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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실, 소박한 일상

변혁적 공동체의 창출, 증거로서의 영향력


2006. 12. 20

지난 13일, 신원하, 양낙흥 두 분의 교수님을 만나기 위해 서울의 간사들이 천안에 위치한 고신대학원을 찾았다. 두 분 모두 기윤실 운동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여주셨고, 간사 사직이후로 잠정 휴업에 들어간 천안 기윤실 사정을 안타깝게 여기고 계셨다. 그 중 신원하 교수님이 짧게 전해주신 이야기를 먼저 정리해 본다.

신원하 교수님은 리처드 니버가 제시한 그리스도와 문화의 관계, 즉 ‘문화의 변혁자로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습과 역할을 획일적으로 받아들여 온 미국 주류 신학계의 중심에 체계적으로 정리한 비주류의 사상을 제시한 ‘요더’의 입장을 전해주셨다.

‘요더’는 재세례파의 평화주의적 입장에 대해 ‘니버’가 분파주의로 가치 절하한 것을 비판하고, 오히려 그 입장과 성경해석의 논리를 구체화하고 있다. 즉, 그것이 정형화된 변혁적 세계관은 아니지만 단순히 분리주의적 관점이 아닌, 또 하나의-제 3의-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 맺으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논증한 것이다.

‘요더’가 보기에 오늘날 세상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한 교회의 위기는 사회윤리 차원의 전략이 부재한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교회 그 자체가 사회윤리’라고 주장하고 기존 사회질서와는 다른 종말론적 사회질서를 보여주는 교회의 모습을 통해 ‘증거’로서의 ‘선교’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에 원인이 있다고 주장한다. 교회는 참된 신앙인들로 구성된 참된 공동체, 즉 변혁적 공동체를 창출함으로써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창조해 나가야 하는 사명이 부여되었다는 것이다.

교회의 교회다움에서 변혁적 파워가 나온다는 요더의 주장은 타락이후의 창조세계에 대한 철저한 비관론, 즉 정사와 권사에 의해 지배받는 구조와 부패한 결과를 낳고 회복 불가능한 모습으로 방향 지워져 있다는 세상에 대한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구속은 새로운 질서의 창조를 의미하고 교회의 역할은 독특한 가치를 따르는 공동체의 확장을 통해 그러한 질서를 창조하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증거 하는 것이 된다. 타락 이후의 부패한 세상 질서와 구속 이후의 새로운 질서는 같이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고 재세레파의 사회윤리는 그러한 성경해석에 근거한 입장으로서 단순히 분리주의가 아님을 논증하고 있다.

이러한 요더의 교회론에 대해 신원하 교수님은 마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체화한 덕성을 지니게 되면, 자연스럽게 덕스러운 행위를 수반하는 것과 같이, 존재의 문제를 통해 실천의 차원까지 답하는 것으로 설명해 주었다. 기윤실은 그동안 성도이자 시민의 참모습을 강조하고 민주시민 교육에 힘써왔다. 이를 요더의 사상에 비추어 본다면, 장기적인 전망을 지니고 근본적인 차원에서 변혁의 힘을 생산하는 운동론을 견지해온 셈이다. 논리적 차이만을 강조해온 인식의 장벽과는 달리 실존적으로 차원에서 개혁주의와 평화주의는 그토록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