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뢰받는 교회

[특집] 그리스도인의 시민됨_조성돈 본부장

그리스도인의 시민됨

조성돈 (교회신뢰운동 본부장)

 

루터 신학의 탁월한 점 중에 하나는 두 왕국론에 있다. 이전까지 교회는 세상과 권력을 가지고 다투었다. 유럽이 기독교 세계로 연합되어 있었고 그 가운데 절대 권력은 교황에게 있었다. 이 교황의 권력에 대항해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들이나 각 나라의 국왕들이 저항을 하는 형태였다. 이것은 역사의 진행 가운데 향배가 갈리기도 했다. 하지만 기본적인 틀은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교회의 권력과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세속 권력의 다툼에 있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해로는 담아낼 수 없지만 당시 이러한 다툼은 자주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 만큼 이 다툼은 치열했다고 할 수 있다.

 

종교개혁의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러한 세속권력과의 관계였다. 루터는 쯔빙글리나 칼빈과는 다르게 세속권력과 공존을 택했다. 좀 더 확실히 표현하자면 세속권력 아래 교회를 두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두 왕국론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교회뿐만 아니라 정부도 두었다는 것이다. 교회에는 복음과 사랑을 주었다면, 정부에는 율법과 채찍을 주었다. 이를 통해서 인간의 성화를 이루어간다고 보았다. 이것에 주목할 점은 교회뿐만 아니라 정부도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라는 것이다. 사람이 악하여 복음과 사랑만으로는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율법과 채찍을 통해서 성화를 이루어 가시는데 정부가 그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이 두 왕국에 속하게 된다. 교회에 속하지만 세속 가운데 정부에도 속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교인이면서 그는 시민이 된다는 것이다.

 

강연을 하러 가면 자주 선한 크리스천이 바른 민주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인데 사람들이 가끔씩 놀란다. 교인이 시민이 된다는 것이냐는 의문에서 나온 것이다. 교회에 속하는 교인들도 당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이 있다. 그곳은 우리가 정복해야할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 가운데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시민으로서 살아야 하되 더욱 바른 민주시민으로서 살아야 한다. 나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살게 하신 소명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사는 바른 자세라고 생각한다.

 

요즘 한국교회는 이 사회와 여러 접점에서 대립하고 있다. 특히 종교인 납세문제에서 첨예하게 부닥치고 있고, 이외에도 동성애와 이슬람 문제로도 대립되고 있다. 나는 이 문제를 바른 민주시민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교회는 자주 대한민국이 이스라엘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정복의 개념이 나오기도 하고, 이 가운데 우상을 없애기 위해서 폭력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스라엘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한국교회이다. 이 가운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는 바울선생님께서 너무 잘 가르쳐 주고 있다. 디아스포라 상황에서 바울선생님은 결코 우상의 신전을 무너뜨리라고 하지 않았다. 동성애자를 찾아서 없애라는 말도 없었고 다른 종교를 찾아서 포교를 막으라고도 안 했다. 특히 그 나라에서 세금을 내지 말라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고린도나 빌립보가 이스라엘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곳이 아니라 디아스포라 교회들이 새로운 이스라엘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디아스포라 형태의 한국교회도 바울선생님의 가르침 가운데 거해야 한다. 이 사회를 향해서 선지자의 역할을 하고 바른 길을 제시해야하는 의무는 질지라도 우리가 이 사회의 시민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 가운데 합리적 설득과 대화를 통하여 우리 역시 바른 민주시민으로서 선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박해의 시대도 아닌데 순교의 각오를 가지고 전쟁을 하려 해서는 이 사회에서 선한 크리스천, 바른 민주시민이 될 수 없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데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기를 기도한다.

 

이 글은 2017년 기윤실 열매소식지 9-10월호 특집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