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

[기윤실포럼] 양극화와 한국사회의 갈등현상 : 주거 교육 세대 노동 - 발제문


[2016 기윤실포럼]

 

양극화와 한국사회의 갈등현상 : 주거 교육 세대 노동 


 

이 글은 지난 4월 25일(월) 오후3시,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에서 진행되었던 "양극화와 한국사회의 갈등현상 : 주거 교육 세대 노동" 포럼 자료집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주석 및 발제문 전문은 기윤실 홈페이지 자료실(cemk.org)에 첨부된 PDF 파일을 내려받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기윤실 자료실 바로가기 클릭)


 



"자식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은 천지개벽했다'

 

 

오 찬 호 박사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진격의 대학교 』


 

 

   지금세대가 과거와 얼마나 다른 환경에 처한 지를 수치적으로 확인하는 건 구글 검색 몇 분이면 가능하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공인중계소 앞에서 한번이라도 머뭇거려 보았다면 ‘달라짐’을 느껴야함은 당연하다. 일례로 1991년에 5500만원 했던 분당의 아파트가 지금은 5억 5천만 원이다. 이 팩트 하나만으로도 여러 논의를 뽑아낼 수 있다. 첫째, 집을 마련한다는 개념자체가 완전히 달라진 시대의 등장이다. 10년 바짝 모으면 가능했던 시대와 20년을 바짝 모아도 불가능한 시대는 결코 같은 시대가 아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많이 잡는 시대는 끝났다. 지금은 몸만 피곤할 뿐이다. 둘째, 아파트가 의미 있는 재테크가 불가능해진 시대다. 아파트 가격이 과거처럼 오를리 없다. 그러니 열심히 산다고 자산증가폭이 동일할리 없다. 티끌모아 태산이 아니라 ‘티끌은 모아봤자 티끌’이 되는 시대다. 그리고 이 문제는 같은 청년세대‘안’에서의 균열이 과거에 비해 커질 수밖에 없음을 이해한다. 그렇게 가난했다던 시대에도 ‘내 집 마련을 포기’한다는 말이 드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N포세대란 말이 자연스러워졌다. 그중 가장 대표적 ‘삼포’ 중 하나가 바로 내 집 마련이다. 무슨 수영장 딸린 3층 저택을 구입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24평짜리 아파트도 가격에 입이 떡 벌어진다. 그런데 누구는 부모 잘 만난 덕에 ‘주거권’을 쉽게 확보한다. 누구는 당연한 권리를 얻기 위해 몇 십 년간 아등바등 거리는데 누구는 ‘몇 십 년’을 시간 절약 한다. 그러니 이들의 격차는 결코 좁혀지지 않는다. 잘 사는 집안의 자녀가 크루즈 세계여행을 가는데 누구는 못 간다면 이는 불평등이긴 하지만 사회문제까지는 아니다. ‘세계여행’이 보편적 인간의 권리는 아니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개인이 수긍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집’은 그렇지 않다. 사회가 정상이면 ‘열심히 공부한 다음 어떤 일이든 성실하게 주 40시간을 일하면’ 자기 소유의 집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가?

 

 


그때는 그걸 묻지 않았다


시간대가 다른, 그리고 경제적 수준이 달랐던 가정에서 살았던 A, B 이야기를 할까 한다. 이야기는 과거와 다른 상황에 처한 지금의 청년세대의 실상, 그리고 지금의 청년들 안에서의 어떤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그 내용을 미리 말하자면 A보다 부유한 가정에 살았던 B가 다른 이유도 아닌 ‘자신이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것을’ 탓하면서 부모를 ‘끊임없이’ 원망하게 된 사연에 관한 거다. 먼저 과거에 살았던 A다. A는 지방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아버지는 A가 어릴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앞 2평 남짓한 공간에서 떡볶이를 평생 파셨다. 고로 A는 힘겹게 살았다. 과외는커녕 학원조차 맘 편히 다닐 형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A는 개의치 않았다.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을 본인이 악착같이 한다면 대학은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A는 ‘성문종합영어’와 ‘수학의 정석’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했고 나름 사학명문이라 불리는 지방의 한 대학으로 진학했다. 지금은 ‘지잡대’라면서 조롱의 대상이 된 대학이지만 그때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니 ‘대학서열’의 상층부 학교, 이른바 ‘인서울’의 이름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지 못한 것은 A에게 약간 아쉬울 뿐이지, 인생의 ‘발목’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좀 더 좋은 조건에서 공부시켜주지 못한 부모에 대한 원망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지배적’이지 않았다.

 


대학에 진학한 후 가정형편상 등록금과 생활비를 부모로부터 받을 수 없었던 A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교 앞 호프집에서 저녁 6시부터 밤 12시까지 서빙을 하는 일이었다. 이는 곧 학점관리의 문제로 이어졌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했고 A는 평균 3.0 학점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B학점에 턱걸이를 한 수준이니 학업성적이 탁월했다고 볼 수는 없으나 취업과정에서 이것이 문제되지는 않았다. “왜 학점이 이 정도죠?”라고 묻는 사람이 없으니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던 힘든 상황과 이것이 야기된 이유에 대한 원망도 없었다. A의 취업이력서는 단촐 했다. 엄연히 말해 평균 B학점으로 졸업한 대학의 학위증은 당시로서 결코 초라한 대우를 받지 않았다. 그 시절, 영어성적과 자격증은 보유한 사람만 적는 것이지 의무가 아니었다. “너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토익을 공부하는 거야?”라는 눈총을 받았던 친구 몇몇만 남들하고 다른 어학능력을 이력서에 기재했는데 이들은 실제 그런 능력을 필요로 하는 희소한 자리로 진출했다. 그러지 않은 곳에서 일할 사람에게 영어능력은 있으면 좋겠지만 없다고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변수는 아니었다. 그래서 A는 이력서의 자격증 칸에 군대에서 취득한 ‘태권도 1단’과 ‘운전면허’를 적었고 무난하게 정규직으로 취업했다. A의 부모는 자식이 영어를 배움에 있어서 ‘아낌없는 지원’을 전혀 할 수 없었지만 이 때문에 자녀와의 관계가 소원해지지 않았다. A는 대학에 입학한 후 취업할 때까지 부모님께 딱 한번 손을 벌렸다. 면접 때 입고 갈 정장을 사야 하는데 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중에 갚아드리겠다’면서 받은 5만원이 전부다. 이 ‘나중’도 취업의 공백기가 없었기에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학입학과 졸업, 그리고 취업에 이르기까지 부모의 도움이라곤 받아 본 적이 A는 지금에도 부모님을 늘 공경한다. ‘낳아주고 하루 세끼 밥 굶기지 않으면서 길러주신’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할지 전전긍긍한다. A는 부모로부터 ‘하루 세끼’ 밥 얻어먹는 것조차 대학을 입학한 다음은 그마저도 스스로 해결했다. 하지만 부모로부터 적극적인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해서 나타나는 ‘자녀의 역량’을 과거에는 그렇게 묻지 않았다. 쉽게 말해, 비행기 표 살 돈도 없는 가정이라도 ‘어학연수’를 취업의 기본으로 묻는 시대가 아니라면 이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개인이 처한 ‘가난’은 마음먹기에 따라 극복될 가능성이 어느 정도는 있었다. 설사 가난이 개인의 삶을 제약하더라도 감당할만한 수준의 사회였다. 나는 이 시기를 ‘좋았다’라고 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지금이 이때보다 ‘더’ 나빠진 건 분명하다.

 

 

 


끊임없이 부모를 원망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하다


B 이야기를 해 보자. B의 아버지는 중학교 교사이며 어머니는 9급 공무원이다. B 가족은 서울 끝자락에 있는 23평 아파트에 ‘자가로’ 살고 있다. 말이 끝자락이지 시세가 5억이다. 두말할 것 없이 B가족은 ‘중산층’이다. B는 흔히 하는 말로 ‘풍족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 않게’ 유년시절을 보냈다. A와 비교한다면 단연코 풍족했다. A는 목욕탕에서 독학했다는 수영을 B는 아파트 앞 유소년스포츠센터에서 무려 3년간 배웠다. A는 사교육이란 것을 고3때 시험을 앞두고 수학학원 3개월 다닌 게 전부였지만 B에게 사교육은 성장과정의 일부였다. B의 부모는 변호사, 의사 집안의 자녀처럼은 아니더라도 또래 평균치 정도는 투자했다. A는 유치원 때부터 집을 들락날락거리는 학습지교사를 만났고 과학캠프, 영어캠프도 꼬박꼬박 참가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터는 동네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그래서 ‘더 비싸다는’ 학원도 다녔다. 대학을 입학해서도 B는 A와는 차원이 다른 호화를 누렸다. 등록금은 부모님이 책임졌고 졸업할 때 까지 매달 50만원의 용돈도 받았다. 이처럼 부모로부터 아낌없는 투자를 받으면 자란 B, 그는 A보다 ‘더’ 부모에게 감사를 하고 있을까? 아니다. B는 오래전부터 ‘부모의 지원 부족’이 늘 불만이다. 그리고 해가 갈수록 이는 반복 그리고 누적되어 이제 B는 자식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던 부모를 ‘능력 없다’면서 원망하기에 이르렀다.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B가 부모를 원망하게 된 시기는 특목고 진학에 실패하고 나서부터였다. 중학교 때 나름 괜찮은 성적을 유지했던 B는 3학년이 되어서 외고 진학을 희망했다. 하지만 내신 성적이 ‘퍼펙트 하지 않으면’ 외고입학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B는 좌절감에 빠지게 된다. 외고진학을 희망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B가 다닌 학원의 ‘일반부’보다 수강료가 두 배 이상 비싼 ‘특목고 진학 특별반’을 다니고 있었고 별도의 과외를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초등학교 5, 6학년 때부터 ‘해외유학 대비반’을 다녔다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각종 경시대회 수상, 입이 떡 벌어지는 영어 공인점수 성적 등은 기본이었다. 이런 업적(?)들은 입시에서 공식적으로 요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지만, 어떻게든 자기소개서에 기록되어 개인의 경쟁력을 올려준다. 뉴질랜드나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다녀 온 이들도 수두룩했다. 방학 때 다녀 온 사람, 방학‘마다’ 다녀 온 사람, 아예 그쪽에서 학교를 한 학기, 두 학기를 다녔다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B는 생애 처음으로 ‘가정형편’을 탓했다. “왜 나는 어릴 때 외국에 안 보내줬어!”라면서 불만을 토로했지만 부모는 가슴이 먹먹하다. 설마, 중학교 때 외국에 안 보냈다고 ‘부모 노릇’ 못한다는 소리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B는 좌절하기 않고 일반고에서 열심히 공부하고자 했다. 그런데 지금의 입시는 학교에서의 엉덩이싸움만으로 성적이 보장되진 않는다. 몇 백 가지가 넘는 입시 전형방식, 학교별로 달라지는 가중치를 꿰뚫고 있지 않으면 눈 뜬 장님이 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무엇보다도 일반고 ‘안’에서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려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일반고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 외고, 과학고를 ‘가는’ 시대의 일반고가 아니다. 지금은 ‘능력이 부족해서’ 특목고를 ‘가지 못한 자들이’ 모인 결핍의 공간이 바로 ‘일반고’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러니 학생들은 일찍 감치 열패감에 사로잡혀 공부에 대한 열의를 놓아버리고 선생들은 가르칠 의지를 상실한다. 이는 일반고 학업평균치를 낮춰버리게 되는데 문제는 ‘그래서’ 논술시험이라든가 수시전형의 다채로움에 부합하는 교육과정이 ‘수요가 원체 부족하니’ 굳이 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요하면 ‘알아서’ 학원을 가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학원이 어디 ‘평등’한가. 무상일리도 없지만 돈을 얼마만큼 내는지와 성과물은 비례한다.


B는 논술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대치동 학원가를 찾았다가 5일과정의 100만 원 정도의 수강료가 ‘저렴하다’고 하는 상담을 받고 충격을 받았다. B는 당연히 이 학원을 다닐 수 없었고 원했던 대학에 가지 못했다. 하지만 50만원을 내고 3일 코스라도 수강할 수 있어서 ‘그나마’ 서울소재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만족보단 아쉬움이 크다. 자신보다 성적이 낮은 친구가 전담 과외선생 밑에서 포트폴리오 작성에 열중하더니 ‘더’ 유명한 대학에 수시전형으로 진학을 한 것을 알게 된 이상 배가 아픈 걸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B는 다시 부모를 원망한다. 왜 자신의 부모는 허구한 날 “우리는 입시설명회 쫓아다닐 시간도 없고 입시상담 받을 현금도 없단다. 이해해주렴”이란 말을 달고 살았을까. 부끄럽지도 않은가!


대학을 진학한 B는 그래도 열심히 살고자 했다. 하지만 대학은 ‘부모에 대한 원망’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쌓아가는 곳이었다. 취업, 아니 ‘대기업에 원서를 넣기 위한’ 기본 자격으로 필요하다는 9종 세트(학벌, 학점, 영어점수, 어학연수, 자격증, 공모전, 봉사활동, 인턴 그리고 마지막은 충격적이게도 성형수술)는 모두 ‘부모의 소득’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었다. B는 그나마 부모의 도움으로 1년간 매달 22만원의 학원 수강료를 지불할 수 있었기에 토익점수 800점을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답이 없었다. 어학연수는 여태 제주도에도 한 번 안 가본 B에게는 언감생심이다. 자격증으로 태권도단증, 운전면허증은커녕 워드프로세서, 컴퓨터 활용능력 같은 걸 묻는 시대도 오래 전에 끝났다. 향후 진로가 회계사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전문성 어필 차원에서 공인회계사(CPA)를 기본으로 취득하고 금융권에 원서를 넣기 위해서는 증권투자상담사, 자산관리사, 변액보험판매사 자격증 정도는 기본으로 보유해야 한다. 재무설계 전문 자격증인 AFPK(Associate Financial Planner Korea)도 가급적 취득해야 한다. 이런 자격증을 보유한다고 합격보장이 되지도 아니다. 다 갖추고도 백수인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이 와중에 공모전을 챙겨야하고 봉사활동을 ‘업적화’해야 한다. 평가하지 말아야 할 것을 평가하니 봉사활동도 혹시나 꼬투리 잡힐 ‘야학교사’보단 ‘캄보디아 가서 집짓기 봉사’가 훨씬 경쟁력이 있다. 그러니 ‘돈’이 많을수록 유리해진다. 학점 좀 관리하고 영어점수 높다고 해서 50만원 내고 ‘기업에 따른 적합한 자기소개서 작성법’을 첨삭 받은 자보다 ‘뛰어난’ 글을 쓰긴 어렵다. 운 좋게 서류전형에 합격해도 취업전문학원에 100만원을 지불하고 ‘압박면접’ 예행연습을 한 경쟁자를 이기긴 어렵다. 이 모든 것은 돈과 시간의 문제요, 고로 아무리 효심이 지극하다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부모‘탓’을 할 가능성은 높아졌다. 이런 것들을 요구하지 않았으면 ‘원망하지 않았을’ 부모님이지만 시대는 완전히 변했다. 면접 때 영향을 주는 ‘첫인상’에도 부모의 존재가 개입된다. 인상이 좋은 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게 취업의 ‘기본’이 되어버려 누군가에게 ‘불이익’을 주는 일이 실제 발생하니 취업준비생들은 이마저도 경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외모’는 노력으로 쉽사리 변하지 않는 것, 그러니 과학(?)에 의지할 가능성은 당연히 높아졌고 이와 비례하여 부모의 돈은 자꾸만 호출된다.


지난 2004년 ‘스펙’이란 단어가 국립어학원 신조어가 될 때 등장한 취업세트는 고작(?) 3종이었다(학벌, 학점, 영어점수). 이 시절에는 부모에 대한 원망이 그나마 ‘고등학교 때 좀 더 투자하지 않은 것’, ‘대학 때 자신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지 않은 것’ 정도의 차원에서 이루어졌겠지만 지난 십년간 취업세트는 3배로 진화했다. 그만큼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 난지가 더 중요해졌다. 고난을 극복한다는 건 인간으로서 감당해야할 삶의 무게일 수 있겠으나 그 임계치를 넘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헬조선’이란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B는 현재 졸업한지가 2년이 지났지만 취업하지 못했다. 작은 가게라도 하나 해볼까 하지만 집안형편이 그 정도가 아니라서 또 부모를 원망스러워 하고 있다. B는 부모의 도움으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평점 4.1로 졸업을 했지만 세상은 다른 것들도 요구했다.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행정기준으로는 명백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청년이 부모의 ‘중산층 정도에 불과한’ 재산 때문에 겪게 되는 삶의 좌절은 결코 ‘일부’의 이야기가 아니다. 평범한 삶을 누리지 못한다는 건 극도로 가난한 자들만의 경로였지만 이제는 가난하지 않게 자란 자들도 가난해지게 된 세상이다. 부모의 힘은 자녀의 삶을 탄탄하게 만드는데 있어 언제나 중요한 변수였겠지만 지금은 ‘정말로’ 막강해졌다. 앞서 등장한 B의 부모는 자녀의 대학재학 기간 4년간 등록금 4천만 원, 생활비 2천만 원을(그래봤자 한 달에 50만원도 되지 않는다. 휴대폰 요금, 학원비 등을 제외하면 밥값, 교통비 수준에 불과함) 지원했지만 그 정도로는 ‘아무것도 해 준 것 없는’ 부모일 뿐이다. 5억짜리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가난이 죄다”라고 말해야 한다면 그보다 경제적 형편이 좋지 못한 수많은 가정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열심히 산다고 ‘엄청난 부자의 삶’이 보장되지는 않지만 최소한 ‘빈곤하지 않음’을 목표로 삼을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 앞서 등장한 A가 그랬다. 그런데 이 참을만한 불평등이 참을만한 수준을 넘겨 버렸다. 보다 나은 삶을 향한 개인의 여정이 다시금 ‘태어날 때의 조건’ 앞에 막혀버린다.


통계수치는 이런 변화를 그대로 드러낸다. 통계청의 <2015년 사회조사 결과>을 보면 “평생 노력을 하면 본인 세대에게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21.8%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문제는 10년, 100년이 아니라 불과 6년 사이에 그 낙하 폭이 상당하다는 것이다(2009년 35.7% → 2015년 21.8%). 이는 개인이 삶의 불안에 대한 공포를 보다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음을 뜻한다. “생각해보니, 예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정도의 상황과 “작년엔 재작년보다 엉망이었어. 그런데 올해는 더 나빠졌어”라고 말하는 경우는 전혀 같은 상황이 아니다. 후자의 개인들에게는 ‘그래도 나아지겠지’라는 긍정성이 없다. 이는 고스란히 ‘내 자녀 역시 괜찮아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예측으로 나타난다. 2009년에는 48.4%가 그래도 자녀들은 노력이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했지만 2015년에는 그 수치가 31%로 줄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현재의 객관적 상황이 반영된 결과다. 한국사회에서 빈곤층이 중산층 이상이 되는 경우는 22.5%에 불과하다(보건사회연구소, 2014년 기준). 빈곤한 사람 4명 중 1명도 계층상승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조사가 시작된 2006년에는 32.4%였는데 급락했다. 20~40대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2012년 기준), 이들 중 한국사회를 ‘한번 실패하면 다시는 일어서기 어렵다’ 응답한 경우가 64.4%였고 ‘노력한 만큼 보상과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경우는 75.5%, ‘부모의 지위에 의해 자녀의 계층 상승 기회가 닫혀 있는 폐쇄적 사회이다’는 78.8%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초중고 학생들의 부모님들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학부모 1500명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니 성공이나 출세의 요인으로 ‘학벌과 연줄’을 꼽은 비율이 2006년 33.8%에서 2008년 39.5%, 2010년 48.1%로 매년 급증하고 있는 것은 ‘날이 갈수록’ 한국사회가 절망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런 상황은 한국사회에서 중산층이 되는 것도 힘들어지는 현실로 고스란히 나타났다. 1990년만 하더라도 전체의 75% 중산층이었다. 그리고 진입장벽이 도전불가의 수준도 아니었다. 당시의 중산층 가구의 가장은 ‘고졸, 기혼, 평균가구원 4, 홑벌이’가 평균치였다. 그리고 평균연령이 38.2세였다. 하지만 2013년도에는 중산층 비중이 전체의 67.1%로 과거에 비해 줄었다. 이것도 소득범위를 너무 넓게 잡아서 그런 것이지 실제 자신을 중산층에 속한다고 느끼는 '체감 중산층'의 비율은 46.4%에 불과하다. 자격도 달라졌다. 대학졸업은 기본이며 중산층 평균 가구원 수도 3.4명으로 줄었다. 자녀를 두 명이상 양육하면 평범하게 살기조차 힘들어져다는 말이다. ‘맞벌이’가 기본이고 평균연령은 48세였다. 이는 40대가 넘어서도 중산층에 되지 못한 가구가 과거보다 늘었음을 의미한다. 중산층의 자격이 ‘상향조정’되었으니 한 사회의 빈곤탈출이 그만큼 힘들어졌음은 당연하다.


숫자들이 말하는 바는 명백하다. 이 사회는 일을 해도(working) 가난하다(poor). 그렇게 ‘지금’은 ‘과거’보다 더 지옥이 되었다. 지그문트 바우만, 리처드 세넷 등 여러 사회학자들이 이런 사회를 ‘생애에 대한 기획이 불가능’한 시대라 한다. 고등학교‘만’ 나와도 먹고 사는 것이 가능했던 시대가 대학‘까지’ 나와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변했다. 일자리를 구해도 일한만큼 벌지도 못하고 ‘정년’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정년을 다 채워도, ‘오래 살게 된 덕택에’ 노후불안에 대한 공포는 심해졌다. ‘시키는 대로만 열심히 했는데’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이런 전 세계의 특징이 한국에서는 ‘더’ 심하게 드러난다. 괜히 ‘신자유주의가 한국에 가장 잘 착륙했다’고 하겠는가. 흔히들 자본주의 사회를 ‘정글’로 비유한다. 그러나 탈출구라도 존재하는 곳과 이조차도 찾기 힘든 곳은 ‘같은’ 정글이 아니다.


다시 주택문제로 가 보자. 주택문제는 B와 같은 ‘중산층 가정’에서도 손 쓸 도리가 없다. 2014년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 3억 3천 849만원은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을 6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치 모아야 하는 수치다. (물론 그렇게 6년을 모아도 절대 살 수 없다. 그 사이 집값은 임금노동자의 소득인상분보다 훨씬 가파르게 오르지 않겠는가.) 자본주의 사회 어디를 가더라도 집값이 만만치는 않다. 하지만 무슨 저택에 살겠다는 것도 아니고 24평형 아파트 전세 얻는데 저만한 금액이 드는 것은 상식이 아니다. (그리고 저 금액도 서울의 평균일 뿐이다. 서울 강남구, 서초구 쪽에는 24평형 아파트 전세가격이 8억이 넘는다.) 그리고 다른 모든 ‘나쁜’ 수치가 ‘나빠지는 것’처럼 이 가격도 악화일로다. 2004년에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이 1억 5,432만원이어서 그래도 4년만(?) 죽었다 생각하고 저축하면 될 일이었는데 말이다. 소득을 모두 저축한다는 비현실적인 계산에서도 이 정도인데, 실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전세가 아니라 ‘주택매입’을 기준으로 주판을 두드려보면 이건 거의 절망이다. 소득분위를 5분위로 나누었을 때, 가운데인 3분위에 해당하는 사람은 기본적인 지출을 제외하고 1년에 평균 797만 4천 원 정도를 저축한다. 그렇게 27년을 성실히 살면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2억 1,677만원), 43년을 살면 수도권에서(3억 4,700만원), 그리고 59년을 살면 서울에서(4억 7,000만원) ‘평균’에 해당하는 주택을 마련할 수 있다. 어디 이것뿐인가. 검색 몇 번만 하면 불명예스러운 통계지표에서 독보적으로 ‘OECD 1위’를 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민낯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이 많다. 노력할 근거가 없고 도둑질이나 사기 치지 않는 이상 희망이 없는 사회에서 충분히 있음직한 일 아니겠는가.


“왜 4년 만에 졸업을 하지?”라고 묻는 시대의 등장


지금의 청년세대가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특이한 현상 하나를 이해해보자. 졸업을 안 한다는 뜻의 ‘NG족’(No Graduation)은 이미 보편적인 시사용어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영화촬영장에서 외쳐대는 “NG!”(No Good)와 발음이 같은데 원래사용시의 뜻과 너무나도 어울릴 정도로 NG족은 부정적인 세태를 대변한다. 지금까지 대학생활의 기간이 연장되는 지점이 사회적 관심이 된 것은 군대문제와 상관없이 휴학을 하는 경우가 늘어난다든지, 반수를(대학을 다니면서 수능재수) 선택하면서 야기되는 자퇴생의 증가 정도였다. 졸업논문을 쓰지 않거나, 영어시험 점수를 제출하지 않거나, 교수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멀쩡한 학점 하나를 F처리해서 졸업조건을 고의적으로 누락시키는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졸업유예는 일상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NG족이 2006년도 ‘올해의 신조어’로 여러 언론매체에 등장했을 만큼 졸업유예는 2000년대 중반이후의 ‘암울해진’ 대학생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된다.2013년 12월 12일자 <한국대학신문>이 국회 교육과학문화관광위원회 박성호 새누리당 의원이 공개한 ‘대학별 졸업생 등록학기 수 현황’ 자료를 바탕으로 보도한 “서울대도 피해갈 수 없는 ‘취업한파’ - 인문대 졸업자 절반이 10학기 이상 등록한 ‘5학년생’” 기사를 보자.


1. 올해 서울대 졸업자 3495명 가운데 10학기 이상 등록한 학생의 비율은 34.1%(1192명)에 달했다. 이는 2009년 25.2%(979명)보다 5년만에 8.9%p나 증가한 수치다. 단과대별로 인문계열 ‘5학년생’ 비율이 자연계열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아 취업난을 실감케 했다. 인문대가 2009년 34.3%에서 2013년 49.8%로, 사회대가 30.6%에서 41.3%로, 경영대가 32.8%에서 46.7%로 급증했다. 반면 공대(29.2→28.0%)와 자연대(26.2→26.8%)는 ‘5학년생’의 비율 변화가 거의 없었다. 9학기 등록자 현황을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인문계열 단과대학의 경우 거의 80%에 육박했다. 2013년 졸업자 가운데 9학기 등록자 비율은 법대(79%)가 가장 높았고 이어 인문대(77.9%), 경영대(77.4%) 순이었다. 공대(54.1%)와 자연대(48.7%)는 절반가량이 4년 반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2. 29학기로 좁혀보면 전체평균이 59.7%이며 인문대, 경영대 등은 “남들 다 하니까” 유예한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자연대, 공대에서나 “아직 절반은 유예 안 해”라고 자조가 허락된다. 물론 이는 대학 전반적 풍토다. 이화여대는 53%, 연세대는 46%가 9학기 이상을 등록하고 졸업한다. 서강대의 경우 졸업자 중 유예자 비율이(2011년→2013년) 인문학부(42→57%), 사회과학부(42→50%), 경제학부(32→53%), 경영학부(31→43%), 커뮤니케이션학부(40→63%) 등으로 확인되었는데 이런 수치들을 종합하면 전체 대학까지는 아니지만 ‘서울권 일부대학은 이미 유예비율이 절반을 넘었다’고 할 수 있다. 인문계열이 더 높은 이유는 당연히 취업문제가 타의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이는 스펙관리를 더 철저히 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는데 복수전공으로 경영학 계열까지 선택해서 공부해야 하는 상황은 절대적인 시간 개념에서 8학기가 부족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졸업을 위해 필요한 120~130학점 중 100학점 정도를 전공과목으로 취득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학교 다니면서’ 할 수 있는 건 학점관리와 토익시험 응시 정도다. 재학기간 중 2~3학기 정도 가능한 휴학을 어학연수, (취업용) 봉사활동 등에 활용하 공모전 응시 및 자격증 취득을 하기 위해서라도 ‘졸업유예’는 당연해진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5년 만에 졸업하면 '집안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걱정했지만, 요즘은 4년 만에 졸업하면 '왜 4년 만에 졸업하지?'”라고 묻는 시대다. 고용정보원의 <2015년 4월 고용동향 브리핑>을 보면 전체 대학생 중 휴학 없이 졸업한 사람은 30.9%에 불과했다. 나머지 69.1%는 휴학과 유예 등을 통해 어떻게든 졸업을 연기한다. 평균 졸업기간이 남자의 군복부 기간을 제외하고도 5.2년이다. 누구든지 평균 1.2년을 ‘더’ 대학을 다닌다. 사실상 ‘모든’ 대학생이 휴학을 하고 ‘상당수’가 졸업유예를 하는 시대다.


지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졸업유예가 대수겠는가


별 다른 고민을 하지 않아도 이유를 추론하는 건 어렵진 않다. 일을 해도(working) 가난한(poor) 시대에는 ‘어떤 곳’에서 ‘무슨 일’을 하는 것이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중요하다.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를 따져야하고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를 고려해야 한다. 이와 비례하여 전체의 학력상승이 나타나지만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바늘구멍을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들만 적체된다. 투자한 비용을 고려하면 쉽사리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릴 수도 없다. 이건 눈이 높아서가 아니라 ‘다른 쪽’이 워낙 엉망이기 때문이다. 이제 청년의 문제를 ‘예전에도 그랬다’는 식으로 생애사적 위기의 차원에서 쉽사리 규정할 수 없다. “기성세대가 어떤 삶을 살아왔든지 그와 별반 관계없이 그들의 자식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은 천지개벽했다.” 지금은 엄청나게 사교육 받아 이름 있는 대학을 가서 학기를 초과하면서까지 취업을 준비한다. 너무나도 비정상적이다.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문제를 바탕으로 ‘비정상화의 일상화’가 가능한 이유를 살펴보자.


1980년대에는 중소기업 노동자들도 대기업 노동자 임금대비 97%의 수준의 소득을 보장받았다. 이것이 1994년에는 77%로 떨어졌고 2014년에는 60%까지 급락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나라이니 대기업과 동일한 대우를 기대할 순 없지만 ‘차이’가 있다면 이는 감당할만한 수준이어야 한다. 대졸 신입사원 월급이 300만원이 경우와 180만원인 경우는 그렇지 않다. 중소기업을 가는 것이 곧 삶의 질이 추락됨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 존엄성의 문제다. 그런데 현재 전체 노동자의 81%가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일자리를 구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10명 중 ‘2명’에 포함되어야 하는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다. 단지 임금만 차별 받는 게 아니다. 대기업의 경우 국민연금 가입률이 95%가 넘지만 중소기업은 64.1%에 불과하다. 한국사회에서 중소기업에서 일한다는 건 현재는 물로 노후까지 불안함을 예약하는 꼴이다. 유급휴가 역시 대기업은 93.4%가 혜택을 보았지만 중소기업은 44.4%만이 당연한 권리를 행사한다. 휴가를 쓰는 만큼 월급이 깎으니 제대로 쉴 수도 없다. 2%에 불과한 중소기업 노동조합 조직률을 볼 때 문제가 있다고 어디에 하소연도 못한다. 쉽게 말해, 지금의 대학생들이 대기업을 고집하는 것은 ‘욕심’이 아니라 일종의 ‘생존본능’이다.

여기에 비정규직 문제까지 고려하면 ‘대학생들의 졸업유예 전략’은 쉽게 이해된다. ‘임금이 낮은’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이 될 바에는 다른 기회를 엿보기 위해 ‘강의도 듣지 않으면서 대학에 돈을 납부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사회마다 여러 이유가 중첩되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구분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임금의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비정규직’은 쉽사리 인정할 만한 수치가 아니다. 이들의 월평균 임금 149만 7천원은 정규직 대비 55.8%에 불과하다. 이 수치도 정부통계이고 노동자 통계에 따르면 2014년부터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대비하여 절반도 되지 않는 49.9%의 급여를 받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과 비교하면 40%밖에 되지 않는다. 대기업 대졸신입사원 월급이 300만원이라면 120만원 받는 셈이다. ‘밥만 먹고 살라’는 뜻이다. 그 차이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2002년도에는 정규직이 100만원을 받을 때 비정규직은 67만 1천원을 받았다.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는 상황이라 다들 그랬는데, ‘더’ 나빠졌다. 그래서 노동자 중위계층 급여의 3분의 2 이하로 급여를 받는 ‘저임금자 비율’도 비정규직 정규직 노동자에서 압도적으로 높다. 2015년 기준으로 정규직 1062만 명 중 저임금 종사자는 70만 명인데, 비정규직 노동자 868만 중 402만 명이 저임금 노동자다. 미래마저 어둡다. 한국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매우 낮다. OECD 16개 국가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비정규직으로 채용된 3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율이 22.4%에 불과해, 평균 53.8%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정규직으로 전환은 커녕 해고되기 일쑤다. 한국에서는 비정규직으로 채용 3년 내 해고될 확률이 26.7%인데 이는 평균 16.9%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비록 비정규직이라도 ‘나중에’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크고, 해고될 가능성은 낮다면 대학생들은 졸업유예보다 ‘어디든 취업부터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아니다. 정규직에 비해 6분의 1 수준인 비정규직의 노동조합 가입현실을 고려하면 중소기업의 경우와 마찬가로 문제가 풀릴 여지도 없다. 그러니 8학기가 끝나갈 때, 구직성과가 좋지 않으면 ‘취업준비생’ 신분을 더 늘려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봄직 하다.

불안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국가가 ‘공기업’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보면 쉽게 이해된다. 2010년 이후 4년간, 한국의 30대 공기업에서 정규직은 1.2%, 비정규직은 12.4% 증가했다. 이는 국가가 앞장서서 고용의 풍토를 ‘비정규직화’ 하겠다는 의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러니 일반기업이 “더 이상 해고할 정규직이 없는 상황”인건 놀라운 일도 아니다. 말 그대로 ‘헬조선’이다. ‘지옥에서 살아남고자 하는데’ 졸업유예가 뭐가 대수겠는가.


의심하라! 그것은 신(神)이 선사한 사람의 권리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제도적인 도움을 바탕으로 언급된 ‘나쁜 지표’들이 좋아져야 한다. 제도적 도움을 넓은 의미에서 정책이라고 본다면 이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물론 정치인들이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이겠지만 그 정치인이 ‘대변하는’ 민심은 결국 개인이 평소 어떤 여론을 생산하기 위 노력 했는가와 무관치 않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들은 자신의 삶을 늘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일상에 대한 문제제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비판적’으로 살아간다는 게 한국사회가 만만치 않다. 특히! 종교는 이를 무슨 죄악처럼 여긴다.


‘비판적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은 (바로 신이 직접 만드셨다는) 인간의 ‘자격’이다. 인간은 침팬지와(심지어 ‘쥐’하고도) 유전자의 99%가 흡사하다. ‘다른’ 1%는 바로 이성의 유무다. 이성은 언어를 만들고 추론능력을 만들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배양한다. 그래서 인간만이 ‘공동체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본능을 억제한다. 그렇기에 인류는 “시행착오를 줄이며 생물학적 진화와는 비교되지 않는 엄청난 속도로 사회적 진화를” 할 수 있었다. 사회학자 김찬호는 『사회를 보는 논리』에서 다음과 같이 인간의 특징을 설명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점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는 지적인 호기심이 매우 강렬하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의 생존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끊임없이 뭔가를 새롭게 알고 싶어 한다. (…) 인간은 주어진 것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시도 속에서 문화를 발전시켜온 것이다. 질문할 수 있는 능력! 바로 이것이 인간 진화의 비결이다. (…)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삶과 사물의 이치를 되묻는 작업만이 아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서 제기되고 내게 던져진 질문 그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단계로도 나아가야 한다. 오답도 문제지만 오문(誤問), 즉 잘못 던져진 질문도 그에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타인이 내게 던진 질문에 대해 과연 그것이 정당하고 필요한 질문일까하고 물음표를 달아보는 태도가 요구된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실 타인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주어진 질문도 우리를 구속하지만, 스스로 던진 질문 가운데도 잘못 던져진 것이 얼마나 많은가. (….) 질문 자체에 질문할 수 있는 힘, 그 지적인 에너지로 우리는 생각과 삶의 자유를 확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불’이란 걸 이해해 보자.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모든 동물들은 ‘불’을 무서워하고 피한다. 본능에 충실한 반응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를 영리하게 사용했다. 직접적 위협을 가하는 경우를 제외하니 ‘불’은 무궁무진한 효용이 있었다. 음식에 ‘가열’하면서 더 건강해졌고, 그래서 수명이 연장되니 ‘미래를 위해서 현실을 희생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인간은 ‘불’을 적의 위협을 막아내는 도구이자 공부를 위해 어두운 밤을 밝히는 빛으로 응용했다. 때론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서로간의 갈등을 씻기도 하고 ‘촛불시위’때는 강력한 사회적 저항의 무기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 ‘불’을 아주 거대한 사회적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해보자. 인간은 그 고정관념을 합리적으로 의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깨부수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인간을 “신이 정해준 운명에 도전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온 유일한 동물”이라 한다. 따라서 인간의 삶 안에는 언제나 ‘갈등과 긴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성장통’을 바탕으로 인류는 전진한다.


‘확신하지 않는 자세’를 인간의 ‘능력’으로, ‘자격’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언제나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명심하길 바란다. ‘집단사고’(group thinking)는 미국의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rving Janis)의 개념이다. 재니스는 미국의 케네디 정부가 쿠바의 피그만을 무력 침공했다가 혼쭐난 사건을 통해 ‘아무리 지성들이 고민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집단의 결정은 ‘멍청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미국은 자기 바로 앞에서 사회주의 깃발을 보란 듯이 꽂고 있던 쿠바가 눈에 가시거리였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쿠바를 어떻게든 해결(?)할 방안을 준비하고 있었다. CIA는 무력으로 침공하여 내부갈등을 통한 체제개혁이 가능하다는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물론 쉽사리 실행에 옮길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젊음’을 무기로 한 ‘케네디 정부’는 자신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자 이 카드를 사용하기로 한다. 백악관 회의실에 미국에서 제일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모여서 논의를 했고 사실상의 만장일치로 ‘피그만 침공’을 실행에 옮긴다. 이들은 ‘우리처럼 잘 나가는 집단에서’ 오류를 범할 리 없다는 ‘극단적 낙관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완벽하게 실패한다(1961년). 작전에 참가한 1400명 중 1200명이 ‘생포’되었고, 미국정부는 이들을 돌려받기 위해 쿠바에 5,300만 달러 수준의 물자를 제공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작전실패는 예정된 것이었다. 미국정부는 만약 문제가 될 때,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빌미를 만들기 위해, 1400명의 요원들을 ‘쿠바망명자’로 구성했다. 여기서 일차 문제가 발생했다. 과테말라에서 훈련을 한 이들은 시작부터 불안해했다. ‘왜 미국인들은 여기에 없는 거지?’라는 지극히 당연한 의문이 등장했고 이는 ‘잘못되면 우리 모른 척 하는 것 아닐까?’라는 합리적 의심으로 이어졌다. 작전이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자 대다수가 즉시 ‘항복’을 선택한데에는 이런 불신이 존재하고 있었다. 또 다른 실수는 미국정부가 ‘쿠바’라는 국가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쿠바’는 엄연한 ‘국가’의 틀을 탄탄히 갖춘 나라다. 이런 ‘쿠바’를 사실상 비(非)정예요원을 투입시켜 ‘전복’시킬 수 있다는 것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었다. 쿠바가 무슨 ‘부족단체’란 말인가? 그리고 ‘무려’ 1400명을 투입시키면서도 내부분열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순진한 발상과 그리고 ‘고작’ 1400명을 가지고 무력침공이 성공할 것이라는 이상한 확신이 ‘한 명의 독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답게 케네디정부는 열심히 토론을 했다. 그러나 ‘결속력이 너무나 강한 것’이 문제였다. 정당한 비판이 ‘우리가 과연 실수할 것 같아?’라는 반론에 막히고 합리적 의심을 ‘너 겁쟁이구나?’라는 조롱하는 곳에서 ‘옳은 결정’이 등장할 가능성은 낮다. ‘집단사고’는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과 비교되는데, 후자는 다수의 의견이 ‘모여’ 보다 지혜로운 결과물이 창출됨을 뜻한다. 하지만 집단이 모였다고 ‘지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어도 그 집단이 추구하는 목적과 이를 달성위한 과정의 철학이 어떤가에 따라 그 결과는 최악일 수 있다.


당신이 한국인이라면 이 문제를 더 무게감 있게 이해해야 함이 마땅하다. 왜냐하면, ‘결속력이 높을수록 집단사고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볼 때, 한국사회는 이 ‘결속력’이라는 것의 이미지가 매우 신성하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가 그렇다!) 조직의 치부를 드러내는 ‘내부고발자’를 ‘고자질쟁이’ 정도로 취급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 것은 한국사회가 ‘결속력’에 대한 과잉된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는 증거다. 전체를 위해 개인의 당연한 권리를 희생하는 것이 한국처럼 ‘미덕’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면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당연한 요구’가 ‘이기주의’로 오해되기 쉽다. 결국 ‘논리’와 ‘상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집단의 가치’가 늘 추종될 가능성이 높고 이런 사회는 ‘집단사고’는 구조적으로 자주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비판적 사고’를 일단 ‘내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한 다음’으로 고려하는 부차적인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비판’을 추후개념으로 미루게 될 때, ‘현실성’이라는 덩어리는 집요하게 개인의 일상을 지배한다. 그 결과는 ‘영원히’ 먹고사는 문제에만 개인을 집중시키는데, 좀처럼 이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그리고 설사 추후에 ‘여유가 있는 삶’이 있다 하더라고, 이미 그때가 되면 ‘비판’은 매우 어색한 개념이 되어 있다. 비판적 사고, 그건 ‘이성’에 충실한 지극히 인간의 자격이자, 나아가 자신이 동물과 다른 인간임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오늘의 지혜가 내일의 어리석음이 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니까 언제나 당신의 믿음을 의심하길 바란다(Suspend Your Belief!). “인류가 성인이라 칭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기성체제에 순응하지 않은 혁명성”이었음을 기억하자. 신이 인간을 그렇게 ‘동물과 구별되게’ 만드셨다.

 

 

  


 



♡♡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OnAir 기윤실"을 구독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