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윤실 월례포럼]
기독교의 두 얼굴 : 다원주의 사회를 사는 그리스도인 강연록
지난 11월 14일, IVF중앙회관에서 "기독교의 두 얼굴 : 다원주의 사회를 사는 그리스도인"을 주제로 11월 월례포럼을 진행했습니다. 이 포럼은 일련의 사건에 대한 한국 기독교 내의 양극단적 대립 현상을 짚어보고, 한국 사회 내에서 기독교가 어떻게 다른 종교, 다른 문화들과 공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 일시 : 2014년 11월 14일(금) 오후7시30분
● 장소 : IVF중앙회관 1층 산책
● 강사 : 강영안 교수(서강대 철학과)
세월호 참사에 대해 개신교에서 한 목소리로 입장을 낸 것을 보지 못했다. 가톨릭에서는 교구와 수도회를 중심으로 경향신문 광고를 냈는데 수십 만 명이 이름을 올렸다. 조르주 아감벤 이야기를 하는 등 철학을 좀 공부한 사람이 쓴 것 같은데 너무 어렵게 쓴 것 같다. 좀 더 쉬운 언어로 썼으면 좋았겠다. 어쨌든 가톨릭에서는 입장이 나왔다. 그러나 개신교는 일부가 공감을 표현하기도 했지만, 한편에는 반대하는 입장도 있다. 세월호 사건뿐만이 아니다. 10여 년 전 이라크 파병 문제를 시작으로 교회 안에 양극화 된 의견의 표출이 도드라졌다. 일부는 보수적인 입장을, 젊은 층은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10여 년 됐다. 교회 안에서,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기독교의 두 얼굴이 있다. 한쪽은 보수, 한쪽은 진보라고 할 수 있다.
진보와 보수는 80년대만 해도 신학대학을 기준으로 분류됐다. 예를 들어 한신대와 변선환 교수가 학장으로 있던 시절의 감신대가 진보로 분류됐다. 장신대의 경우 중간의 위치에 있었고, 총신대, 고신대, 합신 등은 분명한 보수였다. 교회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소속은 진보, 아닌 곳은 보수로 분류됐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그리고 김대중 정부 이후 사실상 진보와 보수 구분이 없어졌다. 교회도 진보 대 보수의 구도보다는 세대별 구도가 형성되었고, 서로 대화도 별로 없는 것 같다. 2003년 2월, 미국에 머무를 때 마침 묵자의 ‘비공론’을 읽을 때 미국이 이라크에 선전포고를 하며 이라크 전쟁이 시작됐다. 그때는 국내 상황을 잘 몰랐다. 보도를 통해 알게된 것은 파병문제를 놓고 의견차이가 생겼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등 파병을 해야한다는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들었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최근 세월호도 그 연속선상에서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1년에 교통사고로 수천 명이 죽는데 300여명 죽은 세월호 사고도 교통사고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은 단순한 사고를 뜻하는 엑시던트(accident)가 아니라, 사건을 뜻하는 이벤트(event)다.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냥 가다가 차가 부딪히면 그건 사고다. 그걸 통해 특별히 드러나는 것은 없다. 그러나 새월호 참사가 단순 사고가 아니라 사건인 것은 그것을 통해 무언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계시해주는 것이 있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통해 한국의 민낯이 드러났다.
저는 세 가지에 주목하고 싶다. 첫째로 한국사회가 독일의 학자 호네트(?)의 말처럼, 위험사회로서 기술사회가 되었고, 둘째로 한국사회가 ‘관피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정의하고 부패한 사회이며, 셋째로 그럼에도 불구하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한 사회라는 것이다. 이렇게 단어를 늘어놓으면 우리가 살고 싶은 사회, 기독교가 기여해야 할 사회가 보인다. 지금 보다는 안전한 사회, 지금 보다는 정의로운 사회, 지금 보다는 응답하고 책임지는 사회가 그것이다. 이것들이 우리가 지향하고 만들어가야 할 사회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는 안전한 교회, 평화롭고 정의로운 교회, 책임지고 응답하는 공동체인지 물어보면 스스로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는가. 또 한국교회가 왜 여기 같이 동승하고, 한국사회와 구별할 수 없는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가. 일제 강점을 경험한 것과 한국전쟁을 경험한 것이 매우 컸다. 특히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상처를 입지 않은 사람이 없다. 한국전쟁의 경험이 무의식 속에 내재되면서 한국사회의 가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인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최고의 가치는 생존이 되었다. 평화니 안전이니 하는 것은 사치스런 것이었다. 우리는 1980년대에 와서야 조금 잘 살게 됐다. 정치적으로 진보인지, 보수인지 하는 것도 이와 관련있다. 살아남았고 심지어 잘 살게 된 사람들이 갖는 자부심과 현재에 대한 만족을, 그 이후 세대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이 세대 간의 차이로 이어졌다. 교회에서도 장로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말이 안 통할 것이다.
이것이 한국 기독교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네덜란드에서 공부할 때 ‘한국 문화와 기독교 신앙’이란 주제로 발표를 한 적이 있다. 초기에 유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윤치호 선생을 통해 유교와 기독교의 관계를 살펴보았고, 역시 초기에 도교에서 기독교로 전향한 길선주 목사를 통해 도교와 기독교의 관계를 살펴보았으며, 한국전쟁 전후 시기에 불교에서 기독교로 넘어온 조용기 목사를 통해 불교와 기독교의 상관관계를 살펴보았다. 조용기 목사를 예로 들었다고 비판하는 분들이 있다. 또 윤치호 선생이 친일파인데 예를 들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제가 그 분들을 예로 든 것은 그분들이 도덕적이거나 신앙이 위대하기 때문이라는 것과는 별개로, 전형적으로 한국인답게 신앙 생활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조용기 목사는 지금의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서 장모인 최자실 전도사와 함께 사역을 시작했다. 그때 내세운 구호가 “지금 여기에서 복음, 지금 여기에서 구원”이었다. 조용기 목사가 내세우는 삼박자 구원이 실은 상당히 유교적인 것이다. 한국 기독교는 60년대 말까지 철저하게 말세론적이고 내세적이었고, 현재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과 신앙이 무슨 관계인가 하는 물음은 없었다. 그로부터 큰 전환이 이뤄지는 것이 조용기 목사의 사역이다. 지금 여기에서 건강하고, 물질 축복도 받고, 영혼 구원도 받는 것이 복음이라고 했다. 그 영향으로 한국 교회는 극단적인 현세중심주의가 되었다. 장로교회들도 순복음적인 장로교회가 되었다. 신학자들이 신학의 토착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신학을 아주 전형적인 모습으로 토착화 한 것이 조용기 목사와 순복음교회다. 그러나 철저하게 현세주의적이 되었다. 한국종교의 특색이 바로 현세주의다. 유교든, 불교든, 도교든, 다 이 세상을 중요하게 여기고, 진흙 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좋고, 여기서 복 받고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한국 기독교도 이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대개 신앙이 보수적인 사람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이고, 신앙이 진보적인 사람은 정치적으로도 진보적이다. 그런데 1970년대에 한국 기독교의 진보운동을 이끌었던 분들이 정계로 흡수되면서 사실상 한국 기독교 내의 진보운동은 막을 내렸다. 오히려 보수전통의 교회 안에서 진보적 성향의 젊은이들과 보수층이 양분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것이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도 드러났다. 단식 투쟁을 한 방인성 목사 같은 분도 신앙은 보수적이다. 복음주의 신앙을 따르면서도 저항운동을 하는 분들이 나타났다.
제 생각에는 가장 좋은 형태는 신앙은 보수적이고, 실제 사회문제는 진보적인 것이 오히려 더 복음에 합당한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진보, 보수가 신앙을 규정하는 좋은 틀은 아니라고 본다. 보수는 전통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만 보고, 진보는 과거는 다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아 나가야 하는 것으로 본다. 복음은 지켜야 할 것과 새롭게 개혁, 혁신해야 할 것이 다 있다. 신앙의 보수가 정치적 보수를 가져오고, 신앙의 진보가 정치적 진보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복음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스피노자의 <에티카>에 나오는 ‘코나투스 에센디(conatus essendi)’처럼, 우리 속에 내재하고 있는 자기 보존의 성향을 깨뜨리고 끊임없이 자기 도전을 하는 것이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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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8 - [월례포럼] 가난한 사람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사회복지편>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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