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줄사회 극복을 위한 제도적 대안
- 부정청탁금지법을 중심으로-
김영란 법?
세월호 사건의 배경에 민관유착 등 부정부패의 고리가 존재했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적인 대안에 대한 논의가 최근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 핵심에 있는 것이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이하 부정청탁금지법)이다. 이 법안은 김영란 전 대법관이 국민권익위원장 시절에 주도적으로 제안을 했기 때문에 ‘김영란 법’으로 불리고 있기도 하다. 김영란 법 원안(최초에 김영란 전 대법관이 제안했던 법안)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직무관련성과 대가성 여부를 불문하고 공직자가 일정금액 이상의 금품을 수수할 경우에는 형사처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에 형법상 뇌물죄가 성립하기 위해서 직무관련성 및 대가성이 요구되었던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이러한 부정청탁금지법은 우리사회에 만연한 연줄문화를 근본적으로 청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언론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부정청탁금지법안의 구체적인 내용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쟁점이 존재한다. 법률적용대상을 공직자의 가족까지 확대하는 것이 헌법상 인정되는 연좌제금지에 위반되는 것은 아닌지, 공직자의 일반적인 금품수수를 모두 처벌하는 것이 과잉금지원칙에 반하는 것은 아닌지, 정상적인 민원제기와 부정청탁 간의 구분이 모호한 것은 아닌지 등이 그것이다.
이하에서는 부정청탁금지법의 추진경위, 주요내용 및 쟁점에 대해서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기독교적 관점에서 부정청탁금지법을 어떻게 볼 것인지를 논의해보도록 한다. (이하의 추진경위 및 쟁점에 대해서 자세히는 이혜미,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 제정 논의에 대하여”, 이슈와 논점 881호, 국회 입법조사처, 2014 및 홍완식,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안에 대한 입법평가”, 입법평가 Issue Paper 13-24-②, 한국법제연구원, 2014를 참조)
부정청탁금지법의 추진경위
2011년 6월 국무회의에서 ‘공정사회 구현, 국민과 함께 하는 청렴확산방안’ 보고를 통해서 공직부패에 대응하기 위한 법률제정의 필요성이 언급되었다. 이후 2012년 8월 국민권익위원회가 부정청탁금지법안(이하 ‘김영란 법 원안’)을 만들어 입법예고하였다. 이 법안에는 일정금액(100만원)을 초과한 금품을 수수한 공무원에 대한 형사처벌조항이 있었으나, 관련부처와의 협의과정에서 모든 금품수수 공직자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의견이 제시되어 수정된 내용의 법안이 2013년 8월 국회에 정부안으로 제출되었다(이하 ‘정부수정안’)
김영란 법 원안과 정부수정안을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정부수정안에서는 100만원 기준을 삭제하여, 대가성이 없어도 직무관련성만 있으면 금액의 규모에 관계없이 형사처벌을 하도록 원안 보다 기준을 강화했다. 그러나 정부수정안에서는 직무관련성이 없는 금품 등의 수수는 2배 이상 5배 이하 과태료로 제재하는 것으로 변경함으로써, 직무관련성이 없이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한 원안보다는 기준을 약화시켰다.
이처럼 정부수정안은 원안과 비교해서 기준을 보다 강화시킨 측면과 약화시킨 측면이 동시에 존재하나, 후자의 측면에 보다 초점을 맞추어서 애초의 김영란 법 원안에서 제시했던 내용과 비교할 때 상당히 후퇴하였다는 비판이 우세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국회에서는 직무관련 여부를 불문하고 일정 금액 이상의 금품수수를 금지하며, 부정청탁행위, 이해충돌행위 등을 강력하게 제재하는 의원안(김영주의원안, 이상민의원안)이 발의되어 있는 상태이다.
부정청탁금지법의 주요내용
정부수정안을 기준으로 하여 부정청탁금지법의 주요내용을 살펴보도록 한다.
첫째, 법률의 적용대상으로는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공직자윤리법에 따른 공직유관단체 등이 포함되며, 적용대상자로는 공직자뿐만 아니라 공직자의 가족도 포함된다.
둘째, 부정청탁의 개념을 “직무를 수행하는 공직자에게 법령을 위반하게 하거나 지위 또는 권한을 남용하게 하는 등 공정하고 청렴한 직무수행을 저해하는 청탁 또는 알선 행위”로 정의하고, 공직자가 수행하는 직무에 대하여 제3자를 통해 부정청탁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위반시 과태료로 제재한다.
셋째, 직무와 관련하여 또는 지위나 직책에서 유래하는 사실상 영향력을 통해 금품을 수수하는 행위는 대가관계가 없어도 형사처벌을 하며, 직무관련 여부를 불문하고 금품수수를 할 경우에는 과태료를 부과한다. 다만 경조사비 등 사회상규에 반하지 아니하는 금품 등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한다. 또한 공직자의 가족이 금지 금품 등을 받은 경우, 공직자가 이를 알았음에도 처리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경우 공직자를 제재한다.
넷째, 공직자의 직무수행 과정에서 사적 이해관계가 개입될 소지가 높은 유형을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제척·기피·회피 등 이해충돌 관리장치를 마련했다. 법안에서 금지하는 이해충돌행위는 사적 이해관계가 있는 직무수행, 직무와 관련한 외부활동(조언, 자문 등), 직무관련자와의 거래행위(금전차용·대부 등), 소속 공공기관 등의 가족채용, 소속 공공기관등과의 부적절한 계약체결, 직무상 비밀이용 행위 등이다.
부정청탁금지법의 주요 쟁점
위와 같은 정부수정안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쟁점이 존재한다. 첫째, 법률의 적용대상과 관련해서는 가족까지 포함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공직자에게는 본인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가족의 행위까지 책임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되어 자기책임의 원칙에 반할 소지가 있고, 공직자의 가족에게는 행동의 자유 등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이 될 수 있다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견해가 설득력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정부수정안에서는 ‘가족’들의 금품수수시 ‘공직자’의 신고의무(정부수정안 제14조) 등 공직자가 통제가능한 범위의 책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자기책임의 원칙에 반한다고 보기 힘들고, 공직자의 가족에게도 모든 금품수수가 금지되는 것은 아니고 사회상규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의 일상적인 거래행위 등은 허용되기 때문이다.
둘째, 부정청탁의 개념과 관련해서는 정상적인 민원제기와 부정청탁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논의가 있다. 그러나 정부수정안을 보면 관련법령에 따라 피해구제를 요구하는 행위 또는 공공기관의 위법·부당하거나 소극적인 처분 및 불합리한 행정제도로 인하여 권리를 침해하거나 불편 또는 부담을 주는 사항의 해결을 요구하는 행위는 부정청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정부수정안 제9조 제3항) 두 가지 개념의 구분이 불명확하다는 견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셋째, 금품수수와 관련해서 정부수정안에서 직무관련성이 있을 경우에만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한 것은 부정청탁법안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있다. 이러한 비판은 기본적으로 타당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정부수정안이 이와 같이 원안을 변경시킨 가장 큰 이유는 원안처럼 직무관련성을 요구하지 않을 경우 과잉금지원칙에 반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부수정안 제11조 제1항에서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범위의 금품수수는 광범위하게 제재의 대상에서 제외한 점, 형사처벌 내에서도 위반행위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수준의 처벌이 가능하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직무관련성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해서 과잉금지에 반하는 것으로 보기는 힘들 것이다.
부정청탁금지법을 바라보는 기독교적 관점
이상에서 부정청탁금지법의 추진경위, 주요내용, 쟁점 등을 살펴보았다. 결론에 대신하여 부정청탁금지법을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를 제시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죄성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정청탁이나 이해충돌행위를 인간의 죄성에서 발현된 현상으로 본다면, 그리고 이러한 죄성이 쉽게 소멸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부정청탁이나 이해충돌행위가 부정청탁금지법을 통해 일거에 사라질 것으로 너무 순진하게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부정청탁금지법의 제정을 반대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보다 실효성이 있는 법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는 법안의 시행과 관련해서는 무엇보다 공직자 또는 가족의 금품수수를 방지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며, 금품수수와 관련한 보고의무의 이행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가 이야기한 법의 세 가지 기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마틴 루터는 법의 기능으로 크게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정치적/시민적 기능, 신학적 기능, 교육적 기능이 그것이다. 정치적/시민적 기능은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는 기능을 말하고, 신학적 기능은 법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믿음을 추구하게 하는 기능을 말하고, 교육적 기능은 바람직한 삶이 무엇인가를 교육하는 기능을 말한다. 부정청탁금지법과 관련해서 특히 이 중에서 세 번째 기능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정부수정안을 보면 부정청탁이나 금품제공금지에 대한 국민의 책무(제3조)를 국가의 책무(제4조)나 공직자의 의무(제5조)보다 앞세운 것을 볼 수 있다. 이 법이 국민에 대한 교육적 기능도 담당해야 하지만, 그보다는 공직자에 대한 교육적 기능이 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위와 같은 조문의 배치는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이 법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데에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기존의 연줄문화는 이러한 연줄이 존재하는 사람에게는 유리하지만 이러한 연줄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부당한 차별을 받기 쉬운 구조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줄은 자신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얻어지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연줄문화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 핵심적이라고 할 수 있는 평등원칙, 즉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받지 않아야 하는 원칙에 어긋난다고 보아야 한다. 공직자들은 청렴의 문제가 평등권이라는 인권의 문제라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 법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국민에게 부정청탁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기 이전에 부정청탁을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점을 공직자들이 일관되게 보여주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기독인 공직자들이 이 법을 준수하는 모범을 보여줌으로써 청렴문화가 확산되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본다.
** 이 글은 SFC 총동문회 격월간지 <개혁신앙> 8호에 실린 글이며, 허가를 받고 전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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