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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그리스도인/자발적불편운동

[자발적불편운동 레터07] 자발적 불편, 그리스도인의 표지(정병오 상임집행위원)

자발적 불편, 그리스도인의 표지
정병오 상임집행위원(좋은교사운동 대표) 

정병오 상임집행위원(좋은교사 대표)




 


 







구약 성경에서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가장 타락했던 시대를 꼽으라면 노아의 시대와 롯의 시대일 것이다. 타락한 인간의 실존으로 인해 이 세상은 늘 죄가 범람하기는 했지만 이 두 시대 죄악의 심각성은 현세에서 홍수의 심판과 유황불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두 시대가 가진 죄악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구약 성경에서 당시 상황을 몇 가지 서술하고 있지만, 과연 그러한 죄악이 그 시대에만 있었고, 그것이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을 받을 정도로 더 심각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가 않다. 그러데 이 두 시대 죄악의 본질에 대해 예수님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지었다”(누가복음 17장 27 - 28절)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러한 예수님의 설명에 대해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이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는 행위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하신 선한 창조세계의 한 부분이 아닌가? 오히려 이런 선한 창조 세계를 정당하게 누리게 하지 않고 과도한 금욕주의를 통해 억지 경건의 모양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것은 이단의 특징이 아닌가?(디모데전서 4장 3 - 5절) 하는 것이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는 행위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이 행위 자체가 죄라는 의미가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다른 부분에는 관심이 없고 이 행위만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심각한 죄악이라는 말씀일 것이다. 즉,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는 행위 자체가 우리 삶의 목표가 되고 그것들을 충분히 소유하고 누리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지, 그것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각각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자세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며,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영원의 빛 아래서 눈에 보이는 모든 행위들을 상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누리되, 그 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마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빛을 잃어버리고 눈에 보이는 이 먹고 즐기는 일에만 매몰되어 있을 경우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노아 시대 위기의 본질은 노아 가족 외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없었고, 롯의 시대 위기의 본질도 의인 10명이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롯의 가정조차 완전히 세속화된 상황이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창조 세계 가운데서 허락하신 모든 것들을 감사함으로 다 받아 누리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일정 기간 맡기신 것임을 아는 자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재산과 기회가 자신의 노력과 수고를 넘어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이며, 동시에 다른 많은 사람들의 수고의 도움으로 주어진 것임을 아는 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감사함으로 누림과 동시에 자신이 이것을 어떻게 누리고 사용해야 하나님과 이웃에게 덕이 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놓지 않는 자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마음껏 즐기고 누릴 수 있는 권한이 자신에게 있지만 이것을 다 누리지 않고 자발적인 불편을 감수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경건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재물과 기회가 자신의 것이 아님을 고백하는 수단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이 모든 재물과 기회가 주는 기쁨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장차 누릴 영원한 기쁨의 그림자에 불과함을 고백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나아가 인간은 너무도 연약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재물과 기회를 감사함으로 누리는 가운데도 이 눈에 보이는 물질과 기회가 주는 쾌락에 빠져 이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 자신을 잊어버릴 수 있는 존재임을 늘 고백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물론 어떤 부분에서 얼마 정도의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가는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에 달린 문제다. 하나님은 이 부분에서 절대로 강요하지 않고 기쁨으로 행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이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는 것 자체를 자신의 공로로 삼아 영적 교만에 빠질 수도 있는 연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늘 주 앞에서 자신을 살핌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상황에 맞는 불편함들을 감수해가는 수고들을 날마다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재물과 기회를 충분히 다 누리고도 하나님 앞에서 경건을 유지하고 영원을 향한 사모함을 날마다 더해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부자든 가난한 자이든, 높은 자이든 낮은 자이든, 어떤 상황에 있든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가운데서 자발적 불편함을 위한 작은 선택들을 해 가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날마다 드려야 할 영적 예배의 본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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