’, 그리고 기독교계의 저차원적 대응수준과 추리소설로서의 막강한 경쟁력으로 꼽았다. 그의 분석은 한기총의 반대 이유에서 더욱 세밀함을 보인다. 그에 의하면, ‘다빈치코드’가 “기독교의 진리를 훼손한다”는 주장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고, 실제로는 한기총의 대 사회적 영향력 확대와, 내부의 선명성 경쟁, 그리고 내부결집을 위한 움직임이라고 주장했다. 김용민 기자는 한기총의 대응이 성숙치 못한 이유에 관해서도 다양한 사례를 동원해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마지막으로 기독청년들에게 소위 보수적 목사들이 제시하는 경직된 패러다임을 버리고, 성찰과 도전을 통해 굳건한 믿음을 키워가라고 조언했다.
이후 신동식 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전체토론에서는 주로 ‘한기총의 대응방식’이 주요 논제로 떠올랐다. 한 참가자는 김용민 기자에게 정당한 비판은 동의할 수 있지만 같은 기독교 공동체인 한기총을 대해 정중하지 못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으로 격론을 펼치기도 했다. 전체토론은 그렇게 한기총에 대한 성토의 장으로 흘러가는 듯 했으나 이후 진행된 조별 토론에서는 좀 더 세밀하고 집중된 논의가 이루어졌다. 총5개 조로 나뉘어 진행된 조별토론에서 참가자들은 전체토론에서 미처 언급하지 못했던 다양한 의견들을 적극적으로 쏟아냈다. 조별 토론의 끝은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날도 역시 정해진 시간을 훌쩍 넘어설 때까지 토론의 열기는 식지 않았고, 몇 번의 반복된 권유를 통해서만 정리가 가능했다.
이번 포럼을 통해 교회 내에 존재하는 왜곡된 가치관이 가져다주는 폐해에 대해 돌아보고 바른 시각과 가치관을 정립해 나가는 것의 중요성을 확인하게 되었다. 다음포럼을 기대하며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그러나 가벼운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향했다.
청년대학생위원회 위원 박성수 전도사(용인중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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