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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실, 소박한 일상

외부의 목소리를 듣는다 - 기윤실 제1차 비전포럼


2006. 12. 6

지난 11월 28일, 새로운 기윤실 운동을 모색하기 위해 외부의 목소리를 듣는 ‘제1차 비전포럼’을 진행하였다. 이날 포럼에는 비전위원회와 간사들이 참석하였고 외부 발제자로는 김정수 대표(평화를만드는여성회), 김선욱 교수(숭실대 철학과), 박병옥 사무총장(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세분이 참여하였다. 아래에 발제 내용을 요약 정리한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것에 대한 관여가 필요하다.

[김선욱]

  기윤실의 운동이 단순히 규범 정립적인 차원의 운동이라면 그 의미에 대해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도덕철학이라면 인간이라면 당연히 따라야 하는 원리를 발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칸트는 이성적인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을 주장했다. 윤리는 공동체를 전제하고, 공동체 내에서의 에토스를 정립하고 발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도덕적인 접근은 교만함, 강압적인 성격을 내포할 수도 있다. 윤리적인 접근은 상대화 될 수밖에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그 중용, 중간점을 발견하는 것, 그때그때마다 숙고를 통해서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본다.

  1) 개인 윤리, 2) 사회적 차원, 3) 정치적 차원에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윤리 차원은 정직운동과 같이 너무나 규범적이어서 답답함을 불러올 수 있다. 윤리적 규범의 정립 자체가 불가능한 현상에 와있기에 ‘~해라’라는 형식의 표현은 수용되기 어렵다. 오히려 규범을 지키지 못한 사람에 대한 감싸 안음이 필요하다.

  사회적 영역에 대해서는 기독교적 입장을 표현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의 표현 중에 현재 부동산 문제는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체제의 문제다’라는 말이 있었다. 자본주의가 모든 인간의 만족할 만한 도덕성을 갖추었다거나, 지속가능한 체제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근본적인 반성 속에서 체제의 문제를 집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대단히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관여해야만 한다고 본다. 기윤실의 성격을 고려해 볼 때는 정치적 사안(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을 둘러싼 쟁점들)에 대해서 토론하고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판단의 ‘기준’들을 제공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결국 세계관의 문제임을 알 필요가 있다. 관여하지 않을 경우, 적절한 방향제시에 있어서 실패할 수 있다.



평화의 영역을 확대시켜 나가야 한다.

[김정수]

  기독교사회운동은 ‘공공성’을 확대하고 특히, ‘평화’의 영역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기윤실이 폭력적인 것,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불러일으키는 운동을 일으켜 주셨으면 좋겠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상대주의로 전도되지 않으려면 ‘정의, 평화’ 등의 보편적인 가치를 붙잡고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기독교인이 어떻게 사회 및 정치와 관계를 맺어갈 것인가에 대해 리더십들이 이해를 갖도록 성경의 언어로 풀어내 주는 사회윤리아카데미 등을 전개하면 좋겠다. 웹진형태 혹은 설교자료 형식의 정론을 제시하는 것도 가능하다. 조심스럽지만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면서 따뜻한 마음으로 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독인만큼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집단으로 비춰지는 곳이 없는 것 같다. 가정과 사회 속에서 배타성을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인가는 한반도의 평화문제와도 연결이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다원종교사회, 남북분단 상황에서 배타성을 극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공존훈련’, ‘대화 캠프’, ‘평화교육’ 및 ‘평화 영화제’ 등의 행사나 탈북자 지원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싶다. 또한 돌봄의 윤리, 보살핌의 윤리를 여성운동 쪽에서 많이 얘기한다. 가깝게는 ‘청어람’에도 장애우를 위한 시설이 없다는 것이 매우 안타깝게 생각되었다. 장애자와 연대하는 교회모델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운동, 교회건축 공모 및 사례들을 발표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핵문제, 금강산 개성공단 등의 논의가 거론되었는데, 기독교인들이 한반도의 미래에 대해서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의 ‘선군정치’와 ‘강성대국’ 이념과 남의 ‘자주국방’, 일상 속의 게임놀이 등 한반도 전체가 군사화 되어 있다. 샬롬의 문화를 어떻게 한반도에서 실현해 나갈 것인지, 우리사회를 어떻게 평화적으로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에너지, 식량 등의 녹색문화 등에 원대한 비전을 창출해 주면 좋겠다. 미국과의 관계 역시 가이드라인 정도로 나와 줘야 한다.  

  여성과의 연대를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다. 교회에서 여성에 대한 성역할을 고정화시키고 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좋은 기독교 여성 모델, 리더십 트레이닝, 양성평등 실천 교회의 모델을 발굴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업, 교회, 시민단체, 시민의 ‘4CSR’ 운동을 제안한다.

[박병옥]

  우선, 세 가지 우리 기독교계가 성찰해야할 부분을 논하고 싶다. 우선, 천만의 기독교인이 세상에 영향력이 없는 부분이다. 교회 안팎 생활의 너무 괴리가 큰 것이 문제이다. 성경의 삶의 원리를 세상에 반영시키지 못하고 있다. 과연 그 정도의 모습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 가능한 가를 자문하게 된다. 두 번째는 우리사회에서 변화와 진보의 가치가 기독교와 양립 불가능한 것인가에 질문을 던진다. 최근에 급격히 보수화 되고 있다. 수준 낮은 이념싸움에 기독교가 동원되고 있는 것 같다. 젊은 세대는 리버럴하다. 현재 상태에서 리버럴은 상대적으로 진보이다. 그런 상태에서 기독교가 보수적 이미지를 지닐 경우, 젊은 세대를 잡는 데 더 어려워 질 것이다. 세 번째는 시민들의 삶의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의 차원이다. 부동산 문제로 나라전체가 혼란에 쌓여있다.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끌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기윤실이 NGO로서 교계의 프론티어 역할을 수행한다고 한다면 우선, 시대정신에 부합하고 사회적 맥락을 지닌, 설명이 필요 없는 운동을 해줘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적, 규범적, 도덕적 이미지를 깰 필요가 있다.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두 번째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향후 20년 동안 먹고살 수 있는 운동이 정해지고 나머지는 부차적인 것으로 정렬해내는 것이 필요하다. 세 번째로,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은 공공선에만 집착하고, 결과를 통제하는 측면을 간과하고 있는데, 보다 전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특정한 이념으로 쏠리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현재, 정직과 신뢰운동은 운동의 직접적인 모토가 되기 어렵다. 어떻게 할 것인가의 질문이 바로 뒤따르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사회적 책임’이 우리사회의 중심적인 화두가 될 것이다. 미국사회는 정직한 것이  비용이 가정 적게 드는 시스템인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Corporate(기업), Church(교회), CSO(시민단체), Citizen(시민)'의 ‘4CSR’ 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어떠한가? 이 4가지 영역이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고 수행할 수 있도록 운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운동의 플랫폼을 선취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