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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실, 소박한 일상

왜곡된 존재의 지평을 넘어서


2006. 11. 22

기독인이든 아니든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독교윤리 실천운동이라는 타이틀을 접했을 때 기술적 인상에서 풍기는 종교 구획적 인식은 충분히 예상할 만하다. 따라서 한번쯤은 ‘기독교 윤리 실천운동’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종교적 구획의 시각에 대한 인식 정리를 짚어 봄이 필요하다. 기독교 윤리실천운동이 결코 앞에 붙은 ‘기독교’의 의미가 기독인에 대해서만 목소리를 낸다던가 ‘기독교’적 사상에 대한 문화적 전달 수준, 혹은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한 다리 정도로 생각하는 수준을 넘어서 모든 존재와 시간을 ‘하나님 앞으로’ 되돌려 포섭해 들어와야 한다. 이에 대해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본 훼퍼의 사상을 아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된다.

우리가 접한 본 훼퍼의 윤리학은 당시 독일 히틀러 정권아래 무기력한 기독교적 현실을 십자가 안에서 진단하고 ‘예수그리스도는 오늘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형이상학적 마술사 혹은 해결사와 같은 왜곡된 하나님의 존재를 종교가 아닌 삶의 중심에 생생히 맞닿아 계신 분으로 되돌린다. 친히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 몸을 헐어 사랑으로 열어놓은 지평 안으로 세계의 현실과 하나님의 현실을 만나게 한 것이라 설명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지평 안에서 만난 그리스도의 현실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것은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취할 수 있도록 살아가는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훼퍼는 더 나아가 궁극 이전의 것과 궁극적인 것 사이에 놓인 현실에서 어느 한쪽만을 위한 급진적인 태도나 타협적인 해결 방법으로는 그 현실에 대한 책임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역사 속으로 들어오신 성육신 그리스도 중심적 신앙의 현실개념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근거되어 있는 신적인 위탁에 반응하는 세상을 위한 책임적 기능을 감당해 나갈 때 가능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 위임의 대상이 그리스도인이겠지만 위임하신 분의 뜻이 더 근본적으로는 세상과 현실을 분리한 왜곡된 존재의 지평을 넘어선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세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따라 그것에 대응하는 행동 양식이 틀려진다. 어느 곳 어느 순간 어느 존재가 하나님 앞이 아니겠는가? 그러한 존재와 시간의 규정은 증오나 왜곡되고 배타적인 우월감의 해결방법을 폐기하고 세계를 우리가 맛본 지순한 사랑의 복음의 지평 앞으로 포섭해 들어온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라고 하는 타이틀과 정체성을 가진 공동체가  그리스도인들이 겪어왔던 왜곡의 현실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애쓸 수 있는가? 더 근본적으로 어떻게 이 세계전체를 포용하고 이 세계 전체가 주께서 우리게 말씀하신 가치들을 어떻게 효과적이고 그 가치에 대한 정신에 맞게 모든 생활세계 안에서 펼칠 수 있도록 힘쓰는 공동체가 될 것인가? 본 훼퍼를 공부하며 비록 짧은 앎이지만 종교적 구획을 넘어 모든 세계를 포괄하는 더 근본적인 책임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