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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이루는 하나님 나라

[회원투고] 사법개혁을 염원하는 한 시민의 제언 (정세열 회원)


사법개혁을 염원하는 한 시민의 제언


글 _ 정세열 (기윤실 회원)



 

* 이 글은 기윤실 회원님께서 이메일을 통해 투고를 요청하신 글입니다. 이후 다른 기윤실 회원분들께서도 이후 나누고 싶은 내용, 제안하고 싶은 운동이 있으시면 기윤실 이메일로cemk@hanmail.net 보내주세요.

 



저는 법을 전공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래 동안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회원으로 있으면서도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제목으로 글을 올릴만한 자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요즈음 우리 사회 및 정치가 너무 어지럽고 여러 면에서 나라의 장래도 암울해 보여 한 시민으로서 사법개혁과 관련하여 마음에 가지고 있는 생각을 여러 분들과 나누며 기독교 시민운동단체인 기윤실에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사법부의 공명정대함과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어느 나라나 정의 실현과 사회 안정의 최후의 보루이자 사회 번영을 위한 기초라는 데에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모든 국민이 사회의 합의를 거쳐 정해진 법 아래에서 평등함을 실현하는 법치주의의 확립에도 사법부의 공명정대함과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그 기초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는 약자의 보호 차원에서 사법개혁은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지만, 최근 다시 드러난 법조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인해 참담함을 느끼지 않는 국민은 없을 것입니다. 최근의 상황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헬 조선” “지옥 반도”라는 말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이 같은 사태를 맞아 다시금 제도 개혁이 절실함을 느낍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유주의와 법치주의를 위한 제도들이 도입되었지만, 제도를 뒷받침하는 사상 및 이념에 대한 이해가 사회 전체적으로 여전히 미흡하고 이와 함께 선진국에서와 같은 구체적인 제도적 장치가 많이 결여되어 있다고 판단합니다.


예를 들면, 선진국 중에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을 지낸 후 변호사 개업을 하는 일은 제가 짐작컨대 없을 것이라 여기며, 이러한 일은 국격(國格) 내지의 국가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정말 부끄러운 것이라 여깁니다. 그 간 사회 정의 실현의 최후 보루인 최고위 법관에게 명예와 돈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도저히 상식적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아닐까요?


최근에는 대법관을 지내고 변호사 개업 신청을 하면 변호사 협회에서 신청서를 반려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개인적으로 기쁜 일이라 여깁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사법부 개혁과 사법부 신뢰 회복에 턱없이 모자란다고 판단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전문가 집단에게 조차 ‘자율 규제’는 많은 경우에 전문인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전문인의 윤리의식 제고 및 사회 공익 실현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사익)을 추구하는 도구로 비쳐지고 있습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이 전문인 집단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한 예를 들면, 얼마 전 국회를 통과하고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른 바 ‘김영란 법’에 언론인이 포함된 것에 대해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법리적으로 판단할만한 전문성이 제게는 없지만, 이런 시비가 일고 있는 것 자체로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알기로는 영미의 권위 있는 언론사의 경우 기자 등 언론인이 공식 행사가 아니면 취재원으로부터 커피 한 잔도 얻어 마시지 못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고 이런 전통이 언론계 및 사회에 불문율로 굳어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김영란 법’에 언론인을 포함시키자는 이야기는 선진국이라면 아예 나오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문인 및 지도자들을 도덕, 윤리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가도록 국민들이 목소리와 압력을 높이는 것이 여러 분야에서 절실하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생업만으로도 바쁜 소시민들이 이러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뜻있는 전문가들과 순수한 시민운동단체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모든 제도는 거의 예외 없이 크고 작은 부작용을 동반하곤 합니다. ‘김영란 법’에 대해서도 벌써부터 우리나라 풍토에서는 사문화될 것이 아닌가 하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럼에도 이 법은 국민의 목소리와 압력을 법조계와 정치권이 최종적으로 이끌어낸 합의의 산출물이자 우리나라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해소할 수 있는 한 이정표가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적지 않다고 판단합니다.


저는 사법개혁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한, 두 가지 제안해 보고자 합니다. 사법개혁은 정치개혁이나 행정개혁보다는 덜 복잡하여 로드맵이 상대적으로 쉽게 그려질 수 있다고 봅니다. 먼저,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을 미국과 같이-미국에는 헌법재판관이 없습니다만-종신제로 하여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없도록 제도적으로 못 박는 것은 상징적인 면에서만 보아도 큰 의의를 지닌다고 여깁니다.


다음으로 법조계의 윤리성 및 독립성 확립을 위해 고법 부장판사나 수석 부장판사의 경우에도 청문회-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청문회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를 거치고 정년을 최소한 70세 이상으로 하며, 변호사로 개업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판사의 경력이 오래될수록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없는 기간을 늘리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제도가 도입될 경우 대법관, 헌법재판관, 그리고 고법 (수석)부장판사 등의 처우 개선도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사회에서 정당한 대우를 하지 않으면서 개인의 도덕성에만 호소할 수는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와 더불어 판사는 궁극적으로는 변호사나 법학 교수 중에서 실력과 경력을 엄밀히 검증하여 임용하도록 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런 방향으로의 구체적인 일정을 담은 로드맵을 마련해야 하겠습니다. 임용 전 검증에 있어서는 사익보다는 공익을 얼마나 추구했는지가 당연히 중시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법개혁은 사법부를 포함한 법조계 전체의 개혁, 정치개혁 및 행정개혁과 별도로 진행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민정수석 자리를 폐지하거나 순수한 자문이나 보좌 역할로 권한을 축소해야만 합니다. 어느 선진국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민정수석 자리를 만들어 민정수석이 검찰, 경찰 및 국정원을 통제하고 있습니까? 민정수석실의 한 비서관 자리는 특정 로펌 출신의 변호사가 계속 차지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개탄할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법부의 개혁을 위한 구체적인 제도적 장치들이 도입되면 검찰을 비롯한 법조계 개혁, 그리고 정치개혁과 행정개혁에 한 기초가 마련되어 이들 개혁에도 큰 자극이 되리라 믿습니다.

사법개혁은 결국에는 법조계와 정치권이 주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사법개혁을 위해 국민들과 순수한 시민운동단체의 목소리와 압력이 필수불가결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기윤실에서 이 같은 사법개혁을 위한 제도개혁 운동에 힘을 기울여주셨으면 합니다. 기윤실 내에도 신실한 그리스도인 변호사들이 적지 않고, 법조계에도 사법개혁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법조인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분들이 함께 논의하고 지혜를 모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데에도 기윤실이 일조하기를 바랍니다. 한편 기윤실이 다른 시민운동단체와도 연대하기를 당부드리고자 합니다. 사법개혁 및 법치주의 확립에는 좌우가 있을 수 없다고 보기에 다른 사안에 비해서는 연대도 어렵지 않다고 보고, 그 부작용도 거의 없으리라 판단됩니다.


* 정세열 회원님의 글은 지난 9월 26일(월)자로 송고되어왔습니다만, 그동안 사무처의 내부 사정 및 일정 조정 등의 이유로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회원님들께 양해를 구합니다. 또한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국가기밀유출과 최순실 씨 등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사건 등으로 혼란에 빠져있습니다. 검찰수사의 공정성과 독립적 수사 보장을 위한 시민의 요구가 빗발치는 이때에 앞선 혜안으로 사법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주신 정세열 회원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