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해방 컨퍼런스: 빚에서 빛으로>
2017년 11월 9일,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에서 <부채해방 컨퍼런스 : 빚에서 빛으로>를 진행했습니다. 부채문제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을 살펴보고, 약 10억 원 가량의 채권을 싼값에 매입하여 소각함으로써 86명의 부채를 없애는 퍼포먼스 등을 진행했습니다. 이 행사는 향상교회의 후원을 받아 진행되었습니다.
컨퍼런스에서 김근주 교수님이 발표하신 ‘부채에 대한 기독교적 입장’의 결론 부분을 여기에 싣습니다. 자료집은 기윤실 홈페이지(cemk.org) 자료실에서 무료로 내려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부채에 대한 기독교적 입장"
- 구약에 비추어 본 부채 탕감
김근주 교수(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원칙적으로 빚을 지게 되는 현실이 있기 마련이다. 빚은 사람의 인격을 지배한다. 이에 대해 구약 성경은 담보를 잡는 것에 대한 세밀한 규정으로, 그리고 이자 받지 말라는 규정으로 빚이 지닌 지배력을 약화시킨다. 나아가, 구약 율법은 정기적으로 반복되는 면제년을 통해 빚을 탕감하여 사람이 빚에 지배되지 않도록 제도화한다.
하나님이 자유케 하셨다는 선언은 다른 사람이나 하나님 아닌 그 무엇에도 종 되지 않는 것과 연결된다. 그래서 빚으로 인해 채주의 종이 되지 않게 하는 여러 규정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 선포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신명기의 면제년 규례는 이와 연관하여 궁극적으로는 ‘너희 가운데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는 선포에까지 나아간다(신 15:4-5). 언제나 가난한 자가 있기 마련인 현실 위에서 이러한 선포가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가난이 “너희” 즉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규례들과 제도들을 통해 공동체적으로 해결되고 해소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가난한 자가 없어지는 것은 절로 되는 일이 아니라 면제년으로 대표되는 제도가 그 사회 내에서 실천될 때 이루어지고 확립되는 것이다.
구약이 그리고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는 서로가 어려워졌을 때 기꺼이 꾸어 주는 나라, 빚으로 인해 전당을 잡을 때에도 빚진 자를 지배하지 않는 행동을 취하는 나라, 이웃에게 돈을 꾸어 주되 이자를 받지 않는 나라, 그리고 정기적으로 빚이 탕감되어 과거에 매이지 않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나라이다.
구약은 하나님 나라가 관념적이지 않고 구체적이며 일상의 현실과 결합되어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시민법’에 해당하는 내용들을 통해 구약의 이상이 개인의 세계가 아니라 함께 서로 책임지고 연대하며 살아가는 세상임을 보여준다.
구약이 그리는 하나님 나라와 가까운 모습으로 마태복음에 나오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마 20:1-16)를 생각해볼 수 있다. 아마도 개인의 능력으로 인해 가장 늦게 고용되어 포도원에서 일했던 이도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라는 한 데나리온을 받을 수 있다. 한 데나리온이 없다면, 이 노동자는 하루의 삶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을 것이며 빚을 져야 하고 빚에 매여 제대로 된 삶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빚에 대한 접근은 한 데나리온으로 대표되는 모든 이에게 보장되는 기본 소득에 대한 논의와도 맞닿는다고 할 수 있다.
고대 이스라엘에는 오늘날과 같은 주식회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신용 대부를 이용한 기업 같은 것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성경 본문으로 오늘날의 대부업이나 은행의 대출과 기업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기는 어렵다.
이와 얼핏 비슷한 것이 있다면 예수께서 예를 드신 돈을 빌려 주어 이자를 받는 일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마 25:27). 신약 본문은 이자 받는 것에 대해 그리 개의치 않는다. 어떤 가치가 변화된 것이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과 신약 시대 팔레스타인이라는 변화된 사회적 현실, 도시화가 진전된 사회적 현실이 이자에 대한 이와 같은 변화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이스라엘은 재산을 더욱 증진시킬 목적으로 기업형 대부를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으며, 구약에서 대출은 거의 전적으로 가난한 자의 필요였다고 할 수 있다.그에 비해 도시화가 진전된 신약 시대에는 경제적 이익 증진을 위해 돈을 빌리는 경우가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가난한 자에 대한 구제를 강조하는 본문들, 되갚지 못하는 이에게 베푸는 선행을 강조하는 본문과 함께 고려할 때, 신약 본문은 이자를 합법화시킨다기보다 상업적 목적의 이자는 허용되되 가난한 이웃에 대하여 함께 나누는 삶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경이 관심을 가진 것은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가난한 자들과 연관된 부채와 이자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변화되고 복잡하게 분화된 사회에서 구약 율법은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 그러나 구약이 명확히 촉구하는 것은 서로 연대하고 서로 책임지는 공동체이다.
가난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지 않고 모두의 문제로 감싸 안는 것이 무이자 대출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공동체 안에 균등케 하는 원리이기도 하다. 고대 이스라엘에만 이와 같은 무이자 대출 규정이 있었다는 점은, 신앙 공동체의 특별함을 경제적 연대 공동체로 구체화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어느 시대에나 신앙 공동체는 특별한 신앙의 가치라는 추상을 각각의 시대의 구체적 현실로 표현하고 실천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이 글은 2017년 기윤실 열매소식지 11-12월호 특집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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