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 과세와 교회의 공적 책임
고재길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기윤실부설 기독교윤리연구소 부소장)
종교의 공공성과 납세문제
목회자 납세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종교인 과세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신앙의 자유는 어떠한 공권력도 개입할 수 없는 개인의 기본 인권”이라고 하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
종교의 자유가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적인 개인의 권리인 것은 분명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일본의 공공철학자, 야마와키 나오시의 지적처럼 종교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단순히 “사적 영역”으로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종교단체는 사람들의 모임과 조직이며, “그 활동의 사회성”을 고려하면 국가와 구별되는 공공성의 차원을 가진다. 미국의 사회학자, 벨라(Robert Bella)의 견해에 의하면 퍼블릭 처치(pubilc church, 공적교회)는 미국 사회의 공공성을 활성화함으로써 다문화적 공공 세계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독일의 사회철학자, 하버마스 (J. Harbermas)는 후기 세속화 사회에서 생명의 개념과 그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종교의 공공성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회의 공공성과 본회퍼
종교의 공공성이라는 주제는 철학자들과 사회학자들뿐만 아니라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연구 주제이다.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그의 저서, 『윤리학』의 “형성의 윤리(Ethik als Gestaltung)”에서 교회의 공적인 역할에 대해서 말한다. 교회의 공공성은 교회가 속해 있는 사회의 공적인 이슈와 그것에 대한 논의에 참여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공적인 논쟁을 회피한 인간은 개인적 미덕이라는 피난처에 도달한다. 비록 그가 온갖 일을 행하더라도, 자신이 행하지 않은 일 때문에 평안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이러한 불안 때문에 파멸하거나, 가장 위선적인 바리새인이 될 것이다.
본회퍼는 그리스도인 한 개인의 윤리가 아니라 교회의 윤리를 말하고 있다. 교회의 윤리는 교회공동체의 윤리이며, 교회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입장은 그의 유명한 교회론적인 비전(Vision), “타자를 위한 교회(Kirche für andere)”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교회는 타자를 위해서 존재할 때, 그때 교회이다. 그런 교회가 되기 위해 교회는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야 한다. 교회는 인간 공동체의 세상적 과제에 참여해야 하지만, 지배하면서가 아니라 돕고 섬기는 방식으로 참여해야 한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는 삶이 어떤 것이며, 또 ‘타자를 위한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말해 주어야 한다.
본회퍼는 교회공동체의 정체성을 공공성의 관점에서 규정하고 있다. 교회의 정체성은 “타자를 위한 존재”로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나타난다. 교회는 세상을 위한 존재로서 세상을 돕고 섬기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본회퍼가 유대인을 위한 변호를 포기함으로써 교회의 공공성을 끝까지 견지하지 못했던 독일 고백교회를 비판했던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러한 교회의 공공성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신학과 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교회의 공공성을 교회의 공적 책임의 형태로 이해하고 이를 사회 속에서 실천하는 움직임은 공공신학과 기독교사회윤리를 통해 나타났다.
종교인 납세와 교회의 공적 책임
본회퍼의 교회론적인 전통을 이어받은 독일의 기독교윤리학자, 후버(Wolfgang Huber)는 교회의 공적인 책임은 평화를 위한 사역과 이웃을 위한 봉사(Diakonia)을 통해 이행된다고 봤다. 교회의 공공성과 선교의 현장을 연결시키는 최근의 신학적 작업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 그것은 공공신학과 ‘선교적 교회론’이다. 선교적 교회론에 근거할 때, 지역사회는 교회의 단순한 전도의 대상이 아니라 “교회가 함께 공동체적 삶을 공유해야 하는” 장소이다. 교회의 공공성은 교회가 속해 있는 사회에 대한 책임성과 분리될 수 없고, 사회에 대한 공적인 책임은 ‘선교적 교회’를 지향하는 교회에게 요구되는 자연스러운 과제이다.
교회는 앞으로 시민사회가 제기하는 공공성의 요구 앞에서 “하나님의 주권에 입각하여 당당한 공공적 관심으로 시민사회를 주도하는 윤리적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유경동 박사는 목회자 납세문제를 교회의 공적 책임과 기독교윤리에 비추어서 분석한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루터(Martin Luther)는 “공적 영역에서 사회의 질서를 책임질 당시의 체제에 대하여 세금을 내는 것을 의무”라고 생각했다. 유경동 박사는 특별히 독일인들에게 세금을 거둔 교황청에 대한 루터의 비판에 주목한다. 그 당시의 독일의 성직자들은 모두 교황청에 세금을 바쳤지만, 교황청은 기독교를 이교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본래의 목적에 맞지 않게 세금을 낭비했다고 한다. 그는 이 사실로부터 목회자 납세의 근거를 찾는다. 그는 “국가가 기독교의 활동과 신앙의 자유를 보호하여 주고, 한국 내 기독교인의 인권과 생명을 지켜준다면”, 목회자 납세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그의 결론이 보여주고 있듯이 목회자가 “영혼을 위한 영적인 짐”만이 아니라 “세금의 짐도 져야 한다면”, 목회자는 납세를 통해 “사회의 통합과 질서유지에 공헌”해야 한다. 기독교윤리에 근거한 목회자 납세는 “법의 형식을 넘어서서 이웃을 염려하고 함께 공감하는 성숙한 조세문화로 발전”해야 한다.
결론
종교인 납세문제는 종교의 공공성을 고려할 때 해결될 수 있다. 사회철학과 종교사회학자들이 강조하고 있듯이 종교는 사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공적인 차원을 지닌다. 종교기관은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적 공동체들 가운데 하나의 공동체이다. 교회를 포함하여 그 어떤 종교단체도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와 공동체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목회자를 포함한 종교인은 사회의 공익을 위하고 그 사회를 섬기는 차원에서 납세의 의무를 준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입장은 본회퍼의 교회론과 기독교윤리학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목회자의 신앙과 윤리는 “타자를 위한 인간”이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에 참여하는 것이고, 교회는 “타자를 위한 교회”로서 이 사회 속에서 실존할 때 교회의 의미를 갖는다. 이제 교회는 사회를 위한 공적 책임을 이행하고 “타자를 위한 교회”의 윤리를 실천해야 한다. 공공신학의 입장은 목회자의 납세문제를 사회에 대한 교회의 공적인 책임과 연관시킨다. 교회는 교회의 공공성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앞에서 물러서지 않아야 한다.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가 추락한 오늘의 현실은 교회의 공적인 역할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목회자 납세는 사회에 대한 교회의 공적인 책임이행과 윤리적인 실천의 한 형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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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선교와 신학」(2017.2)에 게제된 논문 “기독교윤리학의 관점에서 본 종교인의 납세문제: 교회의 공적 책임을 중심으로”의 일부를 발췌·요약하였습니다.
이 글은 2017년 기윤실 열매소식지 9-10월호 특집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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