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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실, 소박한 일상

공동체운동과 기독교사회윤리


2006. 11. 22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세계화의 물결은 소비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이데올로기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기독교 정신의 한 맥을 이루고 있는 공동체 사상과 윤리를 강조하고 실천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기윤실 윤리 스터디의 일환으로 진행된 박득훈 목사님의 강의는 이런 기독교 공동체 사상과 사회 윤리에 대해서 밀 뱅크의 주장을 소개하면서 진행되었다.

밀 뱅크에 의하면 기독교사회윤리의 핵심은 지금의 사회를 세속적인 사회이론에 근거하여 보다 정의로운 사회로 개혁하는 데 있지 않고 교회가 참된 공동체의 모습을 회복하고 확장해 가는 데 있다. 왜냐하면 현대의 자유주의 사회는 본질적으로 기독교의 정의가 실현될 수 없는 세속적 이성에 기초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밀뱅크에게는 교회론이야말로 기독교인에게 유일한 사회이론인 셈이다.

밀 뱅크는 교회를 ‘대안적 도시(Altera Civitas)’로 이해한다. 신약에 나타난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사명과 어거스틴의 「신국」을 통해서 교회를 땅의 도시와는 달리 평화로운 존재를 가능케 하는 규범을 가진 대안적 도시로 제시한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비로서 진정한 공적 윤리가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현대 세속사회와는 달리 공공선과 가치에 대한 절대적 합의를 근거로 세워진 비정치적이면서도 사회적인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밀 뱅크는 일반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분파주의적 입장을 배격한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사상과 교회의 사회적 실천은 세속사회의 폭력적 존재론과는 달리 평화의 존재론을 암시할 뿐 아니라 구현한다.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이야기는 무한한 존재가 혼돈이 아니고 평화로운 조화임을 보여준다. 그러기 때문에 폭력은 자기를 주장하는 죄로 말미암아 원래의 평화로운 질서에 침입해 들어온 부차적이고 불필요한 현상임을 수사학적인 힘을 가지고 우리를 설득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사회윤리의 유일한 근거는 교회론인 것이다. 그밖에 현대의 세속적 사회이론을 비판적으로 차용한다고 할지라도 이는 신학적 진리와 정통 기독교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빛이 되는 유일한 길은 정의와 지혜의 완성인 사랑의 덕에 기초해서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평화의 공동체를 만들고 그 영역을 세상의 한 가운데서 펼쳐 가는 것이다.

이런 밀 뱅크의 주장에 대해서 박득훈 목사님은 우리 시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매우 중요한 운동임에 틀림없다고 인정하면서도 몇 가지 아쉬운 부분을 설명하였다.

먼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로 밀 뱅크가 주장하는 데로 ‘교회론을 기독교사회윤리의 유일한 사회이론으로 받아드릴 것을 요구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신약을 보면 교회의 모습은 대략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로,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에 함께 했던 핵심적인 제자들의 공동체의 모습은 가정을 떠난 방랑공동체의 성격을 갖고 있다. 둘째는 트로엘취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랑의 공산주의‘를 실현한 예루살렘 생활 공동체의 형태이다(행2: 41-47; 4: 31-37). 셋째는 사도들의 선교를 통해 세워진 어느 정도 제도화된 교회 공동체의 형태이다. 이 교회에서는 국가를 인정하고, 일반사회의 구성원으로 모범적인 삶을 살 것을 가르친다. 로마제국의 정치 경제 제도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을 담고 있는 내용을 찾아 볼 수 없다. 이교회의 모습은 밀뱅크가 제시하는 교회론과는 많은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자신의 교회론만을 유일하게 원래의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대단한 무리가 아닐 수 없다.

밀 뱅크는 또한 성경의 교회들 이후에도 교회는 변화되는 현실 속에서 세속사회와 올바른 관계를 맺어 보려고 다양한 형태로 노력해 왔다는 점을 부정당하게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프레스톤은 다른 유형들의 유효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문화를 변혁시키는 그리스도’ 유형이 현대와 같이 사회변동이 급격한 시대에는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한다. 이는 교회가 스스로 온전한 공동체의 모습을 회복하려고 노력해야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회에 대한 사명을 다한 것이 아님을 말해 주는 것이다. 교회는 더 나아가 사회 속으로 직접 파고들어야 한다. 일반 사회 구조가 하나님의 나라의 이상에 가장 근접할 수 있도록 변혁을 꾀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연히 세속사회이론에 대한 비판적 수용이 불가피해지는 것이다.

이번 강의에서 박득훈 목사님은 개인주의를 무섭게 부추기는 세계화의 거센 흐름 속에서 공동체적 가치에 주목하고 소공동체 운동을 펼치어 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아름다운 일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안 되며 보다 다양한 불의를 구체적으로 포착하고 실현 가능한 최대한의 상대적 정의를 추구하려면 무엇보다도 다양한 세속적 사회이론들을 비판적으로 섭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 보다 다각적으로 수많은 사람의 삶과 죽음이 달려있는 정치․경제제도를 개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