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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

[비전메시지] 한국교회의 사회적 책임(백종국 공동대표)

[비전메시지]

한국교회의 사회적 책임

 

 

글 _ 백종국 공동대표

 


복음과 사회적 책임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이에 합당한 책임이 수반된다. 보통 “청지기 사상” 혹은 “빚진 자 사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창조세계를 맡은 자로서의 책임이 강조되고, 후자의 경우에는 은혜로 구속함을 입은 자들이 가지는 불가피한 숙명으로 강조되고 있다.

세상에 대한 교회의 사명 즉 “증거의 사역”을 위해서는 ‘총체적(holistic)' 노력이 필요하며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사회적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믿음에 합당한 삶의 모습을 그 신앙의 증거로서 보여야 한다. 초대교회 이래로 모든 기독교 공동체들이 이러한 실천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기독교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 모든 기독교인들에게는 일정한 사회적 책임이 부과됨을 강조하였다.

 

존 스토트의 정리에 따르면, 미국 기독교는 한동안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동으로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을 등한히 하는 근본주의적 신앙운동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면서 다시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반성이 나타났다. 1966년에 개최된 미국 세계선교회의가 휘튼 선언을 채택하였고, 1974년 7월 스위스의 로잔에서 열린 세계복음화국제회의에서 채택한 로잔 언약에는 복음전도와 함께 정치사회 참여가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선언하였다. 또 1982년 6월 그랜드 래피드에서 개최된 '복음전파와 사회적 책임관계협의회(CRESR)'는 ”복음은 뿌리이며 복음 전파와 사회적 책임은 모두 그 열매“라고 했다.

 

사회적 책임 실천 수단의 다양성은 사고가 잦은 교차로를 다루는 일과 유사하다. 잘못된 교차로로 인해 사고가 나서 죽는 사람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그들의 영혼 구원만을 논의하는 위선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다. 긴급 구조과 함께 장기적인 제도개혁의 비전과 이 비전을 유지하기 위한 의식개혁의 노력도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해야 할 소명이다. 스토트의 주장대로 “진정한 기독교의 사회참여는 사회봉사와 사회활동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 분명하다.” 보다 완전한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이 태도는 성경의 지지를 받고 있다.

 

사회적 책임은 복음 그 자체에서 연역적으로 파생된다. 진실과 정의뿐만 아니라, 정의와 평화, 그리고 인애의 마음은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수행해야 할 신앙적 삶의 증거이다. 예레미야서 23장의 표현처럼, “하나님은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실현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이는 거룩한 하나님의 공유적 속성이다. 그러므로 기독인들의 사회적 책임은 이러한 인애와 공평과 정직에 대한 연구와 실천에 있다고 요약할 수 있다.

 

 

양극화 해소, 평화통일과 사회적 책임
한국교회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하다. 신앙의 공공성을 간과하거나 폄하하는 신학교에서 배출된 목회자들, 또 그들에게 이원론적 교육을 받은 성도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양극화 해소는 한국기독교가 당면한 가장 우선적인 사회적 책임이다. 국민주 력기업이 주도하는 수출대체산업화 전략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그 특성상 독점의 강화로 인한 경제적 양극화라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심화되었다. 안타깝게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빈익빈 부익부를 강화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양극화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제 경제적 양극화는 사회적 양극화와 지리적 양극화, 문화적 양극화, 이념적 양극화를 복합적으로 초래하여 국가적 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중이다.

 

한반도의 평화통일도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수행해야할 사회적 책임이다. 1994년 2월에 개최된 기독교학문연구회와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의 통합학회에서 이만열 교수님은, 남북통일이야말로 마치 모세가 출애굽이라는 소명을 받은 것처럼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시대적 소명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복음주의적 지도자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통일문제에 있어서 여전히 분열되고 왜곡되어 있다. 대북지원, 북한인권, 북핵 등의 문제는 남한 내부의 권력 획득 문제와 연결되면서 소위 “남남갈등”을 더욱 확대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아쉽게도 한국교회의 다수는 이 갈등의 치유에 공헌하기는커녕 도리어 편승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은 양극화 해소와 한반도의 평화통일이라는 주제에 한정되지 않는다. 헌법 개정, 국제적 테러의 해결, 동북아 경제공동체 구성, 이민자의 국적 부여, 효율적인 환경보호정책, 국제기구와 NGO 지원, 지역주의 극복 등 수많은 과제들이 우리 앞에 산적해 있다.

 

공의의 구현과 사회적 책임
한국은 제3세계 국가들 중 유일하게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국가이다. 경이적인 경제성장은 두말 할 나위도 없고 제3세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실제적인 정권교체가 발생했었다. 1980년대 이후 한국교회는 이러한 사회 발전의 추세가 무색하게 뒤떨어지고 있다. 복음화와 성령폭발과 순복음과 제자훈련을 내세웠으나 사실은 군사독재를 지지하거나, 성장제일주의의 천민자본주의를 추종하거나, 반지성적 열광주의라는 세속화의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세를 틈타 이단종파의 활동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와 동시에 신앙의 이름으로 포장하고 정당화하는 세속화의 사상과 주장들이 교회 안에 정착하고 있다. 심지어 노골적으로 권력에 아부하는 정치 이데올로기들이 신앙 강연 혹은 부흥회의 형태로 교회와 교회단체를 휩쓸고 있었다. 이들의 주장은 기독교인들에게 익숙한 종교적 수사로 가득 차 있지만 실제로는 갈등과 증오를 부추기는 허위의식들이다.

 

현재 한국교회의 모습은 다니엘서 2장에 나타나는 느브갓네살의 신상을 연상케 한다. 장엄하고도 휘황찬란한 신상의 머리는 정금이었으나 그 이하로는 갖가지 혼합물로 구성된 신상이었다. 표방하는 바는 참된 신앙이지만 그 이하의 실체는 온갖 세속적 욕망과 이론으로 혼합되어 있다. 미로슬라브 볼프가 지적하듯이, 한국교회는 현재 해야 할 일은 하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신앙의 기능장애에 빠져 있다.

 

한국교회가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는 자유와 평등과 독립의 상징이었으며, 한국전쟁과 개발독재 치하에서는 고통 받는 자들의 위안처이며 민주화를 위한 최후의 보루였다. 미래에 있어서 한국교회는 복지의 공급자요 공동체 내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는 균형자가 되어야 한다. 권력을 추구하는 정부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한국교회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시민단체들을 육성하는 기반이다. 몇몇 선구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한국교회는 시민단체의 산실이며 요람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시민운동의 담당자로서, 내부적 비판자로서, 그리고 후원자로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과 시민단체가 견제와 균형의 삼각점을 이루면서 민주주의와 복지체제를 이룩할 수가 있다. 이 균형의 실천을 통해 한국교회는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을 원만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며, 주님 앞에 서는 날 잘했다고 칭찬받는 종이 될 것이다.

 

 

이 글은 2015년 6월 26일 IVF 학사회 블로그에 개제되었던 글을 편집한 글입니다. 전문은 IVF학사회(GCF) http://ivfgcf.tistory.com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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