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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그리스도인/자발적불편운동

[자발적불편운동 레터01] 자발적 불편운동을 시작합시다(신동식 본부장)

자발적 불편 운동을 시작합시다.

신동식 목사(빛과소금교회, 기윤실 정직윤리운동본부장)

 

“국가적 위기가 다가옵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결코 헛소리는 아닙니다. 지금 지구촌에 불어 다친 경제적 위기는 우리에게 분명한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서구 자본주의는 새로운 세상을 열고 영원히 호령할 것 같았지만 지금은 그 소리가 기어들어가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는 이미 그 생명을 다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시장 경제 체제의 근본이었던 자본주의가 사망 선고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다보스포럼에서 자본주의는 죽었다는 말이 현실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입니다.

지금 서구 유럽의 상황은 벼랑 끝에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단순히 한 나라 국가 부도가 아니라 전 세계의 경제에 연쇄 부도 사태를 가져 올 수 있다는 진단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의 경제공항이 현실화 된다면 수출로 경제적 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는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제2의 IMF시대가 올 것이고 그 강도는 이전보다 더 클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 앞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안전할 수 없습니다. 지구촌 시대에 거리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경제공항시대를 위한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지혜는 위기의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잘 훈련시키는 일입니다.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지혜는 생명과 사망의 갈림길에서 바른 길을 가게 하는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영적인 지혜를 구하는 일에 삶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정직하게 알려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통하여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들이 매우 무겁습니다. 그 동안 한국 교회와 성도들은 이 땅의 생명의 깃발 이었습니다. 어둡고 혼란스러웠던 역사의 현장에서 교회를 세우고 나라와 민족을 인도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경제. 정치, 교육, 문화 어느 분야에서라도 한국 교회는 선구자 역할을 하였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삶의 형식은 교회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매우 어둡습니다. 16%의 사람만이 교회를 신뢰하는 현실입니다. 이렇게 된 이면에는 우리의 불찰이 너무 컸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가 본질적인 사명에 붙잡혀 있지 않고 자신의 몸뚱이만 키우려고 눈에 불을 키고 달려왔습니다. 그 결과 외형적인 효과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면의 모습은 너무나 허약해졌습니다. 교회안의 이방인들을 너무 많이 양산하여 낸 것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만 머물고 있거나, 철저한 이원론적 신앙으로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세상은 점점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우습게보았습니다. 결국 우리 스스로 교회를 부끄럽게 만들은 것입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세상과 다르게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을 거부하고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함께 살지만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참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을 본다면 교회의 구별됨이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교회 역시 성공과 허영에 들떠 있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이 갈 길을 몰라 헤매는 것입니다.

교회의 교회됨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복음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르게 감당할 때 교회의 교회됨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위하여 우리가 감수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본질에 합당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손해 보아야 할 것이 많습니다.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접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 됨의 현장은 자발적 불편을 감수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려거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이 땅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왔다고 하셨습니다. 섬김을 받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섬기는 것은 어렵습니다. 섬김을 받을 수 있음에도 섬김의 자리에 서신 것이 바로 자발적 불편입니다. 얼마든 부유한 삶을 살 수 있지만 스스로 포기하고 나눔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발적 불편은 자발적 가난의 삶이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고지론, 저지론, 미답지론, 청부론, 청빈론이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자발적 불편과 자발적 가난의 삶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지만 스스로 누림을 포기하고 함께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러한 그리스도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불편을 기꺼이 감 수 할 수 있는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 밝아집니다. 물론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맡겨진 일들입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합니다. 돈과 권력과 명예를 사랑하는 자리에서 내려와서 이름도 없이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자발적 불편을 살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무기력하고 궁상맞게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발적 불편의 삶은 이웃과 공동체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웃과 공동체가 없이 자신이 존재 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함께 공유하는 삶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자발적 불편은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삶이 아니라 이웃 즉 타자를 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 됨을 나타냅니다. 앞으로 작은 부분에서부터 실제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삶을 나눌 것입니다.

지금은 그리스도인들의 자발적 불편이 정말로 필요합니다. 기윤실은 이전부터 이 일을 추구하였습니다. 정직, 검소, 절제의 삶을 강조하였던 기윤실은 작은 차 타기 운동을 통하여 자발적 불편을 실천하였습니다. 기윤실은 2012년을 기점으로 자발적 불편운동을 펼치고자 합니다. 우리 시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위기의 시대입니다. 이미 앞서 말씀드린 대로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위기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매우 실제적인 위기가 있습니다. 바로 “전기”입니다. 이상 기온으로 인하여 전기의 사용량은 한계치를 넘고 있습니다. 지금의 전기를 감당하려면 원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원전은 일본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결코 안전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우리 스스로 전기 사용을 줄이는 것입니다. 더운 여름, 추운 겨울에 전기를 줄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서 불편의 자리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창조계를 보존하고, 교회를 살리며 그리스도인 됨의 모습을 되찾는 일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앞으로 계속 다룰 것입니다.)

물론 자발적 불편 운동은 여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다만 그 시작일 뿐입니다. 앞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교회의 무너진 터를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세상은 자발적으로 불편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부터 우리이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자발적 불편을 시작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교회를 바르게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는 일에 함께 동역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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