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에 해당되는 글 312건

  1. 2018.04.13 대통령 발의 헌법 개정안 긴급 좌담회 후기
  2. 2018.03.30 [청년포럼] 슬기로운 청년생활 제1장 "한반도 평화, 청년의 온도" 후기
  3. 2018.03.22 [좋은사회운동본부] 공명선거운동 진행합니다.
  4. 2018.03.21 기윤실 청년이슈포럼 "한반도 평화, 청년의 온도"(3/27 화 19:30)
  5. 2018.03.15 [좋은사회운동본부] 청년부채ZERO 캠페인 -5차
  6. 2017.12.06 [좋은사회운동본부] 부채해방 컨퍼런스 : 빚에서 빛으로
  7. 2017.12.04 [특집] 19대 대통령선거 공명선거운동
  8. 2017.12.04 [특집]국민통합토론회/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9. 2017.11.10 [사진] 부채해방 컨퍼런스 - 빚에서 빛으로 (2017.11.09)
  10. 2017.10.23 부채해방 컨퍼런스 "빚에서 빛으로"
  11. 2017.08.28 [부채해방운동] 가장 고통 받는 이웃을 돕는 부채해방운동
  12. 2017.08.28 [부채해방운동] 가계부채 1300조원, 벼랑끝 사회
  13. 2017.08.28 [비전메시지] 물질에 빚진 자를 사랑에 빚진 자로 만드는 교회_정병오 공동대표
  14. 2017.06.08 새로운 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② - 백소영 교수(이화여대, 기독교사회윤리학)
  15. 2017.06.08 새로운 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② - 전상진 교수(서강대 사회학과)
  16. 2017.06.08 새로운 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①- 양희송 대표(청어람ARMC)
  17. 2017.06.08 새로운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① - 손봉호 자문위원장
  18. 2017.05.04 [기독교 팩트체크] 홍준표 후보가 광성교회 안수집사? 주기철 목사님 생가 복원에 헌금했다?
  19. 2017.04.05 선거법 위반, 가짜뉴스 제보해주세요
  20. 2017.03.29 19대 대통령 선거 Talk Pray Vote 전단지 (무료로 자유롭게 이용)

대통령 발의 헌법 개정안 긴급 좌담회 후기

 

[기윤실] 개헌좌담회

 

 

* 일시_ 2018년 4월 3일(화) 오후 7시

* 장소_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회의실

 

* 사회_ 이상민 변호사 (기윤실 좋은 사회운동본부장)

 

* 발제_ 이국운 교수 (한동대학교 법학과)

 

* 좌담_ 정병오교사 (기윤실 공동대표), 이태경 사무처장 (헨리조지포럼),

          권수현 부대표(젠더정치 연구소 여.세.연)


 

 

 

 

 "개헌좌담회" 녹취 

 

대통령 발의 개헌안 긴급 토론회(18040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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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포럼] 슬기로운 청년생활 제1장 "한반도 평화, 청년의 온도" 후기

 

[청년포럼] "한반도 평화, 청년의 온도"

 

* 일시_ 2018년 3월 27일(화) 오후 7시

* 장소_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 4층(합정역 7번출구)

 

* 사회_ 정병오 오딧세이 교사, 기윤실 공동대표

 

* 발제_ 윤환철 미래나눔제단 사무총장

          정재훈 기윤실 회원

 

 

 

 "한반도 평화, 청년의 온도" 녹취 및 발제문

 

슬기로운 청년생활 녹취(18032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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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사회운동본부]

 

          -6.13 지방선거운동-

공명선거운동 진행합니다.

글_박제민 팀장

 

기윤실은 올해 6.13 지방선거를 맞아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거짓된 정보에 휘둘리지 않으며,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Talk, Pray, Vote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Talk Pray Vote 전단지'를 만들어 나누고 워크샵을 진행합니다.

Talk, Pray, Vote 캠페인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Talk Pray Vote 전단지입니다. Talk Pray Vote 전단지는 2010년 지방선거, 2012년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 2013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국회의원 선거, 2017년 대통령 선거까지 꽤 오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전단지는 선거에 대해 이야기 하고(Talk), 누구를 뽑을지 기도하고(Pray), 투표에 꼭 참여하자(Vote)는 내용으로 소모임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제작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를 소모임에서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보는 워크샵도 진행합니다. Talk Pray Vote 전단지는 기윤실 회원들과 후원교회, 여러 학생선교단체, 그리고 개인적으로 신청해주신 분들께 약 2만 부를 전국에 골고루 배포할 예정입니다.

 

기독교 공명선거 센터운영합니다.

기윤실은 1990-2000년대에 우리 사회의 공명선거운동을 주도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 결과 선거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줄어들고 선거 결과가 유의미해지는 등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교회 안에서는 거짓된 정보들이 무차별적으로 유통되고 있습니다. 최근 한 정당은 이른바 가짜뉴스의 진원지로 교회를 지목하며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교회의 공식모임 때 특정 정당을 지지하라고 요구하는 불법선거운동도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기윤실은 공명선거운동을 주도했던 책임감과 경험을 바탕으로 기독교공명선거센터를 운영하고자 합니다. 교회에서 지켜야 할 선거법을 간단하게 정리하여 배포하고, 동영상으로 만들어 누구나 보기 쉽고, 이해하기 쉽도록 제공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교회에서 불법선거운동이 벌어지지 않는지 감시할 봉사자들을 모집하여 운영하고, 실제로 불법선거운동이 벌어진 정황이 있을 경우 이를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에 일벌백계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공명선거 세미나개최합니다.

공명정대한 선거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제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제도를 존중하고 지키려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이 날마다 민주시민으로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지방선거의 취지는 우리 손으로 지역대표를 선출하고 지역자치를 실시한다는 것입니다. 역정치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지방선거는 중앙선거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방선거에도 중앙정치 논리가 강하게 작용하면서 정책선거가 실종되고 지지정당에 대한 묻지마 투표가 이뤄지며, 결과적으로 50%대의 낮은 투표율을 기록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기윤실은 이번 지방선거를 맞아 여러 기독시민단체들과 함께 공명선거 뿐만 아니라 지역정치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세미나를 기획하여 진행함으로써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데 일조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원여러분, 기독시민들의 협력을 통해 6.13 지방선거 공명선거운동을 잘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이 땅에, 우리 동네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라가, 정치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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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실 청년이슈포럼 "슬기로운 청년생활"

제 1 장, <한반도 평화, 청년의 온도>


참가신청(클릭)


따스한 봄날, 꽁꽁 얼어 붙었던 남북관계에도 훈풍이 불어옵니다. 

평창올림픽으로 시작된 이 평화의 기운은 4월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를 두고 언론과 여론은 문재인 정부의 획기적인 외교 성과라고 평가합니다. 

이러한 한반도 정세를 맞이하는 청년세대의 인식과 의식은 어떨까요? 

청년이 바라본 남북관계와 평화는 어떤 모습일까요? 

한반도 평화의 시작과 정착을 위해 청년들에게 필요한 관점과 역할은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 일시 : 3월 27일(화) 19:30~21:20 

* 장소 :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 4층(합정역 7번출구)

           (서울 마포구 독막로 20) 약도보기(클릭)

* 순서 :

    ① 포럼 취지·강사 소개 / 정병오(기윤실 공동대표)

    ② 2018년, 남북관계를 읽다 / 윤환철(미래나눔재단 사무총장)

    ③ 청년세대, 평화의 온도 / 정재훈(기윤실 회원)

    ④ 질의응답·토론 / 다같이

* 참가신청 : 이곳을 클릭해주세요.

   (신청 양식이 열리지 않을 경우 아래의 링크를 복사해서 주소창에 입력해주세요.)

   (http://bit.ly/슬기로운청년생활)

* 문의 : 기윤실 사무처 (T.02-794-6200, cem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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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집일정: 3.5() ~ 3.18() / 발표 3.20() 

* 모집인원: 20명 내외 

* 모집대상 

서울 경기 인천 거주 20~35세 청년중에 아래의 조건 중 1개 이상 해당하는 자

학자금 대출 3개월 이상 연체

고금리 부채

다중채무

그 외 채무상담이 필요한 상황에 있는 사람.

 

* 지원내용 :

- 1인당 100~300만원 무이자 전환대출

- 두 배 통장 운영(1인당 30만원 이내)

- 부채탕감 및 희망지원금 지원 (50만원)

- 재무상담 및 교육

- 재무코칭 소모임

 

자세한 내용은  5차_청년부채ZERO캠페인_모집안내.pdf(147.7K) 참고

재무상담 및 교육은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에서  주관

 

* 신청: http://bitly.kr/60H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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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해방 컨퍼런스: 빚에서 빛으로>



2017119,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에서 <부채해방 컨퍼런스 : 빚에서 빛으로>를 진행했습니다. 부채문제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을 살펴보고, 10억 원 가량의 채권을 싼값에 매입하여 소각함으로써 86명의 부채를 없애는 퍼포먼스 등을 진행했습니다. 이 행사는 향상교회의 후원을 받아 진행되었습니다.

 

컨퍼런스에서 김근주 교수님이 발표하신 부채에 대한 기독교적 입장의 결론 부분을 여기에 싣습니다. 자료집은 기윤실 홈페이지(cemk.org) 자료실에서 무료로 내려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부채에 대한 기독교적 입장"
         
- 구약에 비추어 본 부채 탕감

 


김근주 교수(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원칙적으로 빚을 지게 되는 현실이 있기 마련이다. 빚은 사람의 인격을 지배한다. 이에 대해 구약 성경은 담보를 잡는 것에 대한 세밀한 규정으로, 그리고 이자 받지 말라는 규정으로 빚이 지닌 지배력을 약화시킨다나아가, 구약 율법은 정기적으로 반복되는 면제년을 통해 빚을 탕감하여 사람이 빚에 지배되지 않도록 제도화한다


  하나님이 자유케 하셨다는 선언은 다른 사람이나 하나님 아닌 그 무엇에도 종 되지 않는 것과 연결된다. 그래서 빚으로 인해 채주의 종이 되지 않게 하는 여러 규정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 선포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신명기의 면제년 규례는 이와 연관하여 궁극적으로는 너희 가운데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는 선포에까지 나아간다(15:4-5). 언제나 가난한 자가 있기 마련인 현실 위에서 이러한 선포가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가난이 너희즉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규례들과 제도들을 통해 공동체적으로 해결되고 해소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가난한 자가 없어지는 것은 절로 되는 일이 아니라 면제년으로 대표되는 제도가 그 사회 내에서 실천될 때 이루어지고 확립되는 것이다.

 

  구약이 그리고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는 서로가 어려워졌을 때 기꺼이 꾸어 주는 나라, 빚으로 인해 전당을 잡을 때에도 빚진 자를 지배하지 않는 행동을 취하는 나라, 이웃에게 돈을 꾸어 주되 이자를 받지 않는 나라, 그리고 정기적으로 빚이 탕감되어 과거에 매이지 않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나라이다


  구약은 하나님 나라가 관념적이지 않고 구체적이며 일상의 현실과 결합되어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시민법에 해당하는 내용들을 통해 구약의 이상이 개인의 세계가 아니라 함께 서로 책임지고 연대하며 살아가는 세상임을 보여준다


  구약이 그리는 하나님 나라와 가까운 모습으로 마태복음에 나오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20:1-16)를 생각해볼 수 있다. 아마도 개인의 능력으로 인해 가장 늦게 고용되어 포도원에서 일했던 이도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라는 한 데나리온을 받을 수 있다. 한 데나리온이 없다면, 이 노동자는 하루의 삶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을 것이며 빚을 져야 하고 빚에 매여 제대로 된 삶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빚에 대한 접근은 한 데나리온으로 대표되는 모든 이에게 보장되는 기본 소득에 대한 논의와도 맞닿는다고 할 수 있다.

 

  고대 이스라엘에는 오늘날과 같은 주식회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신용 대부를 이용한 기업 같은 것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성경 본문으로 오늘날의 대부업이나 은행의 대출과 기업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기는 어렵다


  이와 얼핏 비슷한 것이 있다면 예수께서 예를 드신 돈을 빌려 주어 이자를 받는 일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25:27). 신약 본문은 이자 받는 것에 대해 그리 개의치 않는다. 어떤 가치가 변화된 것이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과 신약 시대 팔레스타인이라는 변화된 사회적 현실, 도시화가 진전된 사회적 현실이 이자에 대한 이와 같은 변화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이스라엘은 재산을 더욱 증진시킬 목적으로 기업형 대부를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으며, 구약에서 대출은 거의 전적으로 가난한 자의 필요였다고 할 수 있다.그에 비해 도시화가 진전된 신약 시대에는 경제적 이익 증진을 위해 돈을 빌리는 경우가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가난한 자에 대한 구제를 강조하는 본문들, 되갚지 못하는 이에게 베푸는 선행을 강조하는 본문과 함께 고려할 때, 신약 본문은 이자를 합법화시킨다기보다 상업적 목적의 이자는 허용되되 가난한 이웃에 대하여 함께 나누는 삶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경이 관심을 가진 것은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가난한 자들과 연관된 부채와 이자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변화되고 복잡하게 분화된 사회에서 구약 율법은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 그러나 구약이 명확히 촉구하는 것은 서로 연대하고 서로 책임지는 공동체이다


  가난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지 않고 모두의 문제로 감싸 안는 것이 무이자 대출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공동체 안에 균등케 하는 원리이기도 하다. 고대 이스라엘에만 이와 같은 무이자 대출 규정이 있었다는 점은, 신앙 공동체의 특별함을 경제적 연대 공동체로 구체화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어느 시대에나 신앙 공동체는 특별한 신앙의 가치라는 추상을 각각의 시대의 구체적 현실로 표현하고 실천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이 글은 2017년 기윤실 열매소식지 11-12월호 특집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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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7 기윤실 10대 뉴스


⑥ 19대 대통령선거 공명선거운동

 

올해 우리는 정치적으로 큰 변혁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국정농단에 따른 전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통령 선거에 따라 새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기윤실은 오랜 기간 선거철에 공명선거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비롯한 기독교계가 특정 정파에 얽매이는 행태를 자제하고, 대신 성도 개인은 민주 시민으로서 선거에 관심 갖고 참여하자는 것이지요.

 

올해는 41일부터 58일까지 대통령 선거를 맞아 공명선거운동을 진행했습니다. Talk Pray Vote 캠페인을 통해 소모임용 전단지를 나누었고, 공직선거법 준수 및 기독교 팩트체크를 통해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불법선거운동과 가짜뉴스를 차단하고자 했습니다. 전국기윤실과 함께 <공명선거실천시민네트워크>에도 참여해서 개표참관감시활동도 벌였습니다




이 글은 2017년 기윤실 열매소식지 11-12월호 특집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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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7 기윤실 10대 뉴스 



국민통합토론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난 후, 한국 사회는 극심한 갈등과 분열을 겪었고, 거듭되는 혼란과 긴장으로 국민들은 오랜동안 병을 앓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가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며 기독교 윤리는 무엇을 이야기 할 수 있을지, 깊은 성찰과 대답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에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탄핵과 대선 전후로 세차례의 토론회를 개최하여, 갈등과 긴장에서 화해와 통합으로, 불공정한 사회에서 정의로운 사회로, 거짓과 야만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가꿔가기 위한 시도로써 공론의 자리를 가졌습니다.





 

바로, ‘새로운 시대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 토론회


세 차례의 토론회에서 청년 전문가, 노년의 석학, 사회학자, 기독교윤리학자들을 모시고 우리 사회의 갈등 현상을 진단하고 기독시민의 역할과 교회의 역할에 대해 듣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어떤 이야기라도 좋았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상처와 답답함과 대안들에 대해 가감없이 이야기하며, 각자의 거친 의견들을 함께 다듬고 대답을 만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갈등과 긴장은 한국 사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내에서 더 강력하게 존재하고 있고, 교회가 사회의 분열을 만들고 있다고 했던 한 참가자의 일침과 반성이 기억에 남습니다. 또 정치가 우상이 되어 보수/진보가 서로 건드리지 못하는 무언가가 되어버렸고, 사람들이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에 통합되기가 어렵다고 했던 손봉호 교수의 진단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적 독해력을 기르고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서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배제와 혐오를 거부함으로써 사회와 교회에서 화해와 통합을 이루어내는 존재로 살아갈수 있기를 다시 한번 바라고, 다짐해봅니다.

 

해당 토론회의 발제문은 기윤실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으실수 있습니다. (www.cem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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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기윤실은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해 제시함으로써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신뢰 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번 조사는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하여 2017120()~21() 양일 간 전국에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고 지난 33() 오전 10,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제1연수실에서 결과 발표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조사 결과 한국교회에 대한 전반적 신뢰도는 20.2%로 지난 10년 간 조사에서 계속해서 20%대 이하의 낮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818.4%, 200919.1%, 201017.6%, 201319.4%, 201720.2%) 전반적으로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목회자, 기독교인들도 사회적으로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덕 실천 운동’ 을 하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습니다한국교회가 더욱 신뢰받기 위한 개선점으로 불투명한 재정사용이 가장 높게 지적됐고, 한국교회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윤리와 목회자에게는 윤리도덕성문제를 지적하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성도들에게는 정직배려를 요구하는 응답이 가장 높았습니다.



이 글은 2017년 기윤실 열매소식지 11-12월호 특집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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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교회의 사회적책임 컨퍼런스>

 

"빚에서 빛으로"

<가계부채로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한 기독교의 역할>

 

참가신청(클릭)

 


 

일시 : 2017119() 오후 2~6

장소 :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 지하1층 예배실 (마포구 독막로 20, 2/6호선 합정역 7번 출구)

대상 : 가계부채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찾고 있는 그리스도인

회비 : 1만원 (하나은행 109-228746-01205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주최 : (사)기독교윤리실천운동

• 문의 : 박제민 팀장(070-7019-3755, cemk@hanmail.net)

• 내용 :

시간

순서

주제

담당자

02:00-02:10

10‘’

인사말

정병오 공동대표

02:10-02:40

30‘’

주제발제1

한국의 가계부채, 원인과 대안

가계부채, 구조와 역사

경제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

유종일 교수

(KDI 국제정책대학원)

02:40-03:10

30‘’

주제발제2

부채에 대한 기독교적 입장

구약의 희년정신과 부채문제

부채양산의 경제구조에 대한 기독교적 입장

김근주 교수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03:10-03:25

15‘’

휴식

 

 

03:25-03:35

10‘’

퍼포먼스

부채소각 퍼포먼스

 

03:35-04:35

60‘’

사례발표

(15)

부채해방을 위한 실천사례

교회1 - 온누리교회 부채탈출119

교회2 - 예수마을교회

시민사회 - 희년은행

공공기관 사례

 

유진아 전도사

이파람 목사

김덕영 사무처장

박제민 팀장

04:35-04:55

20‘’

대안발표

기윤실 부채해방운동 소개

이상민 본부장

04:55-05:55

60‘’

종합토론

 

(좌장)

배종석 공동대표

05:55-06:00

05‘’

마무리

 

 

한국사회는 청년부채부터 가계부채까지 빚에서 시작하여 빚으로 끝나는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을 껴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사치나 과소비 때문이 아니라,

생계의 구조적 악순환에 따른 것으로 사회적 공동해결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희년의 관점으로 볼 때,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적극적인 대처도움이 필요합니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를 대상으로 부채 문제에 대한 심각성과 공공성을 알리고,

고통 받는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사역과 실천 대안들을 개발하고 보급하고자 합니다.

 

여러가지 부채에 대한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희년사역, 부채사역에 관심이 있는 교회와 단체들은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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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고통 받는 이웃을 돕는 부채해방운동

 

기윤실은 지난 3년 동안 “양극화를 넘어 더불어 함께”를 주제로 운동을 펼쳐왔습니다. 창립 30주년과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 이니만큼, 한국교회와 사회의 변화를 꾀하는 기독시민운동으로서의 역할과 의미를 다지기 위해서지요. 무엇보다 1987년 창립당시 시대의 절박한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책임 있는 응답으로서 탄생한 기윤실은 지금 이 시대의 아픔을 관통하는 이슈를 선정하고, 이로 인해 고통 받는 이웃들을 돕고자 했습니다.

 

87년의 시대적 열망이 민주화였다면, 지금 이 시대의 가장 절박한 이슈는 ‘양극화’입니다. 주거, 교육, 보건, 식량, 일자리, 소득 등 모든 영역에서 양극화 현상은 그 정도만 달리했을 뿐 어디서나 발견됩니다. 특히, 지난 몇 년사이 ‘N포세대’ ‘수저계급론’ 등 시대의 절망적 상황을 여실히 드러내는 용어들이 등장하면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사회문제로서 양극화가 재부각되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기윤실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양극화’를 주제로 다양한 포럼을 열어, 성서와 사회, 정치와 경제, 교육과 노동, 그리고 주거에 이르기까지 양극화이슈를 다양하게 살펴보면서 첫째, 한국 사회에서의 양극화의 현상과 원인을 살펴보았고 둘째,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관심과 실천으로 변화될 한국사회의 모습을 그리면서 기윤실의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 부채해방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사회는 ‘빚 권하는 사회’, ‘빚으로 지탱되는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4년제 대학과정이 5년 6년으로 늘어나는 것은 기본이고, 2~3가지 아르바이트로는 턱없이 부족하여 학자금에 생활비까지 대출을 받아야 합니다. 졸업하면 유례없는 취업난을 간신이 뚫고, 취직한다 하더라도 안정적인 주거환경 마련을 위해서는 또다시 대출을 받아야 합니다. 학자금, 전월세자금, 자녀학자금, 은퇴자금 등 생애주기별로 연결되는 빚의 고리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 현실입니다. 빚으로 지탱되는 어두운 일상은 소중한 이웃들을 극단적 선택으로까지 내몰고 갑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기윤실은 빚으로 삶이 무너진 이웃들을 돕기 위해 부채해방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첫째, 경제금융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구성 • 운영해서 구체적인 실천방안들을 모색합니다. 둘째, 기윤실 학교를 열어 부채1300조원 시대의 기독교윤리를 탐색합니다. 셋째,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돌아보아야 할 이웃, 부채문제로 고통받는 이웃을 위한 실천 방안들을 소책자로 구성하여 널리 알립니다. 넷째, 부실채권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단기적, 장기적 방안들을 실천합니다.

 

 

벌써 이 소식을 듣고, 향상교회를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관심과 참여를 보내주고 계십니다. 앞으로의 부채해방운동을 기대해주세요.

 

글 _ 박진영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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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1300조원, 벼랑끝 사회

 

지난해 연말 가계부채가 1300조원을 넘어섰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1300조원 이라는 엄청난 금액의 정서적 거리감 때문인지, ‘빚도 능력’이라는 말이 돌아서인지 알 수 없으나 내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학자금을 시작으로 주거비 마련 등을 위해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데에는 1300조원의 가계부채가 무감각해질 정도로 일상화 되어있음에 다시한번 놀랐다. 자세히 들여다보자.

 

 

출처 : 이투데이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416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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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2016년 가계금융 ․ 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6년 3월말 현재 가구당 보유자산은 3억 6,187만원으로 전년에 비해 4.3% 증가했고, 부채는 6,655만원으로 전년에 비해 6.4% 증가했다. 가구당 보유자산 대비 가계당 부채금액의 비율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부채의 구성을 살펴보면, 금융부채 70.4%(4,686만원)으로 전년에 비해 7.5% 증가했고, 임대보증금 29.6%(1,968만원)로 전년대비 3.8% 증가했다. 금융부채에서 담보대출은 3,847만원으로 57.8%를 차지했다.

 

출처 :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photos/1991000000.html?cid=GYH20161220000800044&input=1363m

 

 

특히, 가구주 특성별로 보면, 연령대는 ‘50대’, 종사상 지위는 ‘자영업자’가구의 부채가 가장 많았는데, 자가보유시기, 자녀의 혼인, 정년퇴직 이후의 삶 등 삶의 변곡점이 많은 시기의 부채가 많다는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일보(2017년 5월 19일 "100만명 빚 완전탕감 공약, 기대 우려 교차“ 김동욱 기자)에 따르면 이명박 후보 당시 신용7등급 이하 720만명에게 신용대사면 즉 빚 탕감 및 연체기록을 삭제해주는 공약을 내세웠으나, 신용회복기금 조성 등으로 실제 수혜를 받은 사람은 49만명이었다. 또한 박근혜 정부는 국민행복기금을 조성하여 320만 채무불이행자들의 빚을 탕감해주겠노라 약속했지만,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수혜받은 이들은 약 58만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올해 국민의 기대를 안고 새롭게 들어선 문재인 정부 역시 가계부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여신관리지표로 활용함으로써 부채규모 관리하겠다고 했으나, 실효성 있는 정책이 나오기까지는 아직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빚도 능력’이라면 분명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삶을 지속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이 ‘빚’말고는 답이 없다면 이것이야말로 핵탄두보다 무서운 ‘벼랑끝’의 삶일 것이다. 빚 때문에 가족관계가 끊어지고, 과노동에 쳇바퀴를 계속 돌아야 한다면, 급기야 빚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끊어야만 한다면 우리사회는 ‘윤리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글 _박진영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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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에 빚진 자를 사랑에 빚진 자로 만드는 교회

 

가난했던 어린 시절, 일정하지 않은 아버지의 수입은 우리 가족이 생활하기에 늘 부족했다. 거기다가 4남매가 학교에 다니면서 매월 혹은 분기별로 내야 하는 수업료는 가계경제에 큰 부담이었다. 그러기에 때를 따라 요구되는 자녀들의 교육비를 부담하기 위해 어머니는 늘 빚을 얻으러 다녀야 했다. 지금 생각해도 이자가 비싼 사채였지만,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자와 원금을 제 때 갚는 신용을 가졌기에 그래도 필요할 때는 빚을 낼 수가 있었다. 그 덕분에 4남매는 학교를 다닐 수 있었고, 지금의 나도 이렇게 있다.

 

시대가 많이 흘렀고 한국 사회가 가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가정이 빚을 지고 산다. 물론 주택이나 직장 등 빚을 갚을 수 있는 신용의 범위 내에 있는 빚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신용의 범위를 벗어나 자신의 통제를 벗어났을 경우가 문제가 된다. 그리고 빚이 자신의 신용 범위를 벗어나는 순간은 자신도 어찌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누군가에 교회가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전통적으로 교회는 성도들의 빚 문제에 대해 철저하게 침묵하고 무관심했다. 이해는 된다. 교회 내 교인간 다양한 형태의 금전거래로 인해 교회를 떠나거나 교회 내 다양한 분란을 일으킨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나도 이런 문제를 수없이 많이 보고 자랐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어떤 면에서는 빚을 지고 살수밖에 없는 교인들의 현실을 무시하고 ‘교인들 간에 금전 거래를 하지 마라’는 비현실적인 지침만을 고수했기 때문에 음성화되어 더 확산되고 크게 문제가 되는 측면이 크다.

 

예수를 믿은 우리도 세상에서 산다. 육을 입고 살기에 먹고 입어야 하고 살 집이 있어야 하고 자식을 키워야 한다. 당연히 돈이 필요하다. 실직이나 질병, 자녀교육, 파산 등의 문제가 그리스도인에게도 예외 없이 찾아온다. 당장 빚을 지지 않으면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리기도 한다. 최선을 다해 빚을 갚았지만 여러 상황에 몰려 파산의 상황에 몰리기도 한다. 많은 교인들이 이러한 상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마치 빚을 지고 사는 교인이 한 명도 없는 것처럼 어떤 개입도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무언가라도 이야기를 해야 하고 어떻게든 행동을 해야 한다.

 

물론 우리 사회의 빚 문제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교회가 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다. 당연히 국가가 이 문제에 일차적인 책임을 가지고 개입해야 한다. 복지를 더 확충해야 하고 빈곤층에 대한 공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개인의 한계를 넘어선 빚 문제에 대한 대책도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국가가 아무리 나서더라도 빈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또 빚 문제는 단지 돈 문제를 넘어 한 사람의 자존심과 책임감의 문제이기도 하다. 국가가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만질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이 부분은 이웃과 사회가 감당해야 하는데,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교회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확장된 가족이기도 하다.

 

교회들 가운데는 이 문제에 개입을 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교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래서 기윤실이 나서기로 했다. 기윤실은 올해부터 가계 부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 부분의 전문가들을 모아 대안을 모색하고, 이 부분에서 나름대로 실천해온 교회들의 경험을 모아 몇 가지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개별 교회의 규모나 상황에 맞는 다양한 실천 모델들을 올 하반기 정도까지 제시하려고 한다. 이러한 기윤실의 ‘부채해방운동’에 회원들과 교회들의 더 많은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린다.

 

글_ 정병오 공동대표

 

 

이 글은 2017년 기윤실 열매소식지 7-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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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②


※ 이 글은 5월 8일, 평화다방에서 진행된 토론회 원고를 편집한 것입니다.


발제 2.

소수자와의 갈등을 넘어서기 위한


교회와 기독시민의 역할

백소영 교수(이화여대, 기독교사회윤리학)




1. 촛불과 탄핵, 그리고 선거 과정에서 표출된 갈등,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보기

우리 집도 예외 없었다. 인품 좋은 분들이고 사는 동안 크게 언성을 높여 싸울 일이 없었던 친정 부모님과도, 시댁 부모님과도, 여지없이 한판 붙었다. 계기는 촛불집회에 아들아이를 데리고 갔다가 찍은 인증샷 때문. 이후 시어머님은 태극기 집회를 빠짐없이 참석하시며 인증샷을 가족 단톡방에 올리셨다. 이 일을 계기로 양쪽 어르신들의 연대가 급격하게 두터워졌다. 남과 북으로 나뉜 이 슬픈 나라에서 이젠 가족 간에도 양분되는 가슴 아픈 갈등을 보며 “세대 차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발제는 전상진 교수님께서 진행해주실 터라, 나는 같은 현상을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풀어보려 한다.

‘여성주의’는 현 체제 밖의 시선이고 사유이고 언어이다. 모든 ‘여성’이 ‘여성주의적 관점’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 해도 가부장제를 관통하면서 남성 지도자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과 제도를 그대로 수용하고 순응했다면, 아니 오히려 적극 가담해서 한 자리 차지했다면 그녀들은 ‘여성주의자’가 아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되 은유로는 ‘남성’이다. 때문에 ‘여성주의적’이라는 말은 생물학적 ‘여성’이나 구성적 특성으로서의 ‘여성성’과 반드시 일치하는 단어는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시스템 안에 아직 도래하지 않은 어떤 것, 새로움을 가져올 수 있는 ‘시스템 바깥’의 의미이다. 도전적이고 진취적이고 경쟁해서 승리하는 ‘남성’이 지도자의 자질을 갖는 ‘약육강식’의 동물적(실은 동물이 더 낫다. 배고프지 않은데도 잡아먹는 건 인간사회뿐) 시스템이 21세기 신자유주의적 고용유연성의 관료제적 자본주의와 만나니 체제 밖으로 배제된 것은 비단 여성만이 아니게 되었다. 현재 ‘남근중심적’(공격적, 경쟁적, 이성적, 효율적, 기능적, 개별적 혹은 조직이기주의적) 사회구조는 사다리의 제일 꼭대기에 자리를 차지한 소수가 권위를 독점하고 자기들 아래 있는 사람들의 삶의 방향과 종류와 속도, 그리고 죽음까지도 좌지우지하고 있다. 오천 년 가부장 역사 가운데 가장 대규모로 가장 지속적으로 시스템 안에 있으나 그 시스템을 만드는 데 참여한 바 없고 그 시스템 안에서의 자기 위치 역시 스스로 결정한 바 없었던 여성들이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는 ‘주의’를 “여성주의”라고 부른다면, 시스템 바깥에 배제된 남성들도, 그리고 다른 소수자들도 포함할 수 있는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이름을 달리 부를 수도 있다. ‘보편주의’ ‘평등주의’ ‘無/脫 계급주의’・・・ 그러나 이제껏 공적 테이블의 합의와 결정방식에 자신들의 의미가 반영된 바 없었던 ‘소수자들’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대변하기에 “여성”만큼 적절한 이름이 또 어디 있을까.

 


2.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공동체의 답

추운 겨울부터 봄까지 광장으로 뛰어나온 사람들은 마주보기를 원했다. 계급장 떼고, 성별 떼고, 나이 구분 떼고, 모두가 한 시민으로서 자신의 의미를 전하는 일을 축제처럼 즐겼다. 어이없는 일은 이를 위협으로 여긴 사람들이 비단 위계적 리더십을 독점한 상층부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권력도 부도 가지지 않은 ‘어르신들’은 촛불 정국을 낯설어 했고, 나아가 불안해했다. 소위 6.25세대라는 그들의 공동기억도 한몫 했을 일이고, 산업화 세대라는 그들의 ‘업적’이 부정당하는 느낌에 대한 분노였을 수도 있다. ‘우리’가 (살기 좋게) 만들어놓은 이 시스템을 부정하고 뒤흔들다니! ‘어르신들’의 분노는 그들이 성취했고 정당하다고 믿는 위계가 전복된 것(혹은 될 것)에 대한 불안감이다. 어른과 아이, 남자와 여자, 통치자와 시민(거의 ‘신민’), 고용자와 노동자 사이를 ‘위계’로 보는 시선을 가진 사람들은 거의 빠짐없이 ‘태극기’쪽에 섰다. 어디 ‘감히’ 시민들이 대통령을 끌어내리나. 이들은 이미 ‘정답’을 가진 집단이다. 도대체 탄핵 정국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동성애 이슈가 불거졌을 때에도 이들은 목소리를 합하여 이성애를 정답으로 외쳤다. 사람들의 관계 방식에 위계가 존재한다고 믿고, 정답을 가진 쪽이 ‘자신들’이라고 믿는 사람들. 그래서 ‘다름’이 드러나거나 답이 달라질 수 있는 열린 토론이 불편하고 불안한 이들이 인정하지 않는 공간은 다름 아닌 ‘사이’ 공간이다. 너와 내가 ‘n분의 1’의 권위를 가지고 마주본 채, 서로의 ‘다름’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공간, 그래서 서로 의미 있게 마주본 둘이라면 결국엔 중간지점이든 전혀 다른 답이든 함께 할 수 있는 답을 찾아갈 수 있는 관계적 혁명의 공간. 그 ‘사이’를 가져본 적 없는 이들은 답을 주장할 권리가 없다고 응시했던 이들의 의미 표출에 분노하게 된 것이다.

물론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을 따른다. 우리는 내일 있을 투표 결과에 승복하며 내가 뽑은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다수’의 의사결정을 존중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개인의 의사 결정이 있기까지 우리 사회구성원의 목소리들을 가능하면 ‘모두’ 마주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내 답과 다르다면 갈등하는 과정도 ‘악’이 아니다. ‘소수자’ ‘약자’라는 말은 반드시 수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심지어 그 수가 많더라도 공적 결정과 시스템을 만드는 데에 그들의 의미가 들려진 적도 반영된 적도 없었다면, 그들은 ‘소수자’요 ‘약자’다. 그동안 순종적이고 말 잘 듣던 딸이요 며느리가 두 눈 똑바로 뜨고 언성을 높인 일이 공동체의 파괴요 인륜을 저버린 행동이라 여기는 한, 우리는 결코 ‘구성원이 모두 행복한 공동체적 살기 방식’을 향해 근접해 가기 어려울 것이다.


 

3. 잃은 양 한 마리까지도 품는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기

안타까운 현실은, 가장 작은 자의 의미까지도 살뜰하게 품어야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가르치는 기독교인들이 이 엄청난 갈등의 주요 진원지라는 사실이다. 지인이 태극기 집회의 사진을 찍어 보내며 왜 저기에 미국 국기와 심지어 이스라엘 국기까지 있느냐는 질문에 그걸 설명하느라 애썼던 기억이 있다. 역사적 우연성으로 결합되었으나 비본질적인 ‘패키지’는 해체되어야 한다. 예수를 믿는다면서, 잃은 양 한 마리까지 기어이 찾아와 공동체에 포함시키는 그 사랑은 어찌 닮으려하지 않는지. 어린 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들어갈 수 없다는 하나님 나라는 믿으면서 우리 사회의 가장 작고 힘없는 사람들의 의미에는 왜 귀 기울이지 않는지. 예수는 가부장제와 제국이 만들어 놓은 권위의 위계가 정점에 달해있던 시절에, 모두가 형제자매로서 서로 마주보는 공동체인 ‘하나님 나라’를 전하시고 사신 분이다. 그 관계적 혁명을 이룬 공동체가 ‘교회’인데, 어쩌자고 오늘날의 교회는 또 다시 가부장제와 제국의 위계를 닮아가나. 아니, 오히려 더 앞장을 서나. “네 말이 옳도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당시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던 작고 작은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옳다하시고 그들의 삶의 해석을 받아들이신 예수를 ‘주’로 믿는다면, 소수자·약자와의 갈등을 넘어서기 위한 기독 시민의 첫 역할은 자명하다. 나와 다른 답을 가진 이들을 초청하고 자리를 내어주고 그들의 의미를 듣는 일! 단 한 번도 방해받지 않고 내 이야기를 끝까지 해보지 못한 사람들(내가 실재요 은유로서의 ‘여성’이라고 말한)에게 마이크를 내어주는 일, 그것부터 시작해야한다. 그 추운 겨울에 손을 호호 불면서도 발랄하게 무대 위로 뛰어올라왔던 어느 이름 모를 초등학생, 아기 엄마, 노점상인, 그들이 의미가 충분히 들려지고 제도와 정책에 반영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것이다. 안정, 성장, 효용성... 이런 이름으로 생명을 버리는 제도와 정책은 ‘반(反)하나님적’이다. 그러니 교회의 이름으로, 신자의 이름으로 싸워야하는 것은 이제껏 교회의 공적 담론이나 교리에 반영된 적 없었던 소수자나 약자의 ‘낯선 의견들’이 아니다. 싸워야할 무리들과 연대를 하고, 듣고 품어야할 이들에게 칼을 빼드는 어리석음은 이제 그쳐야하지 않겠는가.



2017/06/08 - 새로운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① - 손봉호 자문위원장

2017/06/08 - 새로운 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①- 양희송 대표(청어람ARMC)

2017/06/08 - 새로운 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② - 전상진 교수(서강대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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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②


※ 이 글은 5월 8일, 평화다방에서 진행된 토론회 원고를 편집한 것입니다. 


발제 1.

세대갈등 프레임의 쓸모

광장의 대립을 세대 다툼으로 만들어 이익을 챙기는 세력들

전상진 교수 (서강대 사회학과)

 


나는 세대사회학자다. 세대가 관심을 받을 때 내 연구도 주목받는다. ‘물썬 때는 나비잠 자다 물 들어야 조개 잡듯’한다는 속담이 있다. 때를 놓치고 뒤늦게 행동하는 게으른 사람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말이다. 지금은 ‘물썬 때’다. 열심히 일할 때다.

 

광장의 소란은 세대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서로 으르렁대는 촛불과 반촛불로 광장이 가득하다. 촛불은 젊고 반촛불은 노숙하다. 고로 촛불과 반촛불의 대결은 세대들의 싸움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세대전쟁인지 의심스럽다. 물론 외관 상 그것은 젊은이와 어르신의 싸움처럼 보인다. 특히 반촛불 집회를 생각하면 그런 결론에 도달하기 쉽다. 그곳에서 노인들은 정말 사회 전체와 상대한다.

광장 집회는 흐르는 물과 같아서 그 참여 인원의 속성을 적확하게 판별하기 어렵다. 여론조사가 밝혀낸 탄핵에 대한 연령별 의견으로 그 윤곽을 가늠할 수 있다. 여러 조사는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탄핵을 찬성하는 의견은 20~30대에서 매우 높고(90% 이상) 60대 이상에서 상대적으로 낮다(50~60%). 둘째, 모든 연령층에서 인용 의견이 우세하다. 셋째, 찬성 의견이 반대 의견의 대략 5배 정도 된다. 그에 비추자면 세대 대결이라는 주장은 명백한 과장이다. 그렇다고 연령이나 세대에서 비롯한 차이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분명 긴장이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갈등이라 말하기도 민망하다.

 

세대갈등 프레임 말고 다른 틀로 광장을 살피는 방법이 있다. 예컨대 민주주의 대 반민주주의 또는 법치주의와 반법치주의의 대립 프레임이다. 범법을 저지르고 민주주의를 훼손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으려는 촛불과 제대로 ‘엮인’ 대통령을 구조하려는 반촛불의 싸움이 그것이다. 그것은 세대 프레임과는 전혀 다른 동기와 목적과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세대 프레임은 대립하는 세대 성원의 상호인정을 전제한다. 갈등하는 두 세대는 자신의 행동을 이렇게 정당화한다. 연장자 세대의 전횡에 맞서 새로운 미래를 열려는 연소자 세대의 저항 또는 젊은이의 일탈을 바로 잡아 사회를 수호하려는 어르신의 ‘질서 있는 제어.’ 서로 싸우더라도 목표는 동일하다. 세대 공생이다. 젊은이가 늙은이의 억압에 저항하지만 목표는 그들의 제거가 아니라 그들과의 평화로운 삶이다. 반대로 어르신이 나이어린 녀석들의 방종을 다스리지만 목표는 그들의 제거가 아니라 유산을 보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와 달리 민주ㆍ법치 프레임은 엄격하다. 공생보다 판결이 우선이다. 실제 행위가 민주적 원칙에 부합하는지 또는 적법한지를 사실 관계에 근거해서 따진다. 다수의 스모킹 건이 뿜어낸 연기가 포연처럼 자욱해진 지금, 대통령의 혐의는 의혹의 수준을 이미 넘어섰기에 정당성의 측면에서 촛불과 반촛불은 뚜렷하게 갈린다. 증거에 입각한 민주ㆍ법치는 애당초 음모론과 연민과 오롯한 권력의지에 의존하는 반민주ㆍ반법치와 싸움을 벌일 필요조차 없었다.

어떤 프레임으로 광장의 소란을 보는지에 따라 강조점이 다르다. 세대 프레임이 “상대방의 선의를 인정”하는 데 방점을 찍는다면, 민주ㆍ법치 프레임은 원칙과 법의 위반 여부를 중시한다. 그러니까 후자보다 전자에 여지가 많다. 갈등하는 세대들은 서로 싸우더라도 상대방을 인정한다. 상대가 자식이거나 부모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다음의 질문이 긴요하다. 광장의 대립을 왜 세대갈등으로 보려고 하는가? 그렇게 함으로써 누가 어떤 정치적 이익을 챙길까?

 

첫째, 반촛불 정치세력의 이익. 대통령과의 거리(“진박”, “골박”)가 정치적 프로그램인 세력은 대통령의 추락과 함께 힘을 잃었지만, 맞불 시민들이 본격적으로 광장으로 진출하면서 부활하였다. 친박세력은 민주ㆍ법치 프레임을 적극적으로 회피한다. 그것으로는 자신들을 도무지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대갈등 프레임이 안성맞춤이다. 반민주적ㆍ범법 행위는 무대 뒤로 사라지고 세대의 의견(취향) 차이가 앞으로 나선다. 당신 세대의 의견을 존중할 테니 우리 세대의 그것도 그렇게 하라.

그렇게 사실 여부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도록 만든 후에 본격적 주장을 제시한다. 종북세력의 음모를 간파한 ‘우리 현명한 애국 어르신’과 그들에게 조종당해서 나라를 위기에 몰아넣은 '젊은 녀석들‘. 그렇게 판을 짬으로써 친박세력은 노인들의 고통을 정치적으로 착취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왜 진보는 무능하고 보수는 유능하다고 생각하는가』(시대의 창, 2016)에서 장신기는 장ㆍ노년층이 진보를 멀리하고 보수에 애착을 느끼는 까닭을 복합적 소외로 규명했다. 노인 빈곤과 노인 자살률에 있어서 한국은 OECD국가 중에서, 그것도 수년째 압도적 1위다. 급격한 사회변동 과정에서 어르신들의 “총체적인 소외의식”도 크다. 삶도 힘들고 사회적 무시도 참을 수 없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퇴물 취급이나 당하고 살기도 힘들고 참. 젊은 사람들은 우리 같은 늙은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 못할 거야.”

보수세력은 박정희, 육영수, 박근혜라는 아이콘을 통해 그들에게 자긍심을 제공하여 소외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내가 비록 지금은 이렇지만 소싯적에는 무려 “조국 근대화”를 위해 일했지 그런데 대통령이 자신들을 배신했을 수도 있다는 엄청난 사실이 너무 버겁다. 반촛불 세력의 정치적 메시지는 그러한 노인들의 손상된 자긍심을 치유한다. 단지 ‘엮인’ 것뿐이래. 어휴, 그럼 그렇지. 치유의 대가로 소외와 억하심정에서 비롯된 정치적 에너지를 지불한다. 그렇게 딜이 성사되었다. 노인들은 치유 수단을 받고, 정치세력은 그들의 지지를 얻는다. 극단적 구호와 행동이 문제라고? 아니다.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사람들이 맞불 시민을 혐오하고 적대할수록 에너지는 커지고 지지층도 더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둘째, 친촛불 정치세력의 이익. 한국의 진보세력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언제나 젊음과 진보에서 찾기에 노인들의 사정에 별반 관심이 없다. 특히 21세기의 크고 작은 선거에서 자신들의 지지자를 동원하고 결속하기 위해 낡음과 새로움, 늙은이와 젊은이의 대립을 이용했다. 그렇게 노인차별이나 혐오를 유포한다. 멀게는 2007년 대선 후보의 해프닝(“노인 분들은 투표 안 하고 집에서 쉬셔도 된다”), 가깝게는 “선거연령 18세 하향”과 “공직자 연령 제한의 제도화” 주장이 있다, 선거연령과 연령 제한은 모두 충분히 토론되어야 할 사안이다. 다만 그러한 논쟁적 사안들을 거의 같은 때에 주장함으로써 자신들의 주된 지지층이 누구인지를 의식적ㆍ무의식적으로 자백한다. 또한 친촛불 정치세력은 젊은이들의 투표 독려에 주력했다. 자신들의 정치적 프로그램이 특정 연령층만을 조준하지 않는데도 그런다. 어차피 노인은 보수를 지지할 것이라 지레 짐작하고 청년에만 공을 들이는 것이다. 박력은 인정, 그러나 참 아둔하고 무모한 박력이다. 이미 궤도에 안착한 저출산고령화 추세를 고려하면 더 그렇다.

 

광장의 소란을 세대갈등으로 보면 안 된다. 그것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가 세대들의 싸움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문제, 곧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문제임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게다가 노인 혐오와 차별도 키운다. 혐오와 차별은 어르신의 정치적 목소리를 더 강하고 독하게 만들어 그들의 고통을 착취하는 정치세력의 배만 불릴 것이다. 대응역시 더 강해지고 독해질 것이며, 노인 혐오와 차별역시 더 세질 것이다. 그렇게 소외와 혐오와 적대의 악순환이 공고해질 것이다. 사회적 갈등의 해결이 정치의 목표라지만, 현실 정치는 절대 그렇지 않다. 착취할 수 있는 갈등이라면 오히려 독려한다. 그렇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지역 차이를 지역갈등으로 ‘제도화’(“우리가 남이가”)하였다.

 

요즘 가짜 뉴스에 대한 우려가 크지만 ‘가짜 세대전쟁’도 걱정해야 한다. 싸울 일이 아님에도 싸움을 부추겨 잇속을 챙기려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방심하면 가짜 싸움이 진짜 싸움이 된다. 광장의 소란이 진짜 세대전쟁으로 발전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비록 내가 세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으로 먹고사는 세대사회학자일지라도.



* 원고는 아래 제목으로 실린 글이다. 「광장 대결이 세대 갈등 촉발해선 안 돼」, 『월간 헌정』. 2017. 03, pp.48~51. 



2017/06/08 - 새로운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① - 손봉호 자문위원장

2017/06/08 - 새로운 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①- 양희송 대표(청어람AR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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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①


이 글은 4월 20일, 평화다방에서 진행된 토론회 내용의 원고를 편집한 것입니다. 


발제 2.

갈등을 넘어서기 위한 기독시민과 한국교회의 역할

양희송 대표 (청어람ARMC)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 한국교회의 현재 상황과 사회 내에서의 위상과 역할은 어떠한가? 2015년의 종교인구 센서스 결과는 뜻밖에 개신교가 10년 사이에 한국 사회 1위 종교로 성장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규모에 걸 맞는 신뢰성과 책임성을 인정받고 있는가는 의문이다. 그 괴리현상이 많은 개신교인들에게 고민거리이며, 한국 사회 역시 개신교의 공을 박하게 평가하는 이유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있었던 몇 가지 사건을 통해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세월호 참사 (2014.04.16)

이제 3년차를 맞는 이 참사는 한국사회의 총체적 부실과 사태 수습에 있어 무능력함을 드러낸 충격적 사건이었다. 정부나 언론의 문제도 컸지만, 한국교회의 태도 역시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일차적으로 고난주간 수요일에 벌어진 이 사건을 신학적으로나 목회적으로 감당하지 못했다. 안산지역의 교회들 안에서도 목회적으로 충분히 감싸안지 못했고, 교계 지도층들이 종종 던진 발언들도 적절치 못했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에게 다가가는 자세와 공감과 위로의 언어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이용된다는 우려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적어도 교회가 보여주었어야 할 우선적 자세는 목회적 접근이고 공감적 태도였을 텐데, 지금도 교회 내에서 ‘세월호’는 금기어로 되어 있는 곳이 너무 많다. 마치 ‘5.18 광주’를 담아낼 적절한 언어와 태도를 형성하지 못한 지난 시절과 유사하다. 한국교회는 한국사회가 통과하고 있는 여러 사회적 사건들 사이에서 정치적 우려를 앞세우기 전에 어떤 태도를 내보여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닐까?

 


대통령 탄핵 (2017.03.10)

2016년 가을부터 거세게 몰아닥친 국정농단에 대한 시민적 분노는 전대미문의 규모로 촛불시위가 벌어지도록 촉발했다. 국민 여론이 80-95%선까지 탄핵찬성이었으니 시중의 공감대는 충분히 모아졌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수개월간 폭력시비 없이 평화적으로 진행되면서 결국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에 이르렀고, 세계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성숙한 민주주의를 보여주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런데 이에 반대하는 측도 거리시위에 나서기 시작하였는데, 주요한 동원의 축으로 일부 대형교회들이 등장했다. 한국 보수 세력의 주요한 축으로 개신교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입증한 셈이다.

개신교의 정치참여는 해방 이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왔다. 종종 장로대통령을 배출하려는 열망으로 드러나기도 했고, 반공주의의 선봉에 서기도 했다. 한국 현대사의 주요한 고비마다 개신교가 정치적 동원 대상으로 활용된 것이 여러 번이고, 부정선거나 불법선거에 연루되기도 했다. 물론 그 반대편에는 진보적 교회들이 민주화운동 등에 투신하고, 반정부 투쟁에 나선 역사도 병렬적으로 진행된다. 이런 역사는 제대로 검토되거나 숙고되지 않은 채 에피소드처럼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특히나 이번 국정농단의 원인제공자로 꼽힐 최태민은 편법으로 목사 안수를 받고, 개신교계를 기반으로 정치적 동원에 나선 전형적인 인물이다. 한국교회의 반성과 다짐이 없어선 안 될 대목이다. 기독시민과 한국교회가 정치 참여의 차원과 이슈를 정돈하지 못하면 결국 한국교회는 신앙이 아니라 정치적 지향이 최우선으로 적용되는 공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민주주의 사회의 규칙과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 어떻게 만나고, 균형을 이루어야 할지 생각과 태도를 형성하려는 노력이 시급하다.



기독시민 운동과 한국 교회

나는 교회 그 자체가 사회문제나 정치적 사안의 최전방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측면이 많다고 본다. 교회 구성원들의 정치적 소신이 크게 다를 수 있고, 이를 모아내는 작업은 매우 서툴 가능성이 크다. 그보다는 훨씬 원칙의 차원을 다루어주는 것이 좋다고 본다. 대신 구체적인 사안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여론을 모으고, 행동에 나서는 역할은 기독시민운동 영역이 나서주는 것이 전문성의 문제나 지속성의 차원에서 더 나은 방법일 것으로 본다.

문제는 우리에게 충분한 숫자나 규모의 기독시민운동이 존재하는가, 교회와 시민단체 간의 유기적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1980년대 이래로 해외선교에 소문나게 열심을 보였다. 이제는 사회선교를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사회의 각 영역으로 사회선교사를 파송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시민단체를 후원하고, 기도제목을 서로 나누는 네트워크가 조성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떤 사안에 교회가 성급하게 나서면서, 목회자들의 사고와 경험치 안으로 사안이 축소되거나, 내부의 공감도 세심하게 얻어내지 못한 채 목회자들의 독단적 판단에 따라 동원되는 양상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갈등과 이견을 다루는 내부의 경험도 없이 사회 내의 분열을 봉합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만용이다. 길이 멀지만, 차근차근 내부 정비를 해가면서 걷는 것이 필요한 시절이다. 성찰과 혁신을 키워드로 기독시민과 한국교회의 역할을 새롭게 고민해 보기를 요청한다.

 

<참고자료>

강성호, <한국교회 흑역사> (짓다, 2016); 김건우, <대한민국의 설계자> (느티나무책방, 2017).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하나님의 정의> (IVP, 2017),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출 때까지> (IVP, 2007).

미로슬라브 볼프, <광장에 선 기독교(Public Faith)> (IVP, 2014).



2017/06/08 - 새로운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① - 손봉호 자문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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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회와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 

※ 이 글은 4월 20일(목), 평화다방에서 진행된 토론회 발제 원고를 편집한 것입니다. 


 

 

 

발제 1.

한국사회의 갈등현상에 대한 

기독교 윤리적 관점

손봉호 자문위원장 (기윤실, 고신대 석좌교수)






최근 대선 후보들이 사회 통합을 이루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을 보니 사회구성원들이 동감하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가 갈등해소와 통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제시대에 우리나라가 어려웠던 원인 중 하나는 도산 안창호의 말대로, 분열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은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며 힘을 잃고 퍼져버렸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분열의 이유는 첫째, 도덕성 결여로 서로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산 안창호의 분석에 동의한다. 우리가 단결하지 못하는 것은 서로 속이기 때문이다. 믿지 못하면, 힘을 합칠 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도덕성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국제 투명성 기구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청렴도는 세계 176개 국가 중 52위이다.(2016년 발표, 일본은 20위) 도덕적 후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 예를 들면, 탈세율 28% (경제위기 봉착했던 그리스 27%), 보험사기 14% (일본1%), 교통사고 입원율 일본의 8배.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속이며 고통을 주는 것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 서로 믿지 못하는 개인들이 모인 사회에서 어떻게 통합을 말할 수 있을까. 도산은 ‘거짓말은 군부의 원수’라고 했다. 도산이 애달파했던 상황은 2017년 현재도 여전하다. 기윤실이 창립 초기부터 여러 가지 정직 운동을 해왔다. 그러나 3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할 때 무엇이 나아졌다 싶다.

분열의 둘째 이유는, 이념적 갈등이다. 각자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지나쳤다고 본다.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전에는 정론이라는 것이 있어서(예를 들면 뉴욕타임즈), 어떤 현안이나 문제에 대해 합리적 관점과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주었는데, 지금 시대는 SNS가 발달하면서 온갖 괴상한 생각에도 근거를 찾을 수 있고 쉽게 퍼뜨릴 수 있게 되었다. 자기 마음에 드는 의견만 찾아다니고 수용하여 고집불통이 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그저 다르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나쁜 사람이라고 여기기에 갈등은 더욱 심해진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도덕적 불신을 극복해야한다.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고, 공정해야한다. 100%는 아니더라도 정직하고 공정한 삶을 살도록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성경적 정의’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 남을 속이지 않는 것, 그리고 이웃이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지 않는 것임을 기억해야한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가진 이념을 종교와 연결 지어서는 안 된다. 정치적 이념을 종교적 상황까지 끌어올려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 이념은 비과학적이기에 객관적일 수 없다. 이념을 절대화 하는 것은 우상숭배이다. 성경말씀보다 우선하는 것은 무엇이든 우상이다. 한국사 회는 이념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다. 이념을 성경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을 성경으로 정당화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것을 극복해야한다. 유일하게 절대적인 것은 성경이다. 그리고 윤리이다. 보수도, 진보도 상대적이다. 자신의 이념에 사로잡혀 상대방을 적으로 대하는 태도를 고쳐야한다.

이 두 가지만 극복해도 우리 사회 갈등을 해소 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기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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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성도들에게 홍준표 후보가 대한예수교장로회 광성교회 안수집사이며, 주기철 목사님의 생가를 복원할 때 7억 원을 개인 돈으로 헌금했다는 메시지가 돌았습니다.


기윤실은 올해 대선에서 성도들에게 배포되는 정보들에 대해서 팩트체크를 해보기로 했었죠. 이 메시지에 대해서 공명선거시민네트워크(fairelection.kr)와 함께 사실을 확인해봤습니다. 


먼저 광성교회(송파구 풍납동 474, 02-485-9981, gwangsung.or.kr)에 확인을 해봤습니다. 교적에는 "실종교인"으로 되어 있는데 오랫동안 나오지 않은 교인을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따로 직분이 있지도 않다고 합니다.


그 외에 성복교회에 다닌다, 전농감리교회에 다닌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확인 결과 과거 동대문구(을) 국회의원 시절 홍준표 후보가 성복교회에, 아내가 전농감리교회에 다녔다고 합니다. 두 사람 모두 경남도지사로 당선된 이후 이사를 가서 현재는 나오지 않은지 좀 됐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홍준표 후보가 경남도지사 시절, 주기철 목사님 생가 복원에 개인 돈 7억 원을 헌금했다는 것을 확인해 봤습니다. 항일독립운동가 주기철 목사 기념관(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로 174, 055-545-0330)에 확인을 해봤습니다. 주기철 목사님 생가는 아직 복원되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담당자께서 혹시 손양원 목사님 생가가 아니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래서 손양원 목사(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덕산4길 39 손양원기념관, 055-587-7770)에도 연락을 해봤습니다. 관장님께서 말씀하시길, 복원할 때 개인 후원을 받은 적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팩트체크 결과

● 홍준표 후보가 광성교회 안수집사다? 사실 아님!

 홍준표 후보가 주기철 목사 생가 복원에 7억 원을 헌금했다? 사실 아님!


성도들에게 배포되는 메시지가 있으면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fairelection.kr / cemk@hanmail.net / 070-7019-3755



연결된 이미지가 필요하신 분은 아래 이미지를 사용하세요

● PC에서 : 커서를 이미지 위에 > 마우스 왼쪽 클릭 > 이미지를 다른 이름으로 저장 

 Mobile에서 : 이미지를 꾸ㅡ욱ㅡ 누르기 > 이미지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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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 위반

▶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반복되거나 사안이 중대할 경우 선관위에 신고하겠습니다.


공직선거법에 의하면 종교 기관 또는 단체에서 직무상 행위를 이용해 그 구성원에게 선거운동을 하거나 하게 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제85조(공무원 등의 선거관여 등 금지) ③ 누구든지 교육적·종교적 또는 직업적인 기관·단체 등의 조직 내에서의 직무상 행위를 이용하여 그 구성원에 대하여 선거운동을 하거나 하게 하거나, 계열화나 하도급 등 거래상 특수한 지위를 이용하여 기업조직·기업체 또는 그 구성원에 대하여 선거운동을 하거나 하게 할 수 없다.


즉 목사가 설교나 광고 시간을 이용하여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지지를 유도하는 등의 발언을 하면 공직선거법 위반이 되는 것이죠. 그러나 그동안 교회에서는 이런 일들이 자주 있어왔습니다.


사례 대전 C목사는 20대 총선에서 특정 정당 홍보위원으로 활동하며 2016년 4월 10일 예배시간에 그 정당의 홍보영상을 상영하고 그 정당에 투표할 것을 독려함. 대전 선관위는 선거범죄 전력이 없다면서 서면 경고 했으나, 대전지검은 마이크와 확성기를 사용했다며 불구속 기소하여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벌금 150만원을 선고 받음 (2017. 3. 20. 대전고법 형사 8부)


선거법 위반 사례 제보 시

동영상, 녹음 파일 등 증거를 남기시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선거법 위반 사례

많은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홈페이지 fairelection.kr (클릭) / 전화 070-7019-3755

메시지 010-2671-3756 / 이메일 cemk@hanmail.net



가짜뉴스

▶ 각계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아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겠습니다.


메신저를 통해서 근거 없는 소문이 퍼져 성도들을 혼란하게 만드는 경우가 왕왕 많았습니다.

(C) 오마이뉴스 신나리



성도들을 대상으로 유포되는 가짜뉴스

많은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홈페이지 fairelection.kr (클릭) / 전화 070-7019-3755

메시지 010-2671-3756 / 이메일 cemk@hanmail.net



교회는 공직선거법을 지켜주세요

기윤실 공명선거운동 발표 기자회견문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19대 대통령 선거가 보궐선거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새 대통령 선출을 넘어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가 되길 바라는 국민들의 열정이 가득 표출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선거에서 특정 정파나 종교에 속한 후보자들을 노골적으로 지지하고 무조건 투표할 것을 독려하는 일을 왕왕 저질러 사회로부터 지탄 받아왔습니다. 이는 종교로서 엄정하게 지켜야 할 중립 의무를 저버린 것이자, 공직선거법 제85조 3항에 종교단체에서 그 직무상 행위를 이용하여 그 구성원에게 선거운동을 하거나 하게할 수 없다고 명시한 것을 위반하는 범죄입니다.


한국교회는 이를 일부의 잘못이 아니라 전체의 과오임을 인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의 열매로 세속 정치에 개입하려는 욕망을 버리고 선거 중립을 지키며, 국민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공직선거법을 준수해야 합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은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며, 그 하나로 공명선거운동을 진행해왔습니다. 기윤실은 19대 대통령 선거를 맞아, 교회 안팎에서 일어나는 불법선거운동을 묵인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겠습니다.


첫째, 공직선거법 위반 기독교 신고센터를 운영하여 불법선거운동을 신고 받아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사안이 중대하거나 반복될 경우 직접 선거관리위원회와 검찰에 고발하여 반드시 수사 받고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둘째, 성도들에게 확인되지 않는 정보가 뉴스를 가장하여 무차별적으로 살포되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거짓뉴스들을 수집하여 각계 전문가들의 검증을 거쳐 사실 관계를 명확히 밝히고 성도들에게 올바른 정보가 재배포될 수 있도록 기독교 팩트체크를 진행하겠습니다.


셋째, 투개표참관단을 운영하겠습니다. 기윤실의 <2017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19.4%가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개신교에 공정선거를 위한 감시활동을 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 열망을 받아 전국적으로 2000여 명의 투개표참관단을 운영함으로써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지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3월 15일, 공의정치포럼 ‧ 기독청년아카데미 ‧ 뉴코리아 ‧ 새벽이슬 ‧ 성서한국 ‧ 생명평화연대 ‧ 희망정치시민연합 ‧ ESF(기독대학인회) ‧ IVF(한국기독학생회)사회부 ‧ SFC(학생신앙운동)영역사역부와 기윤실이 함께 <공명선거시민네트워크>를 발족했습니다. 기윤실은 네트워크의 구성원으로서 공직선거법 위반 기독교 신고센터와 기독교 팩트체크를 전담하고, 투개표참관단 운영에 연대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로마서8:28) 마음으로, 공명선거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17년 3월 30일(목)

사단법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


Posted by 기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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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9일(화)는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날입니다. 대통령이 탄핵되고 보궐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초유의 일을 겪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선거에 대해 이야기하고 누구를 뽑을지 기도한 후 투표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 전단지는 그것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교회나 선교단체 소모임에서 이 전단지를 사용해 대통령 선거에 대해서 공부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이 전단지는 누구나 자유롭게 다운받아서 인쇄하여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인쇄할 때는 박스 안 PDF 파일을 사용하세요

 

기윤실_19대_대선_Talk_Pray_Vote_전단지.pdf


인쇄 할 때 - 용지방향(가로), 양면인쇄(짧은 쪽으로 넘김) 하시면 됩니다



 

아래는 이미지 파일 원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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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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